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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미영(가명·당시 8세)이 없는데?"
1971년 9월. 여동생이 가족들을 전부 데리고 장재순(85·당시 31세)씨 가게에 왔다. 장씨가 '왜 내 딸 미영이는 안 데리고 왔냐' 묻자,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장씨는 농담인 줄 알고 웃어넘겼다. '집 보라고 두고 왔나 보네.'
미영이는 자주 이모네 집을 드나들었다. 장씨는 본인이 운영하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술집 한쪽에서 살았는데 어린 딸을 술집에 두기가 내키지 않아 가까운 동생 집에 주로 맡겼다. 동생네 집은 버스정류장으로 10개 남짓 떨KEC 주식
어져 있었다. 더 어린 자녀 둘을 둔 동생은 고맙게도 조카를 선뜻 돌봐 줬다. 아이를 몇 달씩 친척 집에 맡겨도 이상하지 않은 시절이기도 했다.
장씨는 동생에게 떡을 쥐여줬다. "이거 미영이도 갖다 줘." 그런데 동생은 거듭 말했다. "언니, 미영이 집에 진짜 없어. 나는 언니네 집에 있는 줄 알았는데."
딸이 없어졌다주동
는 걸, 장씨는 그제야 깨달았다. 머리를 망치로 맞는 듯한 충격이었다. 악몽 같던 그 말은 기약없는 기다림의 시작이었다. 그때 장씨는 알지 못했다. 결국 딸을 만나게 될 거란 것도, 그러기 위해 54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장기실종의 늪
장씨는 장기실종자였던 딸, 미영씨를 54년 만에 만난 어머니다모바일릴게임
. 장기실종전담반을 운영 중인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가 미영씨를 찾아줬다. 수십 년 만에 가족과 극적으로 재회한 이야기는 경찰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에 이따금 소개된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수사 기법이 발달하면서 장기실종 사건은 꾸준히 해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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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분석



• 이모 집에서 혼자 버스 타고 오다 사라진 7세 딸… 54년 만에 극적 상봉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72909330001923)



스톡아이

하지만 자세한 사연이 전해지는 경우는 드물다. 오랜 실종으로 마음에 상흔이 큰 실종자와 가족들이 언론 접촉을 꺼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씨는 용기를 내 지난 7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했다. 같은 고통을 겪는 다른 가족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서였다.



게티이미지뱅크


장씨는 50여 년 전 상황을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동생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딸 미영씨는 이미 한 달 전 "엄마에게 가겠다"며 이모 집을 떠난 상황이었다. 장씨 동생도 조카가 혼자서도 다니던 길이니, 당연히 잘 갔겠거니 생각만 했다. 집 전화조차 흔치 않던 시대라 연락 수단도 없었다. 그날, 미영씨가 내릴 정류장을 찾지 못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당장 실종 신고를 했다. 경찰과 함께 서울 시내 보육원을 샅샅이 뒤졌지만, 미영씨는 어디에도 없었다. 사실 미영씨는 서울 아동 시설로 인계됐다가, 이미 경기도 성남시 보육원으로 전원된 상태였다. 서울에서는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딸을 잃고 나서, 장씨는 그만한 여자아이만 보면 홀린 듯 따라갔다. 차를 타고 가다가도 유사한 뒷모습이 보이면 "차 세우라"고 소리를 지르고 쫓아갔다. 5년을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어느 날, 장씨는 비슷한 아이를 향해 정신없이 뛰어가다 깨달았다. '미영이는 이제 열세 살이지. 이만 한 키, 이런 모습이 아니겠구나. 이제 찾을 수 없게 되어버렸구나.'
절망은 몸 구석구석 퍼졌다. 장씨는 원인불명의 고통으로 몇 번이고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갔다. "가슴속에 응어리가 들어앉아서 시도 때도 없이 몸이 아팠어. 심할 땐 팔다리가 돌아가기도 하고…" 자주 만나는 응급실 의사가 장씨의 얼굴과 사연을 기억할 정도였다. 그러나 고통을 털어놓을 곳은 많지 않았다. 장씨는 끊임없이 움츠러들었다.
"자식 잃어버렸다는 건 가슴속에만 넣어놓고 어디 가서 말도 못해요. 창피하잖아. 너무 후회되고, 부끄럽고."
그런 마음으로 52년을 보냈다. 이산가족을 찾는 TV 프로그램에서도, 인터넷에서도 딸을 찾을 순 없었다. 까맣게 타버린 장씨의 속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미영씨가 실종됐을 땐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장씨의 막내딸 지현(47·가명)씨였다. 지현씨는 싸이월드며 페이스북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틈날 때마다 언니 이름을 검색해 보곤 했다. 그러나 동명이인만 나올 뿐 언니는 어디에도 없었다.
장씨는 2023년 7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다시 서울 양천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했다. 딸이 살아 있을 거란 기대는 어느새 희미해졌다. 그래도 눈 감기 전 생사만이라도 알고 싶었다. 50년 넘게 떨어져 있어도 그립고 애틋했는지 묻자, 장씨는 빙긋 웃었다.
"그럼. 죽을 때까지도 가슴속에 있어. 그냥 한 번만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 못 봐도 어디 있는지만 알았으면 좋겠다… 그렇더라고. 자식이란 게 그렇더라고."

54년 만의 재회
소식이 온 건 해를 두 번 넘긴 2025년 5월이었다. 집을 찾아온 형사가 '사연이 비슷한 사람을 찾았다'고 했다. 장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다. 형사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확실한 건 아니고… 아닐 수도 있어요."
경찰이 발견한 사람은 면담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평소 하차 장소가 나오지 않아 종점까지 가서 길을 잃었다"며 "부모의 이름과 집 주소가 기억나지 않아 울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보호시설로 데려다줬다"고 말했다고 한다. 경찰은 유전자정보(DNA) 대조를 의뢰했고, 7월 21일 결과를 받았다. 미영씨가 맞았다.
미영씨는 왜 당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을까. 여덟 살 어린 나이였던 탓에 내려야 할 버스정류장을 지나친 뒤 일종의 공황 상태에 빠진 걸로 추정된다. "충격에 의한 기억상실인지, 누군가 손에 이끌려 고아원에 갔을 땐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더래요. 자신의 이름(미영)이 원래 이름이 맞는지도 확신을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막내딸 지현씨의 설명이다.
장씨를 평생 괴롭힌 또 다른 감정은 동생에 대한 분노였다. 동생이 나름대로 위로하려고 '찾느라 너무 애쓰지 말라'고 말했던 게 역효과를 냈다. 장씨는 '딸을 몇 푼 받고 어디 팔아버린 건 아닐까' 수십 년간 동생을 의심했을 정도였다. "여섯 살 때 엄마를 잃고 아버지는 행방불명돼서, 형제라곤 우리 둘뿐이었어. 그런 동생을 평생 미워했는데… 죽기 전에 오해를 풀어서 어찌나 다행인지."



54년간 실종됐다가 경찰 수사 끝에 발견된 딸 미영(가명·앞줄 오른쪽)씨와 상봉한 엄마 장재순(앞줄 가운데)씨가 7월 25일 꽃다발을 들고 있다.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 제공


지난달 25일, 경찰의 주선으로 장씨는 딸과 재회했다. 막상 만나니, 떨어져 있던 세월이 와닿았다. 어색했다. 미영씨는 엄마와 닮은 편도 아니라 DNA 검사가 아니었다면 '내 딸이 맞나' 헷갈렸을 것도 같았다. 어느덧 환갑이 넘은 딸도 수십 년 만에 만난 엄마가 데면데면한 듯했다. 그러나 나란히 선 딸의 옆 얼굴을 슬쩍 보며 장씨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모습이 시누이와 똑같았다. "귀엽더라고. 우리 식구랑 닮은 게."
요즘 가끔 딸 미영씨가 안부를 전해올 때마다 장씨 마음은 환해진다. "찾고 나니 마음이 너무 편해. 미영이가 바빠서 나를 잘 못 들여다봐도 괜찮아. 잘 살고 있다는 걸 아니까. 이제는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어." 만성 불면증에 시달리던 장씨는 요즘 잠을 잘 잔다고 했다.

나누고 싶었던 희망
전화 등 연락 수단이 대중화되지 않았고, 사회안전망도 허술했던 과거엔 미영씨처럼 실종된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지난 5월 보건복지부 집계에 따르면 20년 이상 장기실종아동은 1,128명에 이른다.
미영씨 장기실종 사건을 맡았던 신재문 서울청 형사기동대 4팀장은 "장기실종의 경우 워낙 오래 전이라 객관적인 증거나 단서가 적은 만큼, 유연한 사고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기억의 오류 등을 반드시 감안해야 한다는 의미다.



게티이미지뱅크


올해 1월 양천경찰서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청 형사기동대 장기실종전담반도 재수사에 돌입하며 장씨와 미영씨의 기억이 부정확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이에 서울시 아동복지센터를 통해 비슷한 시기 들어온 여아를 추리며 입소 시기를 1971년 6~12월, 출생연도는 1962~1964년생으로 확대했다. 실제로 미영씨는 1963년생이었지만 1964년생으로 등록돼 있었다. 경찰이 오차 범위를 둔 덕에 검색 대상에서 누락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133명의 자료가 확보됐다. 전산화돼 있지 않은 기록이라 종이를 한 장씩 넘기며 모든 내용을 꼼꼼히 읽어야 했다.
기록을 살펴본 경찰은 비슷한 상황의 아이를 발견했다. 최초 실종 장소가 영등포구였고, 버스 종점에서 울고 있다가 아동보호소로 인계된 후 성남보육원에 전원된 여아였다. 성남보육원에 다시 그 시기 입소한 여아의 자료를 요청했고 면담과 DNA 검사를 거쳐 미영씨가 맞다는 걸 확인했다.



장씨는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다른 장기실종 가족들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하상윤 기자


장씨와 막내딸 지현씨가 인터뷰를 한 건 다른 장기실종 가족에게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꼭 주고 싶어서다. 특히 장씨는 딸 미영씨를 찾는 과정에서 실종사건 수사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빠르고 정확해졌다는 걸 알게 됐다. "실종신고를 하면 DNA를 등록하는데 이 덕에 실종자와 가족이 서로를 절실히 찾는다면 반드시 만나는 시대가 됐다"고 장씨는 힘줘 말했다.
"누군가는 보고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아직도 (장기실종자 가족이) 많을 거예요. 저희를 보고 용기 내서 가족을 찾으시는 분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지현씨)
"옛날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됐는데, 지금은 찾을 수 있어. 경찰들도 얼마나 적극적으로 해줬는지, 감사하다는 말로 다 할 수가 없을 정도야. 다른 사람들(장기실종자 가족)도 한을 풀었으면 좋겠어."(장씨)
김나연 기자 is2n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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