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이 국화 곷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송이 국화 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 후 략 ~~~~
학창시절 누구나 한 두번쯤 즐겨 읊어 보던 서정주 님의 "국화 옆에서" 시다.
이 시를 가슴으로 감상해보며 살아온 얘기 몇자 옮김니다.
돌이켜보면 81년도 말레이시아 정유 공장 건설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본사와 해외현장을 오 가며 생활한 긴 세월 이제 종지부를 찍습니다. 일본 JGC의 말레이시아 정유 공장 건설공사를 완료하고, 83년도 “치요다”의 사우디 아라비아 산소/ 질소 공장 건설, 곧 이어 현대가 건설한 쥬베일 산업항내 에치렌 수출입기지건설 ( 이때 적지 않은 교우들이 중동에서 함께 땀 흘린 친구들이 많았음)을 완료하고 본사로 돌아와 1년반 다시 86년도 아프리카로 나이제리아 날아가 포트하코트에서 일본 JGC와 정유 공장 건설,.. 이때 국내에선 민주화의 물결이 거세지고 산업현장에선 노사의 갈등이 첨예화되어 불법파업으로 현장은 법질서가 파괴된 전쟁터를 방불케 하던 시기 이 물결은 멀리 나이제리아 현장까지 날아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불을 지르고 (다행히 자재 창고 일부,..) 어떻게 이사태를 수습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까? 나이제리아 경찰을 동원할까? 모든 직원들을 안전하게 그들의 사랑하는 가족 품으로 돌아가도록 할 의무가 내게 있지 않은가? 순간 순간 머리가 빠게 지는 것 같은 현기증을 느끼며 왜 신은 내게 이런 시련의 순간을 주는가,.. 원망 스럽기도하고,. 별의 별 생각이 다 스쳐가고, 본사와의 통화도 되지 않는 천만리 머나먼 아프리카 해안가에서,.. 또 대사관은 이곳에서 얼마나 먼가,.. 비행기로 1시간 반 대서양의 한쪽 귀퉁이 작은 마을,…별 생각이 다 스치는 순간,..간부 직원들이 찾아와 일단 만나 그들의 요구를 들어보고 가능한 그들을 자극시키지 말고,..주동자들 일부는 이미 술해 취해 있었고 말 잘듣고 착실하게 느껴졌던 믿었던 근로자가 한 순간 180도로 돌아서 선 후배도 몰라보고 몇몇은 각목을 들고 불을 놓고 숙소를 미친넘처럼 설쳐 되고 있었다. 현장은 순간순간 통제 불능의 상태로 닦아가고 있었다. 모든 조직통솔의 권위와 명예를 잠시 내려 놓고 밤 12시 그들과 마주 앉아 요구 사항을 설득과 타협을 시도하며 건의 사항 일부는 수용하고 힘든 협상이 진행되는 순간 그래도 아군편에서 남모르게 바쳐주는 자가 있어 가까스로 수습하게 되었다. 이튿날 대사관에 연락 하니 노무관(근로감독관)이 내려오고 다시 이틀이 지나 수습국면으로 접어 들어 경찰에 연락 주동자 몇명을 추려 바로 강제귀국 조치 시키고,.. 이 소식을 대사관에 보고 하니 대사님이 (이분이 후일 외무부 장관까지 역임,.. 부인도 함께 내려 오시면서 집에서 과자까지 직접 만들어 들고 와,) 직접 현장으로 내려오셔서 모든 직원 및 근로자들을 모아 놓고 설득 시키시고 (당시 나이제리아에는 한국의 건설업체중 대우 와 신화 2개업체 만이 공사를 하고 있었고 어려운 여건에서 고생한다고 대사관에서 모든지원을 해주려 노력하고 있었음) 이런 아픈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또 그 뿐이랴 한국근로자들의 사태발생 몇개월후 다시 찾아온 나이제리아 근로자들의 임금인상 데모,.,.. 정유 공장 건설이 국가기간 산업시설 이므로 현장을 군인들이 상주 하며 외곽 경비로 현장을 지키고 있었는데 ,.. 물론 정문엔 경찰도 상주 하면서,.. 당시 그 나라는 워낙 낙후 되어 무장 때강도 들이 대낮에도 설쳐 데는 나라라 안전을 위해 현장을 군인들 2 개소대 와 경찰이 현장을 보호하고 있었는데 일본의 JGC란 회사와 함께 공사를 수행하며 나라사정이 위험한 지역이라 현장내에 숙소를 마련하고 있었음,.. 한국 근로자들 사태가 몇개월 지난후 다시 찾아온 나이제리아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을 요구와 파업, 근로자 2000여명(프로젝트 현장 근로자 총 나이제리아인4000명 한국인 500명, 영국지배하에 있어 유니온, 노조가 아주 잘 조직되어 그들이 외부에서 조종하고 있었음)이 정문을 부수고,.. 현장으로 진입을 시도하고 한국 근로자들이 일하는 것을 방해하고,…해산을 위해 경찰이 페프 포그를 쏘고,.. 일진 일퇴가 계속 되었다.
물론 이 사태는 주 계약자인 JGC가 해결할 사항이었지만,.. 모든것은 시간이 해결 한다고 했던가? 약 2 주만에 수습이 되었다 그후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공사를 완료하고,.. 88년초 한국으로 돌아와 올림픽을 시청할수 있었고다.. 다시 90년도 중동에 전운이 감돌아 이락크의 후세인이 쥬베일 쪽 국경을 넘어 사우디를 침공하는 사태가 발생 미국이 주도하는 "사막의 폭풍 작전"이 전개되면서,.. 약 2주후 후세인부대는 철수하여 다시 돌아 갔지만,.. 91년도 일본 “치요다”와 비료공장 건설을 위해 전쟁이 끝난후 3개월정도 지나 다시 사우디 쥬베일로 들어가니 이라크와의 전쟁으로 후세인 부대들이 퇴각하며 기름 저장댕크를 불태워 하늘이 온통 검은 연기로 가득 매연으로 숨쉬기 조차 어려웠다. 93년공사완료후 귀국,.. 95년도에 다시 다시 쥬베일로,.미국의 브라운 루트사와 가성소다 공장 건설을 완료하고 ,..이 공사를 수행하면서 영어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로 얼마나 힘들었던지 다행히 좋은 현장책임자(소장)만나 공사를 잘 끝내고 ,.. 잠시 쿠웨이트로가 일본의 도요 엔지니어링과 건설중인 PE 플란트 프로젝트가 공사 진행이 늦어지고 죽을 쓰고 있어 해결사로 잠시 돌어가 6개월정도 돌보고,..97년도 말,..인도네시아 '수라바야 북쪽에 건설되는 화력 발전소 건설공사에 잠시 참여하여 지원하는 동안,. 잠시 현장에서 휴가를 얻어 찾아간 "발리섬" "구따비치"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환상적인 구름들이 시시각각 변하며 만들어놓는 자연의아름다움의 극치를 감상하고, 또한 이뽄 아가씨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뭉쳐진 근육들을 부드럽게 맛싸지를 받는 순간 그동안 쌓인 피로가 밀물처럼 썰려가고 있음을 느낀다. 99년도 다시 카타르로 출국 정유 공장 건설공사 현장 소장으로 부임되어 프로젝트를 수행중 뜬금없이 찾아온 환란으로 몸담고있던 SHINWHA 건설이 뱅크 럽(부도) 되는 아픔을 겪고,.,..2002년 정년 퇴직,.. 2003년 사우디 현지 건설회사 NSH (Nasser Al-Hajri Co., Ltd)의 (중동 건설업체중 두번째로 큰회사 임직원 및 근로자 40,000명 당시 15개 프로젝트를 수행중) NSH의 P 사장(인도인)이 한국으로 찾아와 우리 부부를 프라쟈 호텔로 불러내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10년만 저희 회사에 와서 도와 달라고 간청하므로 도와주기로 하고,... 전부터 그는 서로가 잘 알고 있는 사이로 그는 70년대 말 사우디로 진출해 80년대 말까지 인도에서 많은 건설 인력을 대려와 건설회사에 인원을 공급하므로써 엄청나게 큰 돈을 벌어 인도에 투자해 병원도 운영하고 호텔도 운영하므로 인도 경제인 100인내에 드는 인물로 90년대 부터 사우디에 건설업체를 운영해 오고 있는 사람이다. 또한 그는 좋은 일도 많이해 집안이 좋지않은 젊은이들의 합동결혼식을 주선해주고 (200-300쌍) 집도 지어주고하여 인도 내에서 명망있는 VIP로 통하는 사람이다. 그의 요청을 수락하고 사우디로 들어가 나는 그 회사 플랜트 총괄 담당 임원으로 근무하던중 2005년 일본 치요다가 수주한 카타르 LNG 프로젝트의 그 일부를 NSH가 수주 (일본 “치요다”사가 나를 그 프로젝트의 총괄 현장소장 임명해 주면 공사를 주겠다는 조건이라) 어쩔수 없이 카타르 현장으로 내정 되었다. 내가 카타르로 부임하던날 그와 카타르의 "쉐라톤" 호텔에서 단 둘이 만나 프로젝트 운영및 지원사항에 대한 논의를 하였는데 대충 이런 요구를 한것으로 기억 된다. 내가 그를 잘 알고 그가 나를 잘 아는 사이이지만 시작부터 확실하게 인식 시켜줄 필요성이 있을 것 같아, 월 5000리얄(약1500불) 은 내 임의로 쓸테니 어디에 무엇으로 사용했는지 묻지마라, 단 영수증은 첨부 하겠으며, 두번째 공사가 성공적으로 끝나 이익을 남겼을때 이익의 몇 %를 인센티브(성과급)로 지급해달라,..직원들이 모두 인도인이라 공사에 투입되는 비용을 얼마던지 조작 할수있겠지만,...이렇게 제안을 했드니 모두 오 케이다. 처음 토목공사가 시작되고 철골이 올라가고 기계가 설치되면서 현장 인원은 3800명까지 투입되었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그가 살고있는 바레인 집으로 두번이나 우리 부부를 초대했는데 바레인공항에 내리니 그가 기사를 공항으로 내 보내(벤츠) 우리를 픽엎하고 그의 집에서 융숭한 대접과 선물을 안겨주고 또 우리 집 큰아이 결혼식때는 축의금으로 적지 않은 돈을 보내줘 결혼식을 잘 치룰수 있었다. LNG 프로젝트는 발주처 "쉘"과 "카타르 가스공사""의 까다로운 기술관리와 안전 관리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주 계약자인 "치요다 화공건설" 이 설계하고 앞에서 잘 이끌어줘 LNG Project를 성공적으로 잘 끝 낼수 있었다. 5년이란 긴세월을 여러가지 자연조건이 열악한 카타르 현장에서 공사를 수행하므로 (오직 한국인은 나를 포함해 3명) 중동 생활에 심신이 지쳐 공사완료와 동시 그 회사를 그만두고 쉬는 중,.. 일본 “치요다”의 아는 친구들이 연락이 와 일본 자기들 회사에 와서 근무할 의향이 없냐고 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생각해 보면 어느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쉽게 끝나는게 없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는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남몰래 가슴 아파 해야하고 또 흘린 눈물이 얼마나 많았던가,…그래서 지금도 그때 고뇌의 순간들 가슴속 까맣게 타 버린 흔적들이 지금도내 가슴속에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계곳곳에 흘린 땀 방울 만큼이나 거름이 되어 한송이 예쁜 국화꽃이 되어 흘린 량만큼의 보상을 받았으면 좋으련만 우리의 삶은 수학 공식 1+1이 2가 반드시 되지는 않나보다. 그래도 다행 스럽게 건강이 지금 껏 큰 탈 없이 바쳐주고있으니 그 남아 다행이랄까! 이 모두가 팔자 소관이 아니랴, 아마도 전생에 지은죄가 많아 세상을 떠 도는 방랑자가 되어 살아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수구 초심이라 했던가? 이제 일본에서의 3년 생활을 정리하고 이번 주 한국으로 돌아 갑니다,..서울로 가는 길 잠시 울산으로 가 H-중공업에 상주하며 현재 진행중인 신 공법으로 건조되는 세계최대 LNG 선 건조를 위한 프로젝트의 기술적 협의를 위해 (아직 EPC 계약전 기초 설계 단계지만) 당분간 울산에 상주 할 계획입니다. 친구들, 울산에서 만나기를 기대 해 봅니다. 몇일 남지 않은 구정 즐겁게 맞이 하시기 바라며 건강한 모습으로 재회를 고대 합니다.
- 20394 휘문56회 이상균 천둥은 먹 구름속에서~~! 2015-02-08
- 20393 휘문60회 나영길 감동의 실화, 한번 더! 2015-02-06
- 20391 휘문53회 이재원 2015년 2월 걷기 2015-02-05
- 20390 휘문60회 나영길 박근혜 대통령과 펑유란 2015-02-05
- 20389 대뉴욕 휘문동문회 서만석 입춘대길 (立春大吉) 해설 & 입춘방 (立春榜 ) 모음집 2015-02-05
- 20388 휘선회 이순실 걱정스런 대한민국 2015-02-04
- 20387 휘문북부교우회 신성수 제 시 '까치와 木連'이 가곡으로 만들어졌습니다. 2015-02-04
- 20386 휘문북부교우회 신성수 신년하례 및 정기총회 후기 2015-02-04
- 20385 휘문56회 윤기중 2015년 1월 사랑방 운영사항 2015-02-04
- 20384 휘문60회 나영길 인생찬가 2015-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