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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983년 이었던가?
은퇴를 하고 건강을 위해 휴양차 제주도로 내려가셨던 아버지가 일을 저지르셨다.

그냥 당분간 쉬겠다고 가셨다가 당시 귤나무 하나면 자식 대학을 보낸다는 소문과

노후에 뭔가 소일거리를 찾던 당신은 당신 평생에 흔치않은 단독 결단으로

매물로 나온 귤밭을 계약하신거다.

잔금은 어머니 몫으로 던지고 내가 귤밭 하나 샀소~~ 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놈의 귤밭이 그때를 전후해서 누런 금이 아니라 누런 똥이 될줄이야....


이재에 밝은 모친께서는 그 사실을 알고 헛돈을 쓰셨다고 삐치셨고

그저 한가로운 농촌 생활에 즐거우셨던 아버지는 엄처의 눈총이 무섭다는 핑계로

홀로 인적도 드물고 차도 잘 다니지않는 그곳에서 버티셨다.

얼마쯤 그렇게 떨어져 사시던 두분의 사이는 그래도 하늘인 아버지에게

양보를 한 어머니의 배려로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지내셨다.


내가 처음 제주를 가 본 것이 아마 그때쯤일게다.

백수가 뭐하러 비싼 돈 들여 비행기로 가느냐시며 부산에 가서 페리를 타고

가라며 초등학교 저학년 하나쯤은 들어갈만한 장독 하나와 내가 가서 덮고 잘 이불 한채를

건네주시고 기차역으로 쫒겨갔다.

새마을? 무궁화? 기억은 안나지만 아마 제일 싼 기차로 부산역까지 가서 부산항을

물어 물어 찾아가 저녁 7시인가 떠나는 제주행 페리를 타고 다음날 새벽에 제주에 도착했다.

말은 통하고 그때는 가진게 젊음 밖에 없던 때라 커다란 장독 메고 제주에 간 것이다.

새로운 곳을 간다는 묘한 기분에 꼬박 하루를 굶고 시외버스 터미날에서 한림읍으로 가

또 2시간을 기다려야 온다는 월림행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끼니를 찾아 먹었다.


아마 그때 돼지 파동이 있었는데 돼지값이 똥값이라 정류장 근처의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시켜먹었는데 김치보다 돼지고기가 더 많았던 기억이 난다.


허기를 채우고 정류장에 서니 트럭이 한대 와 서면서 어디로 가냐고 묻는다.

같은 동네 할머니 한 분과 내가 타는데.... 앞자리가 꽉 찼으니 내 자리는 화물칸이다. -.-

대부분의 시골 마을마다 그런 것같은데 리 사무소 근처 버스정류장에는 큰 나무가 있다.


동네에 인구가 적은 탓인지 얼마전 서울서 온 사람이라니까 다 알고있다.

시멘트 포장도로인데 관리를 하지않아 움푹 파인 웅덩이가 곳곳에 있는 시골길을 따라

한참을 가다보니 집이 가끔씩 한 채씩 보이는 데 그집이 그집같아도 그집이 아니란다.


아버지의 배려인지 대문에 문패가 달려있는데 아버지 함자다.

인적은 없고 만 36시간쯤을 헤메고 낯선 곳에 왔으니 무조건 담을 넘어 들어갔다.

해 잘드는 마루에 잠시 쉬다가 내부를 둘러보고싶어 무작정 안으로 들어갔다.


과수원에는 제주 고유의 현무암으로 쌓은 돌담이 블록처럼 나뉘어지고 그 담을 따라

걷다보면 미로가 따로 없다.

이러다 길 잃는 게 아닌가싶어 은근히 겁이 나 겨우 길을 찾아 집에 돌아와 보니

닭 한마리가 내 앞을 유유히 지나간다.

아! 여기는 시골이니 닭도 키우겠구나.

그런데 닭은 어딨지?

들은 풍월은 있어서 큰소리로 "구구구"를 외쳐보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어디선가 후다닥 후다닥..하는 날개짓 소리가 들리고

수십마리의 닭들이 쏜살같이 몰려온다.

삽시간에 주변을 둘러싼 닭쉐이들은 대가리를 갸웃거리며 생판 처음 본 놈이

왜 자기들을 불렀나하는 표정으로 나를 둘러싸고 탐색을 한다.

윽! 잘못하면 저놈들 부리에 쪼여 죽겠다싶어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 수색(?)을 해보니

보리쌀이 뒤주에 절반쯤 있다.

바가지로 반쯤 퍼 담아 가지고 나오니 이놈들...아예 내가 구세주인듯 졸졸 따라다닌다.


...처음 느껴보는 재미였다.

30년쯤 지난 지금도 그 기억이 그립다.

양계장처럼 가둬 키우는 닭이 아니라 이놈들은 내 집 네집 개념도 없이 두 다리와 두 날개로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는 통에 자유롭다.

재미있는 건 낯에는 여기저기로 싸돌아 다니지만 밤이 되면 그들의 보금자리로 돌아온다는 것-

깜깜한 밤에 닭장안에 랜턴을 비추면 꼼짝도 않고 대가리 숫자를 세도록 협조도 잘해준다.

그중 몇마리는 안 보일 때가 있다.

대부분 암탉이다.

알을 낳고 보호본능으로 그들만의 은밀한 장소에 둥지를 따로 틀고 알을 품고있는 것이다.

며칠에 한번 정 배가 고프면 잠깐 모이를 먹으러 닭장근처로 오는데 묘한건

얼마쯤 놈들과 생활을 해보면 그놈이 그놈같아 헷갈리는데 한놈 한놈을 알아보게되는 것이다.

며칠 가출(?)했던 놈이 모이를 먹고 가면 슬슬 뒤를 따른다. 

가시덤풀이 우거진 곳에 비집고 들어가기도 힘든 자신만의 통로를 만들어 둥지를 틀고

가까스로 그곳을 뒤져보면 알이 꽤 있다.


가끔 막 낳은 알을 꺼내 날계란을 입에 털어넣으면 그렇게 고소하고 맛있을수가 없다. -꼴깍!ㅎㅎ-

또 얼마쯤 잊고 지내다보면 그 암탉이 당당하게 집 근처로 오는데 그 뒤로 조막만한 병아리들이

삐약대며 뒤를 따라오고있다.


집에서 키우는 개들은 새 식구가 먹을 것으로 알고 간혹 덤벼들지만 짱돌이라도 하나 던지며

위협을 하면 "아! 새식구구나. 주인쉐이가 저 지랄을 떠는 걸 보면.." 하고 건들지 않는다.


겨울이라 노란 귤을 따는 데에도 하루가 짧다.

새벽이면 밥 달라고 꽥꽥대는 돼지때문에 졸린 눈 비비고 일어나 사료를 주고

우리 밖으로 기어나와 싸질러대는 똥을 청소해주고... 그런 종놈(나)이 기특하다고

우비로 무장한 내 종아리를 슬쩍 물면 내가 종놈인지 주인놈인지 확실하게 인식시켜준다.


나이 스무살.....

서울 도시놈의 시골생활 한달여는 지루하기 짝이 없어진다.

돼지 저녁까지 챙겨주고 어둠이 깔리는 시골길, 그것도 버스가 끊어져 걸어서

1시간을 넘게 가야 나오는 읍내로 아버지 몰래 나들이를 나간다.

읍내 다방 레지라도 보고파서.....

근데...이뇬들이 반갑게 맞다가 주문만 받고는 팽 돌아선다.

읍내 나들이 한다고 엄동설한에 찬물로 온몸을 박박 씻었건만.... 냄새가 난단다.


"아버님, 소자 이만 서울로 상경하여 해외로 나갈 준비를 하고자 하옵니다."

"아들아, 꼭 이 아비가 이런 한적한 곳에 홀로 두고 가야겠느냐. 엣따, 돼지 판 돈이다.

오늘 하루 제주시로 가서 콧바람 쏘이고 다시 생각해보거라."

돼지 열마리 팔아 쥔 돈 중에 두마리값을 쥐어주시니 팔팔한 놈 제일 먼저 생각나는게...

-이하 외부인들의 열람으로 과감하게 생략함-





신혼여행때, 큰 아이 돌 전에, 그리고 셋째 두살 쯤에 짧게는 보름, 길게는 한달쯤 그곳에 갔었다.

그후 아버지는 서울에서 계시다가 부름을 받아 가셨고 그 과수원은 이웃 농장에서 관리를 했다.

일이 안 풀릴 때마다 가고싶었던 곳이고 그때까지는 젊어서였는지 그곳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1월 13일, 26일, 그리고 2월8일 3번의 제주행은 이주를 위한 준비과정이고

머리가 터질만큼 걸리적거리는 행정적인 걸림돌이 많지만 갈 때마다 새롭다.

나를 골골거리게 만드는 당도 달리 한 것도 없는데 팍 떨어졌다.

-나 보다 의사가 더 좋아하고 이사를 한다니까 아쉬워하면서도 반긴다.-


야행성 동물이니 밤에도 낯처럼 환한 서울이 그리울 것이다.

잘 가꾼 도시의 화장빨이 밤마다 생얼의 호랭이를 보면서 후회될지도 모른다.

문을 나서면 지겹도록 만나는 낯선 사람의 얼굴들이 보고싶어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도시에서는 만날 수 없는 넓다란 내 땅에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며

쫒기는 기분없이 오늘 못하면 내일, 내일 못하면 모래.....

그때도 못하면 그 다음날로 미루면서 평생을 누군가와 비교하며 쫒고 쫒기는

빡빡한 감정에서 벗어나 의무가 아닌 즐김으로 그런 느낌이 지루해져서

도저히 못견딜만큼 견뎌볼 생각이다.


도시를 사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런 마음들은 있을 것이다.

선뜻 엄두를 내보지 못하는 것은 아직 속에 꿈틀대는 야망이 있고

젖어있는 도시의 삶을 벗어나기가 두려운 감정이 있기에 망설일 것이다.


내게는 다행이 그런 터전이 있었고 호랭이라 부르는 아내의 협조가 맞아 떨어졌다.

거기에 때맞춰 이주 자금도 넉넉치는 않지만 마련되었고.....

미안한 건 아이들에게 물려줄 서울의 터전이 없어졌다는 건데....

그거야 그놈들 복이니 지놈들이 알아서 개척할 미래일게다.


누군가 그랬다더라.

그놈 가서 얼마 못견디고 다시 올라올거라고....

맞다.

지금은 내 생활보다 내 몸이 더 걱정되어 다른 아무 욕심도 내지않고 가는 것이다.

내 평생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집을 능력만큼 맞춰 짓고 누구에게 싫은 소리 않고

멋대로 할 환경을 찾아간다.


깡촌이었던 그곳에 지금은 닭도, 돼지도 흔하게 보이지 않는다.

어느정도 도시를 닮아가는 느낌이 들지만 이웃에게 미움받지않을만큼만

닭도 키우고 개도 키우고 터밭에 심을 수 있는 채소며 야채들을 심고

밤나무와 귤나무, 또 내가 돌봐줄 수있는 온갖 농작물을 키우며 버틸 것이다.


또 그곳에 비좁은 환경에서 서로 불편해 각자의 손님들을 집으로 부르지 못했던

내 가족들의 지인들이 찾아오면 묵을 수있고 쉴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을 만들 것이다.


나만의 공간에서 불청객인 뱀이나 야생동물들로부터 나를 보호해줄 개를 키우고

심심하면 보리쌀 한웅큼 쥐고 "구구구"하고 불러 달려올 닭도 키울 것이다.






아! 쓰불!!

뭐가 이리 복잡한거야?!

뚝딱 뚝딱 대충 지붕만들고 벽 만들어 버리면 되는데

뭘 이리 복잡하게 걸리적거리는 게 많냐고~~?!


...그래도 난 이제 내 공간이 있는 곳으로 간다.

잘 있어.

그리고 가끔 내 생각나면 놀라와. ㅎㅎㅎ

세형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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