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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되ㅣㅍ어 보는 9.28 서울 수복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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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인치 함포사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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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16일 인천상륙에 앞서 함포사격을 가하고 있다.

인천상륙작전은 전술적으로, 심리적으로 완벽하게 성공한 사례이다.

서울로 진격함으로서 남쪽에 있는 적의 보급로는 완전히 차단되었다.

 

상륙작전에 투입된 전함은 모두 261척. 상륙한 병력은

미해병대, 미육군, 한국해병대를 포함해서 모두 4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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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해병1사단과 한국해병대가 월미도를 거처 인천해변에  

상륙하고 있다. 그게 9월 16일이다. 계속 진격하여

김포공항을 접수하고 한강을 건너 서울로 진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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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후에 서울로 진격하는 과정은 매우 험했다.

서울 시가전만 3일이 걸렸다.

 

9월 24일 2일간의 격전 끝에 서울을 지키던 주력부대는

사수하라는 북으로 부터의 명령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철저하고 몰지각한 공산주의자들이

바리케이트를 싸놓고 고수하는 바람에 애먹었다.

 

특별히 서울 북동쪽이 더욱 심했다. 인민군들이

땅굴속에 숨어 있어서 섯부른 진격은 위험했다.

먼저 서울 남서쪽으로 진격한게 9월 24일이었다.

 

거리, 거리마다 숨어있는 잔당들을 소탕하는데 3일이 걸렸다.

9월 27일 미해병대는 다시 찾은 미대사관에 성조기를 올리고

그 다음 불타고 있는 덕수궁에 성조기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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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진격하기 직전,

부상당한 동료를 안전한곳으로 운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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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고있는 빈 집에서 살아있는 토끼 한마리를 구출하고있는 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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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인민군을 찾으러 마을에 들어갔다가

돼지를 발견하고 쫏아가고 있는 한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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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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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감에 차있는 인민군들.

추럭에 실려 취조 받으러 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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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약을 지고 고지로 나르는 시골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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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농촌길은 온통 흙길이어서 흙먼지를

마시지 않으려면  마스크를 착용해야만 했다.

초가집 지붕에 박넝쿨이 올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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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포로가 정보를 알려주고있다.

목에 포로의 근황이 적혀있는 꼬리표가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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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합동 피난민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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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근교에서 체포된 인민군포로들.

옷을 벗겨놓고 감춰진 무기를 수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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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9. 인민군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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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버린 집터에서 혹시나 남은것은 없나 찾아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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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총을 쏘며 대항하고 있다 포로가 된

인민군 간호원.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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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입성당시 환영하고 있는 군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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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의 승리를 위하여 우리 모두는 최선을 다 하겠다."

소사마을협회 학생부 "부천군 자경대 여자학생부"간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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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획물들 중에 김일성초상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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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입수된 사진중에 1950년 7월 포로가 된 미군들의 사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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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0월 20일 평양을 빠저나가는 공산군을 차단하기

위하여 평양북쪽 33마일지점에 미군 낙하산병력

4100명이 투하되었다.

 

다음날 1800명이 더 투하되었고 중장비도 같이 투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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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체포가된 중공군중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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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혀온 중공군들에게 질문하고있는 미해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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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라는 꼬리표를 목에 걸고 미군 레이숀을 먹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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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2월

우마차를 타고 강을 건너는 피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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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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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2월

얼음물강을 건너고있는 피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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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옆에서 추위에 떨고있는 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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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군단포로수용소.중공군포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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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허속에 살아 남아있는 전쟁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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