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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점점 고독해지는 판사들… 탈출구는 없나
점점 고독해지는 판사들… 탈출구는 없나
1인당 사건부담 연 1,000건 육박… 업무 스트레스 심각
일부 우울증 등 정신질환 증세… 당사자 스스로 숨겨
국민 생명권 등에 중대한 영향… 전문의 의무 검진 필요


최근 우울증을 앓아오던 대구지법의 한 부장판사가 투신자살하는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은 이미 예견됐던 일이었다<▼하단 관련기사·법률신문 2008년11월20일자 3면 참조>. 전국 법관수가 2,500여명을 육박하고 있고, 판사 1인당 사건부담이 연간 1,000건에 육박할 정도로 과중해져 이 같은 사건이 재발될 가능성은 더욱더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법조계에서는 “지금이라도 법원이 판사에게 정기적으로 심리상담 등 정신과 진료를 받게 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를 해 판사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일고 있다. 특히 판결은 국민들의 재산권과 생명권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해 법원은 판사의 정신이상 증세를 감추고 보호하기보다는 과감하게 재판업무에서 배제시켜 국민들을 오판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법조인들은 입을 모은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적어도 판사를 임용하고 10년마다 재임용할 때는 정신과 전문의의 감정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며 “또 모든 법관이 2년마다 건강검진을 받을 때 정신과진료도 함께 받고 이에 대한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게 해 강제적으로라도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판사는 헌법상 신분보장 받아… 정신장해 있어도 재판배제 어려워= 현행 헌법 제106조는 탄핵·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없이 법관을 파면할 수 없도록 하고, 징계처분 없이 정직·감봉 또는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같이 법관은 헌법상 강력한 신분을 보장받고 있다. 그렇다면 정신장해가 있는 법관을 재판업무에서 배제시킬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법원조직법 제45조의2는 법관이 신체 또는 정신상의 장해로 인해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법원은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임기가 만료된 판사의 연임발령을 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제47조는 법관이 ‘중대한 심신상의 장해’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경우 대법원장이 퇴직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여태껏 이런 이유로 법원이 퇴직명령을 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다. 결국 판사는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이 있더라도 한번 임용되면 10년 동안 강력한 신분 보장을 받게 되는 셈이다. 결국 정신질환이 있는 판사로부터 재판을 받는 당사자들은 별다른 법원의 조치를 기대하기 어려워 그 판사에게 계속 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이제는 법원조직법 제47조의 ‘중대한 심신상의 장해’에 대해 명확한 해석지침이 필요한 때”라며 “법원조직이 급격히 커짐에 따라 앞으로 정신장해를 앓는 법관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퇴직명령제도의 구체적인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현재의 법체계는 판사가 완전무결한 존재라는 점을 전제로 해서 만들어졌다”며 “정기적인 정신과 진료가 제도화 되더라도 검사를 받지 않는 판사들에게 진료를 강제하게 하기 위해서는 제재수단이 필요하고 결국 법규정들이 다시 재정비 되는 등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때 검진을 강제할 수 있게 ‘수진명령제도’ 같은 것들이 검토되기도 했었으나 현실화하기 어려워 결국 무산됐었다”고 전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법관이 헌법상 엄격한 신분보장을 받는 것은 권위주의시대에 외압으로부터 법관의 독립을 보장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며 “그러나 인사고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정신감정을 주저한다는 것은 판사 개인의 안위를 위한 것이지 법관의 신분을 보장하는 헌법상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법관의 신분보장은 재판받는 당사자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지 판사가 어떤 상황에서도 신분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다”라며 “판사가 정신질환이 있다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재판부에서 빼던지 아니면 강제로라도 치료를 받게 하는 적극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 재정비돼야”=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외국과 같이 ‘치료될 수 있는 질병’이라기보다는 걸리면 사회에서 낙오되는 무서운 질병이라는 인식이 더 강하다”며 “이같은 상황에 판사가 정신감정을 받아 조금이라도 증세가 나타날 경우 앞으로 있게 될 인사에서 매우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고 또 그래서 계속 감추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인류의 일정비율은 필연적으로 다 우울증·조울증 등을 겪을수 밖에 없다고 한다”며 “그렇다면 그런 아픔을 함께 공유하고 치유할 수 있게 해야지 그런 질환을 앓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관이 2,500여명에 육박한 만큼 앞으로 이런 문제는 점차 증가할 것”이라며 “정신질환에 대해 사회가 좀 더 개방적이 돼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예방차원에서 정신적·육체적으로 아픈 판사가 마음 편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기관·시설을 법원 차원에서 마련해야 한다”며 “미국 기업들의 경우 ‘내가 좀 안 좋은 것 같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사법연수원의 법관연수에 정신질환에 대한 연수도 필요하다”며 “연수를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과 치료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매일 신도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해답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신부님은 수시로 스스로 심리상담을 받고, 또 정신질환자들과 매일 상담을 하는 정신과 의사들도 정기적으로 정신감정을 받는다고 들었다”며 “판사의 경우도 매일 사람들이 다투는 모습을 지켜보고 양당사자가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 혼란스러울 때가 많기 때문에 신부님이나 정신과 의사와 유사한 업무를 한다고 볼 수 있는 만큼 판사도 정기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거나 정신상담을 받아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소영 기자 irene@la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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