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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는 왜 우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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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기호 교수의 우리역사 읽기 1~3〉

우리는 왜 우리인가?
송기호(54·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이 질문에 답하려고 십수년간 자료를 모았다고 했다. 이 물음이 새삼스럽게 느껴지시는가.

‘우리’라는 울안에서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 한반도에 깃들어 사는 ‘우리’가 먹고 입고 자는 방식은 다른 문화권에 견줘 무엇이 독특한가. 당신은 이를 딴 나라 사람들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가. 한발 더, 우리의 고유한 무엇, 그 문화를 찾았다면 그것은 언제부터 비롯된 건가.

젊은 시절 발해 연구에 코를 박아 ‘송 발해’로 불렸던 지은이가 그런 문제의식으로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 건 1995년. “한국사 전체를 거시적으로 조망하되,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 생활사”를 쓰고 싶었다. 그로부터 15년. 그는 <송기호 교수의 우리역사 읽기>라는 문패로 우선 세 권의 책을 내놓았다. 1권이 <이 땅에 태어나서>, 2권은 <시집가고 장가가고>, 3권은 <말 타고 종 부리고>이다. 이 세 권이 한국인의 삶과 죽음, 가족과 의식주, 신분질서와 그 유토피아를 다뤘다면, 앞으로 나올 4~5권은 국가·제도와 외교·이민족을 키워드로 풀어 놓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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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운밥에 고깃국’ 왜 한국인의 로망 됐나

‘우리’를 보기 위해서 지은이가 택한 방식은 바깥에서 보기. 지은이는 외국인이 쓴 글들 속에서 우리 눈엔 너무 당연해서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우리 문화의 특성을 뽑아내는가 하면,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을 돌아다니고 때로는 유럽·미국의 그것과도 견주어 곱씹는다. <삼국사기>,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집필을 위해 뽑아낸 자료만도 원고지 2만장 분량. 세 권의 책은 그런 원전 자료들의 향연이라 할 만하다.

커피를 예를 들어 보자. 오늘날 한국사람들은 이웃 중국·일본에 견줘서도 유난히 커피를 좋아한다. 전통적으로 차를 즐겼는데 우린 왜 갑자기 커피 일색이 되었나? 역사 자료는 이 궁금증에 스민 오류를 600년 세월의 먼지를 뚫고 풀어준다. 차를 즐기는 문화는 과거의 우리에게도 그리 광범한 것이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편을 보면 그 사실이 드러난다. 세종은 “중국에선 차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리나라에선 대궐 안에서도 차를 쓰지 않으니 좋아하는 것이 이처럼 서로 다르다”고 했다. 이에 신하의 “중국은 기름진 고기를 먹기 때문에 차를 마셔 기름기를 빼려는 것”이란 대답은 요즘 밥상머리 대화와 비슷하다.

중국에선 차 문화가 7~8세기 이래 지금껏 꽃 피우는 반면, 우리나라는 고려 때에 퍼졌다가 조선에 이르러 시들해졌다. 18세기 말 정조 때에 다시 차 문화가 생겼으나 이도 중앙 지식인이나 사찰에 국한된 것이었다. 커피 문화가 발달한 까닭은 본디 심심하고 담백하던 우리 음식이 해방 이후 자극적으로(더 짜고 더 맵고 더 달게) 변모하면서 궁합이 맞게 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덧붙이자면 ‘더운’ 쌀밥에 ‘뜨거운’ 국. 이 한국적 음식의 기본은 고려부터 이어져온 것이다.

오랜 전통이라 여겨지던 것도 알고 보면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아득한 고대에서 유래한 것으로 믿는 남성 전통 스커트 킬트가 사실 근대에 만들어진 것이듯이, 배추김치가 무김치를 누르고 김치의 대표로 자리잡은 것은 20세기 들어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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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기호 교수의 우리역사 읽기

비슷한 예가 여자가 혼인을 하고 시집에서 사는 시집살이다. 기실 우리의 유구한 ‘전통’은 처가살이다.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는 않는다’는 식의 처가살이 비하 관념은 조선 후기 성리학 지배층의 가열찬 노력의 산물이다. 남자가 여자를 따르는 것은 성리학적 가부장 질서에 배치됐던 탓이다. 결혼은 시집가는 게 아니라 장가가는 것이었다. ‘장가’간다 함은 장인장모 집에 가서 산다는 뜻이니, 이는 1700년 전 고구려 때부터 내려온 것이다. 고구려의 신랑은 장가, 곧 처가에서 자식을 낳고 장성할 때까지 살았으며, 이는 고려와 조선 전기까지도 계속됐다. 고려의 기록은 “고려 풍속이 여자는 자기 집을 떠나지 않게 되어 있”으며 “부모를 부양하는 것은 딸의 임무”였음을 보여준다. 우리말에 사내아이를 뜻하는 머슴애는 남자가 여자 집에서 머슴처럼 생활했던 상황을 반영한다. 계집애 혹은 제집애는 여자가 혼인 뒤 제집에서 살았던 습속을 드러낸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오래도록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해온 전통이 있으니 그것은 장례식과 온돌 문화다. 슬피 울며 곡하다가도 이내 축제 분위기로 장례를 치르는 것은 고구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성리학은 여기에도 제동을 걸었지만, 성공하진 못했다. 기원전 2~3세기 옥저 사람들에게서 시작된 온돌은 오늘날 보일러식 온돌과 찜질방을 통해 더욱 번성하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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