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문 60건아들께! 時空을 초월한 우리 만남의 장에 초대하는의미에서 제가 무례하게도 화려한 테그를이용한 동영상이나 훌러쉬를 올리는것은 흥미와 동기부여를 하기위함일뿐이고~! 사실 여러 친구들과 자주 만나고 싶은 마음에서이니 혜량하여 주시고 아래글 처럼 신변잡기를 올리는것이 더욱 진솔한 우리의 소통방법이라고 생각하여 (여러분도 주저하지 말고 길든 짧든 생각나는대로 써서 올려주면 동무들의 체온이 전달되는 따뜻한 만남의 장이될것이라 소망하여)다소 길지만 이런글도 올려봅니다.
<그녀와 이양반 이야기> 겨울비 오는 오후였다. 우산을 써도 좋고 안 써도 좋을 만큼 비는 가늘었다. 상념에 잠겨 근처 공원을 산책하는데 벤치에 누군가 앉아있는 사람이 있었다. 마치 그모습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모자를쓰고 벤치에 앉아 비들기 삶을 걱정하던 풍요로운 선진국의 노후의 복지의 모습으로 목격되었던 그때의 그장면처럼 지그시 눈을 감은 그녀, 아는분이라서 얼른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감기 걸리시겠습니다.”
힐끔 뒤돌아본 그녀는 완연히 반가운 기색을 띤다. 검게 염색한 파마머리, 정성들여 그린 눈썹, 붉은 립스틱에 파운데이션,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공들여 화장한 얼굴이었다. 세월의 흔적을 가리려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이렇게 늘 자신을 가꾸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그녀는 오늘도 멋진 바바리코트를 차려입었다.
“아이고! 원장님이세요! “원장님은 미장원에서 머리 깎고 나시니 더 젊어지셨네요.” 며칠 전 그녀를 미장원에서 만났었다. 미장원 원장이 할머니가 화장도 예쁘게 잘 하시고 신세대 파마를 좋아하시는 멋쟁이라고 추켰고 나도 우리 병원에 오시는 분 중 제일가는 미인이라고 장단을 맞춰드렸다.
1년 전쯤 어느 날이었다. 진료실로 이마에 피를 흘리는 할머니 한 분을 젊은 부인이 부축하고 들어왔다. 그날도 여전히 할머니 입술에 립스틱이 붉게 칠해져있었다. 구부러진 허리로 진료의자에 간신히 앉은 할머니는 무언가에 홀린 듯 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온 이는 며느리가 아니라 며느리의 친구라 했다. 꽃꽂이를 배운 후 며느리보다 먼저 집에 갔더니 할머니 혼자서 이마에 피를 흘리시며 식탁을 잡고 있더라고 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강제로 잡아가려 한다고 하면서! 끌려가지 않으려 버티며 무거운 식탁을 잡고 실랑이 중이었다는 설명이었다.
“할머니 이제 병원에 오셨으니 안심하세요. 누가 할머니를 데려가려 했어요? 기억할 수 있으세요?”하고 연거푸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원장님 괜찮아요. 이젠 됐어요.”라고만 했다.
곧 이어 며느리란 사람이 달려왔다.
“이 양반이 늘 어지럽데요! 참! 왜 이렇게 어지럽다고만 하는지?” 잘 차려입은 며느리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귀를 막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렇게 뚱뚱하시면서 허구한 날 영양제주사만 좋아한다니까요…….” 쯧쯧~ 끌끌~!
오십대 중반을 넘긴 말끔한 부인이 시어머니께 말끝마다 ‘이 양반’이란다. 듣고 있는 내 속마음이 몹시 마뜩찮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며느리가 자신을 ‘이 양반’이라고 불러도 아랑곳하기는커녕 저항할 힘조차 없는듯했다.
지난겨울엔 큰 아들이 할머니를 모시고 왔다. 그날 할머니를 먼저 진료실 밖으로 내 보낸 후 아들은 ‘조용히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래놓고선 전혀 조용하지 않은 괄괄한 목소리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불만을 털어 놨다.
“우리 어머니가 보통 분이 아니십니다. 이 양반이 늘그막에 영감하나 사귀어 지난 10년간 살림 차리고 밥해줬지 뭡니까! 이 양반이 그 영감과 다정하게 살다가 영감이 먼저 떠나고 보니 지금도 못 잊어서 저러는 거예요…….” 경찰서장까지 지낸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불만이 대단했다. 며느리처럼 아들 역시 어머니를 부르는 호칭이 ‘이 양반’이었다. 이 양반이라…….
세월이 흘러도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그녀의 마음을 비로소 알 것 같았다. 할머니는 고혈압 때문에 주기적으로 우리 병원을 찾아왔다. 어지럽다고도 오시고 힘이 없다고도 오셨다. 오실 때마다 번번이 파티에라도 나가듯 정성껏 옷매무새를 다듬고 오셨다. 나는 사랑을 잃은 가엾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다정하게 대해드렸다.
영양제 주사를 맞으실 때 침대 옆에 다가가 조용히 손을 잡아드리면 곧잘 눈물을 글썽이셨다. 차츰 속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돼갔다. 미국에 있는 딸과 지방에 사는 작은 아들이 돈을 보내와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없으나 큰 아들 내외와 불편한 관계라는 것을 조심스레 내비치셨다. “내돈주고 병원에 다니는데 웬 간섭이 그리 많은지 몰라.”
허리가 아프다고 하시기에 비만에 골다공증이 와서 그럴 수 있으니 체중을 줄이고 골다공증 치료를 해보자고 했다. 체중을 빼는 것은 피부에 주름이 생길 테니 싫다고 하셨다. 할머니의 진단은 상실감으로 인한 우울증, 그로인해 환청과 환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됐다.
중요한 상실(significant loss)을 경험한 노인에게서는 종종 자존심 저하와 우울증을 발견할 수 있다. 많은 것을 잃으면서 늘그막에 얻었을 새로운 배우자의 죽음을 경험했으니 우울증이 심했을 것이다. 새로운 삶을 용기 있게 택했지만 유교적 가치관에 젖어 살아온 한국여성이니 일종의 죄책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우울증에 의한 환시 환청은 정신병적 발현 양상으로 공포와 불안장애까지 보일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지금과 달리 원래 동네의원 의사이다. 그짓을 한지도 25년이 넘었다. 사반세기다.몇년전 변화를 주어 노인병원을 차리기전까지는 그렇게 그들과 함께했다.
그때 처음 진료했던 꼬마들은 벌써 성인이 되었다. 젊은 아기 엄마들은 이제 내게 딸처럼 보인다. 그들이 데려오는 아기들에게 나는 어느듯 호칭이 할아버지로 변했다. 슬픈일이지만 어쩌겠나? 順命해야지~!요즘환자는 자기 나이또래의 의사에게 가장 신뢰감을 보인다고 한다.(예전에는 머리가허옇고 수염을 멋있게 기른 노숙한 의사를 선호하였다는 우리어머니의 위로의말로는 위로가 되지않는다)어찌 세월만 탓하고 있을 수 있나? 그러니 자연
그들도 나이든 나보다 예기하기 편한 주위의 젊은 의사를 선호하는 게 현실이다. 이제 불혹을 넘어 천명이 뭔지도 모르고 지천명을 지났다. 늘어나는 내 나이와 함께 postgraduate education으로 노인의학을 전공한 것이 천명(天命)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노인들은 단돈 몇 푼이 없어서 병원에 오지 못하거나 오더라도 참고 참았다가 오곤 한다. 요즘 고령화로 노인병도 문제지만 건강한 노인들이 고독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도 큰 문제이다. 노인들의 성(性)문제도 사소하게 여길 일은 아니다. 프랑스의 한 사회학자는 향후 인간의 수명연장으로 일생 두 번 이상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가 오리라고 예견한다. 옛말 중에 임금이 꼭 보살펴야 할 사궁(四窮)으로 환과고독(鰥寡孤獨)이 있다고 했다. 국가복지정책으로 꼭 보살펴야 할 4가지 일로 늙은 홀아비, 늙은 홀어미, 부모 없는 고아, 자식 없는 늙은이를 말한다. 그 중에서 면환(免鰥)이란 홀아비를 장가보내는 것을 말하며 효도로 칭송 받아왔다. 환(鰥)이란 물고기가 잠들지 못하고 뜬눈으로 지낸다는 뜻이라고 한다. 노년의 외로움은 같은 노인이 가장 잘 이해할 것이다. 홀 아버님의 외로움을 면환해드리는 것이 효도이라면 그 고마운 상대역인 홀 어머님의 외로움도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그것을 치욕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 중에 <그녀>의 큰아들뿐일까? <그녀>가 딴 살림을 차린 동안 그 댁 며느님도 고부갈등 없이 잘 지냈을 테니 고맙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을!
입술이 붉은 <그녀>가 오늘따라 애절해 보인다. 나는 <이양반>같은 돼먹지 않은 호칭 대신 <그녀>라는 다정한 호칭을 사용하자고 주장해본다. 그러면서 마음은<그녀> 곁에 다가가 가만히 그녀의 일생을 인생의 화두로 올려 오늘도 개똥철학 같은 나의상념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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