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커뮤니티 메인

휘문교우회 로고
📖 게시글 상세보기
[제목] 월간지 공간에서 뽑은 4~50대 건축가 - 김종규(11반) 소개의 글

[첨부파일]

이미지 

 


이미지

이미지 

 

이미지

건축가 김종규는 건축을 하나의 작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사실 건축물을 보고 감동을 받은 적은 없어요. 오히려 인식의 대상으로 보는 편이에요. 유럽의 현대건축물을 보며 아, 이 사람들이 만든 거구나 싶은 거죠. 개인적인 성향인지 의도적인지 모르겠지만, 건물 자체가 감동을 준다고 믿지 않아요.” 건축가 김종규의 작업도 감성에 의존하기 보다는 건축적인 논리에 충실하다. 건축의 역할이 삶의 영역을 만들어주는 것이지만 건축 자체만으로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건축에 대한 객관적인 태도 때문에 김종규 씨는 소위 ‘튀는’ 건축 어휘를 자제한다. 최소한의 재료를 사용하고 절제된 형태를 구성한다. “새로 지어졌지만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건축물처럼 만들고 싶었죠. 편안하게 작위적이지 않은 건축,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그 일부분이 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절제된 건축 표현으로 인해 김종규 씨의 프로젝트에는 빛과 관련된 중성적인 공간들이 눈길을 끈다. 재료를 다양하게 대비시키기보다 그 재료의 속성을 주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료를 다양하게 쓰지 않고 투명, 반투명, 불투명으로 변주된 중성적인 공간을 만든다.

 

 

 

이미지

학창시절부터 딱히 건축이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술을 더 좋아했다. “중학교 때 미술을 했어요. 제법 그렸죠. 고등학교 때엔 주변 기대에 따라 인기학과에 지원을 했지만 떨어져서 재수를 했어요.” 재수를 하는 기간에서야 그는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했다. “미대를 가겠다고 고집할 용기는 없었죠. 당시만 해도 그림을 그리면 밥 굶는다는 인식이 강했으니까. 그러다가 건축이 건설이 아니라 디자인 분야와 밀접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어떻게 보면 그만큼 건축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거죠. 정보도 없었고.” 그렇게 선택한 전공이었지만, 정작 대학에서는 건축을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 “방임의 건축 교육이었죠(웃음). 건축을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몰랐으니까.” 지금의 4~50대가 그렇듯, 건축가 김종규도 유신 말기에 대학을 다녔다. 정작 전공을 시작해야 할 2학년 때 대학에는 휴교령이 내렸다. 기초 지식도 없이 설계 과제를 집에서 해야 했다. 스터디 그룹을 만들기도 했지만 정보가 워낙 없어서 건축에 대한 갈증 조차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이미지

 

 

 

이미지

제대로 건축을 배우기 위해 그가 유학을 떠난 곳은 런던의 AA 스쿨이다. “우연히 AA 스쿨에서 나온 책자를 보았어요. 스튜디오 별로 다양한 주제로 수업이 진행되었죠. 건축에 대해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가 가능하구나라는 생각에 무조건 선택했어요.” 1980년대 AA 스쿨은 현대건축의 새로운 실험이 활발하게 이뤄지던 곳이었다. 건축 분야를 넘어 인문학적인 접근, 기술적 접근이 다양하게 펼쳐졌다. 이론적인 생산,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실험들이다. 렘 콜하스자하 하디드가 거쳐간 이 실험들은 이후 10~20년 후에 미국으로 건너가 구체적인 건축물로 실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고된 유학을 말해주는 일화도 있다. “영어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어요. 말로 표현이 안되니까 마지막 프리젠테이션 때는 무조건 그림을 많이 그려서 붙였어요. 당시 비평에 참여한 건축가 피터 윌슨이 끊임없이 질문을 했어요. 영어가 안되니까 대답을 못했죠. 그걸 지켜보던 알빈 보에스키 학장이 한 마디를 했어요. ‘왜 당신은 그림을 못 읽나.’ ‘그림으로 다 설명이 되는데 왜 그렇게 질문을 하느냐’라고.” 지켜보던 알빈 보에스키가 대신 반박을 해준 것이다. 알빈 보에스키 학장은 AA 스쿨에 보다 자율적인 시스템을 장려해, 실험적인 학풍을 장려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저에게는 AA 스쿨의 학풍이 딱 맞아떨어졌죠. 건축이 전부만은 아니겠구나 생각했어요. 다른 분야와 하이브리드를 하려는 시도들이 많이 나왔어요. 건축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시도들이 좋았어요.” 미술에 관심을 두고 있던 그는 폴 끌레나 자코메티 등 예술 분야와 건축의 접목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 관계에서 지형적 공간, 랜드스케이프에 대한 개념을 발전시켰다.

 

 

 

이미지

귀국 후 3년 뒤에 치러진 1996년 명동대성당 축성 100주년 기념 공모전은 한국 건축계의 중요한 지점 중 하나다. 이 공모전에서 김종규의 안은 당선작 없는 우수작으로 선정되었다. “명동성당 공모전은 제게 중요한 프로젝트였어요. 개념은 아주 단순해요. 가장 중요한 대상인 명동성당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였어요. 중요한 것은 명동성당 주변의 빈 여유 공간이죠.” 계획안은 명동성당을 만들어주기 위한 베이스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자코메티의 조각이 오브제뿐만 아니라 그 배경이 되는 공간의 관계를 보여주듯, 김종규의 안은 건축물을 오브제로 바라보던 기존 시선에서 땅을 계획하는 듯 극대화한 접근을 보여줬다. 지형적 공간, 랜드스케이프는 오브제로 서 있는 건축물과 땅의 견고한 경계를 허물고 주변 대지와 건물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개념이다.

 

이미지

당시 김종규 씨가 언급한 ‘지형적 공간’은 한국 건축계에 신선한 감흥을 주었다. 이런 접근은 당시 세계적으로도 상당히 앞선 개념이었다. 물론 ‘해외에서 직수입된 최신 건축이론’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이 ‘지형적 공간’, 랜드스케이프에 대한 개념은 유럽에서도 1990년대에 와서야 본격화된 이슈다. 김종규 씨는 AA 스쿨의 졸업설계 때부터 상당히 이른 시기에 이 개념을 발전시킨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이 지형적 공간에 대한 김종규 씨의 탐구를 두고 AA스쿨에 함께 수학했던 필립 크리스토우는 “한국에서 가져온 땅에 대한 타고난 친숙함”을 그 근거로 설명했다는 것. “참 묘해요. 25년간 한국에서 살다가 그곳에서 십 년을 지냈어도 서양친구들은 제 사고를 상당히 동양적으로 받아들여요.” 오히려 해외에 와서야 발견한 태생적인, 한국적인 사고였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그들의 문화를 따라갈 수는 없어요. 한계를 명확히 느끼죠. 그 한계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더 명확히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미지

결과적으로 그의 관심은 건축적 공간이 주는 감동보다 관계에 머문다. 그래서 건축을 지극히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일상의 환경으로 받아들인다. 1993년에 귀국, M.A.R.U라는 이름으로 사무실을 개업해 지금까지 해온 그의 프로젝트들도 같은 맥락을 지닌다. 7~8년 동안은 공모전 외에는 이렇다 할 프로젝트가 없었던 때도 있다. 명동성당 공모전에서 실현하지 못한 지형적 공간은 이후 전남 광주 의재미술관(조성룡건축연구소와 공동작업)에서 다시 적용하기도 했다. 대지는 경사지에 산자락이었다. “당연히 오브제를 만든다기 보다는 경사를 이용해서 도로를 건물로 끌어들이는 방식을 적용했어요. 땅의 레벨 차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거죠.”


노인치매시설이었던 순애원 프로젝트나 서울 청담동에 지어진 카이스 갤러리 모두 주변 건물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한 프로젝트들이다. 특히 카이스갤러리는 청담동이라는 복잡한 주변 환경에 대한 반발이 컸다. 건축물을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동시에 복잡한 도심법규를 해결하는 것도 목표였다. 그 결과 코르텐강이라는 강렬한 외장재에도 불구하고 카이스 갤러리는 청담동 복잡한 건물군 속에 배경처럼 서있다. 벽에 창문을 내기 보다 벽과 창의 역할을 반전시켜 벽이 떠있는 식으로 접근했던 희원 갤러리나, 콘크리트벽 거푸집의 시공상 흔적을 그대로 살려냈던 사진 작가 배병우 자택 작업도 기억에 남은 작업이다. 김종규 씨는 파주출판도시헤이리아트밸리의 건축지침서 작업에도 참여했다. 건축을 확장해 영역이나 마을로 접근하는 방식은 그가 런던에서 작업한 라이프찌히 근교의 탄광촌 개재발 프로젝트를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시 그 프로젝트는 기반 시설이나 시간에 따른 변화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었다. 건축 이전의 어떤 기본적인 바탕, 즉 영역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마을 만들기, 특히 김준성 씨와 함께한 헤이리아트밸리 건축 지침서 작업은 건축 이외의 것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였다.

 

 

 

이미지

“건축가들의 작업이 독단적이고 어렵다는 것은 오해라고 생각해요. 건축가의 작업은 건축주와 상관관계가 있죠. 건축가의 성향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주의 입장, 그 삶을 이해하고 대변해주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건축은 건축가의 소유가 아니므로 건축가의 이야기는 곧 건축주를 위한 이야기다. 그것을 서로 잘 이해할수록 작업의 질이 좋아질 수 있다는 것.

 

이미지

 


김종규 씨 스스로도 건축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지만 건축주의 의견을 꺾는 일은 없다. “저는 행운아라고 생각해요. 건축주 분들이 제 의도를 잘 이해하고 받아주셨죠. 중요한 건 건축주 역시 어떤 건축물을 원하는가를 잘 아는 일이에요.” 더 나아가 건축가의 역할도 확장한다. “이 공간이 감동적이고 좋다라는 판단도 사실 건축적인 입장이에요. 너무 건축적인 입장에서 가치 판단을 하기보다 이를 벗어나 사회적인 입장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 그럼 건축도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장 누벨이 소셜 하우징(social housing)을 만들 때 똑같은 예산을 가지고 넓은 공간을 만들겠다 라고 접근한 것처럼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들이 있다는 거죠.” 그러니 그에게 건축은 삶의 영역을 만드는 작업이고 상식적인 선에서 접근하는 작업이다. “저는 건축을 통해서 제 욕망을 표현하는 작가는 아니에요. 의도적으로 튀지 않고 아주 평범한 어휘를 사용하고, 결국 건축주를 대변하는 전문가가 곧 건축가죠.”

 

 

 

 

  

이미지 

VMspaceOBS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