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커뮤니티 메인

휘문교우회 로고
📖 게시글 상세보기
[제목]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미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이라는 말에는
미모에 빠져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어버렸다.’하여 침어(浸魚)라 불리는 서시(西施)
달이 부끄러워 얼굴을 가렸다.’하여 폐월(閉月)이라 불리는 초선(貂蟬),
꽃이 부끄러워 잎을 말아 올렸다.’하여 수화(羞花)라 불리는 양귀비(楊貴妃)와 함께
중국의 4대 미인 중 하나로 꼽히는 왕소군(王昭君)에 대한 일화가 있다.

이미지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북방의 흉노족에게 억지로 시집을 간
중국 한나라 때 궁녀 왕소군(王昭君)의 심경을 헤아리며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쓴 시소군원(昭君怨)’에 나오는 대목이다.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뜻으로,

어떤 처지나 상황이 때에 맞지 않음을 이르는 말.

(봄 춘): , 움직이다, 꿈틀거림, 젊은 때, 남녀의 연정.

(올 래): 오다, 위로하다, 오게 하다, 앞으로의 일, 그 다음.

(아니 불): 아닌가, 크다, 새 이름, 의문사, 오디새.

(같을 사): 같다, …보다, 흉내내다, 잇다, 비교의 기준을 나타내는 말.

(봄 춘): , 움직이다, 꿈틀거림, 젊은 때, 남녀의 연정.

 

또다시춘래불사춘이다. 이 나라 국민 노릇 하기가 힘겹도록,
계절은 봄이로되 바람은 여전히 삭풍이다.
집권세력은 자기들 아집대로 정국을 끌고 가려는 강다짐을 놓지 않고 있다.
적폐청산으로 포장된 포퓰리즘 정치보복은 끊임이 없고,
민생은 도무지 피폐의 암운을 걷어낼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 김정은의비핵화약속은 국제사회의대북 제재를 허물기 위한
어설픈 사기극으로 귀결돼 문재인 대통령이 대략난감에 빠졌다.

 

그럼에도 권력자들의 오만방자가 하늘을 찌른다.
내로남불의 신생 사자성어로 표현되는 이중인격적 언행들은
이미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의 폐습으로 굳어졌다.

주야장천 상대방 쓰레기통 엎어놓고 냄새나는남 탓퍼레이드만 벌인다.
도무지 달라지는 게 없다. ‘내가 잘해서민심을 얻기보다는
상대방 허점만을 욱대겨서 거꾸러뜨리려는 악의만 무성하다.

 

이제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겨우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그 놈이 그 놈인 후보자들 면면을 보며 저절로 장탄식이 나온다.
누굴 뽑아야 할까?
좌파정권인 문재인정부의 지난 3년이 별로 만족스럽지 않다.
그렇다고 황교안이 이끄는 통합당은 완벽한가? 그것도 아니다. 고민이다.    

 

그보다 코앞에 닥친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싸움이 더 걱정이다.
투표를 하러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미국에서는 폭발적으로 환자와 사망자가 늘고있고,
유럽상황도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해외입국자들의 확진이 지속적으로 늘고있는 상황이다.
해열제를 먹고 위장입국 하는 놈에, 자가격리 중
온 가족이 사방팔장 휘젓고 다니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사람들을 어이할꼬

 

날씨가 하루가 다르게 변덕이 심하다.
따뜻하게 봄 날씨로 바뀌는가 하면 어느 듯 바람이 매섭게 불고 한파가 엄습한다.
올해는 석촌호수와 여의도 윤중로 벚꽃놀이도 물건너갔다.

 

하기야 이맘때 쯤이면 으레 찾아드는 꽃샘추위라며
그놈의 봄이 뭐길래 좀처럼 제 얼굴을 쉽게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시절로는 분명 봄일 시 분명한데, 가슴속으로는 여전히 봄이 아님을 아쉬워하는
이 심정은 도대체 어디서 연유한 까닭이란 말인가.

정녕코 봄은 왔건만 내 마음은 봄이 아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건만 봄 같지 않다는 뜻이다.

 

이 시구에는 애달픈 사연이 있다.
어느 시엔들 사연 없는 시가 있으랴만 유독 이 시에는 시인의 사연과는 무관한,
역사 속 비련의 한 인물의 운명에 대한
애틋한 감상(感傷)이 투사(投射)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중국에는 고래로부터 4대 미인이 운위되고 있다.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초선(貂蟬), 양귀비(楊貴妃)를 두고 일컫는 말이다.

 

흔히 미색이 뛰어남을 묘사하는 글에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를테면 나라를 기울게 할 만큼 미모가 뛰어나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는 최고 권력자가 미색에 취해 정사를 잊고 있다가
반란이나 시해를 당해 나라를 말아먹는 경우에 빗댄 말인 듯하다.

하지만 여인의 미모가 오히려 나라를 구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 주인공이 바로 왕소군(王昭君)이다. 이때는 구국지색(救國之色)이라 불러야 맞는가.

이미지

 

() 원제(元帝) 건소(建昭) 원년(BC38), 전국에 후궁을 모집한다는 조서를 내렸는데,
전국 각지에서 선발되어 입궁한 궁녀들의 수가 수천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때 왕소군(본명-왕장(王嬙) 18세의 나이에 후궁으로 선발되어 입궁했다.

황제는 수천 명에 이르는 궁녀들의 신상을 병아리 감별사처럼 가려낼 수 없었기에
묘안을 짜낸 것이 궁중화가인 모연수(毛延壽)에게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려
화첩을 바치게 하는 편법을 썼다. 그걸 보고 괜찮은 인물을 골라 호색하려한
원제의 교묘한 술책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포르노사진첩 쯤 되는지 모르겠다.

 

부귀한 집안 출신이나 배경이 있는 궁녀들은
화가에게 자신의 모습을 최대한 예쁘게 그려 달라고 뇌물을 바쳤으나,
왕소군은 집안이 변변찮아 아는 사람도 없는 데다
가난하여 뇌물을 바칠 여력이 없을 뿐더러 타고난 미모가 있었기에
있는 모습 그대로를 그려줄 것이라 믿고 모연수에게 로비를 하지 않았었다.

이에 뿔이 난 모연수는 뇌물을 바치지 않은 왕소군의 용모를
일부러 야료를 부려 형편없이 못생기게 그려버렸다.
그러했으니 왕소군은 입궁한 지 수 년이 흐르도록
용안을 볼 수 없었음은 물론 성은을 입을 수 없었음은 어쩜 당연한 귀결일 수 있었다.

 

원제 경녕(竟寧) 원년(BC33),
흉노의 호한야 선우(呼韓邪單于)가 원제를 알현하기 위해 장안으로 왔다.
당시 흉노족은 틈만 나면 한나라를 침공하며 정세를 괴롭히던 피곤한 존재였다.
그런 흉노족의 두목이 많은 공물을 싣고 와서 원제에게 공손히 문안을 올리며
화친의 의사를 펼치자 원제도 크게 기뻐하면서
궁중에 있는 모든 미인을 풀어 호한야 선우에게 성대한 연회로 환대하게 했다.

 

호한야에게는 야심이 있었다.
호한야는 원제에게 황제의 사위가 되고 싶다고 간절히 청하였다.
황제의 사위가 되어 혈육관계를 맺어놓으면 이것이 저절로 평화협정이 되어
두 나라 사이에는 전쟁이 없어질 것이고 지위도 한층 공고해질 터였다.

호한야가 호기롭게 원제에게 통 큰 제의를 먼저 하였고 원제도 그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기왕 공주를 시집보내려고 마음먹으려니 한껏 황실의 위엄을 과시하고 싶어
진수성찬은 물론이려니와 수많은 궁녀들을 불러와 그에게 술을 권하며 환심을 사게 했다.

 

이미지


궁녀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들어오는 가운데
두 눈을 동그랗게 뜬 호한야의 눈에 유난히 뛰어난 미모의 궁녀가 시야에 들어왔다.
왕소군이었다. 호한야는 왕소군에 필이 꽃혀 한참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는 즉시 원제에게 새삼스런 제의를 한 것이다.

황제의 사위가 되기를 원하지만 꼭 공주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저 궁녀들 중에서 제 맘에 맞는 여인을 맞이할 수 있도록 윤허하여 주십시오.”

원제의 입장에서는 딸을 보내는 것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마음 가볍고 부담 없는 일이어서 쾌히 승낙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연회가 끝나고 호한야가 돌아가는 날,
원제도 그제야 비로소 왕소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모연수가 그려 올린 화첩에서는 볼 수 없었던 천하일색 미녀였음을 확인하였지만
이미 호한야에게 주기로 약조한 황제의 명을 거둘 수는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남정네의 욕구는 노소불문이고 지위고하를 따지지 않고 발정(發情)하는 법.
우리는 요즘 미투에 걸려드는 남정네들을 보면 설명이 필요 없다.
원제는 잔머리를 굴렸다. 그냥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한야에게 혼수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으니 3일만 기다리라고 속이고는
조용히 왕소군을 미앙궁(未央宮)으로 불러 사흘 밤 사흘 낮을 욕정을 채웠다.

 

3일 후,
왕소군은 흉노족 차림으로 단장을 하고 미앙궁에서 원제에게 작별을 고하였으며,
황제는 안타까운 마음을 억누르고 공주 대신 흉노로 시집가는 왕소군에게
소군(昭君)’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이미지

 

후일 궁녀들의 초상화를 다시 대조해 보고 모연수에게 속았음을 깨달은 원제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 모연수를 참수하였다고 한다.

 

전해오는 얘기에 의하면, 왕소군이 흉노를 향해 떠나갈 때
마지막으로 장안(長安)을 한번 바라본 다음 가슴에 비파를 안고 말에 올랐다고 한다.

왕소군 일행이 장안의 거리를 지나갈 때는
구경 나온 사람들이 거리를 꽉 메워 이별을 애닲아 했다.
왕소군이 정든 고국산천을 떠나는 슬픈 마음을 달랠 길 없어
말 위에 앉은 채 비파로 이별곡을 연주하고 있는데,
마침 남쪽으로 날아가던 기러기가 아름다운 비파소리를 듣고
말 위에 앉은 왕소군의 미모와 노래 소리에 빠져 날갯짓하는 것을 잊고 있다가
그만 땅에 떨어져 버렸다고 한다.

여기서 유래하여, 왕소군의 별명을낙안(落雁)’이라고 칭하게 되었다는데,
대륙적인 허풍과 과장이 빚어낸 언어의 유희에 다름 아니라 여겨진다.

이미지

 

왕소군에 대해서는 후세 사람들에 의해 남겨진 시에는
동방규(東方虯)의 「소군원(昭君怨)」이 유명하다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이라 꽃도 풀도 없으니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

自然衣帶緩  (자연의대완)  옷에 맨 허리끈이 느슨해짐은

非是爲腰身  (비시위요신)  허리 몸매를 위함은 아니라오

 

이후 흉노로 시집간 왕소군은 영호알씨((흉노의 안녕을 비는 비()라는 뜻이라고 하며,
 
여기서알씨는 군주의 비()를 뜻한다.))로 봉해 진다.
왕소군이 중국 4대 미인에 들 만큼 빼어난 미모만 거들먹거렸다면
그저 얼굴만 예쁜 평범한 여인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흉노 땅으로 인질이 되어 끌려간 왕소문은 미모에 지혜까지 갖추고 있어서
그곳 여인들에게 길쌈하는 방법 등을 가르쳤고, 한나라와의 우호적인 관계 유지를 위해
 노력하여 그 후 80여 년 동안 흉노와 한나라의 전쟁은 없었다고 한다.

 

왕비가 된 왕소군은 가장 가까이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시녀들부터 교육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위계에 의한 압력, 즉 왕비라는 직책으로 억압한다는 등
반발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때마다 사랑과 포용으로 그들을 대하였다.

지독히도 인내를 요구하는 지난한 시간이 지나자 시녀들 또한 사람인지라
그녀의 진심을 알고는 진실로 따르기 시작했고 배우고자 노력했다.
수저의 사용방법을 배우고, 바느질을 배우고, 길쌈을 배우고, 예의범절을 배웠다.

특히 남녀 간의 예를 배운 그녀들은 과거의 덜렁거리는 삶에서 요조숙녀로 변하는 등
확연히 달라졌다. 이에 점차로 따르는 시녀들이 늘어났으며
얼마 안 가서 궁 안의 모든 백성들은어머님 같은 왕비님우러러 칭송하기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 해 겨울을 막 지나 세찬 바람결에 싱그러운 풀냄새가 묻어와
초원을 휘감을 때였다. 하늘은 맑고 햇살이 궁궐 가득하여 팽창할 때
마마님 봄이 왔어요! 봄 놀이가요!”시녀들이 손을 이끌었다.

 

궁을 나서자 따뜻한 바람이 솜털이 되어 얼굴에 닿았다.
깊은 숨을 몰아쉬며 하늘은 올려다보자 독수리 몇 마리가 타원형을 그리며 돌고 있다.
눈이 녹아 드러난 죽은 시체를 찾는 모양이었다.

한결 숨이 죽은 바람이지만 여전히 소매 끝을 파고들어 매서웠다.
옷깃을 바짝 여미고 돌아보는 초원은 여전히 황량하다.
말들이 달리자 꽁무니를 따라서 싯누런 흙먼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음박질이다.
꽃도 없고 풀도 없는 들판, 남들은 모두 봄이라 좋아하지만
왕소군의 눈에는 봄이 봄 같지가 않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 궁을 택했다. 요행히 황제의 눈에 들어 후궁첨지를 받는다면
자신에게는 광영이자 가문의 영광이라 여겨 어려운 날들은 기쁨으로 지냈다.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을까?

 

왕소군은 오랑캐 땅으로 시집오기 전 삼일 동안 황제와 잠자리를 같이했다.
그때 그녀의 마음은 하늘의 별을 딴 기분이었다. 비록 돈은 바치지 못했지만
모연수가 그려준 초상화가 빛을 발한 것이라 생각했다.
후궁의 첨지를 받고 어느 정도 재물이 생기면 사례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에게도 고향을 그리는 마음과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호한야 선우가 죽은 후, 왕소군은 한나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흉노의 관습에 따라 호한야의 본처 아들인 복주루(復株累)의 첩이 되었다.
복주루(復株累)가 선우가 된 후 아버지의 애첩이었고 아들까지 낳은 왕소군을 취했던 것이다.
왕소군은 다시 복주루의 연지(황후)가 되어 딸 둘을 낳았다.

 

왕소군의 첫 번째 사내는 한()나라 황제인 원제(元帝),
두 번째 사내는 남쪽 흉노족 왕인 호한야 선우(왕의 호칭)이며,
셋째 사내는 호한야 본처의 아들인 복주루 선우인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웠기에 한나라 황제가 취하고,
흉노족의 왕과 또 그의 아들 사이인 부자지간이 취하고,
그 미모 때문에 유명 화공(畵工)인 모연수가 참수를 당하고,
날아가던 기러기까지 낙안(落雁)이 되었을까?

 

왕소군이 죽은 후 그 시신은 대흑하(大黑河) 남쪽 기슭에 묻혔다.
왕소군의 묘는 내몽고 후허하오터(呼和浩特) 남쪽 9킬로미터 지점에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가을에 접어든 이후 북방의 초목이 모두 누렇게 시들어도
오직 왕소군의 무덤의 풀만은 푸름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에
청총(靑塚)’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서경잡기(西京雜記)》에 실려 있다.

이미지


이미지


이미지


이미지
 

왕소군에 대한 이야기는 후세 사람들의 입에 끊임없이 오르내리면서
시가, 소설, 희곡 등의 각종 문학 양식을 통해서 그 형상이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春來不似春」

하나의 독립된 시구로 음유(吟遊)되어도 충분히 가슴을 울릴만한 시구다.

 

우리 정치사에서는, 지금은 고인이 된 거물 정치인 김종필(JP)의 인용으로 유명하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서울의 봄이 거론될 적에 전두환이 쿠데타를 감행하자
김종필은봄이 왔어도 봄 같지 않구나라는 뜻의 이 말을 사용해 촌철살인의 어록을 남겼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감염 사태에 대해 팬데믹 선언을 했다.
팬데믹은 전염병 경보 단계 중 최고 위험 등급인 6단계를 일컫는 말로
'
감염병 세계 유행'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코로나19 유행이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현실이다.

 

요즘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이 문자 그대로 춘래불사춘이다.
시민들은 잔뜩 움츠린채 집 밖으로 나서지 못하고 경제는 얼어붙고 있다.
코로나 위세에 전국에서 열리는 봄꽃축제와 식목행사까지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고 한다.
전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코로나는 반드시 물러날 것이다.
그때까지 시련을 슬기롭게 견뎌야 한다.
코로나19에 빼앗긴 봄을 다시 찾아내 가장 예쁜 꽃을 피워내자.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