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혁군주이자 효자였던 정조대왕의 어진

역사와 함께 걷는 길 "융건릉 둘레길"
사도세자가 잠들어 있는 곳! 융릉ㆍ건릉 이야기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481번길 21에 위치한 융건릉(사적 제206호)은 조선 정조와 효의왕후 김씨의 건릉과
사도세자와 헌경의황후 혜경궁홍씨의 합장릉인 융릉을 함께 부르는 이름인데요.
아버지 장조의 원이 있는 수원 화성에 자주 행차했던 정조의 효성은 익히 알려져 있으며,
정조의 능행길은 단순히 참배를 위한 것만이 아닌 행차가 지나가는 시흥, 과천, 화성 일대
주민들의 민정을 직접 시찰, 민원을 해결하는 기회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정조의 슬픔과 정성이 깃든 곳 “융건릉”
“네가 자결하면 종묘사직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어서 자결하라!”
1762년 이른 봄. 세자로 책봉된 영조의 둘째 아들 사도세자는 뒤주 속에 갇힌다.
스스로 자결할 것을 명한 영조의 뜻을 거역하자 서인으로 폐하고 뒤주 속에 가둔 것이다.
“세자를 폐서인으로 삼고, 뒤주에 깊이 가두라!”
아버지가 아들을, 그것도 왕권을 물려받을 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모략과 당파싸움으로 얼룩진 조선 구중궁궐의 암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영조에게 사도세자는 세상 단 하나뿐이었던 아들, 더욱이 대리청정을 시켰을 정도로
기대가 크고 귀하게 여긴 아들이었다. 하지만 세자의 대리청정은 불행의 씨앗이었다.
노론이 외면한 사도세자의 대리청정이 순탄할 리 없었고,
과도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기이한 행동을 했던 사도세자는
끝내 영조의 미움을 사게 되었고, 결국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죽게 되었다.
그 후 아들을 죽인 비정한 군주 영조는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그의 손자인 정조를
세자로 책봉하게 되었고, 영조가 죽고 나서 정조는 조선의 제 21대 왕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고 가장 먼저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장조’로 추증하고
화성시 안녕동에 융릉을 모시고, 능을 모시기 위해 원찰인 용주사를 곁에 건립하여
해마다 이곳으로 행차하여 제향을 올려 드렸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 곁에 있기를 바랐던 효성 지극한 정조는 융릉 곁에 묻혔는데, 이를 건릉이라고 한다.
융릉과 건릉, 이 두 개의 왕릉은 함께 융건릉이라 불리며, 융건릉은 2009년 유네스코가 정한
다른 조선왕릉들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역사와 함께 생생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 “융건릉 둘레길”
융건릉은 화성팔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곳으로
두 개의 왕릉과 왕릉을 감싼 아름다운 숲길에서는 역사의 향기가 물씬 풍겨옵니다.
두 개의 왕릉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울창한 숲길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도심 속에서도 자연이 주는 맑은 공기를 흠뻑 느낄 수 있습니다.
융릉·건릉 입구에 들어서면 두 개의 갈림길을 만나게 되는데요.
왼쪽으로 가는 길은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의 릉인 ‘건릉’으로 가는 길이며,
오른쪽은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릉이 있는 ‘융릉’으로 가는 길입니다.
융건릉 입구 삼거리: 왼쪽이 건릉, 오른쪽이 융릉으로 가는 길이다.
왼쪽 건릉으로 가는 길은 기품 있는 소나무들이 우뚝우뚝 솟아있어 걸으면서
싱그러운 공기를 마실 수 있으며,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주고
가을에는 수북한 낙엽길로 어떤 곳보다도 운치가 있어 걷기 좋은 길로는 안성맞춤이네요. .jpg)
건릉으로 가는 소나무 숲길
첫눈에 들어오는 건릉의 모습은 참으로 아늑하며, 따사로운 햇빛으로 릉은 한껏 더 빛나 보입니다.
릉의 모습만으로도 왕의 권위를 상징하기에 충분한 것 같습니다. 
❙ 정자각의 모습
숲길이 끝나는 부분과 건릉으로 들어가는 입구 경계에는 참도가 시작되는 홍살문이 눈에 들어옵니다.
홍살문을 지나면 능이 조성된 언덕 아래에 있는 정자각과 1992년에 복원된 비각이
오른쪽에 배치되어 있으며, 정자각 서쪽에는 2002년에 복원된 수랏간이 있습니다.
홍살문과 정자각
비각
수랏간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길을 참도라 하는데
정자각까지 참도 좌우 양측에 박석을 깔아놓은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정자각과 그 뒤로는 비운의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의 건릉이 보입니다.
건릉도 합장릉으로 융릉의 예를 따랐으나 능침에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만 둘렀습니다.
아버지가 계시는 융릉보다 조금이라도 덜 치장함으로써 정조의 효심을 반영한 배려라 생각됩니다.
❙ 정자각과 건릉의 모습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만 두른 정조의 능침
아늑한 건릉의 모습을 한껏 눈에 담고 융릉으로 가기 위해 건릉으로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내려가다보니, 융릉으로 가는 중간 통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건릉 초입에서 약 50m쯤 내려오다 보면 왼쪽에 ‘융릉 산책로’라는 이정표를 볼 수 있는데
그 길로 들어서면 융건릉을 둘러싼 완만한 능선을 따라 융릉으로 갈 수 있습니다.
이 길 역시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뒤죽박죽 섞여있어
시원한 그늘과 나무사이로 비추는 햇살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곳인 만큼 오래된 역사가 이 자연에 고스란히 묻어 있고
소박하지만 울창하게 솟은 숲이 온 몸을 푸근하게 감싸는 듯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연하나만으로도 보고 느낄 수 있는 충분한 곳이라는 게
가는 내내 설레며 들떴습니다.
건릉에서 출발하여 약 20~30분쯤 걷다보니 융릉 입구에 도달하였습니다.
건릉보다 더 확 트인 융릉의 모습은 그만큼 정조의 효심이 깊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줍니다.
❙ 참도가 시작되는 홍살문과 정면에 있는 정자각, 동쪽에는 비각, 서쪽에는 수랏간의 모습
사도세자는 경기도 양주군 배웅산에 이미 그의 묘가 마련되어 있었지만,
아들 정조의 즉위 후 화성시 안녕동으로 능을 옮기고 명칭을 현릉원이라 하였다가,
후일 고종황제때 그를 장조로 추존한 후 능호를 융릉이라고 하였습니다.
❙ 정자각을 중심으로 동쪽에 비각, 북쪽에 융릉의 모습
봉분은 모란과 연화문을 새긴 병풍석이 감싸고 있습니다.
능이 조성된 언덕 아래쪽에는 정자각과 비각, 홍살문, 재실이 있으며, 건릉과 마찬가지로
홍살문에서 장자각에 이르는 길을 참도라 하여 정자각까지 참도 좌우 양측에 박석을 깔아 놓았습니다.
유난히 날씨도 화창하고 소풍기간이라서 그런지 소풍 나온 아이들과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둘레길을 다 합쳐도 3km가 조금 넘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으며 산책하기 참 좋은 장소이자,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고 느낄 수 있어 1석 2조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 “융건릉”
정조의 정성스러운 마음과 함께 자연을 만끽하며 의미 있는 산책길을 한 번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관람시간
| 기간 | 매표시간 | 관람시간 |
|---|---|---|
| 2~5월, 9~10월 | 09:00~17:00 | 09:00~18:00 |
| 6~8월 | 09:00~17:30 | 09:00~18:30 |
| 11~1월 | 09:00~16:30 | 09:00~17:30 |
※ 관람소요시간 : 약1시간
※ 정기휴일 : 매주 월요일
교통
[대중교통]
1호선 병점역 2번출구 → 34, 34-1, 46, 50번 버스 이용 (15분 소요)
북문, 남문, 수원역에서 46번 버스 이용 (40분 소요)
신영통, 영통, 봉담에서 34, 34-1번 (30분 소요)
* 버스정류장 명칭 : ‘융건릉’
[승용차]
1번국도 병점육교 → 용주사 → 융건릉
신갈IC → 수원시내 진입, 동수원사거리 좌회전 → 병점사거리 우회전 → 병점육교 → 용주사 → 융건릉
동수원IC, 북수원IC → 수원시내 진입, 수원역 지하차도 발안/남양 방면 우회전 → 오목천삼거리 좌회전 → 수영사거리 → 융건릉
산본IC → 과천-봉담 간 고속국도 종점 → 수영사거리 → 융건릉
문의 : 융릉관리소
주소 : (445-380)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 481번길 21(안녕동 187-1)
전화 : (031)222-014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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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건릉]
조선 제 22대 왕 정조는 효심이 각별했던 임금이다. 왕위에 있는 동안 보여준 지극한 효심은 백성에게까지 추앙을 받았다. 그는 비명에 숨져간 부친 사도세자의 묘를 옮겨 묘호를 바로 세우는 등 선친의 원혼을 위로하는 한편 1년에도 수차례 능 참배길에 나섰고 가식없는 효심으로 백성을 감복시켰다.
정조는 사후에도 부친의 능이 있는 지금의 화성시 화산기슭에 묻혔다. 수원시 교외 약 8km쯤에 자리잡은 융건릉(隆健陵 사적 206호)은 부친 사도세자(장헌세자) 장조와 그의 비 혜경궁 홍씨(헌경왕후)를 모신 융릉(隆陵)과 정조대왕과 그의 비 효의왕후 김씨를 모신 건릉(健陵)을 말한다. 융릉은 화산의 서남쪽, 건릉은 서북쪽 기슭에 들어 있어 모두 서향이다. 그래서 해질녘의 분위기가 더욱 그윽하고 깊은 느낌을 안겨 준다.
이들 능 입구에는 재실이 있고, 능 주변은 하늘을 가린 짙은 송림과 상수리 나무숲이 이루어져 있어 역사교육과 숲길 산책으로 권장할 만한 곳이다. 능을 다 돌아보는 데는 숲속 오솔길로 1시간 정도 걸린다.
융건릉과 함께 들러 보아야 할 곳으로 기복사인 용주사가 있다. 정조는 능에서 1.5km인 용주사를 증축할 때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목판에 새겨 보존하도록 명을 내리고 당대 제일의 화가 김홍도에게 맡겨 아름답게 꾸미도록 했다. 50여 목판과 함께 대웅전 옆 잔디밭에는 10개 항에 이르는 부모은중경을 새긴 탑비가 우뚝 서 있다.
대웅전 후불탱화는 김홍도의 지휘로 그려진 걸작이고 정조대왕이 심었다는 대웅전앞 회양목은 수령이 무려 200여년이 넘는 천연기념물 제264호다. 범종각의 동종도 상원사 동종, 국립 경주박물관의 에밀레종 등과 더불어 손꼽히는 걸작이고 역시 국보 제 120호이다.
* 융릉
융릉은 조선 제22대 정조의 아버지인 장조(1735~1762)와 그의 비인 헌경왕후(獻敬王后)(1735~1815) 홍씨가 묻힌 곳이다. 1749년(영조 25년) 부왕을 대신하여 섭정을 하면서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노론들과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숙의 문씨 등의 무고에 의해 영조의 미움을 사 영조 38년 (1762) 뒤주 속에 갇혀 세상을 떠났다.
그후 영조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로 사도라는 시호를 내렸고, 묘호를 수은묘라 하였다. 그의 아들 정조가 즉위하자, 장헌으로 추존되었다가, 1899년 (광무 3년)에 다시 장조로 추존되었다. 장조의 무덤은 경기도 양주 배봉산 (현재의 동대문구 휘경동)아래에 있었는데 정조가 수원화산으로 옮기면서 현륭원이라고 하였고, 장조로 추존된 뒤 능호를 융릉으로 높였다.
헌경왕후는 영의정 홍봉한의 딸로 1744년(영조 20년)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장조가 세상을 떠난 뒤 혜빈 정조 즉위년에 궁호를 혜경으로 올렸고, 뒤에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헌경황후에 추존되었다. 남편의 참사를 중심으로 자신의 한 많은 일생을 자서전적인 사소설체로 적은 [한중록]을 남겨 궁중문학의 효시가 되었다.
융릉은 합장릉으로 동,서, 북 3면에 곡장을 두르고, 봉분은 모란과 연화문을 새긴 병풍석을 둘렀는데 난간석은 생략되었다. 그러나 방위 표시를 위해, 병풍석 위에 꽃 봉오리 모양의 인석에 문자를 새겨 넣었다. 봉분 바깥으로 석호와 석양을 각각 2기씩 배치하여 봉분을 호위하고 있다. 봉분 앞에는 상석, 망주석과 장명등, 문인석과 무인석, 석마들을 배치하였는데, 추존 왕릉임에도 무인석까지 배치한 점이 중요하다.
또한 제향을 지내는 정자모양을 한 정자각, 정자각 뒤로 제향 후 축문을 태워 묻는 사각형의 석함인 예감, 비를 인치하는 비각, 제물을 준비하는 수라간, 제향후 축문을 태워 바라보는 곳인 망료위 등의 부속 시설이 있다. 신문, 정자각까지는 두 사람이 걸을 수있는 폭의 신도와 어도로 구분하였고, 정자각 그 아랫단 왼편까지 넓게 박석을 깔았다. 융릉은 누가 보아도 능 조영에 정성을 들인 정조의 효심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 건릉
건릉은 정조(1776-1800 : 재위, 1752-1800)와 효의왕후(1753-1821) 김씨가 묻힌 곳이다. 정조는 장조의 아들로 1759년 (영조 35년)에 세손에 책봉되었다. 1762년 장헌세자가 비극의 죽음을 당하자 영조의 맏아들 효장 세자(추존)의 후사가 되어 왕통을 이었다. 1775년(영조 51년) 연로한 영조를 대신하여 대리청정하였고, 영조가 승하하자 1776년에 왕위에 올랐다.
정조는 아버지인 장헌 세자가 당쟁에 희생되었기에 왕권을 강화하고 체제를 재정비하기 위하여 영조 이래의 기본 정책인 탕평책을 계승하였다. 왕실의 도서관인 규장각을 설치하였고 새로운 인물들을 대거 등용하여 새로운 혁신정치를 펼쳤다.
또한 임진자, 정유자 등의 새로운 활자를 만들었으며, [속오례의][국조보감][대전화통] [증보동국문헌비고] 등의 많은 서적을 편찬, 간행하였다. 재위기간은 정조의 학문적 소양에 터전한 적극적인 문화 정책의 추진과 선진문화인 중국의 건륭 문화의 영향 등으로 문화적인 황금시대를 이루어 조선후기 문예부흥기를 이루었다.
효의 왕후는 청원부원군 김시묵의 딸로 1762년 (영조 38년) 세손빈으로 책봉 되었으며, 정조가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다. 1821년 (순조 21년) 창경궁에서 승하하였다. 건릉은 합장릉으로 동,서,북 삼면의 곡장에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다른 상설내용은 융릉의 예를 따랐다. 석물은 난간석 바깥으로 석호와 석양을 각각 4기씩 배치하여 봉분을 호위하고 있다.
봉분 앞에는 상석, 망주석과 장명등, 문인석과 무인석, 석마들을 배치 하였다. 또한 제향을 지내는 정자 모양을 한 정자각, 정자각 뒤로 제향 후, 축문을 태워 묻는 사각형의 석함인 예감, 비를 안치하는 비각, 제물을 준비하는 수라간, 제향 후 축문을 태워 바라보는 곳인 망료위 등의 부속 시설이 있다. 신문, 홍전문에서 정자각까지는 신도와 어도로 구분 하였고, 정자각 그 아랫단 왼편까지 넓게 박석을 깔았다. 신문 밖으로 능의 수호, 관리를 위한 재실이 있다.
* 장조 (사도세자)
1) 조선조 21대 영조의 둘째 아들로 이름이 선으로 영빈 이씨의 소생이며 영조 11년 (1735) 1월 21일 창경궁에서 탄생
2) 영조 12년(1736년) 2세에 왕세자로 책봉되고 영조 25년(1749년)에 수렴청정
3) 영조 38년(1762년)윤 5월 21일 뒤주에 갇혀 28세로 승하
4) 시호를 사도라 하고 7월 23일 경기도 양주군 남면 중량포(현 동대문구 답십리) 배봉산에 장사 지내여 원호를 영우원이라 하였다가 27년 후인 정조 13년(1789년) 10월 7일 이곳 화산으로 천장하고 원호를 현륭원이라고 고침
5) 고종연간인 광무 3년 10월에 왕으로 추존하여 묘호를 장종이라 하고, 능호를 융릉이라 하였다가 같은해 11월에 시호를 의황제라 추존하고 묘호를 장조로 고침
* 헌경왕후 (혜경궁 홍씨)
1) 풍산 홍씨로 영의정 홍봉한의 딸로 영조 11년 (1735년) 6월 18일 탄생
2) 영조 20년 (1744년) 10세때 세자빈으로 책봉
3) 순조 15년 (1815년) 12월 15일 81세로 승하하여 3월 3일 현륭원에 합장
4) 정조 즉위해 (1776년)에 궁호를 혜경궁이라 하고 광무 3년 (1899년) 경의왕후로 추존하고 같은 해 11월에 황후로 추존함
* 정조 (조선 22대 임금)
1) 정조는 장조(사도세자)의 아들로 재위 24년(1776-1800년)동안 탕평정치를 실시하고 선정을 베풀고 규장각을 두어 학문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
2) 장조(사도세자)의 둘째 아들로 이름이 산으로 어머니는 현경의황후(혜경궁 홍씨)이며 영조 28년(1752년) 9월 22일 탄생
3) 영조 35년(1759년)왕세손으로 책봉되고 영조 51년 (1775년)에 수렴청정하고 이듬해 (1776년) 3월 10일 경희궁에서 즉위
4) 정조 24년(1800년) 6월 28일창경궁에서 49세로 승하
5) 묘호를 정종이라 하고 11월 6일 융릉 동쪽 2째 능선에 장례하였다가 22년 후인 순조 21년(1821년) 9월 13일 현 위치로 천장
6) 광무 3년 11월 선황제로 추존하고 묘호를 정조로 고침
* 효의선황후
1) 청풍김씨 청원 부원군 김시묵의 딸이며 영조 29년 (1753년) 12월 13일 탄생
2) 영조 38년 (1762년) 2월에 왕세손 빈으로 책봉됐다가 정조가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
3) 순조 21년 (1821년) 3월 9일 창경궁에서 69세로 승하하여 9월 13일 건릉에 합장
4) 광무 3년 11월 효의선왕후로 추존됨
* 융건릉의 대략적인 조성 역사
융건릉의 대략적인 조성 역사는 아래와 같은데, 1789년부터 1900년까지 조성이 이루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융릉, 건릉 문서 참고
1789년(정조 13년) 10월 16일, 사도세자가 묻힌 영우원(永祐園)을 현재 화성의 위치로 옮겨서 현륭원(顯隆園)이라 부르게 하였다
1800년(순조 즉위년) 6월 27일에 정조가 승하하자, 같은 년도 11월 6일 현륭원의 동쪽 두 번째 언덕에 안장하였다
1816년(순조 16년) 3월 3일,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생모인 혜경궁 홍씨가 1815년 12월 15일에 승하한 후, 현륭원에 합장되었다.
1821년 3월 9일 효의왕후가 승하하자 건릉 부근(즉, 최초의 건릉의 장소인 융릉 동쪽)에 안장하려고 하였으나 영돈령부사 김조순이 건릉이 풍수지리에 좋지 않다고 하자 건릉을 현륭원 서쪽 언덕으로 바꿔서 1821년 9월 13일에 효의왕후를 합장하여 매장하게 되었고, 능호를 건릉으로 합하였다.
1899년(광무 3년) 9월 1일, 사도세자가 왕으로 추존되어서 장종(莊宗)이란 묘호를 올리고 현륭원도 왕의 예에 따라 융릉(隆陵)으로 격상되었다.
1899년(광무 3년) 정조와 효의왕후를 각각 정조선황제와 효의선황후로 높임
1899년(광무 3년) 12월 7일, 사도세자의 묘호가 다시 장조(莊祖)로 바뀌면서, 융릉은 황제의 릉이 되었다.
1900년(광무 4년) 황제의 격에 맞춰서 비각의 표석을 세움
[융건릉 입구]

융릉과 건릉은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이다.
융건릉입구에 있는 오래된 향나무 한 그루.
융건릉 입구
융건릉을 포함한 조선왕릉은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왼쪽이 정조대왕의 릉인 건릉, 오른쪽이 사도세자의 릉인 융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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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건릉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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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릉 & 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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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신지는 풍수지리학상의 필요에 의해 조성되었다..jpg)
곤신지에 내려앉은 가을.jpg)
마치 물감을 풀어놓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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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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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과 정자각.jpg)



배위: 임금님의 어가가 내리는 곳. 여기서부터 걸어들어가야 한다.
정자각으로 가는 길인 참도. 왼쪽이 신도 오른쪽이 어도이다..jpg)

정자각이 날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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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신계(신이 다니는 계단)이고 오른쪽이 인계(사람이 다니는 계단)



예감: 정자각 뒤로 제향 후 축문을 태워 묻는 사각형의 석함..jpg)
비각에는 두 개의 비석이 있다. 
정조에 의해 장헌세자로 봉해진 사도세자비: "조선국 사도장헌세자현륭원" 이라고 쓰여져있다.
묘비에는 사도장헌세자(思悼 莊獻世子)로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인 영조는 사도세자(思悼世子), 아들인 정조는 장헌세자(莊獻世子)로 부름
훗날 고종에 의해 다시 장조로 추증된 뒤에 혜경궁홍씨(헌경왕후)와 함께 모셔진 비석.
수랏간
사도세자릉 융릉
각종 석물들이 융릉을 호위하고 있다..jpg)
사도세자(장조)와 혜경궁홍씨(헌경왕후)의 합장무덤. 혜경궁홍씨는 "한중록"을 쓰신 분이다.
봉분주위를 병풍석으로 둘렀다. 건릉은 좀더 소박한 돌난간으로 둘렀다.
연꽃과 모란 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혼유석
혼유석에 새겨진 글자
곡장
일반관람객들이 능침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쳐놓은 방책


장명등.jpg)
장명등.jpg)
문인석.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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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마, 무인상, 문인상, 망주석
석마
석마
망주석과 세호
곡장을 바라보고 서있는 석양
석호
건릉은 융릉에 비해 좀더 축소되고 검소한 느낌을 준다. 

금천교: 능역에 들어가기 전에 건너는 다리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의 거리도 융릉에 비해 짧아 보이는 느낌.
융릉에 비해 소박한 느낌의 건릉.
배위: 임금님의 어가를 내려놓는 곳, 여기서부터는 걸어들어가야 한다.
정자각 뒤로 능침이 보인다.
정자각 동쪽에는 비각이 있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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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침에서 내려다 보이는 정자각, 비각, 홍살문

정자각 후면
예감: 제향을 지내고 난 후 축문 등을 태우는 곳
비각의 비석도 한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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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릉은 정조와 효의왕후의 합장무덤이다..jpg)
건릉은 봉분 주위에 난간석을 둘렀다. 융릉은 봉분주위를 병풍석으로 둘렀다.



융릉에 비해 소박한 느낌의 능침

곡장
석양
석호
융건릉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애초에 정조의 능을 조성했던 곳.
후일 효의왕후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에 현재의 건릉으로 옮겨 합장되었다.
- 28630 휘문53회 유호선 늘 공평한 마음을 지니면 만사가 뚜렷히 밝게 보이고-(求道共... 2017-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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