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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효행의 도량 - 화산 용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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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의 존재이유인 호성전과 그 앞의 부모은중경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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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이 지극했던 개혁군주 정조대왕 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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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의 주불전 대웅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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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렵한 용주사 대웅보전: 앞에 정조가 직접 심었다는 회양목(고사목)이 서있다.



사도세자 명복 위해 건립된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보물 됐다.


2017년 08월 14일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문화재청은 정조의 친부인 장조(사도세자)가 묻힌 융릉(隆陵, 전 현륭원)을 수호하고 망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을 보물 제1942호로 지정했다고 14일 밝혔다.

 화성 용주사는 융릉의 능침사찰이자 능에서 열리는 제사 물자를 조달하는 조포사(造泡寺)였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대웅보전은 1790 2월 공사가 시작돼 그해 9 29일 불상이 봉안됐다.

 정조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위해 용주사 설립을 주도했다. 조선 왕실은 대웅보전을 지을 때도 직접 공사를 발주하고 재원을 조달했으며 감독까지 맡았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일성록, 현륭원 의궤 등에 공사 내용과 재원, 집행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

 용주사 대웅보전은 여러 차례 중수됐지만, 외부 단청을 제외하면 원형이 잘 보존된 편이다. 정면 3, 측면 3칸 규모로, 공포(하중을 받치기 위해 대는 부재)가 여러 개인 다포식 건물이다. 지붕은 궁궐과 사찰 건축물에 많이 쓰인 팔작지붕 형태다.

 장대석을 사용한 기단, 용마루 끝에 얹는 조형물인 취두(鷲頭), 용머리 모양의 장식기와인 용두(龍頭), 지붕 마루를 회로 감싸 바르는 양성바름 기법 등 정성을 기울여 조성한 흔적이 남아 있다.

 용주사 자리에는 본래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갈양사가 있었으나, 이 사찰은 고려시대에 소실됐다. 용주사는 삼문, 천보루(天保樓), 대웅보전이 일렬로 배치돼 있으며, 스님들의 살림 공간인 승당과 선당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용주사 대웅보전은 18세기 불전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라며 "능침사찰로서의 권위와 격식, 시대성을 간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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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시방칠등각, 호성전, 대웅보전, 천불전...서쪽 뒤에서 본 용주사의 전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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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행 근본도량 제2교구 효찰 대본산 화산 용주사 (花山 龍珠寺)  


용주사는 화성시 송산동에 위치한 화산에 자리를 잡고 있다.
용주사는 854(신라 문성왕 16년)에 갈양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가,
952(고려 광종 3년)에 소실된 갈양사의 옛터에 창건된 사찰이다.
이 절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 이다.

조선시대 후기 정조(正祖)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중창하고 원찰로 삼았다.  

1790(정조 14)에 갈양사 옛터에 145칸의 사찰을 창건 했다.
이 절은 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에 명복을 빌어 주는 능사로 창건 했다.
1911
년에는 수원·안성·남양 등 경기도내 49개 사찰을 관장 하기도 했다.

낙성식 날 저녁에 정조가 꿈을 꾸었는데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했다 하여 절 이름을 용주사라 불렀다.

양주 땅 배봉산(拜峰山)에 있던 부친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花山)으로 옮긴 정조대왕은
 자나 깨나 비명으로 원통하게 숨져간 아버지 생각뿐이었다.

불현듯 부왕이 그립다거나 전날 밤 꿈자리만 고약해도 효성이 지극했던 대왕은
능을 찾아 살핀 후 환경(還京)길에 꼭 용주사에 들러 릉사(陵事)를 당부하곤 하였다.

경내에는 천왕문. 홍살문. 삼문. 5층석탑. 천보루(홍제루). 나유타료와 만수리실.
대웅보전. 천불전 . 시방칠등각. 청동향로. 금동향로. 범종각 범종(국보 120). 병풍.
법고각. 부모은중경탑. 호성전. 지장전. 전강대종사사리탑 . 효행박물관. 요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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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는 용주사 동종(국보 제 120)과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보물 제1754) 후불탱화 등 10여개의 유형문화제를 소유하고 있다.

용주사 후불 탱화는 정조가 화가 김홍도를 불사에 참여시켜 대웅전 후불탱화(경기도 유형문화제 제16)를 그렸다. 특히 변상도에는 단원 김홍도의 화풍이 고스란히 살아남아 있으며 본문은 당대의 명필이던 황운조의 명품 경판이다.

또 탱화 가운데 최초로 서양화법인 원근법과 명암법을 사용한 그림이다. 이 탱화 외에도 불설부모은중경판(보물 제1754)도 김홍도의 그림을 변상도로 판각한 경판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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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용주사 상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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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성전과 부모은중경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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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의 정문인 천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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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정취가 물씬한 용주사



[천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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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는 천왕문이 출입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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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에 용주사란 현판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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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 앞에는 해태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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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을 지난 곳에 매표소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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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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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 안에는 모두 4개의 사천왕상이 봉안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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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지국천왕(東方持國天王) & 남방증장천왕(南方增長天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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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지국천왕(東方持國天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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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증장천왕(南方增長天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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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광목천왕(西方廣目天王) & 북방다문천왕(北方多聞天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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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광목천왕(西方廣目天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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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다문천왕(北方多聞天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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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에 밟힌 악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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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 앞벽에 용주사 안내도가 내걸렸다. 출입구를 지나는 탐방객을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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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 앞 해태상 위에 한가하게 올라앉은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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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 & 진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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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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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를 지나 천왕문 쪽을 뒤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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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로 들어가는 길 건너편으로 보이는 효행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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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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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에는 두 기의 오층석탑이 있다. 하나는 입구 들어서자마자 좌측에, 또 하나는 천보전앞에 있다.




화성용주사오층석탑(華城龍珠寺 五層石塔)

 경기도유형문화재 제212
 소재지는 경기도 화성시 용주로 136(송산동 188번지) 용주사 이다.

 원래 다른 장소에 있던 것을 용주사 지장전 뒤쪽에 옮겨놓았다가, 현재 위치로 옮긴 것이라 전해진다. 전체 높이는 4.5m이며, 화강암으로 조성하였다. 용주사 천왕문을 지나, 왼쪽에 들어서 있는 효행박물관의 전면 왼쪽에 세워 놓았다.

이중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세우고 상륜을 얹은 모습이다. 기단은 각면 마다 2매씩 바닥돌을 놓고 그 위에 쌓았다. 1층 기단 각 면에는 여의두문(如意頭紋) 형태의 안상(眼象) 3개씩 조각되어 있으며, 2층 기단은 효행박물관 출입로 쪽으로 면한 한쪽 면석에만 위패(位牌) 형태조각을 새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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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들어서자마자 좌측에 서있는 오층석탑



탑신부는 탑신석과 옥개석을 각각 한 개의 돌로 구성하였으며 탑신마다 우주를 새겨놓았다. 1층 탑신 중 두면에는 자물쇠 모양이 양각된 문비(門扉)를 새겨 놓았으며, 5층 탑신은 나중에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옥개석 중 1∼3층의 옥개받침은 4, 4층의 옥개받침은 3단으로 조성하였으나, 5층의 옥개받침은 목조건축의 서까래와 귀포의 결구(結構)를 양각해 놓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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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개석은 경사가 완만하며 네 귀퉁이는 선이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고,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남아 있다. 상륜부는 5층 옥개석과 한 돌로 구성하였는데, 둥근 평면의 노반 위에 복발과 보주를 아래서부터 차례로 하나의 돌에 새겨놓은 모습이다.

5
층 옥개석의 탑신석과 옥개석의 양식과 치석 수법, 위로 갈수록 줄어듦이 적은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상층기단의 한 면에만 위패 모양의 조각을 새긴 것과, 하층 기단 각 면마다 여의두문 모양의 안상을 새긴 것이 독특하다.




[효행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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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층석탑을 지나면 바로 왼쪽으로 효행박물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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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 효행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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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 능행차도: 아버지 사도세자(장조)의 능인 융릉으로 행차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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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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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에는 특이하게 홍살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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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을 지나면 삼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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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이 깔린 길, 홍살문, 삼문 등은 궁궐전용 건축양식이다. 사도세자의 격을 생각한 예법의 건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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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을 지나면 삼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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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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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문에는 4개의 주련이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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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련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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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법선: 절문에 이르러 선을 본받고,
                             주득조화: 여의주를 얻어 조화를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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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문 위에 걸린 멋진 용주사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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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문 앞에는 두개의 해태상이 지키고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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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문앞의 웃는 모습의 해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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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문 앞에는 금연표지석도 있다.




[천보루와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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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문을 지나 절 경내에 들어서면 한 눈에 대규모의 누각이 정면에 나타난다.
1790
년 절의 창간 당시 지어진 정면 5, 측면 3칸의 2층누각인데
도편수는 경상도 영천 은해사(銀海寺) 쾌성(快性)스님이 맡았고,
강원도 삼척영은사(靈隱寺)의 팔정(八定)스님이 단청을 하였다.

천보루의 아래층은 대웅보전으로 향하는 통로로써
여섯 개의 목조기둥아래 높다란 초석이 건물을 받들고 있는데,
기둥을 받치는 초석이라기 보다는 그 자체가 석조기둥과 같이 커다란 규모이다.

대체로 사원건축에서는 목조기둥을 사용하는 것이 상례이고
이러한 석조기둥은 주로 궁궐건축에서 사용된다.
절의 창건이 왕실의 직접적인 후원 아래 이루어진 것임을 알게 해주는데,
대웅전을 정면에 두고 오른쪽 벽면에는 별석으로 부모은중경을 한글로 새겨
절을 찾는 참배객들에게 효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누각의 좌우로는 7칸씩의 회랑이 맞닿아 있고
동쪽에 나유타실(那由陀寮), 서쪽에 만수리실(曼殊利室)이 회랑과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창건 당시 그대로의 모습인데
사원건축이라기 보다는 마치 대갓집을 연상케 한다.

나유타료와 만수리실은 모두 외정(外庭)으로 출입문이 나있고 또한 툇마루가 부속되어 있다. 외정 쪽의 방들은 외사랑에 해당하고 내정 건너 안채가 위치하는 이러한 구조는
민가(民家)의 건물양식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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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문을 통과하면 바로 나오는 오층석탑과 천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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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보루와 그 앞의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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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 천보루 회랑: 


용주사 천보루의 회랑으로 왼쪽의 나유타실과 오른쪽의 만수리실이 연결되어 있는데,
사찰의 건축구조와는 조금 다른 형태로 흡사 궁궐의 가옥구조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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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보루 앞의 오층석탑을 천보루 쪽에서 뒤돌아보며... 지나온 삼문과 오른쪽에 범종각 2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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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보루 아래에서 바라본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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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보루 아래를통과해 계단으로 대웅보전 가는 통로.



천보루는 용주사의 대웅보전으로 들어가는 통로 역할을 한다.
누각의 좌우에는 회랑을 통해 나유타실, 만수리실과 연결된다. 

천보루는 절을 세울 당시에 지은 누각으로 규모는 앞면 5·옆면 3칸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짜맞춘 익공 양식이다.

좌우에 있는 요사채보다 앞쪽으로 나와 있으며,
2
층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좌우 요사채 앞의 계단을 통해야 한다.
 
정면에서 보면 요사채 건물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어
대웅보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천보루 아래를 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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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행차시 외에는 가운데 통로의 통행을 막았던 듯...차단목을 끼웠던 구멍이 뚫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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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보루에 그려진 석가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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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보루에는 목어도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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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쪽의 천보루 편액


용주사 천보루는 바깥의 현판이고 안쪽에는 홍제루란 편액이 달려 있다.
이는 밖으로는 하늘이 보호하는 곳이고, 안으로는 백세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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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의 홍제루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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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보루를 지나면 천보루 안쪽에는 홍제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한 누각에 두개의 서로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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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루쪽에서 내려다 보이는 오층석탑과 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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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전각에 두개의 이름이 붙어있는 특이한 전각: 천보루 & 홍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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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루 & 만수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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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떨어져서 바라다 본 홍제루와 그 옆의 만수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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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보루 서쪽의 만수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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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보루 동쪽에 자리잡은 나유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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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보루 동쪽의 나유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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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타료(那由陀寮) - 정면




[대웅보전] - 보물 제1942호(2017년 8월 14일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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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보루를 지나면 나오는 대웅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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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과 그 왼쪽에 천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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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 대웅보전 소맷돌의 삼태극과 구름, 모란 문양

이 소맷돌의 구조는 일반적으로 절집의 소맷돌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으로 이는 용주사의 창건이
융릉의 원찰로 비롯된 결과 융릉의 정자각의 소맷돌과 거의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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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현판의 좌우에는 황룡과 청룡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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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의 글씨는 정조의 친필이라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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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현판. 단청이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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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에 모셔진 세분의 부처님과 후불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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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가 그렸다는 후불탱화와 천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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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불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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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는 석가여래, 오른쪽에 동방약사여래, 왼쪽에 서방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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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포식공포와 대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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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직접 심었다는 회양목(고사목). 이제는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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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앞에는 제법 큰 당간지주가 있다. 절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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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사이에 당간을 세우고 구멍을 통해 고정시킨다. 요즘의 국기게양대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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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앞의 연화대 향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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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불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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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본 대웅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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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성전과 부모은중경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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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바로 옆에는 호성전이 있다.

사도세자(장조)와 경의왕후 혜경궁 홍씨, 정조와 효의왕후 김씨 네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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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성전과 부모은중경이 새겨진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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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성전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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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성전은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세운 전각으로 용주사 창건의 동기가 되는 건물이다. 현재 이곳에는 사도세자(장조), 경의왕후 혜경궁 홍씨, 정조, 효의왕후 김씨 등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매일 여섯번의 제를 올렸다고 한다. 새벽, 한낮, 해질녘, 초저녁, 한밤중, 자정이후 이렇게 여섯번 제를 올렸다.

용주사 경내에 박석이 깔린 길, 홍살문, 삼문 등의 궁궐식 예법이 들어간 이유가 바로 이 호성전에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이며, 당시 정조가 여러 번 이곳 용주사로 행차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의 건물은 6.25때 불탔던 것을 새로이 앞면 3칸의 소박한 일반 맞배지붕으로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애초에는 팔작지붕의 궁궐형식으로 지어진 전각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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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성전 앞의 비석같은 탑은 부모은중경탑이다. 부모님의 열가지 은혜에 대한 불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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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은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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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십중대은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는 부모님의 열가지 은혜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를 부모십중대은이라고 하는데...



① 어머니 품에 품고 지켜 주시는 은혜[懷耽守護恩: 회탐수호은],

② 해산날에 즈음하여 고통을 이기시는 어머니 은혜[臨産受苦恩: 임산수고은],

③ 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으시는 은혜[生子忘憂恩: 생자망우은],

④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은 뱉아 먹이시는 은혜[咽苦吐甘恩: 인고토감은],

⑤ 진 자리 마른 자리 가려 누이시는 은혜[廻乾就濕恩: 회건취습은],

 

⑥ 젖을 먹여서 길러주시는 은혜[乳哺養育恩: 유포양육은],

⑦ 손발이 닳도록 깨끗이 씻어주시는 은혜[洗濁不淨恩: 세탁부정은],

⑧ 자식이 먼 길을 떠났을 때 걱정하시는 은혜[遠行憶念恩: 원행억념은],

⑨ 자식을 위하여 나쁜 일까지 지으시는 은혜[爲造惡業恩: 위조악업은],

⑩ 끝까지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시는 은혜[究意憐愍恩: 구경연민은] 등이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은 목판 42, 동철판 7, 석판 24판의 세 종류가 있다.
모두 73판으로 1796~1799년 사이에 조성됐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은 매우 정교하고 장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은중경은 정조의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심을 바탕으로,
당대 최고의 장인들이 혼심을 쏟아 조성한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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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조와 정조의 위패: 용주사가 창건된 동기가 바로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시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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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 한일 을사늑약이후 1907년 고종이 폐위되면서 제향도 중단되었다가
해방 후 다시 제향을 한다고 한다. 그 전에는 하루에 6번의 제례를 드렸고,
여기 용주사 승려는 일반 부역(종이제조, 두부제조)을 면제받을 뿐만 아니라 월급까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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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성전 안에 모셔진 사도세자(장조)와 혜경궁 홍씨 경의왕후, 그리고 정조와 효의왕후 김씨의 위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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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장조), 혜경궁홍씨(정조대왕 어머니), 정조대왕, 효의황후(왕비)의 위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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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쪽에서 보이는 호성전과 부모은중경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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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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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성전 바로 오른쪽에는 지장전이 자리잡고 있다.



저승세계를 상징하는 사찰의 건물을 명부전이라 한다. 그 내부에 저승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있어서 시왕전이라 하기도 하고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신다고 해서 지장전으로 부르기도 한다.

용주사에는 지장전이라고 이름 하여 지장보살 시왕, 판관 등을 봉안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지장전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협시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을 모시고 그 좌우에 명부시왕을 모시며 각 시왕 앞에는 동자상을 안치한다.

이밖에 판관(判官녹사(錄事), 그리고 입구에 장군(將軍) 등을 모시게 된다.지장보살은 석가여래이후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몸을 육도(六道)에 나타내어 천상에서 지옥까지의 일체중생을 교화하는 대자대비의 보살이다. 자신의 성불을 미루면서 악도에서 헤매거나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이 모두 성불하기까지 그 스스로가 성불하지 않을 것을 맹세한 보살이기에 대원본존(大願本尊)이라 이르기도 한다.

이 지장보살은 원래 천관을 쓰고 가사를 입으며, 왼손에는 연꽃을 쥐고 오른손에는 보주(寶珠)를 든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삭발한 머리에 석장(錫杖)을 짚고 여의주를 들고 있는 모습이 많다.

지장보살상의 뒤편에 봉안되어있는 지장탱화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시립하고 이 두 보처를 중심으로 명부시왕·사자·판관·장군·사천왕·천녀를 도설 하였다. 사람이 죽으면 7일마다 49일까지 일곱 번의 심판을 받고, 백일(白日소상(小祥대상(大祥)때가지 각각 한차례씩 모두 합쳐 10번을 10명의 대왕에게 생전의 죄업을 고백한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은 살아 생전 비록 죄업을 지었다고 하더라도 열 번의 기회를 통해 가능한 한 구제 받도록 하는 자비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모든 중생을 하나도 남김없이 구제한 후에야 깨우침을 이루겠다는 지장보살의 대원력은 결국 저승의 세계가 아닌 이승의 세계에서 선근공덕을 쌓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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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성전과 지장전 사이 뒤쪽으로 전강대종사 사리탑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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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죄를 너무 많이 지어 이의 죄값을 하느라고 자기가 가진것을
모두 남에게 주고 가는데 거지가 자기도 달라하여 옷을 벗어주고 나니
알몸이라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못하고
땅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하여 지장보살이라고 한다.

그후에 보살상이 만들어져도 몸에 치장이 전혀 없단다.
약사보살, 관세음보살, 보현보살, 문수보살등은 장신구가 많은데 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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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전은 사후세계를 관장하므로 명부전 또는 시왕전으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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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전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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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전 단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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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전의 주불 지장보살



지장전에 봉안된 이 목조각상 일괄은 원래 1894년 萬儀寺 지장전이 낡고 무너져서 이 곳용주사로 移安해 온 상들로서 이 중 목동자상 10구는 현재 용주사 효행박물관 전시실과 수장고에 나뉘어 소장되어 있다. 조선후기 목조각상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낸 작품들로서 명부세계의 존상 일괄을 잘 보존하고 있는 상들로서 의의가 있다. 31구는 지장삼존상3, 시왕상10, 귀왕상2, 판관상2, 사자상2, 녹사상2, 동자상10구이며 동자상을 제외한 나머지 21상은 지장전에 동자상은 용주사효행박물관에 있다(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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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세계를 담당한다는 시왕: 염라대왕도 그 중 하나. 지장전을 명부전 또는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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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대종사 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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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대종사 사리탑은 호성전과 지장전 중간 뒤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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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대종사 사리탑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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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형식이 우리고유의 것이 아니고 동남아시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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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품은 경복궁 박물관에 있고, 용주사에 있는 것은 모조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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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행박물관에 모셔져 있는 전강대종사 유품들.




[천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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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전


현재 천불전 자리는 과거에 노전(爐殿), 또는 향로전(香爐殿)이라고 불리던 건물이 있던 곳이다. 이 자리에 법당불사를 하여 93 3월에 건물을 완성하고 천불전(千佛殿)이라 이름 하였다. 건물 내부에는 천개의 작은 불상을 봉안하였고 이 천불은 다불사상(多佛思想)에 근거한 것으로 주로 현재의 현겁천불을 이룬다.

건물은 석조기단위에 정면 3, 측면 2칸으로 지어졌으며 팔작지붕을 올리고 그 내부에는 동쪽을 제외한 삼면에 마련된 9층의 단위에 천불이 봉안되었는데 그 마지막 아홉 번째 단은 건물의 평방도리를 이용하였다.

건물 내부의 중앙에는 석가모니, 비로자나 그리고 아미타여래의 삼세불을 봉안하였습니다. 이 삼세불은 대웅전에 모셔진 삼세불과 그 형식을 같이하여 조성한 것으로 머리 한가운데에는 붉은 계주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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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전과 범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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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왼쪽에 자리잡고 있는 천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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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전과 우측의 시방칠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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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불상들이 빼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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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작은 불상들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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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칠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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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전 우측 뒤에 자리잡은 시방칠등각


대웅보전과 천불전 사이에 위치하는 전각으로 칠성, 산신, 독성이 탱화로 봉안되어 있다. 이 세 신앙은 불교를 신앙하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불 수 없는 독특한 한국적 불교신앙으로 우리는 삼국시대에 불교를 수용하면서 불교이전의 재래 토착신앙을 배척하지 않고 조화롭게 수용 발전시켜 나갔다. 이들 재래신앙이 불교와 용합되면서 북두칠성을 신앙하는 칠성신앙과 스승 없이 혼자서 깨우침을 얻는 독성신앙, 그리고 산신신앙이 한국불교의 한 특성을 이루게 됐던 것이다.

칠성신과 독성, 산신을 모시는 전각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에 존재한다. 각각의 신을 따로 모셔 칠성각, 산신각, 독성각이 별도로 존재하기도 하고 삼성각(三聖閣)이라고 하여 이들 세 신을 하나의 전각에 함께 봉안하기도 한다.

용주사의 시방칠등각은 세 신을 함께 모신 전각이다.

그런데 이 전각 이름은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매우 독특하다. 그 뜻을 살펴보면 먼저 시방(十方)이란 동···, 동북·동남·서남·서북, 그리고 상·하의 열 곳으로서 무수한 부처님의 세계를 의미한다. 칠등(七燈)이란 칠성, 즉 북두칠성을 가리키므로 시방칠등각은 결국 칠성각과 동일한 뜻이다. 이것은 절의 창건 당시 지금과 같은 시방칠등각이 아니라 칠성각이라는 전각이 있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당시 칠성각의 도편수는 경기도 안성 죽산 칠장사(七長寺)의 설잠(雪岑)스님이었고, 전각내에는 칠성여래사방칠성(七星如來四方七星幀)을 경옥(敬玉연홍(演弘설순(雪順)스님 등이 제작 봉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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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은 동, 서. 남, 북과 그 사이 동남, 동북, 서남, 서북에, 하늘과 땅을 더한 10방향을 말한다. 온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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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칠등각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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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

용주사에는 다른 절과 달리 1개의 법고각과 2개의 범종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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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고각: 북이 걸려있다. 보통은 북과 범종, 그리고 목어, 운판의 4물이 한 곳에 모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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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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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전 바로 옆의 범종각 1: 고려동종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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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제120호 고려동종: 이곳으로 옮겨진 사연은 알려져 있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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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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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존상

몸체에 비천상과 삼존상이 새겨져 있는데 모두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형태이다.
높이는 1.44m이며, 지름은 87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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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의 종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다섯번째 오래된 종이라고 한다.
 


용주사 동종에 다음과 같은 명문이 쓰여있다.
'
성황산 갈양사 범종 한 구를 석 반야가 25000근을 들여 주성했다.'
'
금상 16 9 0일 사문 염거'

제작연대가 명확하고 보존상태가 좋아 국보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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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 2: 근세의 종이 걸려있다.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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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로부터 대웅보전, 천불전, 범종각1, 만수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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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고각, 관음전, 종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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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쪽에서 본 호성전, 대웅보전, 천불전, 시방칠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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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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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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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embrance / Ernesto Cortaz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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