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본 책이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다.
책을 다 읽고나서야 전여옥이 표절에 걸려 재판에서 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문재에 자신이 없으면 절필을 해버리지
소위 배웠다는 지성인이 남의 글을 베껴 쓴다는 것은
남의 놀이터에서 코스프레 장난을 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이런 선입감으로 책을 펼쳐들고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쪽수가 넘어갈수록 내 정신은 긴장감에 팽배해지면서
새벽잠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리고 만다.
조선의 치부를 남김없이 까발린 서현섭이라는 분의 용기도 대단하거니와
내 일찍이 이런 스펙타클한 역사 사료를 만난 적이 없다.
대한제국이 일본에 먹히는 적나라한 과정이 숨쉴 틈 없이 전개되고 있다.
그 내용을 여기에 정리해보자.
- 일본은 1992년에 이미 일인당 지엔피가 미국을 넘어섰다. 일본 27,000달러, 미국 25,000달러.
- 탄환이 수십 마리의 새 떼처럼 발사되어서 조선에서는 조총이라고 불렀다.==> 새 잡는 총, 즉 조총에 사람이 죽는 것이 참으로 궁금했었는데 의문점이 풀렸다. 일종의 산탄총인 모양이다.
- 귄리, 의무, 사상, 주의, 철학, 정치, 계급, 사회, 국제법 등등의 어휘는 일본인들이 의역하며 한자 종주국인 중국에 역수출한 것이다.
- 前向的이라는 단어도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일본식 한자였다.
- 가라오케, 올드미스.. 일본의 조어 능력은 알아줘야 한다.
- 일본인들은 판도라의 상자를 건드려 재앙을 자초한다고 해도 그 것을 열어보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 우리는 할 말을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일본인은 70퍼센트 정도만 속내를 비친다. 음식도 이런 식으로 포만감을 느끼기 전에 수저를 놓는다.
- 蘭學은 네덜란드에 관련된 학문인데 일본의 문명개화는 난학으로부터 출발하여 영미학으로 넘어간다.
- 난학의 시초는 네덜란드어로 쓰여진 해부학 원서였다. 이 책 한권으로 난학이 시작되어 일본 근대화의 비옥한 토양이 될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 일본이 이처럼 급진적 개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 조선은 주자학이라는 경직된 잣대로 일본은 왜놈이라고 깎아내리고 으스대고 있었다.
- 일본인은 해외에 진출하면 식당을 차리고 한국인은 교회를 세운다.
- 일본판 교주 문선명이나 순복음 교회는 기대할 수 없다. 반면 조선의 주자학이나 북한의 주체 사상과 같이 이념에 집착하는 우리를 일본인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
- 대처승도 일본에서 발달한 제도다.
- 일본의 기독교 역사는 한국보다 무려 200년이나 앞서 있지만 신자는 한국의 1/10 밖에 안 된다.
- 이토는 경찰국가의 힌트는 비스마르크에게서, 조선 지배 통치 구상은 피터 대제로부터 얻었다.
- 조선통신사는 12회나 일본을 방문했지만 일본의 어느 것 하나 배우려하지 않았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일본으로부터 도입한 거라고는 고추, 담배, 고구마, 화투 네 가지뿐이었다.
- 일본은 인쇄기까지 조선으로 보내 조선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가 발간되는데 한 몫을 했는데 일본인 이노우에가 관장하고 있었다. 청국으로부터 자주 독립을 강조하고 일본의 영향력을 증대하는 논설이 많았는데 계획된 문화공작이었다.
-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가 일본에 방문했을 때 경호를 맡은 일본 순사가 일본도를 꺼내 황태자에 테러를 가했는데 일본에 도착하여 천황을 예방하지 않고 무례하게 유람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서 모멸감을 느꼈다고 한다.
- 牧野伸顯: 마키노 노부아키.. 마키노짜야
-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래 정변이 나면 외국으로 도망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도 애국심이라는 말을 독점하듯이 사용하면서 세가 불리해지면 고관대작을 지낸 거물들은 밖으로 달아나는 예가 흔하다. 반면 일본은 외국으로 줄행랑치는 인사는 거의 없다.
- 일본은 보고 배운 것을 반드시 남기는 기록광이다. 에밀레종, 김치와 같은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제작하고도 기록을 남기지 않은 우리와는 대조적.
- 표착 네덜란드인의 경우 일본은 그들의 기술과 지식을 국익을 위하여 활용, 조선은 격리시키는데 급급했다.
- 록히드 사건으로 다나카 수상이 궁지에 몰리자 많은 내용을 알고 있는 운전기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태평양 전쟁이 패배하자 아나미 장관, 해군 참모차장, 육군대장, 스키야마 원수 부부, 후생 장관, 문교 장관, 전직 수상들이 연달아 자살했다. 극우 단체에서도 10여 명씩 집단으로 천황궁 앞에서 자결하여 민간인까지 약 500여명이 자살했다.
- 누군가 궁정동 만찬에서 목숨을 구걸했다는 뒷이야기가 들린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더 좋다고 했던가. 일본인 기질과 너무 비교가 된다.
- 일본은 조선을 강제 개국시키기 이전에 이미 400여명을 조선에 상주시킴으로써 한일 교섭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반면 조선은 초량, 왜관 같은 상주 기관을 일본에 설치하기는커녕 배울 것이 없는 나라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 일본을 시찰한 관리들이 당파적 이해에 얽혀 국왕에게 서로 상반된 보고를 하였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새는 격이다.
- 대원군 집권 후 발생한 서양과의 항쟁. 프랑스와 미국 측으로서는 한바탕의 [장난]인데 대원군은 일본과 중국을 굴복시킨 이들을 물리쳤다고 의기양양해 하면서 더욱 쇄국의 길로 들어섰다.
-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자 독립의 꿈을 포기 않고 의병, 독립 운동을 전개했다. 초토화된 일본에 맥아더가 진주하자 일본인이 너무나 쉽게 순종하여 맥아더가 놀랐다고 한다. 이 것이 일본인의 현실주의적인 성향이다.
- 일본의 해외 지식 흡수는 한학-난학-영미학으로 옮겨졌는데 그 속도는 조선, 중국과 비교조차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 정약용: 일본은 백제로부터 서적을 얻어 읽은 몽매한 나라지만 중국과 직통한 후로는 엄청난 서적을 구입했는데 그 서적이 과거시험을 위한 것이 아니라서 이미 우리나라를 능가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즉 당시 조선은 양반 계급을 유지 획득하기 위해 과거 시험에 목을 매달고 있었다는 뜻.
- 개국 이후 일본은 군함으로 상징되는 서양의 과학과 미국 대표들이 운운하는 국제법에 청국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여 국제법 연구에 혈안이 되었다. 이 것이 곧 서구 열강에 합류는 길을 닦게 되었다.
- 1872년 이미 일본은 외국인 387명을 고용하여 서양식 외교 교섭술과 국제법 이론을 배우고 고문들에게는 외무대신의 2배나 되는 급료를 지불하였다.
- 당시 조선은 미국인 일변도에다가 외국인 고문 자질도 일본에 비해 떨어지며 보수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못했다.
- 일본과 중국이 대등한 관계에서 조약을 체결하자 조선의 위정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중국은 조선에 있어서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 일본이 조약이란 생소한 단어와 난해한 어휘를 들고 나오자 조선은 당황했다. 지금까지 일본과 300년 동안 아무런 체결도 없이 관계를 맺어왔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반론했지만 일본은 만국공법에 기초를 둔 조약이 불가피하다고 하였다.
- 미국, 프랑스가 실패한 조선의 개국을 일본이 서구식 외교 기량을 과시하며 실현시키자 유럽 문명 학습에 있어서 자질을 인정받게 되었다. 지금까지 조선에 의해 주도되었던 양국 관계가 일본 주도로 넘어가게 된 엄청난 사건인데 조선을 그 의미마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 조약 체결 시 일본은 자국어를 사용하였으나 조선은 언문을 푸대접하고 한문을 사용하였다. 이 것은 자주국으로써 조선의 위신이 크게 손상된 사건이다.
- 비스마르크는 타국과의 국익에서 이롭다고 생각될 때는 국제법을 원용하나 불리하다고 여겨지면 무력에 호소하며 국제법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고 설파하자 일본은 충격과 함께 군함과 국제법을 상호 보완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 1882년 지석영이 만국공법을 정밀하게 연구하여 세계정세의 흐름을 이해하자고 건의하였으나 조선의 식자들은 오랑캐 법이라고 배척하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철종의 사위 박영효가 일본으로 가는 배 안에서 태극기를 급조했다.
- 윤치호는 서구 문명에 눈을 뜨고는 청국이 무기력하고 완고한 미개화국임을 알게 되면서 조선 독립확보에 최대 장애물이라고 깨달았다.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기를 바라게 되었으며 조선은 일본의 영향력 밑에 있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조선의 독립 불능론, 조선 독립 유해론을 주장하면서 [자기 부정]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 일본은 프랑스의 브와소나드 교수를 영입하여 중국과 조선의 조약을 유리하게 이끌어 냈다.
- 조선의 외교 고문 추천이 청국으로부터 일본으로 넘어가게 되어 일본은 친일 고문을 조선 깊숙이 투입하게 되었다. 이 중 대표적인 인물이 미국인 이선득이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조선의 국권을 침해한 엄청난 사건인데 조선의 외교 고문으로 녹을 받아왔던 이선득은 일본의 국제법 책임을 제대로 추궁하지도 않았다.
- 조선의 외국인 고문은 일본에 비해 30년이나 뒤졌고 자질 면에서도 뒤떨어진 인사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들이 조선의 외교 교섭을 전부 도맡았다. 게다가 조선 외무 당국자들은 그들로부터 무엇 하나라도 배우려고 하지도 않았다.
- 고종과 명치 천황은 나이가 동갑이다. 고종은 사직이 멸하는 비운의 국왕이 되었고 명치는 일본 근대화 중흥의 군주가 되었다.
- [공법에 의하면], [외교 관례에 따르면] 이렇게 일본이 자신들이 요구를 합리화하면서 수락을 강요할 때 일본에게 물어보는 것이 조선 양반의 체면이 허락하지 않아 물어보지도 못하고 서명했다. ==> 양반 패망론.
- 춘추전국 시대의 역사적 배경에 익숙한 조선의 지도자들은 조약을 군사 동맹쯤으로 이해를 하였다. 교섭 협정문의 해석을 전적으로 한문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해석상의 오류를 피할 수가 없어서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따라서 위에 언급한대로 조약을 언문으로 기록하지 않은 것은 절대적 오류였던 것이다.
- 한미 수호 조약은 조선 대표는 아예 참여도 못하고 미국과 청국 양 대표가 협의하였고 마지막 체결 단계에서 조선은 서명만 했다. ==> 복창 터질 일이다.
- 한미조약 제 1조에 必須相助라는 문구가 있는데 조선을 이 것을 조선이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면 미국이 도와준다는 확실한 약속으로 믿었는데 정작 영문 본에는 그런 내용이 빠져있었다. 당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외교관이 조선에 한 사람도 없었다.
- 반면 일본인들은 네덜란드어에 능통하였으므로 조약문에 네덜란드어와 영어를 병기하여 오류 발생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였다.
- 조선은 22년간 놀랍게도 63회의 외무장관 이동이 있었다. 평균 재임 기간은 6개월도 안되었다. 조선 역사상 외교 비중이 가장 중요했던 시기에 권력자는 능력보다는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자기 파벌의 인물을 임명했던 것이다.
- 일본은 20년 간 단 4번의 외무장관이 교체되었다. 일본이 조선을 병탄할 당시 단 두 명의 외무 장관이 책임자로서 재임하여 임무를 수행하였다.
- 국제법 입문서 하나 제대로 읽지도 않고 영어나 프랑스어 해독할 수 있는 외교관 한 명도 없이 조선은 11개국과 총 120여개의 조약을 체결, 가입하였다. ==> 잘 하는 짓이다.
- 공무원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사무차관이 탄생하면 나머지 동기생은 용퇴한다. 동기생 눈치 안 보고 소신껏 경륜을 펼치라는 뜻이다. 다른 기수에 차관을 안 빼앗기기 위해 후보를 단일화하여 밀어준다.
- 일본인은 출세의 길이 보이지 않는 전문가의 길을 20대 때부터 택해 걸으면서 될 성 부른 인물에게 모든 걸 바친다.
- 일본은 예로부터 권력, 명예, 부를 나누어 가졌다. 천황은 명예를, 장군과 무사는 권력을, 상인을 부를 차지했다. 국회의원 30년 경력의 미키 수상이 서거했을 때 그가 남긴 재산은 세금도 낼 수 없을 정도였다.
- 일본은 정치교수가 없다. 교수면 교수고 정치인이면 정치인이다. 소설과 시를 같이 쓰는 문인도 없다. 고시 양과 합격을 자랑하는 천재도 없다. 전문대학은 전문대학으로 남아있을 뿐이지 종합대학 승격은 관심 밖이다.
- 우리 수출의 불량률은 4프로인데 일본은 0프로다. 대강주의가 통하지 않는다.
- 일본인들은 식사를 할 때 메뉴는 달라도 좋으나 가격은 균일해야 하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다.
- 일본은 최상위 소득 5분의 1과 최하위 소득 5분의 1은 불과 2.9배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미국 9.1배, 영국 프랑스는 10배 이상이다.
* 이상에서 보듯이 조선이라는 나라는
종이 한 장 조약서에 조금씩 침식당했음을 알 수가 있다.
우리가 보험에 가입하더라도 빽빽한 약관을 전부 이해하지 못하여
나중에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통탄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하겠다.
책을 읽으면서 국제정세를 파악하지 못하고 우물 안의 개구리로 있다가
호되게 당한 흐름이 책 한 권에 도도하게 펼쳐지고 있다.
한 나라가 사라지는 그 흐름에 한 가운데에는
완고하고 고집 센 양반 기질이 자리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그렇게 당하고도 불과 300년 후에 다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이유가 참으로 궁금했었는데
이 책이 명쾌한 답을 주고 있다.
왜놈이었던 일본이 하는 행동을 오랑캐 짓이라고 치부하면서
조약의 말미에는 일일이 서명하는 꼬라지라니..
조선의 지식층을 대표하던 양반 계급이 조선을 허깨비로 만든 꼴이다.
역사란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가려질 일이 아니다.
위 내용은 한국사에 편입하여
두 번 다시 치욕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조선이 통째로 일본에 먹히게된 이면에는
이렇게 수십 년간 일본의 치밀한 준비가 있었다.
그 기간 동안 조선은 외무장관, 한성판윤 수백 명을 갈아 치우면서
매관매직을 일삼고 있을 때였다.
초중고대 십수년 대한민국의 교육을 받는 동안
미처 몰랐던 한민족사에 대해 새로운 자각을 깨닫게 해준 서현섭님께
심심한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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