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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휘문의숙 터 (최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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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문의숙 터"

지금은 강남 8학군의 중심, 대치동으로 옮긴 휘문중고의 종로구 계동 옛 터(현대 사옥)를 풍수가들은 조선 초부터 명당으로 손꼽히는 곳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곳은 지력(地力)이 워낙 강하고 지기(地氣)가 예술, 학문 연구 등에 적합하여 재화를 목적으로 한 현대 사옥으로는 부적합하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 이 터에는 조선시대 외교문서를 관리하던 승문원과 천문을 관측하던 관상감, 근대 들어 경우궁과 민족교육의 산실인 휘문학교가 자리잡았었다.

지금도 계동 현대 사옥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관상감의 관천대(일영대)가 자리를 조금 옮긴 채 한켠을 지키고 있는데, 필자의 학창시절 기억으로는 원래 휘문고의 후원 쪽, 후문 앞의 공간 사옥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터에는 휘문의숙 전에 경우궁이 있었는데, 1884년 10월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 등 개화당에 의해, 이 궁에 걸어서 강제로 이어한 고종은 이 곳에서 민태호 등 척신들이 참살당하는 곤욕을 겪기도 했다.

육당 최남선 선생 작사의 휘문 교가이다.

"잘 집의 서울을 눈 아래 깔고서 뜻 있네 볼재에 우뚝 선 우리 집"

계동의 볼재는 개교 당시 서울을 내려다보는 높은 고개였다.
이 고개 이름이 볼재. 보는 고개라는 뜻이다.
조선조 관상감의 일영대가 해를 관찰하고 연구하던 곳이니, 하늘과 땅을 관찰하는 고개라는 뜻...

고종이 걸어서 피신하던 경우궁 터인 휘문의숙은 또 한번 고종과 인연을 이어간다.
황실 양악대를 창설한 고종이 일제에 의해, 당시 백성들의 망국의 한을 달래던 양악대가 해산되자, 폐기될 뻔한 왕실의 악기 72점을 휘문의숙으로 하사해, 최초의 밴드부가 탄생한다.
그 조선 양악의 맥을 이은 휘문고 밴드부 출신으로 역시 나라를 대표하던 국립교향악단과 그 후신 KBS교향악단의 전, 현직 연주자로 한국예종의 오광호 교수, 필자와 현 더블베이스 수석 이창형이 있다.
고로 조선 황실 양악의 맥을 이은 휘문고 밴드부는 한국 양악 역사의 귀중한 사료이자, 조선말 격변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이후 휘문의숙에서는 당시 국어 선생이던 외솔 최현배 박사 등에 의한 조선어학회 사건의 모임이 있었으며, 최초의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의 제자들로 구역 성경의 번역도 이루어졌다.
친일파 민영휘에 의해 개교되었지만, 일제에 항거하던 휘문은 조선 최초 노동조합의 모태가 되었으며, 1924년에는 휘문고보 동맹 휴학생 600명이 제적당하는 수난도 겪는다.

필자가 입학식이 열리던 고풍의 강당 앞, 책을 든 그림의 초상화에 대해 묻자, 누구인가 학교 설립에 얽힌 야사를 말해준 기억이 있다.

앞으로 있을 휘문 OB밴드 주최의 오대 사립 콘서트밴드 연주회 준비를 시작하며, 과거 비원과 담을 연했던, 계동 휘문고 시절의 관상감 일영대와, 고종이 머물렀을 듯했던, 담쟁이 넝쿨 멋진 고색창연한 희중당이 잊혀졌던 기억 사이로 아련히 떠올라 몇 자 적어본다.
강남으로 옮겨온 현 휘문중고의 대치동 교사 터는 한티재라고 하는데, 이 또한 큰 고개라는 뜻으로 대치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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