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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땡중과 스마트폰 ! (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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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유난히 늦게 일어났다.
어제의 송년회 모임으로 다소 피곤했고 아직 막걸리 취기가 가시지 않은 탓이리라.
오전 11시쯤 6호선 지하철에 몸을 싣고 출근길을 나섰다.
6호선이 원래 한산한 탓도 있지만 늦은 시간대라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눈을 지긋이 감고 오늘의 스케쥴을 점검하고 있는데 문득 옆에서 부산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그저 나이가 40대 후반 또는 50대 초반으로 보여지는 땡중이 스마트폰 문자판을 그야말로 마하의 속도로 두드리고 있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근데 가만히 보니 땡중같은 느낌이 들어 땡중이라고 하는 거다.
스마트폰이 내 것보다 무지 좋다. 그래서 땡중?  아니다!  느낌이 와서 그렇다.
구도자에게 스마트폰이 꼭 필요한 것인가?
우리 동기 중에도 유독 피쳐폰을 고집하는 인물이 있다.
전혀 불편하지 않고 심플하게 사는 것이 아주 좋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도 이 땡중에게는 왜 최신판 스마트폰이 필요할까?
잠시 후 그 의문이 조금은 풀렸다.

번개같은 손놀림이 잠시 중단되더니..... 헉!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민망한 장면이 번뜩거린다.
땡중이 소위 야동을 감상 중이시다.
오히려 내 얼굴이 화끈거리고 민망해 자리에서 일어나 몸 둘 곳을 찾다가 나도 모르게 경로석에 걸터 앉아 먼 발치서 그 땡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잠시 후 다른 정거장에서 미모의 여인이 탑승하더니 하필 그 땡중 옆에 앉는다.
그러자 그 땡중....스마트폰을 접더니 갑자기 눈을 지긋이 감고 뭐라고 중얼거리며 구도자의 길을 걷는 흉내를 내는 것 같다.

여기까지다. 근데 하도 어이가 없어 멀리서 그 땡중의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6반 단체카톡에다가 그 사진을 올렸다.
아침부터 현실이 아닌 한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를 공유하고자 했을 뿐이다.

근데 과연 구도자에게 스마트폰이 꼭 필요할까?
오히려 구도자의 길을 가려면 방해되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가 정의한 구도자의 길을 한번쯤 음미하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굵은 돌로 마주하여
우뚝 서 있다.

하나는 스승의 길이고
하나는 제자의 길이다.

둘이 함께 구도자의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구도자는 꽃을 보고
아름답다 하지를 않는다.
애처롭다고 한다.

구도자는 하나를 보고 하나라 하지 않는다.
둘이라고도 하다가 셋 이라고도 한다.
의문점이 스승이기 때문이다.

한 끼를 굶으면 한 끼가 보이느니
두 끼를 굶으면 두 끼가 보이느니
때를 몇 번 거르면 눈물이 나는 것은
배고픔에 견디기 어려운 까닭이다.

구도는 배를 채워가는 길이 아니라
배를 비워가는 길이다.

구도는 먹는 길이 아니라
먹혀가는 길이니라.
이를 깨닫고 실행하는 길이니라.

내가 천지신명의 뜻을 입으려는 것이 아니라
천지신명의 뜻 속으로
기어들어가려는 길이다.

내가 만유를 먹는 길이 아니라
만유에게 나를 먹혀주는 길이다.

하나와 둘을 세이는 길이 아니라
하나와 둘을 이어가는 길이다.

구도자는 자기완성이 아니라
타의 완성을 추구하는 길이다.

먼 길이 아니라
백지 한 장으로 가까운 길이다.

백지 한 장의 무게밖에 아니 되는
거대한 돌덩이에서
자아를 비워가는 길,
스스로 비워 가다가 돌에서 깨어나는 길,
가다가 보면 온전한 세계가 눈에 뜨이리라.

그를 찾는 구도자의 길은
하염없이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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