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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백두산과 장백산에 대하여 (이충로)

 청나라 만주족의 선계인 백산흑수(즉 장백산과 흑룡강)로 상징되는 금나라 여진족들은 절대로 오늘날의 백두산을 그들의 백산(장백산)이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았습니다. 금나라 시기의 백산은 그야말로 흑수 즉 흑룡강의 인근 산인 흥안령(특히 대흥안령) 즉 금산(서금산)일 것입니다. 언어적으로도 흥안령은 백색을 뜻하는 만주어 샨얀에서 온 흥안이고 령은 산이니 만주어에서 산을 뜻하는 아린과 합쳐진, 샨안아린 즉 백산의 한자차음 흥안령이 바로 금나라 시기의 백산이리라. 그리고 이 백산의 샨얀-백색은 십간십이지의 십간 중 庚의 상징으로 즉 가을의 초입을 나타내며, 오행으로는 금에 해당하므로 흥안령은 바로 금산이라고도 불리우는 것입니다. 백산이 금산이고 그 백산이 우뚝 솟은 우리 민족이 부르는 큰의미의 태백산이 아니라, 길게 뻗은 산맥으로 이어져 있어 금나라 흑수말갈은 장백산이라 불렀으리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고려사람들이 백산 중 태백산이나 소백산을 선호하듯이 여진족들은 장백산을 선호한 듯 합니다. 현재 중국의 지도를, 동북3성의 지도를 보면 장백산이 불특정하게 꽤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중국인)이 말하는 최후의(가장 남쪽의) 장백산은 현재 우리의 백두산입니다. 현재 우리의 백두산을 장백산이라 불렀던 이들은 당연히 백산흑수의 금나라 여진족이 아니라 금나라가 망하고 원나라가 망할 무렵인 14세기 중순경부터 남쪽으로 내려와 우리의 영토로 진입한, 청나라를 세웠던 만주족의 선계로 바로 동멍거터믈의 오도리부족 추장 등으로 추정됩니다.

 역사상 백산흑수의 흑수말갈은 항상 고구려의 북쪽, 발해의 북쪽이었는데 그들이 갑자기 고려 시기에, 동북면의 동여진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일본 어용학자의 말한마디  "여진지명인 갈라전(해란전)이 曷懒의 해란(느릎나무)이라는 만주어 원음과는 관계없이, 曷懒의 한국식 발음 갈라가 흑수말갈을 상징하는 흑:검다의 Kara라는 주장" 때문으로 고려시대의 동번-동여진족이 모두 흑수가 되는 수모를 받고(고려사에는 흑수가 오면 따로 흑수라 표시하지 않았던가, 고려시대의 동여진은 그 당시의 시각으로는 나름 여진세계에서는 내로라하는 나름 요나 고려 사이에서 재량이 있는 여진부족이었을 텐데 그들은 오히려 흑수말갈과 같이 여겨지는 것이 불괘했을 것이다) 흑룡강과 송화강,목단강 하류의 생여진 즉 흑수말갈은 또 바로 고려의 동번이 되었던 것이다.

 금나라 사람에게 있어서 상경회령부는 금국의 발상지 즉 금원이고 완안부의 본향이며 초기수도입니다. 해릉왕이 수도를 중도대흥부-연경(燕京)으로 옮기자, 상경(上京)을 삭제하고 회령부라고 불렀으며, 그때까지 설치되었던 궁전·저택·불사(佛寺) 등을 헐어버립니다. 그후 금 세종 때에 다시 상경이라 하고 자신도 이곳으로 행행(行幸)하여, 발상지를 존중하고 부흥을 시도합니다. 금 세종 대정 24년(1184년) 금세종이 상경회령부를 찾아갈 때의 기록을 만주실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옛날 살던 백산의 동쪽 회령부의 고향을 보러갈 때, 아들 태자를 향해 말하기를....."  만약, 금나라의 장백산이 오늘날의 우리 백두산이라면 금나라 세종은 지금의 백두산의 동쪽 즉 오늘날의 함경도 땅에 있는 바로 금나라의 수도인 상경 회령부치소(오늘날 흑룡강성 영안)를 방문했다는 의미이니, 당연히 금나라의 장백산은 오늘날 우리의 백두산이 아닌 것이다.

 만약 우리의 백두산이 금나라의 장백산이라고 비정하면 바로 오늘날의 백두산이 금나라에게도 발상지라는 뜻입니다. 후대에 또 어느 강단사학자가, 만주실록의 "장백산(백두산) 동쪽에 옴회라는 들판의 오도리성에 정착하여...."라는 문구를 보면서, 옴회 즉 조선국의 회령도호부(육진개척 후 우리 조선의 세종께옵서 6진 개척 후 세종16년(1434년) 함길도절제사 김종서로 하여금 옴회(오음회,알목하)에 회령진(會寧鎭)을 신설하여 부(府)로 만든 것입니다.)가 엤날 동멍거터물이 거의 거주했던 곳으로 바로 오도리부의 오도리성이자 조선 경내의 회령으로 즉 금나라의 상경회령부라며 우기지 않는 이가 없다 할 수 있는지. 세월이 지나면 토문(투문)도 두만(투먼)강이 되어, 토문이나 도문이나 두만이나  같은 발음이라며 주장하며 우기는 중국 한족들의 주장이 먹힐 것이다.

 금나라 사람들이 툭탁하면 하는 말 "우리 조상은 상경회녕부 장백산 남쪽 기슭 어디어디에 살았다. 운운" 이럴 때의 장백산이 과연 오늘날의 백두산이겠습니까? 장백산 남쪽에 어떻게 순록을 상징으로 하는, 索倫을 성으로하는 넓은 의미의 어원커족, 어룬춘족이 살 수 있단 말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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