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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필리핀은 없다 ! (정철)
얼마 전 필리핀을 다녀왔다. 20년 전 그리고 10년 전에 몇 차례 방문하고 난 후 다시 10년만의 방문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정확하게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비행기가 착륙할 즈음 나타난 공항인근의 풍경은 반갑게도 20년 전 그대로였다. 마닐라灣으로 흘러드는 더러운 개천가도 똑같았고 개천을 끼고 양쪽으로 늘어선 형편없는 판자촌의 모습도 그대로다. 아니 그때보다 오히려 더 증가한 듯이 보였고 공항 역시 1,500만 수도의 관문치고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짐을 풀고 마카티로 나가려고 택시를 탔다. 시내 중심가로 향한 유일한 간선도로를 피해 나름대로 지름길을 찾아 헤매는 1시간 내내 나는 숨이 멎을 듯한 곡예운전에 대,여섯번 몸이 오그라들어야 했다. 신호도 질서도 없는 골목길 교차로마다 차 앞을 서로 들이밀고 20년 전 바닥이 보일 정도로 낡은 택시를 탔을 때와 같이 이번에도 부서질 것 같은 택시 안에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판자촌을 지나 다리를 건너 도착한 마카티의 샹그릴라 호텔은 완전 다른 세계였다. 호텔에 앉아 땀을 식히며 생각해보니 의문이 하나 떠올랐다. "도대체 필리핀은 지난 20년간 무엇을 했단 말인가?" 사실 우리나라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자랑할 때마다 반드시 들먹이는 비교대상이 필리핀인 까닭에 이들의 진행상황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을게다. 그 대표적인 게 1963년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체육관인 장충체육관을 지어준 나라가 필리핀이었고 아시아 국가 중 일본 다음으로 소득수준이 높았다는 얘기도 식상할 만큼 많이 들어온 얘기다. 간단하게 비교하면 60년대 초반 한국의 국민소득이 100달러일 때 말레이시아는 200달러, 필리핀은 300달러였다. 물론 싱가포르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상태였고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등도 비몽사몽을 헤맬 때다. 그러나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24,000, 말레이시아는 8,000, 싱가포르는 30,000불이 넘어가는 반면 필리핀은 2,000 달러를 헤매고 있다. 50년간의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필리핀의 실질적인 경제성장은 마이너스라는 얘기다. 지금 생각해보니 한때 아시아 선두권이었다는 그들의 자랑도 실제는 미군들의 달러 덕분이었다. 현직 군인 신분으로 주말에는 부업으로 택시를 몬다며 군인 신분증까지 보여주는 기사에게 필리핀의 문제점을 물었다. 스페인 식 영어로 꼬랍션(부패)이라고 하는 대답이었지만 부패에 관한한 한국이나 다른 개발도상국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석연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부정부패에도 종류가 있다는 얘기가 된다. 예컨대 우리처럼 부정부패를 해도 국가적인 일은 벌리면서 해먹어야 하는 데 필리핀은 그런 시도조차 없이 그저 철저하게 국민의 고혈을 빨아대는데 정치인과 명문가들이 일치단결 했던 것은 아닐까? 실제 4년 전 새로 당선된 50세의 노이노이 아키노 대통령도 그 이전 사망한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의 아들이고 지난 아로요 대통령 역시 60년대 필리핀 대통령을 지낸 디오스다도 마카파갈의 딸이다. 그리고 지방권력자들 역시 그들 표현을 빌면 명문가들의 자제들이다. 거기다 지금껏 필리핀 경제를 주름잡는 10대 기업의 면면을 봐도 그렇다. 아얄라 그룹, 졸리비, 산미구엘, SM 프라임홀딩스 같은 외식업체나 쇼핑업체가 5개나 들어있고 그 나머지도 이들의 자본과 연관된 언론이나 금융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그러니 자국 매장에서조차 메이드인 필리핀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다. 행사관계로 들른 마닐라 호텔은 예전의 모습에서 별로 달라진 점이 없다. 한때 아시아 최고급호텔로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정상회의를 주최했던 호텔 로비에서 문득 나는 박정희 대통령과 마르코스 대통령의 비화가 떠올랐다. 1966년 미군을 제외한 한국,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등 월남 파병 7개국 정상회의가 열릴 무렵이었다. 회의 자체를 우리가 제안한데다 가장 많은 46,000여명을 파병한 한국에서 개최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다른 국가들도 대부분 동의했지만 겨우 2,000명을 파병한 필리핀 마르코스의 깽판으로 부득이 개최지를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 동남아의 공산화 도미노 노이로제에 필리핀의 눈치를 봐야했던 미국의 입김도 작용했지만 자존심 강한 박대통령으로서는 마르코스의 무례함과 건방진 태도에 이를 갈았다고 한다. 그 장소가 바로 이 마닐라 호텔이었고 그것도 모자라 마르코스는 다른 국가 정상들에 비해 형편없이 작은 방을 배정하여 박통에게 수모를 안겼다고 한다. 당황한 보좌진들이 어쩔 줄 모를 때 박통은 오히려 보좌진들을 이렇게 위로했다고 한다. 『방이 크면 어떻고 작으면 어떻소, 난 오히려 작은 방에 정이 더 붙네.』 사실 두 사람은 출생년도(1917년도)나 대통령이 된 시점 그리고 3선 개헌과 야당 탄압 등 여러 면에서 흡사한 점이 많다. 더욱이 두 사람은 외모도 너무 흡사하여 당시 외무부장관이었던 이동원씨는 물론 세계 외교계에서도 헷갈릴 정도였다고 한다. 『...마르코스의 이미지는 영락없는 박대통령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 날카로운 눈매에 작은 키, 아담한 체구, 거기에 카랑카랑한 목소리까지 내겐 분간 못할 혼란이었다. 특히 도도하고 당당한 걸음걸이는 뒷모습이라면 누구든 쌍둥이라 할 정도였다』 (이동원 회고록 「대통령을 그리며」에서) 하지만 사후 결과는 천지차이로 벌어진다. 박대통령이 부하의 손에 살해된 뒤 한국은 최빈국에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반면 한때 중국 피난민을 가정부로 고용했을 만큼 여유롭던 필리핀은 이제 그 중국인들의 집에 가정부 신세가 되었다. 실제 필리핀은 세계 최대의 가정부 수출국으로 해외 가정부와 근로자들이 보내오는 금액이 160억 달러로 국민 총생산량의 11%에 이른다고 한다. 한마디로 필리핀 경제는 가정부 경제라는 얘기다. 20년간 마르코스가 빼돌린 재산만해도 당시 기준으로 100억 달러였고 부인인 이멜다의 창고에는 3,000켤레의 고급 구두가 있었다는 얘기는 유명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필리핀의 모든 문제를 마르코스에게 전가하기는 어렵겠지만 21년간 그가 끼친 해악을 생각하면 부패도 종류가 있듯이 독재도 종류가 있는 것 같다. 처음으로 방문해본 필리핀 제2의 도시이자 관광휴양지로 이름 높은 세부에 대한 인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젤란이 상륙하다 원주민 추장에게 살해된 막탄의 유적지에는 그저 아시아 최초로 유럽인을 물리친 곳이라는 표지와 추장의 동상만 덩그렇게 있을 뿐 악취 나는 갯벌과 조잡한 기념품 가게 그리고 한눈에 보기에도 불량스런 일단의 젊은 무리들 뿐 이었다. 그러고 보면 지난 20년간 필리핀은 사회 인프라나 공공부문에 대한 투자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특히 막탄에서 세부로 넘어가는 중간에 위치한 만다우에의 시내 한복판은 좁은 1차선 도로와 쓰레기 그리고 맨발의 아이들로 마치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때마침 비가 쏟아지고 차가 밀리자 구걸하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차량 사이를 위험하게 누비고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탄 택시에도 쏟아지는 비에 머리와 옷자락이 흠뻑 젖은 6-7세 소녀가 달라붙어 손을 내밀었다. 닫힌 창문과 빗소리에 잘 들리진 않았지만 소녀는 한국 걸그룹의 '노바디 노바디'를 율동까지 곁들여 부르며 커다란 눈을 내게 마주쳤다. 그 얼굴에 차마 카메라를 들이댈 수는 없어 창문을 내려 20페소 지폐를 건네주자 소녀는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다시 한번 노래를 불러 주었다. '노바디, 노바디 받쮸' 앙상한 소녀의 노래가 나한테는 '더 이상 필리핀은 없다'라는 의미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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