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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절도범.. (이해일)

30대 후반 쯤인가 그렇다.
여의도 사무실이 반월 공단으로 이전하고
원래 사무실을 반을 줄이고
여직원과 나만 임시로 근무할 때이다.

점심을 먹고 들어서는데 웬 낯선 사내,
20대 후반 쯤 되어보이는 놈이 책상 서랍을 뒤지고 있는 게 아닌가.
- 당신 뭐요?
무척 당황하면서,
- 아, 누굴 만나러 왔다가...
- 서랍을 왜 뒤지는 거요?

순간적으로 빈집 털이, 아니 사무실 털이범이라는 것을 알았다.
근데 여직원이 안 보이니 혼자 경비원 부를 시간적 여유가 없다.
혹시나 그 놈이 주머니에서 칼이라도 꺼내면 큰일이다 싶어
두리번거리며 무기가 될만한 것을 찾는데 가위가 눈에 뜨인다.

재봉용 가위라면 예리하고 날카로운 끝이 위협적일 텐데
사무용이다보니 끝이 뭉툭하다.
가위를 단단히 쥔 손이 허리춤 쯤에서 후덜덜 떨고 있다.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 이 가위로 저놈 배때기를 찌르면 푹 들어갈까 튕겨 나올까..

여차하면 찌를 자세를 유지하고 말을 건다.
- 누구 만나러 온거요?
- 아는 사람이 여기서 일한다고.. 어쩌구 저쩌구..
횡설수설한다.

그때 마침 오줌을 싼 여직원이 들어온다.
- 야, 빨리 경비 불러..

여직원이 인터폰으로 경비실에 신고하는 순간,
그 놈이 내 앞에 무릎을 꿇더니 두손을 모아 싹싹 빈다.
- 아이고 미안합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 안되요. 없어진 물건이 있는지 확인해야 해요.
- 어머니가 무척 아파요.. 봐주세요..

놀란 경비원이 뛰어올라오고 놈은 경찰에 인계된다.
경찰서까지 따라가 조서를 쓰고 끝난 줄 알았는데
며칠 후, 검찰청에서 여직원과 같이 오라는 연락을 받는다.

웬 검찰청?
허름하고 낡은 사무실에 들어서니 새파랗고 잘생긴 검사를 그때 첨 봤다.
갓 부임했는지 그는 아무 일도 안 하고
검사보(?)가 다시 조서를 쓰면서 나에게 묻는다.
- 주소가 어떻게 되요?

어제의 그 놈이 바로 옆에 있어서 검사보에게 연필을 빌려 종이에 쓴다.
- 저 놈이 옆에 듣고 있는데 주소를 물어보면 어떻게 합니까.

힐끗 나를 본 검사보가 웃으면서 괜찮단다.
괜찮기는.. 보복 사고 나면 책임질꺼냐..
연필로 종이에 주소를 써준다.

- 저 사람 그때 입에서 술 냄새 안났습니까?
놈이 술먹고 저질렀다고 처분을 바란 모양이다.
어쭈.. 머리 굴려?
- 술 냄새 하나도 안 났습니다.

그리고서 그 이후 다른 연락은 없었는데
여직원도 그렇지 그걸 못 참고 사무실을 비우는가..
우좌지간 요도가 길고 볼 일이다.ㅠㅠ

이번에는 며칠 전 학원에 친구가 놀러와 같이 있는데
나이 좀 먹는 놈이 들어온다.
- 누구세요?
- 전기를 봐달라고해서 관리실에서 왔는데요.
- 여기 전기 신고한 거 없는데요?

놈이 가고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있는 빌딩 관리실에 근무하는 모든 직원이 유니폼을 입고 있다는데 생각이 미치고
놈은 평복으로 왔던 것이 비로소 의심이 된다.

엘리베이터에 붙여놓은 주의보가 생각난다.
- 근래 빈사무실에 도둑이 들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문단속 주의 바랍니다.

놈이 떠난지 이미 5분이 지났으니 늦었다.
옆에 친구도 있었는데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퇴근하면서 경비원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까
요새 극성이란다.

경기가 안 좋다보니 생계형 범죄가 판을 치고 있다.
나이 지긋했던 그 놈에게 가족도 있을 터인데..

며칠 전에 아현동 지하도를 내려가는데
신수가 멀쩡한 40대 놈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구걸도 안 하고 무슨 생각을 골똘하게 하고 있다.
옷도 깨끗하고 이목구비도 뚜렷하고..

그냥 지나치려다 근래 무슨 근심이 그리 깊은가..
땅바닥에 앉아 있는다고 답이 나오겠는가.
다시 내려가 만원을 주면서 막걸리나 한 잔 하슈..
눈이 똥그래지며 얼른 받는다.

돈 맛을 들여 아예 주저앉았는지 모르지만
가장이 땅바닥에 쪼그리고 있는 꼴을
가족들이 보면 얼마나 속이 상하겠는가..

중얼중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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