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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를 심으며..." (최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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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누님 네 별장에서 차에 더 실을 수 없을 만치 가득 작은 단풍나무를 캐온 적이 있었다.

회현재 넓은 마당을 채우려면 이것저것 많이 심어야 횡 한 기운이 없어질 것 같아서였지...

작은 나무들을 여기저기 심고 죽을세라 물을 주어가며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보내면서 차가운 강바람에 저 작은 나무들이 살아서 봄을 맞을 수 있을까 걱정도 하며, 바람기 없는 남향 창 앞에 심은 몇 나무만 살 수 있을 거야 하면서 겨울을 지냈다.

그러나 겨울을 보내고 죽은 것 같던 그 작은 나무들이 하나도 죽지 않은 채 그 추운 강바람을 견뎌내고 새 싹을 틔운다.

“아하 살았다...”



다른 곳보다 추운 기후 때문에 늦게 싹이 돋는 양평에도 봄이 와 지난 주일부터 나무시장을 불티나게 돌아다니며 틈틈이 나무를 사서 심는다.

소나무도 몇 그루, 과일나무는 종류 별로 사왔는데 심고 보니 무슨 나무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허허...

홍매화, 왕벚나무, 대추나무, 배나무, 사과나무, 잣나무, 감나무, 백일홍, 자두나무, 매실, 포도나무, 부사, 사과배나무, 모과나무, 비타민나무,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자작나무, 명자나무, 사계장미, 능소화, 진달래, 개나리 등등...

심어 놓고 보니 자리가 안 맞는 것 같아 다시 옮기고...

또 심겨 있던 나무를 캐고 다른 나무를 옮겨다 심고하며 근 2주일을 나무와 씨름을 한다.



나무들의 배치를 끝내고 나면 집사람의 감상 평에 또 다시 옮기기를 수없이 하다가, 겨우 쌍방의 합의가 이루어져 오늘에야 큰 나무들의 배치를 완료했다.

작은 나무들은 집사람의 재량권에 넘기기로 하고...

근 2주를 새벽부터 흙과 나무와 같이 뒹굴다 보니 집에 들어가려고 보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흙탕으로 빨랫감이 매일 생긴다.

덕분에 밥맛은 날로 좋아지고 흙장난 나무 장난에 건강도 매우 좋아진 느낌이다.

나무와 생활하던 그 사이에도, 하루는 선후배 음대교수들의 권유로 공놀이도 갔다 왔으나 마당에서 흙과 나무와 씨름하는 일이 훨씬 재미있고 보람이 있다.

며칠 전 신문에서 본 내용이 생각난다.

늙어가며 등산이나 골프 등 운동도 좋지만, 소비적이지 않고 생산적인 일이 더욱 보람이 있고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내용이었지...



해질 무렵 집사람과 흔들 그네에 앉아 그동안에 사람들 때문에 옮겨 다니느라 고생하던 나무들을 바라보니 얼마나 상쾌하고 기분이 좋은지...

더구나 그 나무들 사이로 백로가 한가로이 강가를 거니는 것도 보이고...

그러다가 우리는 이상한 현상을 발견한다.

가장 강바람을 많이 맞는 곳에 심겨진 단풍나무와 잣나무가 잘 자란 것이 눈에 뜨인다.

“바람을 가장 많이 맞는 곳에 심은 나무가 제일 잘 자랐어.. 이상하지?”

“바람을 많이 맞아야 잘 크나?”



나무도 사람도 동물도 세찬 비바람을 이기고 넘어가야 심신이 강건해진다.

많은 고초와 고난을 겪어야 그 열매가 달고 충실해진다.

온실 속에서만 자라면 몰려오는 세찬 비바람에 적응하기가 힘들다.

나무 모양이 멋있어야 한다며 한사코 가지를 적게 자르라고 하던 나에게 옆 마을 아저씨가 한 말이 생각난다.

“나는요, 나무를 사정없이 다루어요. 이렇게 가지를 막 잘라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하게 살아요. 그렇지 않으면 비실비실합니다. 일단 건강하게 살린 다음 모양은 후에 잡으면 됩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노을 지는 강가에서 갓 심은 키 큰 왕벚나무의 가지들이 강바람에 흔들리며 하얀 꽃잎을 떨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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