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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친구론 (노가다)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있길래 한번 옮겨봅니다,

친구, 거 참 좋은 말일세. '친구'란 영화도 있었잖나? 그걸 벗이나 동무로 바꿔놨다면 흥행했을까? 오직 친구이기 때문에, 저 친구란 말이 가지는 껄렁한 분위기를 포함한 위악적인 평등관계 때문에 한 영화에 백만 동포가 발을 디뎌놨던 것 아닐까. 저 친구 이 친구 할 때의, 깔보는 듯한 친구, 조용필이 친구여 할때의 그 물컹물컹한 포옹의 친구, 친구여 한 탕 하자 할 때의 그 음험한 결탁의 친구, 우린 친구잖아 할 때의 그 여자친구의 야속한 친구, 너 혼자 잘 사니까 행복하니 할 때의 그 혀꼬부라진 그리움으로서의 친구, 친구야 불러놓고 아무 말이 없이 ^^만 짓고 있는 초등학교 친구의 친구, 슬픈 친구, 기쁜 친구, 귀여운 친구, 따뜻한 친구, 미운 친구, 서러운 친구, 내 친구, 저승친구까지.

친구는 두 가질세. 우선 아무 생각없이 껴안을 수 있는 친(親)이어야 하고, 그것도 시간의 부피가 있어야 해서 구(舊)이네. 친(親)이란 건 원래 어버이를 가리키는 말이고, 구(舊)란 원래 무성한 풀을 말함일세. 탕녀탕자처럼 지내다 돌아가도 '내 딸아 내 아들아"하며 눈물로 받아줄 수 있는 게 친이고, 기분에 따라 홱홱 변하는 게 아니라 식물처럼 늘 기대하는 만큼 자라나주고 늘 도망가지 않고 거기에 있는 게 구라네. 친구란 말에는 외로움이 숨어있네. 그토록 친함을 강조하는 것에는, 그토록 오래된 것을 강조하는 것에는, 저혼자 살아가는 삶의 그 서늘한 공기가 느껴지고, 그토록 부박한 인심의 변덕이 숨어있는 것이네.

친구여, 요즘 내가 즐겨워하는 친구 중에, 글친구라는 말이 있고, 블로그친구라는 말도 있네. 그걸 옛날 말로 번역하면 술친구이고 말통(말이 통하는)친구이고 물친구이고 돈친구일세. 물친구, 돈친구가 좀 이상하지? 물친구는 물에 물탄 듯 섞여서 같이 있어도 흔적이 없는 친구이고, 돈친구는 내가 이쪽으로 고개 돌리면 어느새 그 친구도 이쪽으로 고개 돌리고 있는 그 '돌아버린' 친구고, 그래서 급기야는 미쳐야 미친다 할 때의 그 급(及)한 닿음인 친구일세. 지란지교를 꿈꾼다 할 때의 그 지란이란 건, 어쩌면 친구에 대한 지독한 통각(痛覺)이기도 하네. 오죽하면 식물이겠나. 오죽하면 언어가 아닌 식물들의 향기이겠나. 저 가볍고 변덕심한 인간들의 우정 옆에다 식물들의 우정을 놔둔 천칭같은 것 아니겠나.

친구여, 거 참 좋은 사람일세. 꽃필 때 꽃질 때, 첫눈 올 때, 첫 차잎을 딸 때, 피단풍을 우러를 때, 첫 사랑에 빠졌을 때, 첫 이별에 울었을 때, 첫 시집을 냈을 때, 그냥 슬픈 비 올 때, 좋은 책이 생겼을 때, 흐뭇한 산책길을 발견했을 때, 뜻밖에 공돈이 생겼을 때, 마누라나 마누라의 신랑이 속 썩일 때, 봄날 괜히 싱숭생숭해질 때, 술이 익었을 때 술맛이 아쉽게도 살짝 가기 시작할 때, 건강검진에서 더 이상 술마시지 말라고 나왔을 때, 지리산이나 치악산 쯤에 눌러살고 싶어질 때, 어쨌거나 휙 무슨 바람이 불어서 나에게 연락을 다 했나 하는 소리를 듣고 싶어질 때, 연락하세, 그런 '칭구'로 세상의 진행방향 잊고 사는 삶이면 좋겠네. 차암 조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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