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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생은 <창조>다. (김연수)
🧑 정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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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8 22:2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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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사람들은 자기가 자신의 삶을 창조하며 삽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매순간순간이 창조의 연속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순간 짜증을 내는것도 창조요, 화를내는것도 창조이며 울거나 웃거나 기뻐하거나 슬퍼하거나 우울해하거나 밝아지는것도 다 우리가 마음먹고 선택하기에 달렸으므로 우리가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그어떤 대단한 복이 우리에게 덩쿨째 굴러떨어지는것이라기보다는(사실 그런일은 대단히 드물게 일어난다) 우리의 사소한 일상속에서 작지만 충실한 기쁨과 보람을 발견하고 그것들이 서로 연계효과를 발휘하게 하여 우리의 삶이 전체적으로 밝아지게 키워가는 섬세하고 깨어있는 눈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상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보다는 불행을 창조하는 일에 익숙합니다. 즉 사람들은 서로칭찬하기보다는 시비하고 다투기를 좋아하며 서로믿고 의지하며 힘을 합하기보다는 의심하거나 불신하며 <그리되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을 제가 미리 상상하여 실제로는 있지도 않은 미래를 미리 상상해가지고는 그에 대처한답시고 잔머리를 굴려 자기를 위한다고는 하나 상대방에게 오히려 불신을 사는 행동을 함으로서 결국은 자기에게도 손해가되는 결과를 스스로 자초하는 경우가 적지않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사고패턴이나 행동양식은 매우 부정적이며 네거티브한 경향이 많습니다. 즉 모든 사람을 긍정적으로 발전하는 존재로 보기보다는 결국은 나쁘게 후퇴하고 타락하는 존재로 보고 미리 그렇게 제마음속에 판단(심판)을 내린후 자기가 그에 미리 대처하는게 현명한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하지요.
그러나 이런 부정적 경향성이 바로 현실에서<불행>을 창조하는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더욱더 가깝고 아름다와질수있는 인간관계가 오히려 그대처한다는 의혹을 살만한 언행으로인해 깨어지고 사라지게 됩니다. <결국은 그렇게 되는거야...>라든가 <인간들이란 결국에 가서는 ...>이렇게 말하게 되는거지요.
그래서 우리는 늘 자기자신에 대해 깨어있어야 할것같습니다.
자기안에서 이런 부정적 경향성들이 판을치지 못하도록 말이지요.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하는 것은 서로간에<감동>을 줄때입니다. 그리고 그감동이란 네가 그러면 나도 그런다라는 패턴에서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는 그래도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정신에서 우러나오는 때가 많지요.
우리가 이렇게 부정적인 경향성을 갖게된것은 우리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살아오면서 남들에게 이용당하거나 속다보니 생겨난 <다그런거야>라는 고정관념에서 파생된<자기방어시스템>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행복해지기위해서는 우리를 잠재의식적으로 사로잡고있는 이러한 고정관념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연속적으로 삶속에서 <불행>을 창조해가는 어리석은 행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싸이클에 맞는 언행이나 사고방식을 하게되고 그것은 다시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행>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인생은 주어진 환경과 여건속에서 자기자신을 아름답게 <창조하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목표는 그래서 그것을 현실화(창조화)시키는데 많은 노력과 정성을 필요로 합니다. 그어던 훌륭하 결과나 아름답거나 고매한것도 그저 얻어지거나 타고나지는 것은 없습니다. 다 수많은 괴로운 밤을 한숨과 눈물로 지새운 결과로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점은 그눈물과 한숨을 통해 그사람이 결국은 어떤 사고방식과 생각을 가지고 거듭태어나서 현실에 그것을 반영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각자의 인생은 각자가 칭조해왔고 그결과가 지금의 당신입니다.
그래서 내일의 당신은 오늘당신이 어떻게 자신을 창조하느냐에 따라 변해질 것입니다.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마음이 실제로 그런 결과를 가져옵니다. 부정적이고 나약한 마음역시 실제로 그런 결과를 초래하게 합니다. 그싸이클과 기운이 그런 결과를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진실로 지혜롭다함은 똑똑함이아니라 상대방을 수용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똑똑함을 내세우고싶은 마음에는 아직 더불어 하나가 되는 깊은 지혜가 없습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똑똑함은 사실은 어리석음입니다.
수용한다함은 상대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나를 내세움없이 순수하게 그의 뜻을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상대를 수용하는 지혜속에 참된 사랑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인생의 하산길에서 같이 어깨동무할 좋은 친구가 생겨납니다.
우리가 지금보다더 아름다와지고 더넓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지금이순간에도 매사를 좀더 긍정적으로 보지 못하거나 좀더 좋은 관점에서 바라다 보
그래서 매일매일 매순간순간이 창조의 연속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순간 짜증을 내는것도 창조요, 화를내는것도 창조이며 울거나 웃거나 기뻐하거나 슬퍼하거나 우울해하거나 밝아지는것도 다 우리가 마음먹고 선택하기에 달렸으므로 우리가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그어떤 대단한 복이 우리에게 덩쿨째 굴러떨어지는것이라기보다는(사실 그런일은 대단히 드물게 일어난다) 우리의 사소한 일상속에서 작지만 충실한 기쁨과 보람을 발견하고 그것들이 서로 연계효과를 발휘하게 하여 우리의 삶이 전체적으로 밝아지게 키워가는 섬세하고 깨어있는 눈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상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보다는 불행을 창조하는 일에 익숙합니다. 즉 사람들은 서로칭찬하기보다는 시비하고 다투기를 좋아하며 서로믿고 의지하며 힘을 합하기보다는 의심하거나 불신하며 <그리되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을 제가 미리 상상하여 실제로는 있지도 않은 미래를 미리 상상해가지고는 그에 대처한답시고 잔머리를 굴려 자기를 위한다고는 하나 상대방에게 오히려 불신을 사는 행동을 함으로서 결국은 자기에게도 손해가되는 결과를 스스로 자초하는 경우가 적지않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사고패턴이나 행동양식은 매우 부정적이며 네거티브한 경향이 많습니다. 즉 모든 사람을 긍정적으로 발전하는 존재로 보기보다는 결국은 나쁘게 후퇴하고 타락하는 존재로 보고 미리 그렇게 제마음속에 판단(심판)을 내린후 자기가 그에 미리 대처하는게 현명한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하지요.
그러나 이런 부정적 경향성이 바로 현실에서<불행>을 창조하는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더욱더 가깝고 아름다와질수있는 인간관계가 오히려 그대처한다는 의혹을 살만한 언행으로인해 깨어지고 사라지게 됩니다. <결국은 그렇게 되는거야...>라든가 <인간들이란 결국에 가서는 ...>이렇게 말하게 되는거지요.
그래서 우리는 늘 자기자신에 대해 깨어있어야 할것같습니다.
자기안에서 이런 부정적 경향성들이 판을치지 못하도록 말이지요.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하는 것은 서로간에<감동>을 줄때입니다. 그리고 그감동이란 네가 그러면 나도 그런다라는 패턴에서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는 그래도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정신에서 우러나오는 때가 많지요.
우리가 이렇게 부정적인 경향성을 갖게된것은 우리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살아오면서 남들에게 이용당하거나 속다보니 생겨난 <다그런거야>라는 고정관념에서 파생된<자기방어시스템>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행복해지기위해서는 우리를 잠재의식적으로 사로잡고있는 이러한 고정관념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연속적으로 삶속에서 <불행>을 창조해가는 어리석은 행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싸이클에 맞는 언행이나 사고방식을 하게되고 그것은 다시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행>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인생은 주어진 환경과 여건속에서 자기자신을 아름답게 <창조하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목표는 그래서 그것을 현실화(창조화)시키는데 많은 노력과 정성을 필요로 합니다. 그어던 훌륭하 결과나 아름답거나 고매한것도 그저 얻어지거나 타고나지는 것은 없습니다. 다 수많은 괴로운 밤을 한숨과 눈물로 지새운 결과로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점은 그눈물과 한숨을 통해 그사람이 결국은 어떤 사고방식과 생각을 가지고 거듭태어나서 현실에 그것을 반영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각자의 인생은 각자가 칭조해왔고 그결과가 지금의 당신입니다.
그래서 내일의 당신은 오늘당신이 어떻게 자신을 창조하느냐에 따라 변해질 것입니다.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마음이 실제로 그런 결과를 가져옵니다. 부정적이고 나약한 마음역시 실제로 그런 결과를 초래하게 합니다. 그싸이클과 기운이 그런 결과를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진실로 지혜롭다함은 똑똑함이아니라 상대방을 수용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똑똑함을 내세우고싶은 마음에는 아직 더불어 하나가 되는 깊은 지혜가 없습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똑똑함은 사실은 어리석음입니다.
수용한다함은 상대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나를 내세움없이 순수하게 그의 뜻을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상대를 수용하는 지혜속에 참된 사랑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인생의 하산길에서 같이 어깨동무할 좋은 친구가 생겨납니다.
우리가 지금보다더 아름다와지고 더넓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지금이순간에도 매사를 좀더 긍정적으로 보지 못하거나 좀더 좋은 관점에서 바라다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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