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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답변] 기독교의 경우 (최영철)
기독교 안에서의 해석(기독교의 경우)

이 세상에서 가장 엄격한 율법을 만들고 행하던 이스라엘이 왜 터만 남고 이방으로 기약이 넘어갔느냐 하면 바로 하나님의 신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까지 인간의 힘에 의한 종교적인 달성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할수없이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성경은 이를 돌감람나무와 참감람나무에 비유하고 있다.

이스라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선지자들의 생애는 한결같이 위로부터의 명령에 의해, 아니면 위로부터의 신성에 의해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여졌음을 볼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 자체도 그러한 길을 걸었음을 보아 증명된다.
한 가지로 말하면 인간이 하나님의 도구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도구가 되자니 인간의 의지, 모든 욕심 교만 등 인간성을 포기시켜야 겨우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지게 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탄식하신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가르치겠느냐?

이스라엘 광야생활 때에,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 민족을 인도하셨는데 석 달 정도 걸리는 길을 무려 40년 동안 광야에서 이리저리 돌리신다. 현대 신자들에게 이를 명하면 한 사람도 들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인간의 기질이 다 녹을 때까지 불같이 연단시키신 것이다.

구약의 호세아 선지자의 경우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창부와 결혼하게 되며 그 두 소생의 음탕함과 지조 없는 행위에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이방신 섬김에 대한 경고와 깨달음을 주신 후 이스라엘과 유다에 멸망을 예언케 하신다.

모세의 경우 40세 때 광야로 쫓겨난 후 광야에서 40년을 연단 받고 80세가 되어 노년이 되었는데 그 때서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다. 애급 땅으로 가서 내 백성을 구하라.
제가 이 나이에 무슨 일을 하오리까? 저는 말이 미천한 사람입니다 등등...
네가 하지 않고 내가 한다.
80세가 나 인간의 기력도 한계에 이르고, 혈기도 없어지고, 젊은이의 패기도 없어진 상태라야 하나님께서 부리시기에 합당하였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혈기와 자기 교만과 자기 행위가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면 신성은 막히고, 인간이 앞으로 나오게 되며 이는 역사가 교훈하듯이 또 다른 실패의 연속이 될 뿐이다.

인간은 인간을 바로 만들 수 없다. 하다 못해 부모도 자식을 바로 만들 수 없다. 교육에 의해 어느 정도 바로잡을 수는 있지만 정신과 양심을 바로 만들 수 있는 건 하나님의 신성뿐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자기가 자기를 바로 만들 수 없다는 말이다. 사람이 스스로 바로 될 수 있었으면 예수님이 일부러 땅으로 내려와 고생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고대 이스라엘도 멸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게 된 것이고 성경의 많은 위인들이 위로부터 오는 각종 은혜로 말미암아 전도자와 구도자의 길을 나서게 된 것이다.
이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다" 라는 말씀같이 내가 시작하였고 내가 끝도 맺는다 라는 말씀이고 인간을 만드신 조물주가 또다시 속인간도 창조하신다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 성전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내렸듯이 모든 일은 위에서 이루어진 대로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주기도문의 내용이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대로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사울이 기독교도들을 죽이려 다메섹으로 가던 중 하나님의 신성을 받아 그동안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고 아라비아로 가 조용히 기도하고 정리한 후에야 비로소 전도자의 길을 가게 되듯이 신성은 자기가 만들 수 있는 종류가 아닌 천계의 비밀인 것이다.
예수님을 3번씩이나 부인하던 비겁하던 베드로가 오순절 후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지는 그런 것이다. 이는 어떤 행위나 수도에 의해 얻어진 게 아니다.

예수님은 에덴동산에서 파괴된 인간의 짐승 같은 마음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하여 인간보다 낮은 짐승이 사는 말구유로 오신 것이다. 망가진 인간 마음을 회복시키시려 더 낮은 곳으로 오신 것이다. 사람이 회복시킬 수 있었던 게 아니다.
구약시대 때에 율법으로 망가진 마음을 회복시키려 부단히 애를 썼으나 끝내 안 되었고, 현 이스라엘 민족들 구약율법 지금까지도 신봉하지만 회복 못 되고 처참한 전쟁판에서 굴고 있다.

그렇지만 구약이 있은 후에야 신약이 있다.
신성을 얻으려는 노력이 도에 차야 그 뒤에 비로소 신성을 얻는 것이다.
이도 또한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리를 구원하심이 우리가 의를 행함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그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신의 새롭게 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

가장 확실한 증거가 신약시대의 대선지자 사도 바울인데 그는 율법으로 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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