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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돈으로 살 수 없는 先進정치 (문형타임즈)
한국과 대만의 공통고민 … 민주주의 능력 개발 할때


▲ 함영준 국제부장
[조선일보 인물 DB]

최근 한국의 대통령 탄핵 정국과 대만의 총통 선거 후유증은 경제와 민주주의 발전이 반드시 정비례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두 나라 모두 사실상 분단 국가로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경제 성장을 이룬 뒤 아시아의 떠오르는 4마리 용(龍)으로 부상했으며 이후 민주화를 이뤄낸 아시아의 우등생들이다.

그러나 요즘 양국의 심상치 않은 사태는 높은 국민소득이 곧 성숙된 민주주의와 사회문화를 가져다 주는 ‘직행차표’는 아님을 방증하고 있다.

권위주의 정권을 대신한 양국의 리더십들은 미숙하고 성급한 탓에 국민들로부터 높은 신뢰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권위주의적 정권(authoritarian regime)은 청산했는지 모르지만 국가 통치에 필요한 권위(authority)는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정당 등 제반 정치 집단들도 본연의 통합·조정 기능보다는 편가르기와 네거티브 전술이라는 하위 정치문화에 익숙해 사회의 반목과 분열에 일조하고 있다.

한국의 노무현 정권이나 대만의 천수이볜 정권이나 개혁(reform) 의욕은 있는데 이를 실천할 능력(ability)이 부족하다고 평가받거나, 야당인 한나라당이나 대만의 국민당이 능력은 인정받는데 구태(舊態)를 못 버려 불신받는 현실이 그 예다.

다양성보다 획일성, 개인주의보다 집단주의에 익숙하며, 이성보다 감성에 따라 움직이고, 과정을 중시하는 토론문화보다 정답이 정해진 결론문화를 선호하는 것도 닮은 꼴이다. 명령이 떨어지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마치 대통령 친위대 같은 양태마저 보이는 ‘노사모’를 보면 과거 한국 정치를 주름잡아온 1인 보스(boss)주의하에서 ‘○○계’ 등으로 불리며 충성경쟁을 벌이던 특정 정치파벌들의 21세기 버전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정 정치가의 집회나 유세에 수만, 수십만, 심지어 수백만 지지 인원이 동원돼 세(勢) 대결을 벌이는 대만의 오늘 모습은 바로 엊그제까지 한국의 모습이었다.

이 와중에서 국민들 역시 방향 감각을 잃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여론은 수시로 냉·열탕을 오가며 춤추고, 각자 특정 정파에 속해 “내편, 네편” “나는 선(善) 너는 악(惡)”으로 갈려 대리전을 치른다. 어제까지 열세이던 정당이 하룻밤 새 우세로 뒤바뀌고, 패할 것이 뻔하던 후보가 단 한 번의 사건·이벤트로 승리자가 되는 대반전도 일어난다.

이런 판국에 중도나 온건파는 설 땅을 잃고 괜찮은 시스템은 기능이 저하된다. “대통령, 국회의원도 법을 안 지키는데…”란 생각이 일반화되면서 법치(法治) 대신 인치(人治)가 판을 친다.

CNN 등 외국 언론들은 지난 12일 여의도 국회에서 벌어진 탄핵 공방전의 원색적인 모습들을 코미디 버전으로 희화해 비판했다. 탄핵을 순식간에 밀어붙이는 야당이나, 탄핵을 저지한다고 의사당을 점거하고 울부짖는 여당도 그들에겐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이다.

대만의 총통 선거 전날 일어난 천 총통 피격사건, 이후 벌어진 조작설 시비, 선거 결과 불복 움직임 역시 곧 정치 코미디로 각색돼 등장할 것이다.

이런 모습들은 결국 한국이나 대만이나, 제도나 시스템 등 민주주의의 하드웨어는 구비했는지 모르지만 의식·운용능력 등 소프트웨어에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을 경고해준다. 성숙된 민주사회는 합리적 시민의식을 가진 개인들, 토론과 다양성, 과정과 법치주의를 중시하는 풍토, 그리고 뛰어난 리더십을 요구한다. 그런 특질들은 하루 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돈(경제력)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함영준·국제부장 yjhah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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