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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휘문 출신 문인 시리즈 정지용 선배 (문형처사)
🧑 정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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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7 23: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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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3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鄭芝溶)
1902-?
한국 근현대시단의 대표적인 작가.
1903년 충북 옥천 출생.
1918년 휘문고보에 입학
1922년 휘문고보 졸업
1929년 일본 경도의 동지사(同志社)대학 영문과 졸업. 이후 휘문고보 교원으로 재직.
1939년 '시문학'동인
1933년 <카톨릭 청년> 편집 고문
1935년 첫 시집 <정지용시집> 간행
1941년 시집 <백록담> 간행
1945년 이후 이화여전교수, 경향신문 편집국장, <문장(文章)>지 편집인 역임.
1946년 시집 <지용시선> 간행
1948년 <문학독본> 간행
1949년 <산문> 간행
1950년 6·25 이후 납북.
정지용은 휘문고보 재학시절인 1919년 12월에 <서광>창간호에 유일한 소설 '삼인'을 발표했으며, 박팔양 등과 '요람(搖襤)'을 결성, 문집을 내기도 했다. 문우회 학예부장을 맡아 《휘문》의 편집을 맡기도 했다. 1923년 일본 동지사대학(同志社大學)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며 대표작 <향수(鄕愁)>를 발표했다. 1930년대는《시문학》동인으로 활동하며 많은 작품을 발표했으며 반카프적 입장에서 결성된 '구인회'에 가담하기도 했고《문장》지의 시부문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휘문고보 졸업후 일본으로 유학간 후 1925년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시작, <학조> 창간호에 시 '카페 프란스'를 비롯하여 동시와 시조시를 발표했다.
1929년 대학 졸업이후 모교인 휘분고보에서 영어교사로 16년간 재직하면서 '유리창' 등의 시를 발표했고, 1930년 <시문학>동인으로 참가. 시단의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정지용은 1933년 <가톨릭 청년>의 편집고문으로 있을 때, 이상(李箱)의 시를 실어 그를 시단에 등단시켰으며, 1939년 <문장(文章)>지 편집인으로 있을 때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의 '청록파'를 등단시켰다.
그의 시는 감각적 이미지즘으로부터 출발, 카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한 종교적인 시, 동양적인 정서의 산수시 등의 변모를 보인다. 빼어난 감성으로 우리 시단의 중심을 이루었으나 후에 월북 시인으로 오인되어 38년동안이나 작품이 공개되지 못했다. 그의 시적 경향은 이미지 계열의 사물시로 감정의 절제, 반휴머니즘에의 지향과 더불어 신선한 토착어 활용, 그리고 그 기저에 깔려 있는 '무욕의 철학'을 특색으로 하고 있다. 1930년대 전후에 있어 한국현대시를 '언어의 예술'이라는 자각으로 끌어올린 그의 공적은 한국시사에서 지대한 것이다.
시집으로는 <정지용 시집> <백록담> <지용 시선> 등이 있으며, 그의 시 '향수(鄕愁)'가 노래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鄭芝溶)
1902-?
한국 근현대시단의 대표적인 작가.
1903년 충북 옥천 출생.
1918년 휘문고보에 입학
1922년 휘문고보 졸업
1929년 일본 경도의 동지사(同志社)대학 영문과 졸업. 이후 휘문고보 교원으로 재직.
1939년 '시문학'동인
1933년 <카톨릭 청년> 편집 고문
1935년 첫 시집 <정지용시집> 간행
1941년 시집 <백록담> 간행
1945년 이후 이화여전교수, 경향신문 편집국장, <문장(文章)>지 편집인 역임.
1946년 시집 <지용시선> 간행
1948년 <문학독본> 간행
1949년 <산문> 간행
1950년 6·25 이후 납북.
정지용은 휘문고보 재학시절인 1919년 12월에 <서광>창간호에 유일한 소설 '삼인'을 발표했으며, 박팔양 등과 '요람(搖襤)'을 결성, 문집을 내기도 했다. 문우회 학예부장을 맡아 《휘문》의 편집을 맡기도 했다. 1923년 일본 동지사대학(同志社大學)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며 대표작 <향수(鄕愁)>를 발표했다. 1930년대는《시문학》동인으로 활동하며 많은 작품을 발표했으며 반카프적 입장에서 결성된 '구인회'에 가담하기도 했고《문장》지의 시부문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휘문고보 졸업후 일본으로 유학간 후 1925년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시작, <학조> 창간호에 시 '카페 프란스'를 비롯하여 동시와 시조시를 발표했다.
1929년 대학 졸업이후 모교인 휘분고보에서 영어교사로 16년간 재직하면서 '유리창' 등의 시를 발표했고, 1930년 <시문학>동인으로 참가. 시단의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정지용은 1933년 <가톨릭 청년>의 편집고문으로 있을 때, 이상(李箱)의 시를 실어 그를 시단에 등단시켰으며, 1939년 <문장(文章)>지 편집인으로 있을 때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의 '청록파'를 등단시켰다.
그의 시는 감각적 이미지즘으로부터 출발, 카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한 종교적인 시, 동양적인 정서의 산수시 등의 변모를 보인다. 빼어난 감성으로 우리 시단의 중심을 이루었으나 후에 월북 시인으로 오인되어 38년동안이나 작품이 공개되지 못했다. 그의 시적 경향은 이미지 계열의 사물시로 감정의 절제, 반휴머니즘에의 지향과 더불어 신선한 토착어 활용, 그리고 그 기저에 깔려 있는 '무욕의 철학'을 특색으로 하고 있다. 1930년대 전후에 있어 한국현대시를 '언어의 예술'이라는 자각으로 끌어올린 그의 공적은 한국시사에서 지대한 것이다.
시집으로는 <정지용 시집> <백록담> <지용 시선> 등이 있으며, 그의 시 '향수(鄕愁)'가 노래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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