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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다렸다고 믿고 싶고 싶은 지리산 종주기 2 (유홍림)
홈페이지에 6월 9일자 지리산 종주 산행기를 올린 뒤, 2틀이 지났다. 어제(10일) 청룡기 8강전에서 노무현 대통령 배출학교인 부산상고도 아닌 부산고등학교에 콜드게임 패를 당한 충격 탓인지 아직도 머리가 멍하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써야 하는데, 하는데 부담을 갖고는 있었지만, 오늘(11일)도 주ㆍ야간 강의와 면담, 논문지도 등을 마치고 나니 벌써 밤 9시가 되었다. (물론 아르헨티나와의 축구게임도 보질 못했다.)
더 이상 늦추었다가는 간신히 생긴 몇 안 되는 팬(?)들마저 사라질지도 모르고, 열성 팬 중의 하나인 3K군으로부터 어떠한 위해(危害)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지만, 이 보다 더 절실한 증후가 나에게서 발견되기 시작했기에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그것은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강의실의 학생들이 나무나 숲으로 보인다거나, 나의 망막에 비친 모든 사물들의 색들이 원래의 색상에 초록색이 덧칠된 것처럼 보여 나도 모르게 자주 눈을 비볐었는데, 오늘부터는 그런 증상이 사라지는 동시에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어 생생한 느낌을 전달하질 못할 것 같은 우려 때문이었다.
지금 퇴근해 집으로 간다면 오늘도 산행기를 못 쓸 것이 분명하여 어부인(?)에도 감히 "읽을 책도 있고, 처리해야 할 문건들도 많아 오늘은 학교에서 자야될 것 같다."고 비교적 당당하게 거짓말을 하여 윤허를 얻어냈다. 이젠 산행기를 쓸 여건은 다 갖춰진 셈이다. 더구나 마침 오늘 17인치 LCD 모니터를 새로 장만하여 설치한 관계로 글자도 크고 선명하게 보이니 1부보다 나은 2부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둘쨋 날 일정은 새벽 3시 기상에, 3시 30분부터 산행 시작이며, 그리고 총 산행시간은 13시간 정도로 잡혀 있었다. 이처럼 서두른 까닭은 바로 5시 20분경 예상되는 천왕봉 일출을 보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이러한 일정을 알리면서 취침을 서둘라고 채근하는 김병태 등반대장의 말에 대원들은 은근히 겁에 질러 있었다. 그 때 김응구 회장이 약간의 구름에 가린 초승달을 보면서 "'삼대(三代)가 덕을 쌓아야 천왕봉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는 데, 우리가 내일 일출을 볼 수 있을까?" 하니까, 얼떨결에 동참을 하게 되었다는 최상호가 거의 반사적으로 "어차피 일출 보기가 그렇게 힘들다면 내일의 긴 산행을 망치지 않도록 잠이나 좀더 자고 출발하는 것이 어때?"라고 말을 뱉는다. 이 말이 듣던 나머지 대원들도 "그래, 그게 좋겠어" "그렇게 하자." 등으로 숫자로 밀어 부치자, 여론에 밀린 대장은 어쩔 수 없이 기상시간이 5시로 옮기고 말았다. 아마 대원들도 나처럼 약간은 뿌듯한 마음으로 잠을 청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있는데, 갑자기 연구실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시커먼 사내놈들 5명이 손에 소주, 튀긴 닭, 족발을 사가지고 들어온다. 밖에서 보니 연구실이 불이 켜져 있기에 야식을 준비해 왔단다. 오늘 계획은 틀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소등관제를 철저히 하든지, 일찍 집에서 가서 잠이나 편히 잘걸. 동기들! 미안합니다. 내일(12일)은 어떻게든 끝내보겠습니다. 이해하십시오. 이런 학생들의 방문이 싫지는 않으니, 나도 천생 선생이 천직인 모양이다.}

{12일 아침에 일어나 비록 지리산의 계곡 물은 아니었지만,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아침도 먹은 뒤, 다시 모니터를 켰다.}
5시에 기상한 대원은 아침식사 준비로 부산스러워졌다. 버너를 켜고, 물을 길어와 누룽지를 끓이기 시작하였다. 나는 계속 산 아래만 쳐다보고 있었다. 터지지도 않는 핸드폰을 원망스럽게 쳐다보면서 말이다. 몇몇 독자들은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내 동생과 그의 친구가 예정대로 상주에 도착하여 중산리매표소를 거쳐 야간산행을 무사히 하고 있는지가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실은 새벽 2시경에도 산장 밖으로 나와 산 아래를 쳐다보다가 "경험이 있으니까 잘 오겠지" 위안을 하면서 다시 잠자리에 들기도 했다. 누룽지가 거의 끓어 막 먹기 시작할 무렵 동생은 우리를 발견하고 소리를 친다. 드디어 합류를 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소개하여야 할 에피소드가 있다. 상호가 또 홍어를 꺼내려 하자 다들 "아침부터 무슨 홍어냐" 하면서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꺼내 놓으면서 먹으라고 강요를 한다. 이때 나는 우리나라 옛말에 "만만한게 홍어 좃인가?"하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궁금해졌다.(누구 아는 사람 있으면 가르쳐 주십시오.) 홍어가 제 값을 못한 경우는 바로 이 때뿐 일 것이다.

로터리 산장을 출발했다. 일차 목적지인 천왕봉이었다. 오르는 길에 후래시나 헤드랜턴을 밝히면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일출을 보셨어요?" 라고 묻는다. 어떤 사람은 보았다. 어떤 사람은 못 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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