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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답변]아름다운 젊은이 (백운학)
이 글을 쓰는 나는 자네가 선친장례에 도움을 준 친구 속에는 들어있지 않지만 맺는 말속의 휘문고 67회 아저씨속에는 들어 있으며, 문상을 가서 자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그런 사람이라네. 그런데 어찌 이런 글을 쓰느냐고? 그건 말일세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다고 이야기 해주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이 글 앞에 두 친구들이 자네 글에 대한 답글을 읽으면서 그리 생각했다네. 특히 자네의 자라온 과정을 모두 지켜 본 아버지의 친구로서 고자지정(孤子之情)의 연민을 느낀 정식이 친구의 글을 보면서 말이네.

사람이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지. 한참이 지난 뒤에야 선연(善緣)인지 악연(惡緣)인지 나름대로 그 평가를 내리게 되겠지만 그것 모두 자네의 몫이라네. 왜인지 아는가. "緣"이라는 말은 조건이며, 원인인게지. 선연이 되었건 악연이 되었건 그것은 자네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네. 왜냐하면 이익을 구하기 위해 그 연을 만들었다면 관계를 잇는 이익이 사라져버리면 그것은 곧 자취도 없어져버리고 말테지. 아무 일없이 사라지기만 한다면 괜찮겠지만 그런 일에는 이익을 구하려고 했던 만큼의 고약한 자국을 남기게 되고, 반대로 그런걸 구하지 않은 "아버지와 정식이 아저씨같은 친구들의 만남"처럼 사라질 그 무엇이 없으므로 해서 만나면 만날수록 좋은 향기만 남지 않겠는가 말일세.

또 하나는 "이제부터 자의든 타의든 현실에서의 저희 가족의 기둥은 아버지의 아들인 저 밖에 없습니다." 라고 자네가 말한 것처럼 갑자기 아버지의 몫을 해야한다는 무거운 의무감은 아직도 인생에 있어 준비를 열심히 해야하는 시기에 자칫 그 부담 때문에 뭔가를 자꾸 도모하려고 하면 현실과의 높은 벽앞에서 다시는 무얼 해보려고 하는 마음 마저 빼앗아 가버린다면 더욱 큰 일이 아닌가 말일세.

아파트 "25동 엘리베이터가 6층에 불이 켜진 채 서있는 것을 볼 때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자네 아버지와의 시간들이 나를 아프게 하네."라고 토로하는 정식이 아저씨는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린 자네에게 내가 말하는 것처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서 자네랑 소주 한잔하고 싶다고 하는 것으로 나는 이해가 되네. 물론 자네 속에서 친구를 만나보고 싶은 바램도 함께 이룰 수 있다면 하고 말일세. 그럼 여기서 나의 이야기를 마치려네.
아버지를 생각하는 아름다운 청년이라 생각되어 이렇게 글을 써보았네. 고르지 않은 날씨에 집안 어른들 모시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더 멋진 청년이 되기를 빌어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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