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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럽구만! 고건ㆍ송복의 군자지교 46년 (백운학)
🧑 정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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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6 16: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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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
우정에 관한한 관포지교, 금란지교, 지란지교라는 이름으로 전해오는 옛날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줄 알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요즈음도 이런 일이 있구나 하는 신기한 생각이 든다. 물론 언론의 센세이셔날리즘에 편승한 당의정(糖衣錠)은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1956년 서울대 교양학부의 철학 시간, 문리대 정치학과 1학년인 고건ㆍ송복 두 젊은이는 앞뒤 자리에 나란히 앉아 강의를 들었다. 교수는 고 전 시장의 부친으로 당시 서울대 철학과 교수였던 고형곤(高亨坤ㆍ96)옹. 송 교수는 아버지 강의에 아들이 빠지는 일이 없었고, 아들을 코 앞에 놓고도 전혀 스스럼 없이 강의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46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건ㆍ송복 두 사람의 변함없는 우정이 많은 식자(識者)들 사이에 잔잔한 감동이 되고 있다. 청운(靑雲)의 꿈을 안은 혈기왕성하던 두 젊은이가 인생의 주름살을 안고 은퇴하는 시점에서 서로를 격려하기까지 두 사람의 끈끈한 친교(親交)가 새삼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46년 세월 동안 두 사람의 사귐에는 항상 술이 있었다. 이를 두고 송 교수는 우리는 기본적으로 주붕(酒朋) 사이라고 했다. 술 실력이 상당했던 두 사람은 각자가 해외 유학한 시기를 제외하면 적어도 2~3주에 한번은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외견상으로 두 사람의 사귐은 술자리를 빼면 별다른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취미도 고 전 시장은 테니스, 송 교수는 등산으로 서로 달라 취미생활을 같이 할 기회도 없었다. 그럼에도 깊은 친교가 가능했던 데 대해 송 교수는 우리 사귐은 군자지교약수(君子之交若水, 군자의 사귐은 흐르는 물과 같다)라는 말처럼 별 기복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여붕(侶朋)이 아니라 도붕(道朋)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동업을 하거나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친구(여붕)는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사귐에 기복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한번도 여붕이었던 적이 없었다. 대신 항상 서로의 발전을 위해 격려ㆍ비판하는 사이(도붕)여서 흐르는 물과 같은 사귐이 가능했다. 고 전 시장은 송 교수에게서 항상 된장찌개 끓는 듯한 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우리는 이판사판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오래 전부터 고 전 시장이 자신은 사판(事判, 절에서 살림하는 중)이니, 날더러 이판(理判, 절에서 도만 닦는 중)의 길을 가라고 충고해 왔다. 이런 충고가 내가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는 데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고 전 시장도 삶의 중요한 고비에서 송 교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 전 시장은 내가 관직에서 중요한 정책결정을 할 때 송 교수가 시중 여론을 많이 전해 주었다.
1998년 민선 서울시장 출마를 결정할 때 송 교수의 조언이 큰 힘이 됐다. 그는 내 재출마 여부에 대해 당초 약속대로 재출마하지 말라고 했고, 내가 대선 후보감으로 거론될 때에는 다음 대선은 더러운 지역싸움이다. 선비는 함부로 몸을 더럽히지 않는다고 충고했다. 송 교수의 충고가 내 처신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현직에서 은퇴한 만큼 앞으로 더 자주 만나 친교를 누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 고 전 시장이 즐겨왔던 테니스를 줄이고 송 교수의 등산 모임에 합류키로 했다.《주간조선에서》
1956년 서울대 교양학부의 철학 시간, 문리대 정치학과 1학년인 고건ㆍ송복 두 젊은이는 앞뒤 자리에 나란히 앉아 강의를 들었다. 교수는 고 전 시장의 부친으로 당시 서울대 철학과 교수였던 고형곤(高亨坤ㆍ96)옹. 송 교수는 아버지 강의에 아들이 빠지는 일이 없었고, 아들을 코 앞에 놓고도 전혀 스스럼 없이 강의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46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건ㆍ송복 두 사람의 변함없는 우정이 많은 식자(識者)들 사이에 잔잔한 감동이 되고 있다. 청운(靑雲)의 꿈을 안은 혈기왕성하던 두 젊은이가 인생의 주름살을 안고 은퇴하는 시점에서 서로를 격려하기까지 두 사람의 끈끈한 친교(親交)가 새삼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46년 세월 동안 두 사람의 사귐에는 항상 술이 있었다. 이를 두고 송 교수는 우리는 기본적으로 주붕(酒朋) 사이라고 했다. 술 실력이 상당했던 두 사람은 각자가 해외 유학한 시기를 제외하면 적어도 2~3주에 한번은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외견상으로 두 사람의 사귐은 술자리를 빼면 별다른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취미도 고 전 시장은 테니스, 송 교수는 등산으로 서로 달라 취미생활을 같이 할 기회도 없었다. 그럼에도 깊은 친교가 가능했던 데 대해 송 교수는 우리 사귐은 군자지교약수(君子之交若水, 군자의 사귐은 흐르는 물과 같다)라는 말처럼 별 기복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여붕(侶朋)이 아니라 도붕(道朋)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동업을 하거나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친구(여붕)는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사귐에 기복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한번도 여붕이었던 적이 없었다. 대신 항상 서로의 발전을 위해 격려ㆍ비판하는 사이(도붕)여서 흐르는 물과 같은 사귐이 가능했다. 고 전 시장은 송 교수에게서 항상 된장찌개 끓는 듯한 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우리는 이판사판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오래 전부터 고 전 시장이 자신은 사판(事判, 절에서 살림하는 중)이니, 날더러 이판(理判, 절에서 도만 닦는 중)의 길을 가라고 충고해 왔다. 이런 충고가 내가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는 데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고 전 시장도 삶의 중요한 고비에서 송 교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 전 시장은 내가 관직에서 중요한 정책결정을 할 때 송 교수가 시중 여론을 많이 전해 주었다.
1998년 민선 서울시장 출마를 결정할 때 송 교수의 조언이 큰 힘이 됐다. 그는 내 재출마 여부에 대해 당초 약속대로 재출마하지 말라고 했고, 내가 대선 후보감으로 거론될 때에는 다음 대선은 더러운 지역싸움이다. 선비는 함부로 몸을 더럽히지 않는다고 충고했다. 송 교수의 충고가 내 처신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현직에서 은퇴한 만큼 앞으로 더 자주 만나 친교를 누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 고 전 시장이 즐겨왔던 테니스를 줄이고 송 교수의 등산 모임에 합류키로 했다.《주간조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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