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중국침략을 진심으로 사죄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은 중일전쟁, 서유럽전쟁, 독소전쟁, 태평양전쟁, 이 네 개의 전쟁을 합쳐서 일컫는 말이다. 중일전쟁은 1937년 7월 7일 베이징 교외의 루거우차오(蘆溝橋)에서 일본군이 일으킨 군사행동으로 시작되었다. 서유럽전쟁이 1939년 9월 1일에 시작되었고 독소전쟁이 1941년 6월 22일에 시작되었고 태평양전쟁이 1941년 12월 7일에 시작된 것을 놓고 본다면 제2차 세계대전은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서유럽전쟁과 독소전쟁이 1945년 5월 8일 독일의 무조건 항복으로 끝났고 태평양전쟁은 1945년 9월 2일 일본 요코하마에 정박한 미국 전함 미주리호 선상에서 일본정부 대표가 항복문서에 정식 서명함으로써 종결됐다. 중국 수도 난징(전쟁 임시수도는 충칭)에서 9월 9일 중국 정부대표와 일본군 대표가 항복문서 서명식을 가졌다. 이렇게만 본다면 9월 9일이 중일전쟁 종전일이다.
그러나 일본군은 미국에 항복하면서 중일전쟁을 포함한 모든 전쟁에서 항복한다고 했기 때문에 장제스가 고집해서 열게 된 항복문서 서명식은 그냥 쇼에 불과한 것으로 비판받았다. 그래서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받은 항복문서를 중국 정부에 전달한 9월 3일을 종전일로 정하게 된 것이다.
항복 의식을 하게 될 미주리호 전함의 함대, 1945년 9월 2일 :
F4U와 F6F 전투기 편대는 USS 미주리호 위에 날고있다. (AP = 연합 뉴스)
의식을 하게 될 미주리호 전함의 함대, 1945년 9월 2일 :식을 하게 될 미주리호 전함의 함대, 1945년F4U와 F6F 전투기 편대는 USS 미주리호 위에 날고있다. (AP = 연합 뉴스)
1945년 9월 2일 : USS 미주리호의 갑판에 유리한 위치를 잡으려는 사람들,
도쿄만 일본의 공식적인 항복 의식. (AP = 연합 뉴스 사진, 프랭크 Filan)

1945년 9월 2일 :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군함 미주리호를 타고 도쿄에서 일본의 항복 문서에 서명.
왼쪽 옆에 중장 조나단 웨인 라이트, 그리고 영국의 중장 퍼시벌. (AP = 연합 뉴스)
당시 주요국들은 후진국을 국가로 보지도 않았고 후진국 사람 100명을 주요국 사람 1명보다도 못 한 것으로 보았다. 중국에서 100만 명이 죽어도 대단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지만 자기 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주요국에서 1만 명이라도 죽으면 대단한 것으로 생각했다. 심지어 일본조차도 그랬는데 중국을 국가로 인정하지도 않아서 중일전쟁을 일으킬 때 선전포고도 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전쟁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그냥 지나사변이라고 불렀다. 일본이 731부대에서 생체실험을 할 때 생체실험 대상자의 97% 이상이 중국인이었는데 중국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난징대학살을 포함한 중국에서의 학살극도 그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나왔던 것이다.
전쟁이 끝났을 때 일본은 중국에 항복할 생각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중국처럼 덜 떨어진 나라에 항복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자기들은 미국에 항복하는 것이지 절대 중국에 항복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무조건 항복한 이후에 중국에 남겨진 일본군은 졸지에 중국군의 포로 신분이 되었기 때문에 장제스가 시키는 대로 항복문서에 서명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일본 정부나 일본의 지식인들이 단 한 번도 중국에 대한 항복을 인정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중국은 엄청난 강대국이 되었다. 설사 중국이 지금도 약한 나라로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그 때처럼 약소국과 약소국 국민들을 무시하는 시대가 아니다.
중일전쟁의 전쟁희생자는 1천만~1800만 정도이다. 2200만~3천만 정도가 희생된 독소전쟁 다음으로 많다. 서유럽전쟁이나 태평양전쟁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1937년 7월 7일이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일이 아니라 1939년 9월 1일을 발발일로 보는 관점이 압도적이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그 바뀐 시대에 적응하지 못 하는 사람들의 낡은 사고는 쉽게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일본의 극우 언론과 극우 지식인들이 중국의 전승절과 전승절에 참석한 한국 대통령을 대상으로 연일 포화를 퍼붓고 있다. 일본 정부도 침묵하고는 있지만 이런 식의 인식에 동조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일본의 일부 지식인들이 한국과 대만의 식민지배를 합리화하는 논리를 만들었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논리를 만들었고 또 태평양전쟁을 합리화하는 논리를 만든 것도 여러 번 보았다.
그러나 중국침략에 대해서는 그 어떤 가소로운 논리도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 어떤 합리화 논리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중국 침략과 중국에서의 대학살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는 마음을 갖길 희망한다. 그리고 그 이전에 중국에 대한 항복부터 인정하는 태도를 갖길 바란다. 이런 태도들이 동아시아 평화의 시작이다.
(페이스북에서 모셔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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