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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빨랐지, 그 양반
작명의 즐거움/ 이정록
콘돔을 대신할 우리말 공모에 애필(愛必)이 뽑혔지만 애필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결사적인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중 한글의 우수성을 맘껏 뽐낸 것들을 모아놓고 보니 삼가 존경심마저 든다
똘이옷, 고추주머니, 거시기장화, 밤꽃봉투, 남성용고무장갑, 정관수술사촌, 올챙이그물, 정충검문소, 방망이투명망토, 물안새, 그거, 고래옷, 육봉두루마기, 성인용풍선, 똘똘이하이바, 동굴탐사복, 꼬치카바, 꿀방망이장갑, 정자지우개, 버섯덮개, 거시기골무, 여따찍사, 버섯랩, 올챙이수용소, 쭈쭈바껍데기, 솟아난열정내가막는다, 가운뎃다리작업복, 즐싸, 고무자꾸, 무골장군수영복, 액가두리, 정자감옥, 응응응장화, 찍하고나온놈이대갈박고기절해
아, 시 쓰는 사람도 작명의 즐거움으로 견디는 바 나는 한없이 거시기가 위축되는 것이었다 봄 가뭄에 보리누룽지처럼 졸아붙은 올챙이 눈 그 작고 깊은 끈적임을 천배쯤 키워놓으면 그게 바로 콘돔이거니, 달리 요약 함축할 길 없어 개펄 진창에 허벅지까지 빠지던 먹먹함만 떠올려보는 것이었다 애보기글렀네, 짱뚱어우비, 개불장화를 나란히 써놓고 머릿속 뻘구녕만 들락거려보는 것이었다
의자 /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가 아녔냐
아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라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색동자지
-이정록 詩
미용실에 들렀는데 목수 여편네가 염장을 지르데. 자기 신랑은 거시기가 없는 줄 알았다고. 종일 먹줄 퉁기다 오줌 누곤 했으니 거시기까지 몽땅 새카매서 처음 봤을 때 자기도 모르게 거시길 뒤적거렸다고. 그랬더니 시커먼 숲에서 쇠망치가 튀어나와 지금까지 기절시키고 있다고. 지는 처음부터 깐 년이라고, 그게 이십 년 넘게 쉰내 풍기는 과부한테 할 소리여. 머리 말던 정육점 마누라가 자기는 첫날 더 놀랐다고 호들갑 떨더라고. 거시기에 피딱지가 잔뜩 엉겨 붙어 있더라나. 어데서 처녀를 보고 와서는 자기를 덤으로 겸상시키는 줄 알았대. 동네 뽕밭이며 물레방앗간이 지들 신혼 방이여? 하루 종일 소 돼지 잡느라 피 묻은 속옷도 갈아입지 못했다고 곰처럼 웃더라나. 자기는 아직도 거시기에 피 칠갑을 하는 처녀라며 찡긋대더라고. 그게 없는 년한테 씨부렁댈 소리냐고.
근데 동생은 밤늦게까지 백묵 잡을 테니까 거시기도 하얗겠다. 단골집 주인은 백태 무성한 서글픔을 내 술잔에 들이붓는 것이었다. 모르는 소리 마요. 분필이 흰색만 있는 게 아니에요. 노랑도 있고 파랑도 있고 빨강도 있어요. 그려 몰랐네. 색시는 좋겠다. 색동자지하고 놀아서.
술잔이 두둥실 떠오르는 색동 시월, 마지막 밤이었다.
홍어 / 이 정 록
욕쟁이 목포홍어집 마흔 넘은 큰아들 골수암 나이만도 십사년이다 양쪽 다리 세 번 톱질했다 새우눈으로 웃는다
개업한 지 십팔년하고 십년 막걸리는 끊어오르고 홍어는 삭는다 부글부글,을 벌써 배웅한 저 늙은네는 곰삭은 젓갈이다
경우 세 번 갔을 뿐인데 단골 내 남자 왔다고 홍어좆을 내온다 남세스럽게 잠자리에 이만한 게 없다며 꽃잎 한 점 넣어준다
서른여섯 뜨건 젖가슴에 동사한 신랑 묻은 뒤로는 밤늦도록 홍어좆만 주물럭거렸다고 만만한 게 홍어좆밖에 없었다고 얼음 막걸리를 젓는다
얼어죽은 남편과 아픈 큰애와 박복한 이년을 합치면 그게 바로 내 인생의 삼합이라고
우리집 큰놈은 이제 쓸모도 없는 거시기만 남았다고 두 다리보다도 그게 더 길다고 막걸리 거품처럼 웃는다
어린 나무의 발등 -이정록 詩
잘려나간 발가락에 새끼줄 양말을 동이고 비닐 덧신을 신은 어린 나무들 꽃샘추위의 발원지는 여기 묘목 시장이다 단감나무인 걸 누가 모르는가 가지에 단감을 매달아 놓았다 코팅된 목련꽃 사진이 영정처럼 걸려 있다 저도 마음 불편한가, 철사 꼭지며 나일론 탯줄이 찬바람을 외로 꼰다 언 발등에 오줌을 지리는지 진저리 치는 묘목들, 축 환영 길 건너 초등학교 입학식 플래카드도 덩달아 몸서리 친다 추위란 게 무언가 이른 봄에 늦가을을 보여줘야 하는 것 한두 살짜리의 어깨가 서른이나 마흔 살의 짐을 지고 있는 그 푸른 멍 자국 아닌가
이정록 시인, 전 교사
출생 : 음력 1964년 7월 29일 (충청남도 홍성) 학력 : 홍성고, 공주사범대학교 한문교육학,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학 데뷔 : 1989년 대전일보,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수상 : 1990년 한길문학 신인상 2002년 제13회 김달진 문학상 2001년 제20회 김수영 문학상 저서 : 시집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 <풋사과의 주름살>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싶다> <제비꽃여인숙> <의자> 동화 <귀신골 송사리> <십 원짜리 똥탑> 동시집 <콧구멍만 바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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