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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一盃 一杯 復一杯, 酒中交友錄


주중교우록 (酒中交友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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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盃 一杯 復一杯에

이미 나는 내가 아니고, 너는 네가 아니다.

 

그럼으로써 참으로 그때에

내가 비로소 내가 되고,
네가 비로서 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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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구한 판단이 술의 부동의 가치에 대하여 과연 무슨 힘을 가지랴!

우리들 酒徒(주도)가 한 번 酒盃(주배)를 들매, 우리는 문득 번잡한

현실을 초월하고, 오묘한 정애의 세계에 悠遊(유유)하는 자이니,

그때 일체의 악착한 세간사는 벌써 吾人(오인)이
관심할 바가 못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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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시는 자로 하여금 마시게 하라. 마시는 자로부터 마시는 행동을

방해하지만 않으면 그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일찌기부터 바커스의 제단에 참가하게 된 한

사람임을, 술을 마시는 데서 필연히 유래하는 경제적·시간적 기타의

불소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인들 후회한 일은 없다. 결국은

술을 마시고 아니 마시는 것도 일종의 숙명이라 볼 수 있으니,

우리는 그 좋은 예 중의 하나를 앞날에 마시던 사람이 무슨 이유로

의해서 斷酒(단주)를 결행하려 할 때, 그의 굳은 결의가 흔히 오래

유지될 수 없는 사실 속에서 찾아 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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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물론 술을 마시기 위해서 술을 마시지는 않는 것이요,

우리는 단순히 우정을 열정으로 체험하고 그 완전을 기하기 위해서

술의 應酬(응수)를 거듭하는 것이니, 이리하여 우리가 마시는 술은

결코 헛되지는 않는다. 술은 말하자면 우정에 대한 일종의
시멘트
공사요, 堤防(제방) 공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두말할 것 없이 술은 중간적 음식물로서 많은 것을 위해서 필요한

존재물이어니와, 우정의 심화를 위해서 특히 불가결의 요소이니,

혼자서는 먹고 싶지 않은 술이 동무의 얼굴만 보면 생각이 나고,

또 혼자서 마시면 쓴 술이 벗과 마주 앉아 마시면 단 이유는 이상도

하지만, 결국 이것은 술의 우정에 대한 생리적 관련이란 사실을

가지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이리하여 우리는 親故(친고)를 만남에

으례히 萬難(만난)을 排(배)하고, 이해를 초월하여 서로 주머니를

털어 酒盃(주배)를 높이 든다. 하루에 두세 번을 만나도 우리는

어쩐지 서로 그립고 서로 떨어지기가 싫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래 무슨 여유가 있음으로써 상시 음주에 종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경제적으로 여유를 얻으면 우정이나
술과도 멀어지
는 것이 보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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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급한 볼 일도 제쳐 놓고 돈이 없을 때는 외상술을 마시며,

심하면 전당질을 해서까지 술을 나눌 때, 이것은 확실히 비장한

행동임에 틀림 없으나, 보통 사람이 보면 이같은 酒交(주교)는

적지 않은 妄動(망동)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한 열병적 정열에

몸을 바치는 이 우리들 자신에게 있어서 그것은 한없이 큰 행복의

하나이니, 말하자면 우리는 술로써 우리네 상호의 육체를 마취시

키고 謀殺(모살)함으로 인해서 우리의 정신에 아름다운 정의의

꽃을 피게 하려는 것이다. 이 세상엔 행복에도 물론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좋은 벗들과 같이 앉아 술잔을 드는 때같이 행복된

시간을 달리 알지 못한다. 그래서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하기보다

행복은 의외로 적은 것이요, 그러므로 나는 내가 술을 마실 줄 알고,

술을 마실 줄 앎으로 인해서 많은 좋은 벗들을 가질 수 있는 것을

분외의 영광으로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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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리 말해 두거니와, 우리들의 술은 소위 난봉과 한량의 호화로운

술이 아님은 물론이요, 또는 너무나 외교적인, 너무나 공리적인 술도

아니므로 돈을 흥청거리고 쓰는 맛으로 술을 마신다든가, 타산적

으로 무슨 운동을 위해서 술을 먹는다든가 하는 그러한 세간의

음주방법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우리는 오직 우정을 위해서만

술로 만나 아무 사념 없이 물과 같이 담담한 기분으로 술을 나누는

지라, 세상에 가장 순결한 酒徒(주도)를 구한다면 우리 외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흔히 酒肴(주효)의 유무가 문제가 아니요,

술의 淸濁(청탁)이 또한 개의될 바가 아니며,
酒妓(주기)의 存非(존비)
가 또한 문제 밖이다.
親故(친고)가 서로 나눌 술만 있으면 우리는
충분하다 하고
안주 없는 쓴 술에도 곧 쉽사리 도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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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태도는 물론 술을 먹는 사람이라고 다 취할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니, 우리는  많은 사람이 좋은 친고와 대좌한 경우네라도

안주 없는 술, 여자 없는 술을 厭忌(염기)하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말하자면 우정에 다감한 까닭이겠지 무조건

친고가 고맙고 사랑스럽고 미더운 까닭으로 서로 떨어지기가 싫어

값싼 술일망정 한사 결단하고 취할 때까지 마시게 되는상 보인다.

물론 그 외에 달리 이유는 없다. 오직 그것은 일종의 종교적 신앙이라

간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으로 술에 대한 殉情(순정)은 
극히 좁은 범위
에서만 성립될 수 있다.

-金晉燮의 [취인감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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