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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동길 칼람 3제

 

 

1. 건강한 노인이 있는가 ? 

노인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긴 하지만 사람은 몇 살부터 노인이라고 불러야 옳은지 분명치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노인으로 보이는 사람도 노인이라고 하면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개 “젊어 보인다”면 좋아하지만, “못 뵙는 동안에 많이 늙으셨네요”하면 그렇게 말하는 젊은 놈을 괘씸하게 여기는 늙은이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젊음을 좋아하고 늙음을 싫어하는 것이 인간의 천성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기를 싫어합니다. 지구상의 모든 동물이 다 그렇습니다. 늙으면 병에 걸리기 쉽고 앓아 눕게 되고 그러다 떠나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국만큼 잘 사는 나라에서는 65세부터를 노인으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대학 교수의 정년이 65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기준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남들이 만나서 “건강은 어떻습니까?”라고 물으면 그 질문을 받은 사람의 노년기는 시작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의사가 노인의 신체적 기능을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분류한다는데 첫째는 “15분 쯤 걸으면 다리가 아프기 시작하는가?” 둘째는 “계단을 오르내릴 때 손잡이가 필요한가?” 셋째는 “한 발로 서서 양발을 신을 수 있는가?” 넷째는 “앉았다 일어날 때 누구의 도움이 필요한가?” 아니면 제 손으로 무릎이라도 짚고야 일어나는가?

다리가 튼튼한 노인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대개 걷지 못해서 누워 있고, 누워 있다가 저 세상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팡이 짚고 다니다가 휠체어 타는 사람은 대개 이런 순서를 예상하고 있을 겁니다. 어느 누구도, 뛰어서 천국으로 직행할 수는 없습니다.

노인 인구가 너무 많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지각없는 젊은 놈들이 많습니다. 나는 그런 젊은 놈들에게 “50년 뒤에 보자!”고 말하고 속으로 비웃습니다. 50년 뒤에 나는 물론 없겠지만 노인을 귀찮게 여기는 그 놈은 50년 뒤에 또 무슨 꼴이 되어 있을지 내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2. 돈 때문인가? 

 

화폐가 생기기 이전에는 ‘돈’이라는 말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 옛날에는 ‘물물교환’으로 밖에는 원하는 물건을 구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돈이 ‘부’를 측정하는 단위가 된 뒤로는,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 ‘Rich and famous’일 것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누구나 유명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돈 때문에 세상이 이 만큼 잘 살게 된 사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돈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 살기 힘들게 된 사실 또한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 시합에 임하는 격투기 선수는 왜 그런 처참한 ‘스포츠’를 하는 것인가? “돈 때문에”라는 답을 격투기 선수의 입에서 직접 들었습니다. 메시는 돈 때문에 공을 차고, 류현진은 돈 때문에 공을 던지고, 박세리는 돈 때문에 공을 칩니까?

나는 아나운서 손범수가 미국의 월터 크롱카이트 같은 국민의 존경을 받는 방송인이 되기를 바랐고, 배우 이순재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클라크 케이블 같은 명배우가 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암보험’ 광고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등장하는데 내 마음이 괴롭기 짝이 없습니다. 광고에 자주 나와도 밉지 않은 사람은 피거 스케이팅의 여왕이라는 김연아 한 사람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먹고 살기 위하여 매춘을 한다는 여인에게 나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좀 더 잘 살기 위하여’ ‘돈을 더 벌기 위하여’ 장사꾼들의 외판원 노릇을 하는 유능한 공인, 뛰어난 예술인들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각자의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지 모릅니다. 아버지나 아들의 엄청난 빚을 갚아야 할 경우도 있고, 어느 식구의 산더미 같은 큰 입원비를 갚아야 할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범수‧이순재의 ‘암보험’ 광고는 나를 슬프게 만듭니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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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우리들의 환경은 늘 변합니다. 화산 폭발, 산사태 등으로 급변하는 경우도 있지만 겨울이 물러가면 봄이 오고 그 뒤에 여름‧가을이 이어지는 것도 완만하긴 하지만 변화인 것만은 어김없는 사실입니다.

‘인생무상’이란 말이 왜 생겼겠습니까? 생‧로‧병‧사가 불가피한 과정인데, 현해탄에서 몸을 던져 자살한 윤심덕이 불러 우리들의 심금을 울린 ‘죽음의 찬미’의 일절이 이렇습니다.

황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는 무엇을 찾으려 왔던가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차마 자살은 못하지만 윤심덕의 심정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결혼식을 올리는 젊은이들에게 한 마디 충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50년 뒤를 생각하며 살라”고. 오늘 서른 살의 총각은 그날이 되면 80세가 될 것이고, 오늘 스물 다섯 살의 처녀는 75세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영국시인 토마스 모어가 젊은 날의 애인을 위해 이런 시를 한 수 읊었습니다.

그대여 내 말을 믿어 주소서
나 지금 바라보는 그대의 젊음
요정의 선물인양 내 품속에서
내일이면 사라져 버린다 해도
그대 향한 나의 사랑 변함없으리

그대 사랑스러움 자취 감추고
세월 따라 주름살 깊어만 가도
옛 모습 찾지 못할 그 언저리에
나의 진정 소원이 하나 또 하나
언제나 푸르르게 얽혀있으리
(김동길 옮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은, 작품을 만들려는 화가나 조각가의 노력이 없으면 변하게 마련입니다. 캔버스 앞에 붓을 들고 선 화가가 돼야 합니다. 대리석 한 덩어리를 앞에 놓고 쪼아대는 조각가가 되지 않고는 남녀의 사랑은 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은 본능적인 것이기 때문에 세월은 가고 계절은 바뀌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그 사랑 하나 뿐입니다. 그래서 90을 바라보는 이 노인이 오늘도 어머님의 그 사랑을 그리워합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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