孤哀子 로무알도 2014.07.01
3월 中旬 들어 消化가 안 된다고 하시며 病院에 오가시다가 3월28일 入院하신 어머니는 한 때 氣力을 잠시 回復하시며 집에 언제쯤 돌아갈 수 있을까 期待도 하셨던 듯한데, 끝내 집엔 돌아오시지 못하고 6월20일(陰 5월23일) 저녁 9시 15분 경 하늘나라로 가셨다.
어머니를 마지막 뵌 것은 돌아가시기 전날이며, 내 生日이었던 6월19일 늦은 午後였다. 마침 美國 去來先이 와있어서, 地方 및 서울의 顧客들을 訪問 商談하고 틈내기가 쉽지 않은 터라 며칠 만에 잠시 짬을 내어 찾아뵌 것이었는데, 이미 6월 初旬 이후 상태가 많이 惡化되어 對話는커녕 눈조차 맞추기 어려웠기에 그냥 모습을 뵙는 것만으로 滿足해야 했고, 얼마 전부터는 당신 혼자서 解得되지 않는 무슨 말씀인가를 약간의 손 움직임과 더불어 하고 계셨는데 그날도 큰 변함은 없는 듯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불현 듯 어머니가 뭔가를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계셔서 하늘나라로 가시는 길이 편치 않다는 느낌이 왔다. 다른 아무 것도 있을 수 없고 남겨진 6男妹 자식 걱정일 텐데 빨리 그 짐을 덜어드려야겠기에, 들으시는지 어떤지도 모르면서 양손을 잡고 ‘어머니, 이제 아무 걱정 마시고 모든 것 다 내려놓으시고 오직 平和, 平和만 생각하시라’고 되풀이하기를 30餘分, 손에도 온기가 도는 느낌이고 좀 나아지신듯하여 季嫂氏와 看病人에게 맡기고 자리를 떴는데, 그로부터 딱 하루 뒤에 눈을 감으셨다.
16년 前, 먼저 하늘에 오르신 아버지가 정자나무 그 자체이며 아름드리 기둥이었다면, 어머니는 정자나무가 만들어 주는 그늘의 그루터기였고 安樂하고 서늘한 쉼터였는데, 이제 나는 내가 지치고 힘들 때 찾아갈 수 있는 정자나무도, 또 그 그늘도 없다. 더 이상은 世上 어느 곳으로도 ‘우리 엄마’를 찾아가거나 연락드려서, ‘瑞希 아범아, 별일 없고 건강하지? 하는 일 잘 되고, 딸네미들, 그리고 손주 아이들 다 건강하니?’라는, 每番 같은 이야기 이지만 들을 때마다 切感하는 어머니의 原初的 사랑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다.
1998년 한여름 아버지가 갑작스레 쓰러지셔서 病院 들어가시고 30시간 만에 정말 홀홀히 떠나실 적엔 景況도 없는 가운데 목5동 聖堂에 마련된 殯所를 지키며 始終 눈물을 감추지 못했었어도 어머니가 옆에 계셔서 마음 한 편에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는지 이토록 가슴이 虛하지는 않았는데, 이번 어머니 喪事는 이미 몇 달 전부터 覺悟가 된 일이었긴 해도 天主敎 식으로 進行된 1時間餘의 病院 永訣式場에서의 入棺 禮節 때 눈물방울을 좀 떨군 것 이외에는 殯所에서 弔問客을 맞거나 이십여 차례 煉禱를 할 때에도, 木5洞 聖堂에서 葬禮미사를 드릴 때도 눈물은 쉽게 비치지 않았지만, 從心의 咫尺에 맞닥뜨린 어머니의 빈자리에 대한 허전함과 안타까움은 知天命 初入에 맞은 아버지의 돌아가심과는 分明 다름이 있었다.
木5洞 聖堂 主任神父와 補佐神父의 主禮로 葬禮미사를 마치고 葬地로 出發하기 위해 차에 오르기 전 主任神父께 인사를 드리는데, 이제 어머니는 다시는 이 聖堂에 돌아오실 수 없다는 느낌에 왈칵 눈물을 쏟아 人事의 말도 채 못 마치고 神父님의 토닥이는 慰勞를 받으며 葬儀버스에 올라 葬地로 向했다.
1時間餘를 달려 天安公園 墓園에 到着하여 公園 入口에서 孔雀 7團地 87號 墓所까지로 向하는데, 그동안 꽤 익숙한 코스임에도 그날따라 왜 그리 九折羊腸이고 한참을 오르는지...
이미 下棺을 爲한 準備가 마쳐진 墓所에서 木5洞 聖堂 煉靈會 및 墓園 職員의 도움을 받아 墓穴에서 下棺 절차가 進行되었는데, 壙中에 功布를 使用하여 棺이 安置되고 石棺 덮개가 덮여지기까지의 過程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莊重한 분위기였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으나, 禮節이 끝났고 取土가 시작된다는 葬禮 主禮者의 말에 갑자기 나도 모르게 주체할 수 없는 暴風 같은 눈물이 앞을 가려 잠시 取土를 늦추고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쏟고 말았다.
日氣豫報로는 비가 좀 내릴 거라 했는데, 墓所에서의 葬禮 節次를 마칠 때까지 하늘은 살짝 구름만을 띄워 초여름 햇볕은 따갑지 않았고 永遠한 作別을 確認하는 別離의 자리는 肅然한 분위기가 더 할 수 없었다.
일곱 분 神父님, 修女님을 비롯한 千명이 넘은 많은 弔問客들이 해주신 여러 이야기 중에 “막달레나 할머님, 하늘나라에서 천사 되세요.”라는 어머니 윗집 젊은 부부의 말은 지금도 가슴속에 생생하다. 아무 緣故가 없음에도 하늘나라로 가시는 할머니께 이렇게라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며 殯所에 찾아 온 어머니 윗집의 젊은 부부가 꺼내 놓은 이야기, “어린아이들이 종종 소란스레 뛰놀아 혹 할머니의 낮잠을 방해했거나 한 것은 아닌지 미안하기도 하고 핀잔을 들을까 걱정스러워 아래층 막달레나 할머니를 찾았는데, '애기들이 건강하니 뛰노는 건데, 좀 시끄러운 들 그게 문제냐고, 뛰놀도록 내버려두라'는 말씀을 가슴 한편에 고이 간직했다.”는 그들, 그래서 葬禮기간 내내 그 말을 나름으로 갈고 닦아 어머니 墓碑의 글로 삼았다.
“‘아기들이 건강해서 뛰노는 것이니 나무라지 말라’는 아랫집 막달레나 할머님, 우리 어머니, 天上平和 하늘나라에서 天使 되소서.”
葬禮를 마친 이틀 뒤, 아우들을 비롯한 가능한 모든 食率들이 다시 墓所를 찾아 밝은 햇빛을 받으며 누워계신 아버지, 그리고 이제 막 아버지 곁에 누우신 어머니께 煉禱를 드리고, 天上의 平和 속에서 世俗의 모든 걱정은 내려놓으시고 편히 계시기를 祈求 드렸다.
天安에서 점심을 같이하고, 隣近의 太祖山 중턱에 위치한 展望이 빼어난 ‘리각 美術館’ 카페로 자리를 옮겨 커피를 드는 자리에서 아우들 및 모든 家族들에게 한 가지 提案을 했다.
1년에 두 번, 어머니 生辰 무렵인 5월, 아버지 生辰 무렵인 秋夕을 갓 지난 가을 中旬인, 10월에 가능한 모든 家族이 같이 모여 조촐하게 食事하고 茶 한 잔 나누며 얼굴보고 對話하는 자리를 갖자고 한 것이다. 모두들 흔쾌히 同意했다, 그러나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合心하여 努力해보려 한다. 우리 어머니, 그렇게 같이 모여 있는 우리를 보는 것만으로 아버지와 손잡고 오셔서 즐거워하며 다음과 같이 노래할 것이다.
우리 어머니, 막달레나 천사는 아침 햇살, 햇빛, 별빛, 바람 그리고 가을비, 새하얀 눈과 더불어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
-Things I Want my daughters to know- *Elizabeth Noble
“내 묘지 앞에서 울지 마라.
나는 그 곳에 없고, 그 곳에 잠들지 않았다.
나는 흩날리는 바람 속에 있고,
새하얀 눈 위의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무르익은 곡식위의 햇빛처럼 빛나고,
부드럽게 떨어지는 가을비 속에 있다.
너희들이 아침의 침묵 속에서 깨어날 때,
나는 환하게 밝아오는 아침 햇살 속에 있고,
조용히 하늘을 맴돌며 나는 새 속에 있고,
밤하늘에 빛나는 부드러운 별빛 속에 있으니,
내 묘지 앞에 서서 울지 마라.
나는 그곳에 없고, 나는 죽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너희들을 영원히 사랑하는 엄마가
*Elizabeth Noble(英國 女流作家, 두 딸의 엄마로 2004년 同名의 小說을 데뷔작으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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