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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Taj Mahal)의 애절한 사랑이야기.jpg)
타지마할 -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된 인도 무굴제국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jpg)
인도 아그라 교외의 야무나 강(줌나 강) 남쪽 연안에 있는 타지마할 영묘.
198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된
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이다.
타지마할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 중의 하나이다.
엄청난 건축비용이 들었지만,
이 하얀 대리석의 웅장한 사원은 한 여인을 향한
한 남자의 간절한 기념비가 되었다.
1648년에 만들어져 현재는 우타르 프라데시 주(州) 아그라 교외
아그라 성(城)에서 동쪽으로 약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무굴 제국은 16세기초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인도를 통치했던 이슬람 왕조이다.
이 무굴제국 전성기의 제5대 황제인 샤 자한(Shah jahan, 1592-1666)이
17년의 결혼기간 동안 14명의 아이를 낳고, 15번째의 아이를 낳으려다
1629년 세상을 떠난 왕비 뭄타즈 마할(Mumtax Mahal)에게 바친
타즈마할의 순애보적인 사랑이야기는 시공을 초월한,
타지마할만큼이나 불가사의한 사랑이었다.
황제는 변방을 정벌하러 가는 원정길에까지 아내와 동행하였다고 한다.
그토록 사랑하던 아내가 15번째의 아기를 낳다가 그만 숨지게 되자
황제의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하루 저녁에 황제의 머리카락이 백발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아내의 갑작스런 죽음이후 황제는 아내를 그리워한 나머지,
영혼을 위한 궁전을 무려 22년에 걸쳐 짓도록 했는데
무굴제국의 모든 재력과 미술, 공예의 정수를 투입한 건축물이
바로 인류 역사에 길이 남아 있는 타지마할이다.
또한 황제는 이 궁전을 완성한 후
다시는 그런 아름다운 건축물이 지어지지 못하도록 하기위해
건설에 참여했던 장인들의 손목을 모두 잘라버렸다고 한다.
인도 최대의 건축물이자 아그라의 상징인 '타지마할'은
그 완성도와 완벽함이 현대의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라 한다.
가로, 세로 57m, 높이 76m로 중앙 돔 직경이 17.7m로 되어 있는 타지마할은
완성되기까지 22년의 세월과 국가 예산의 5분의 1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이곳의 내부는 바깥 날씨가 영하이든 영상이든 상관없이
항상 영상 22∼24도C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타지마할 영묘의 건축내역과 전경사진.jpg)
타지마할(Tajmahal)이란 '마할의 왕관’이라는 뜻을 가지며,
무굴제국 황제 샤 자한(Shah Jahan)은 17년 동안 14명의 아이를 낳고
15명째 아이를 낳다가 1629년 사망한 그의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 마할
(Mumtaz Mahal)을 위하여 1631년부터 짓기 시작해서 1653년에 완공을 보았다.
사원은 좌우 대칭의 총대리석으로 높이 5.5m, 종횡 94m의 기단상의 중앙에는
높이 58m의 사당, 四遇에는 높이 42m의 첨탑이 세워져있다.
1630년부터 18년 동안 국고를 탕진해 가며 완성하였고,
온갖 재보(財寶)와 미술/공예품을 한데 모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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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제국 황제인 샤 자한이
아내인 아르주만드 바누 베감을 기리기 위해 지은 이 영묘는
뭄타즈 마할('선택받은 궁전'이라는 뜻)이라고도 하는데,
이 이름이 전와되어 타지 마할이라고 한다.
아르주만드 바누 베감은 1612년에 황제와 결혼한 뒤
서로 떨어져 살 수 없는 반려자로 지냈으나
1631년 부란푸르라는 도시에서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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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 마할은
인도, 페르시아, 중앙 아시아 등지에서 온 건축가들의
공동 설계에 따라 1632년경에 착공되었다.
오스만투르크제국 최고의 모스크 전문 건축가 우스타드 라호리가 초빙되었고,
아지메르 지방에서 최고급의 흰 대리석들이 재단되어 속속 아그라로 도착되었다.
인도 전역에서 내노라하는 조각가들이 불려졌고,
이탈리아와 터키, 심지어 남미산 유색 대리석과 오닉스가 수입되었으며,
루비와 사파이어, 그리고 옥이 중국과 아라비아 등지에서 대량으로 수입되었다.
매일 2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동원되어 1643년경에 영묘가 완공되었고,
1649년경에는 모스크·성벽·통로 등 부속건물이 완공되었다.
타지 마할 전체가 완공되기까지는 22년의 세월과 4,000만 루피의 비용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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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복합 건물은 너비 580m, 길이 350m인 직4각형으로, 남북으로 늘어서 있다.
이 중앙에는 한 변이 305m인 정4각형 정원이 있고,
그 북쪽과 남쪽에 그보다 약간 작은 2개의 직4각형 구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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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구역은
타지 마할로 들어가는 사암 출입구와 거기에 딸린 부속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쪽 구역은 야무나 강가까지 뻗어 있고 거기에 영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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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구.jpg)
(입장료 750루피 한화 약 19.000원/ 현지인 20루피 한화 약 500원 약 37배)
터번 쓰고 들어가고 싶은 맘 굴뚝 ㅎ~
입구 검색이 무척 심하며 음식물 등 가지고 들어 갈 수 없는 물건이 많으며
외국인 입장료 비싼대신 물 1병과 덧신 제공됨
(타지마할 본 건물 오를 시 필수 착용)
우측(북쪽)에 야무나 강이 흐르고...좌, 우에 모스크와 그 밖으로 성벽이 있다.
타지마할 영묘 앞 정원 한 가운데에는 긴 수로가 만들어져 있다.
영묘의 동서 양쪽에는 완전 대칭을 이루는 2개의 건물이 붙어 있는데,
서쪽에 있는 것은 모스크이며
동쪽의 것은 미학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세운 이른바 '자와브'이다. .jpg)
서쪽의 모스크 건물: 타지마할 본 건물에 들어가려면
덧신을 신거나 혹은 맨발이어야 한다..jpg)
모퉁이에 8각형 탑이 솟아 있는 높은 벽이 북쪽 구역과 중정을 둘러싸고 있으며,
남쪽 울타리 밖에는 마구간과 경비병 숙소가 있다.
무굴 제국의 건축 관행은 나중에 증축하거나 개축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건축가들은 처음부터 하나의 통일체로서 타지 마할을 구상하고 설계했다. 
이 복합체의 북쪽 끝에는
영묘·모스크·자와브 등의 가장 중요한 건물들이 모두 모여 있다.
붉은 시크리 사암으로 지은 모스크와 자와브에는 대리석을 두른 돔과
아키트레이브(평방)가 있으며 일부 표면이 단단한 돌(pietra dura)로
장식되어 있어, 순수한 하얀색
마크라나 대리석으로 지은 영묘와는 색깔과 감촉에서 대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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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묘는 높이 7m의 대리석 대좌 위에 지어졌으며
사방이 똑같은 모습으로, 모서리는 정교하게 깎여 있고
각 면마다 높이 33m로 우뚝 솟은 거대한 아치가 있다. .jpg)
높은 원통형 벽(drum)으로 떠받친 양파 모양의 2중 돔이
이 건물을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있다. .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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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묘의 각 아치 위에 있는 난간과 각 모서리 위에 있는 장식 뾰족탑 및
돔을 덮은 원통형 정자는 영묘의 스카이라인에 율동감을 준다. .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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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의 주위에 높이 솟아있는 네 개의 미나르(첨탑)는
타지마할의 완성미를 더해줄 뿐 아니라,
본관을 중심으로 5도씩 바깥으로 벌어지게 함으로써 전면에서 똑바로 보았을 때
탑이 원근법에 의해 안쪽으로 구부러지지 않고 반듯하게 보일 수 있게 하였으며,
만에 하나, 지진이 발생하였을 경우 안쪽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한
믿어지지 않는 설계와 시공기술에는 그저 혀를 찰 뿐이다. .jpg)

대좌의 각 모서리에는 3층 미나레트가 서 있는데,
대좌와의 대리석 접합부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영묘의 대리석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jpg)
정원과 같은 높이에 있는 지하 납골당에는 진짜 석관이 있다.
타지 마할은 무굴 제국 최고의 건축물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의 하나로 여겨진다..jpg)
수로가 있는 정원은 무굴제국의 전형적 건축양식이라고 한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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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녘의 타지마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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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북쪽)에 황혼에 물든 야무나 강이 흐르고....jpg)
야간조명을 받아 상아색으로 빛나는 타지마할의 모습은 환상 그 자체이다.jpg)
햇빛을 받아 상아색으로 밝게 빛나는 타지마할 영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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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이나 유폐되어 죽기까지 뭄타지마할을 그리워 했을 샤자한이 머물렀던
바로 그 아그라성의 창틀을 통해 아련히 바라다보이는 타지마할.jpg)

타지마할의 부분사진과 벽면장식 및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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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란을 새겨 넣은 높은 대리석 기둥은 밑에서 올려다보았을 때
시각적으로 맨 윗 부분과 아랫 부분이 정확히 같은 너비로 보이도록 하기 위해,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판의 너비와 글자를 넓히고 크게 새겨 넣었다. .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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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묘의 내부는 8각형 방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얕은 부조 무늬와 아름다운 돌로 장식된 이 묘실에는 황제 부부의 기념비가 있다.
이 대리석 무덤은 아름다운 돌로 장식되어 있으며,
여기저기에 보석을 박은 투각(透刻)한 대리석 막이 둘러처져 있다. .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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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의 대리석에 홈을 파서 유색의 대리석을 잘라
고려청자처럼 상감처리한 정교한 기법.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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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제국의 5대 황제 샤 자한과 그의 황후의 가묘가 8각형의 묘실에 모셔져 있다
진짜석관은 정원과 같은 높이의 기단부에 있는 납골당에 모셔져 있다.jpg)
왼쪽이 황후 그리고 오른쪽이 샤 자한의 가묘
흰색의 대리석 위에 정교한 이슬람 문양이 새겨져 있다.jpg)
진짜 석관은 대좌 아래 지하 납골당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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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좌,우의 모스크에서 바라본 타지마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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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영묘 좌우의 모스크(이슬람교 회당).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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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출입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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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들리에의 촛불이 가늘게 떨고 있는 것이 어슴프레 눈에 들어왔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순간 누군가 물이 가득 찬 황금그릇을 코앞에 내밀었다.
왕비 뭄타즈 마할이었다. 그녀의 커다란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목이 말라서 잠을 깬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하긴, 뭄타즈는 한시도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었지.
샤자한은 왕비가 황제에 대한 걱정으로 남 몰래 눈물을 훔치는 것과
한숨 짓는 것을 그동안 여러 번 목격한 적이 있었다.
뭄타즈 마할이 두 번째의 왕비로서 아그라성에 들어온 것은 17년 전이었다.
결코 아름답지도 않았으며, 키도 작고 피부도 까만 전형적인 드라비다 여인이었다.
첫 번째 왕비나 세 번째 왕비의 미모에 비하면 너무나도 볼품없는 여인.
굳이 좋은 점을 찾자면 맑은 목소리와 넘치는 애교, 그리고 꾸밈없는 밝은 성격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지성은 어디서나 단연 돋보였다.
입궐 후에도 다른 왕비처럼 거드름을 피우거나 사치스럽지도 않았다.
왕비의 품위를 잃지도 않으면서도 늘 밝게 웃으며
매사를 솔선 수범함으로서 대신들과 궁녀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샤자한의 마음을 읽는데도 탁월해서,
언제나 황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마술처럼 알아 맞추고는
그를 대신해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는,
언제나 황제만을 생각하고 사랑하며 사는 그런 여인이었다.
어느덧, 샤자한은 뭄타즈 마할이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디를 가나 무슨 일이 있거나 언제나 뭄타즈를 동반했다.
그녀는 심지어 황제가 전쟁터에 나갈 때도 두말 없이 따라 나섰다.
사랑이란 외모의 아름다움만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뭄타즈마할의 헌신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두 왕비의 따가운 눈초리와 질투를 감수하며
뭄타즈만을 사랑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샤자한은 자신의 마음을 읽고 따르는 착한 그녀를 혼신을 다해 아끼고 사랑했다.
다른 왕비들처럼 남을 비방하거나 험담하는 일도 없었다.
뭄타즈는 또한 샤자한에게 결혼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17년 동안
무려 14명의 자식을 낳아 주지 않았는가!
하나부터 열까지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스러운 아내,
그 이름 뭄타즈 마할이었다.
그런 왕비가 또다시 임신한 채 만삭의 배를 끌어안고 끝내 몸져누운 것이다.
이전과 달리 점점 야위어져 가기만 하는 아내의 모습은 샤자한의 마음을 불안에 떨게 하였다.
창백한 달빛이 아그라 성의 테라스에 걸친 어느 날 밤, 결국 뭄타즈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 곁에 앉아있는 샤자한을 올려다보며 마지막 미소를 지었다.
그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왕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의 소원이 있다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노라고.
뭄타즈는 자신을 위해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어 줄 것을 황제에게 부탁하였고,
그는 죽어 가는 왕비의 손을 잡으며 굳게 약속했다.
1631년 6월 7일의 일이다.
뭄타즈는 14번째의 아이를 낳다가 39세의 젊은 나이로 마침내 황제의 곁을 떠나게 되었고,
황제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여 장례를 치르는 동안 흰 상복을 입고 왕비의 죽음을 애도했다.
샤자한은 뭄타즈 마할 사후 곧바로 그녀와의 약속을 실행에 옮겼다.
이로서 아그라의 야무나 강 남쪽에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역사적인 착공에 들어가게 된다.
그 이름은 타지마할. 타지마할은 '왕관모습의 궁전'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오스만투르크제국 최고의 모스크 전문 건축가 우스타드 라호리가 초빙되었고,
아지메르 지방에서 최고급의 흰 대리석들이 재단되어 속속 아그라로 도착되었다.
인도 전역에서 내노라하는 조각가들이 불려졌고,
이탈리아와 터키, 심지어 남미산 유색 대리석과 오닉스가 수입되었으며,
루비와 사파이어, 그리고 옥이 중국과 아라비아 등지에서 대량으로 수입되었다.
2만 명의 노예들과 1000마리의 코끼리들이 동원되어 건축가의 지시를 받아
무려 22년간의 대 공사 끝에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은 무굴제국의 영광과 샤자한의 명예에 걸맞는 아름다운 자태로 창조되었다. 
놀랄 정도의 섬세한 조각과 백색의 대리석에 홈을 파서 유색의 대리석을 잘라 상감 처리한
정교한 기술은 더 이상의 다른 건축물과의 비교를 단호히 거부하였다.
코란을 새겨 넣은 높은 대리석 기둥은 밑에서 올려다보았을 때
시각적으로 맨 윗 부분과 아랫 부분이 정확히 같은 너비로 보이도록 하기 위해,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판의 너비와 글자를 넓히고 크게 새겨 넣은 그 세심함은
감탄사만으로는 부족하다.
본관의 주위에 솟아있는 네 개의 미나르(첨탑)는 타지마할의 완성미를 더해줄 뿐 아니라,
본관을 중심으로 5도씩 바깥으로 벌어지게 함으로써 전면에서 똑바로 보았을 때
탑이 원근법에 의해 안쪽으로 구부러지지 않고 반듯하게 보일 수 있게 하였으며,
만에 하나, 지진이 발생하였을 경우 안쪽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한
믿어지지 않는 설계와 시공기술에는 그저 혀를 찰 뿐이다.
붉은 사암으로 된 정문은
중앙운하에 한가로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본관의 맞은편에 열려있으며,
건축의 균형과 세련미를 위해 본관의 한쪽 옆에 모스크를 만들고는
그 반대쪽에는 모스크와 외형이 똑 같은 건물을 세운 그 치밀함이여.
가히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속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이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은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타지마할이 건설되면서 죽은 후 2년 동안 그 앞뜰에 임시로 묻혔던 뭄타즈마할은
바닥 공사가 끝나면서 바로 타지마할의 지하에 옮겨졌다.
타지마할이 완성되는 날,
샤자한은 성대한 행사를 갖고 뭄타즈마할의 영혼을 다시 위로했다.
죽은지 23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생전의 왕비를 사랑하는 샤자한의 눈에
뭄타즈는 생전의 모습 그대로 살아있었다.
샤자한은 타지마할이 완성된 후 오히려 더 괴로워했다.
타지마할을 볼 때마다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리움은 다시 고통으로 다가왔다.
황제는 타지마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잠시 쉬는 게 좋겠다는 대신들의 조언을 받아,
조부인 악바르 대제 시절의 한때 수도였던 파테푸르 시크리로 6개월간의 휴가를 떠난다.
샤자한이 대리석을 좋아하는 것은 거의 병적이다시피 했으므로,
이곳에 머무는 동안 그는 파테푸르 시크리 성내에 자리하고 있었던 성자 시크리의
초라한 무덤을 대규모의 대리석으로 증축하고 공간을 확장하는 한편,
시민들에게 1년에 한번씩은 이곳을 순례하도록 하였다.
그는 뭄타즈마할이 없는 아그라에 머물기보다는 외부에 출타하는 일이 많아졌고,
이윽고 조부 후마윤의 수도였던 델리에 샤자하나바드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독실한 이슬람교도인 샤자한은 이슬람세계의 끝까지 그 명성을 떨칠 도시를 건설하기 위하여
붉은 사암의 거대한 성, 이른바 '랄킬라'를 짓기 시작했다.
성안에는 인도에서 가장 큰 모스크를 짓도록 명령했는데
그것이 바로 유명한 자마마스지드이다.
샤자한이 제국을 통치하던 30년간, 제국의 확장에 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타지마할의 건설로 국고가 바닥을 드러내게 됨으로서 그의 업적이 빛을 잃게 되었다.
말년에는 중병에 들어 국사를 돌보기가 힘들어 지게 되었고,
왕비 뭄타즈마할에 대한 그리움으로 야무나 강 북쪽 타지마할의 반대쪽에,
이번에는 검정대리석으로 타지마할과 같은 거대한 자신의 묘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황제의 임종과 국고의 탕진을 염려한 네 아들이
서로 황제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합을 벌이게 되었고,
그 중 군인기질이 가장 풍부한 야심가 아우랑제브가 장남과 다른 형제들을 제치고
재빨리 아그라를 차지함으로서 실질적 권력을 쥐게 된다.
그는 아버지 샤자한을 아그라 성채의 작은 방에 감금하고는
아버지가 진행시키던 샤자한의 묘의 건축을 중지시켰다.
무려 8년이라는 기간을 이곳에 갇혀 살던 샤자한은 75세의 나이로
멀리 야무나강 너머의 타지마할을 바라보면서 쓸쓸히 세상을 하직하고 만다.
사후 그의 묘는 타지마할 지하의 뭄타즈마할의 관 옆에 안치되었다.
뭄타즈마할에 대한 샤자한의 사랑은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타지마할 만큼이나 불가사의한 사랑, 바로 그것이었다.
하루에도 네 번씩 색깔을 바꾼다는 타지마할의 자태는
고요한 달빛에 비칠 때면 보라빛을 띤 상아색으로 바뀌고,
그 고운 모습은 마치 샤자한과 뭄타즈마할의 달콤한 속삭임처럼 다가온다.
아그라 성채에서 타지마할을 바라보면,
멀리 떨어진 타지마할을 손에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보게 된다.
8년 동안 이곳에서 타지마할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샤자한의 애절한 마음은 어떠했을까.
사랑을 논하려면 아그라를 먼저 가 보라. 사랑과 애달픔이 곳곳에 스며있는 곳.
아그라는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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