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사는 우리가 배워야 할 유목민의 열린 사고방식 - 칭기스칸을 중심으로


머릿말
오늘 이야기는 이미 다 아는 저 몽골의 유명한 영웅이었던 칭기스칸의 세계정복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떻게 그 조그마한 몽골이라는 한 부족이 유라시아대륙을 아우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또 오랜 기간 그 제국을 유지, 발전시킬 수 있었을까?
21세기는 칭기스칸이 지배하던 13세기의 모습과 닮아있다고 한다. 환경, 정보화, 세계화가 화두로 떠 오르고, 인터넷과 컴퓨터, 그리고 휴대전화로 연결되는 속도전의 시대다. 칭기스칸이 살았던 그 시대와 매우 닮아있다.
“잡 노마드 사회”라는 책에 인용된 저자 군둘라 엥리슈의 지적을 인용해 본다.
“미래의 사람들은 매우 빠르게 움직이면서, 전자제품을 이용하는 유목민이 될 것이다. 세계각지를 돌아다니지만 어디에도 집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이미 30년 전 캐나다의 미디어 연구가 마셜 맥루언이 내놓은 미래예측이다.
Job Nomad는 직업을 따라 유랑하는 유목민이란 뜻의 신조어로서 과거의 직업세계에 등을 돌린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들은 평생 한 직장, 한 지역, 그리고 한 가지 업종에 매여 살지 않는다. 잡 노마드는 승진경쟁에 뛰어 들지도 않고 회사를 위해 목숨 바쳐 일하지도 않는다. 끊임없이 변하는 직업의 세계에서는 자유만이 진정한 안정을 보장해 준다.
우리는 1만년 가깝게 정착농경사회에서 살아왔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 즉 권력, 민주주의, 예술들은 모두 정착문화의 성격이 짙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성을 쌓고, 집과 땅을 소유하고 살던 정착민의 수직적 사고로는 21세기를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경계와 벽을 모르고 세상을 누비던 유목민의 수평적 사고가 절실한 시대가 왔다.
오늘날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계인들은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며, 서로 대화방을 통하여 생각을 공유하고, 서로 나누고 있다. 심지어 사이버 세상의 즉석 미팅까지 가능해 진 세상이다. 메신저로 연결하면 바로 서로의 얼굴을 보며 방금 전까지 서로 몰랐던 사람과도 대화가 가능해 진 인터넷시대에 살고 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근교에 있는 돌궐제국의 부흥을 이끌었던 명장 “톤유쿠크”의 비문을 인용해 본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 남을 것이다.”
닫힌 사회는 망하고 열린 사회만이 영원하리라는 이 말은 글로벌 인터네티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가슴 깊이 새겨 두어야 할 교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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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정보사회와 이동유목사회의 유사성
유목민에 대한 정착농경 문명권의 오만과 멸시는 20세기가 저물 때까지 계속됐다. 그러나 21세기가 시작되며, 서구의 석학들은 유목문화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틸라는 “부유한 사람들은 즐기기 위해 여행할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살아 남기 위해 이동해야 하므로 결국은 누구나 유목민이 될 수 밖에 없을 것” 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도, 프랑스 문화비평가 기 소르망도 비슷한 주장을 폈다. 이미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제3세계 국가 사람들이 결혼으로, 직장으로 100만 명 이상 우리의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다. 반대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해외 이주가 거의 500만을 헤아린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매년 수백만명의 외국인들이 사업, 관광등의 목적으로 우리나라를 찾아오고 있다.
우리 주위에는 이미 휴대폰과 노트북으로 무장한 21세기 사이버 세계의 기마궁사(말을 타고 활을 쏘던 병사)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 이제 어디를 가더라도 이와 같은 모습의 사이버시대 기마궁사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일을 하고, 쇼핑을 하며 인터넷 뱅킹을 한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는 노트북도 필요없이 손바닥 안에서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애플사의 아이폰과 삼성전자의 갤럭시폰이 전 세계에서 날개돋친듯 팔리고 있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스마트 폰의 출시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 흐름을 따라잡지 못한 휴대폰 시장의 강자 노키아가 최근에 마이크로소프트사에 넘어간다는 뉴스도 보았다. 손바닥안에 전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휴대폰+인터넷이 쥐어진 세계에서 살고있는 요즈음이다.
살기 위해서는 위가 아니라 옆을 봐야만 하는 수평마인드의 사회, 집단으로 이동해야 하는 사회가 유목사회다. 그 속에서는 단 하루라도 현실에 안주하는 게 허용되지 않는다. 끝까지 승부근성을 놓지 않고 도전해야 한다. 그곳에서는 나와 다른 사람이 소중하다. 민족이, 종교가, 국적이 다르다는 것도 무시해 버려야 한다. 아니 다른 사람일수록 더 끌어들여야 한다. 사방이 탁 트인 초원에서는 동지가 많아야 살아 남고 적이 많으면 죽게 된다.
그런 유목사회에서는 완전개방이 최상가치로 통한다. 모든 개인의 개방화는 사회전체로 확산된다. 그렇게 해서 그 사회는 능력에 따라 무한 가능성을 보장하는 사회가 된다. 그 속에선 정보와 효율이 무척 중요하다. 이동과 효율과 정보의 개념 속에서 시스템이 태어난다. 요즈음 엄청난 양의 정보가 범람하는 인터넷의 시스템과 닮아있다.
자리는 착취하고 군림하는 수단이 아니라 역할과 기능을 발휘하는 곳이다. 최고자리에 앉는 사람은 군림하는 통치자가 아니라 리더다. 그 자리에 누가 앉느냐 하는 것은 씨족이나 부족의 생사와 직결되는 문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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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농경사회의 폐단
그러면 농경사회의 폐단은 왜 생겨 났을까?
바로 정착농경사회의 낡은 사고방식 때문이다. 정착농경사회가 자기정화력과 절제력을 잃어버릴 경우 온갖 폐해를 들어낼 수 밖에 없다. 제도피로 현상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 막는 계급과 계층들이 먹이 사슬처럼 생겨난다. 위에 있는 사람들은 군림하면서 아래를 통제하고 착취하려 든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위에 아첨하면서 자기보다 더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군림하고 착취하려 든다. 그러면서 부정과 부패가 창궐한다.
농경정착사회의 군림과 착취구조를 가장 확실하게 지켜주는 것이 ‘자리’다. 관리를 연상할 필요도 없다. 길거리 좌판상도 ‘자릿세’를 물어야 장사를 할 수 있다. 자리를 차지하고 이권을 지키려고 사람들마다 혈연으로 뭉치고, 지연으로 묶고, 학연으로 얽어 맨다.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거부하고 멸시하며 외면한다. 다른 고장 출신, 다른 학교 출신, 다른 집안 사람, 다른 부처 사람, 다른 나라 사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을 ‘적과의 동침’만큼이나 거북하게 여긴다.
그러니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내쳐야 한다. 같이 놀 수 없다는 말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초기의 고소영, 강부자 내각얘기는 결코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님을 말해 준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많은 초창기 멤버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자리를 떠났다. 최근에는 국민연금문제로 갈등을 빚은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표를 내고 물러났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자격미달의 인사들이 낙마하는 일도 적지 않다. 끼리끼리 챙기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 곳에서는 남에 대한 봉사, 효율, 생산성, 투명성 따위가 구호로만 떠돌아 다닌다. 말로만 떠들고 저희들끼리 뒤에서 다 해 먹는다는 말이다. 그 지배그룹에 끼지 못한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다. 이유도 잘 모르고 정당한 기준도 없이 모욕적으로 또 일방적으로 당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간의 잣대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폐쇄된 정착농경사회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러한 수직사회에서 창의력의 약화는 필연이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시키기만 하면 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그러면서 허울좋게 민주와 자유라는 말까지 들먹이며 여러 아랫사람들에게 권력을 분산하고, 자기는 일하는 분위기만 조성한다고 허언을 한다.
과연 그런가? 미국산 소고기 수입개방문제가 농림부장관 한 사람의 결정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가? 용산철거민 참사 사건이 경찰청장만이 책임질 문제인가? 나라에서 운영하는 지도 서비스 시스템에서 사찰들이 모두 삭제된 것이 어느 한 하급 공무원의 실수 때문인가? 4대강을 살린다고 하면서 수많은 댐을 이름까지 "보"라고 바꿔가며 밤샘공사를 한 결과 어제도 오늘도 국감현장에서는 여야의원들의 고성과 삿대질이 오고간다.
모두 저 잘난 줄 알지만 남이 보기에는 벌거벗은 임금님들의 축제에 불과하다. 자기가 태양주위를 도는 게 아니라 천하가 자기를 위해 도는 줄 착각하는 천동설의 신봉자들이 된다. 45억 년의 역사를 가진 이 지구별이 고작 5000~6000년 전에 자기들의 신이 다 만들었다고 헛소리를 한다.
헛소리 하는 무리들끼리 모이게 되면 자신들이 헛소리하는 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사회는 닫힌 사회에 그치는 게 아니라 아예 갇힌 사회가 된다. 수직적 정착농경사회가 낳은 해악들이다. 그리고 그 무리에 끼이지 않겠다는 사람들을 멸시하고 내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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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유목문화의 재조명
그에 반해 유목 이동민 들은 항상 옆을 바라봐야 살아 남을 수 있다. 생존하려면 싱싱한 풀이 널린 광활한 초지를 끝없이 찾아 헤매야 한다. 그래서 더 뛰어난 이동 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더 좋은 무기로 무장해야 한다. 그들에겐 고향이 없다. 한번 떠나면 그만이다. 초원에는 미리 정해진 주인도 없다. 실력으로만 주인자리를 겨룰 뿐이다.
인간이 이 지구상에 출현한 이후 19만년 동안 채집이나 수렵생활을 하다가 지금으로부터 약 1만년 전에 하천을 중심으로 한 농업혁명을 일으켰다. 이후 잉여생산물이 생겨났고, 그로부터 경제가 본격적으로 발전되고 정착생활이 시작되었다. 6000년 전,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미국의 침략을 받았던 이라크), 나일강, 인더스강, 황하 유역에서도 도시 문명이 일어났다. 이후 산업혁명을 거쳐 지식혁명까지 인류는 특정 장소들을 중심으로 문명을 일궈왔다.
처음에는 하천 주변에서 인류문명이 발달하다가 지중해, 카스피해 같은 내해와 연안으로 옮겨갔고, 300년 전부터 대서양문명 시대가 계속돼 온다는 식이다. 이런 식의 역사 관찰방식은 거의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역사적 사실일지언정 진실은 아니다. 인류사가 자랑해 온 4대 문명발상지는 정확한 용어로 다시 표현하면 4대 정착농경문명발상지라고 해야 옳다.
그들이 멸시하며 하대하던, 흉노(주로 몽골족을 하대하는 말), 돌궐(터키)과 동이(우리 한민족을 지칭하는 말) 등에 대한 역사적 진실이 밝혀지고 그들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져 새로운 역사서가 쓰여지기를 기대한다. 비록 기록된 역사가 없기는 하지만 최근 발굴되는 유적과 유물을 통하여 그들이 하나의 단일민족이 아닌 찬란한 문화와 문명을 향유하던 광대한 대국가집단이었다는 사실이 하나 둘씩 밝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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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칸과 몽골제국의 성공요인
지금까지 두서없이 정리한 위의 글은 주로 “CEO 칭기스칸 - 유목민에게 배우는 21세기 경영전략(김종래 지음) 에서 인용한 것이다. 물론 나의 생각을 군데군데 집어넣고 순서를 바꾸고 짜깁기를 하기는 했지만, 위 책의 서문과 1장을 주로 요약 정리하고 거기에 내 생각을 덧붙여 쓴 글이다. 감히 이 책을 일독하시기를 권한다.
지금으로부터 800년 전 이미 21세기를 살다 간 유목민족 몽골(칭기스칸의 부족명)은 어떻게 그렇게 광대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한 마디로 "열린 사고와 꿈"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칭기스칸 시대에 정복한 땅은 777만 평방킬로미터에 이른다. 이는 알렉산더대왕(348만 평방킬로미터)과 나폴레옹(115만평방킬로미터)과 히틀러(219만평방킬로미터), 세 정복자가 정복했던 땅을 합친 것보다도 더 넓다고 한다. 그의 손자이자 원나라 시조인 쿠빌라이 칸에 이르러 정복면적은 훨씬 더 늘어났다. 동쪽으로는 고려에서부터 서쪽은 헝가리까지, 북쪽은 시베리아로부터 남쪽은 베트남근처까지, 쿠빌라이 칸은 만주에서 페르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인류 역사상 첫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출현이다. 그 당시까지는 아직 지리상의 발견이 없었으므로 신대륙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대제국이다. 세계를 거의 다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몽골 고원의 인구는 고작 100만~200만이었다고 한다. 이 숫자가 중국, 이슬람, 유럽사람들 1억~2억 명을 정복하고 거느렸다. 더욱 놀랍게도 제국은 12세기 후반부터 14세기 중반까지 무려 150년간이나 지속됐다. 지금 현재 중국의 수도인 북경도 이들 몽골사람들이 새로 개발했던 신도시였다.
우리보다 훨씬 크고 강력했던 일본이 우리나라를 고작 35년 통치하는데도 우리는 곳곳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저들에게 저항했다. 작은 몽골이 100~200배나 덩치가 큰 인구를 아우르며 150년간이나 통치할 수 있었던 것은 여간 놀라운 일이 아니며 그 통치의 기반이 매우 단단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과연 무엇이었을까?
중국인들이 표기하듯 (몽고-아둔한 옛 것) 그들이 그렇게 아둔하고 변변치 못한 민족이었을까? 만일 이에 동조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건 국가경영의 초보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몽골이 망한 것이 아니다. 다만 저들이 살던 그곳 몽골고원으로 물러갔을 뿐이다. 물론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두 나라로 분단되어 중국에 속한 내몽고와 외몽고로 따로 떨어져 살아가고 있지만...멸망해 버린 중국의 다른 민족들과 달리 몽골인들은 오늘도 저 드넓은 초원에서 거친 자연을 상대로 쉽지 않은 생존게임을 하며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다.
칭기스칸을 비롯한 몽골의 지도자들의 성공비결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꿈”이라고 저자는 결론짓고 있다. 한 사람이 꿈을 꾸면 단순한 꿈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여럿이 꿈을 꾸면 얼마든지 현실로 가꾸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유된 꿈을 우리는 비전이라고 부른다.
비전의 공유는 어떨 때 가능한가? 바로 “열린 사고”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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