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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랑 시인 93년만에 `휘문의숙` 졸업

<영랑 시인, 93년 만에 고교 졸업장 받았다>

  서울 휘문고, 영랑 김윤식 선생에 명예졸업장 추서
막내딸 김애란씨 "아버지도 무척 기뻐하실 것"

(서울=연합뉴스) 고상민 기자 =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휘문고교.

   교정에 드문드문 서 있는 나목들이 간밤에 내린 눈에 하얀 새 옷을 입고 졸업식 인파를 맞고 있었다.

   600여 명의 졸업생들이 저마다 들뜬 표정으로 교내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사이, 일흔에 가까운 한 할머니가 설 녹은 눈길을 헤치고 뚜벅뚜벅 강당으로 향했다.

   여조카와 나란히 내빈석에 앉은 할머니는 시인 '영랑' 김윤식(1903∼1950) 선생의 막내딸 김애란(69)씨. 아버지 대신 93년 만에 졸업장을 받기 위해서였다.

   모교 출신의 내빈 소개가 이어진 뒤 7번째로 단상에 선 김씨는 감격스런 표정으로 아버지 대신 후배들에게 목례를 건넸다.

   영랑 선생은 휘문의숙(徽文義塾·휘문고 옛 명칭) 3학년이던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운동에 연루돼 졸업 기회를 잃었다.

   당시 그는 자신의 구두 안창에 독립선언문을 숨기고 고향인 전남 강진에 내려가 독립운동(강진 4·4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전남 강진군은 지난해 '모란의 시인' 김영랑을 재조명하는 사업의 하나로 고교 명예졸업장 추서를 휘문고 측에 제안했고 학교도 이에 흔쾌히 응했다.

   휘문고 측은 "늦은 감이 있지만 명예졸업장 추서를 계기로 김영랑 선생의 민족의식과 문학 정신이 더욱 빛나기를 기대한다"며 지난달 21일 영랑 선생에게 작고(作故)한 동문에게는 처음으로 '자랑스러운 휘문인 상'도 수여했다.

   김애란씨는 "아버지 졸업장을 막내인 내가 90여 년 만에 대신 받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며 "지하에 계신 아버지의 영혼도 무척 놀랍게 여기고 기뻐하실 것"이라며 감격했다.

   김씨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라곤 5살 때 봤던 덥수룩한 수염의 모습뿐이라고 했다.

   그는 "1949년 아버지가 중앙청 공보처 출판국장으로 일하실 때 늘 퇴근길에 약주를 하시고 들어와 날 무릎에 앉혔다"며 "까칠한 수염으로 얼마나 볼을 비비시던지 따가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회상에 젖었다.

   고모와 함께 조부 모교를 찾은 장손녀 김혜경(55·성악가)씨도 "당시 고등학생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나선 조부께서 이제야 졸업장을 받게 돼 가슴이 뭉클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할아버지께서는 문학 외에 국악 등 다른 예술분야에도 다재다능하셨다. 그 유전자를 이어받아 나도, 피아니스트인 내 딸도 음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졸업식에 참석한 강진군청 관계자는 "명예졸업장 추서를 형식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선생의 애국사상과 문학사적 위상을 국민에게 다시 한번 환기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졸업식이 끝나자 김애란씨는 "집이 대치동이라 걸어가면 된다"며 총총걸음으로 교정을 빠져 나갔다.

   걸어서 5분이면 닿을 거리. 하지만 김애란씨의 모습에서는 아버지가 졸업장을 받기까지 93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gorious@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3-02-06 14:52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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