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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객(歌客) 배 호(KBS 수요기획) / 노래모음(You Tube)

 

http://www.kbs.co.kr/1tv/sisa/wedplan/vod/1421977_1068.html

가객(歌客) 배 호


■ 방송일시 :
2006. 11. 1(수) 밤 11시 40분 1TV
■ 프로듀서 :
조인석
■ 연    출 :
<봄 저너머> 이창준

 

<기획의도>

1967년 3월 장충동 녹음실.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한 가수가 힘겹게 녹음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신장염 투병 중이었다.
한 소절 부르고는 의자에 주저앉고 다시 일어서 한 소절 부르고...
한 시간 여 만에 힘겨운 녹음을 마치고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녹음실을 빠져나간 그 사람.

가수 배호다.

이 날 녹음된 곡은 <돌아가는 삼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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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의 짧은 생을 살다간 가수 배호. (1971년 11월 7일 타계)

그러나 그의 노래는 35년이 지난 오늘까지 우리들 가슴에 남아있다.

이제 낡은 LP디스크 한 장이 세월의 더께를 걷어내고 오래토록 참아왔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그 목소리에 담긴 가객의 회한과 가락에 실린 그 시절의 자화상,

그리고 그에게 소리 없이 빚져온 우리 노래의 역사까지...




<주요내용>


1. 1960년대 후반을 풍미한 가수 배호

가수 배호는 60년대 후반 이미자, 최희준 등과 함께 최고의 인기를 누린 가수다.
당시 배호는 독특한 창법, 중절모와 안경을 쓴 특이한 외모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1971년 11월 7일 신장염으로 사망한 후 35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우리
가슴속에 남아있다. 2000년에는 대중가수 최초로 그의 이름을 딴 행정도로가
용산 삼각지에 생겼으며, 2003년에는 정부에서 옥관문화훈장을 추서했고,
올해엔 미발표곡까지 포함된 전집앨범이 10장의 CD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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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호와 이미자                                  배호와 문희


2. 배호의 창법 분석

1960년대는 한국 대중음악의 부흥기로 기존의 남인수등 전통방식의 트로트에서부터
패티김, 최희준 등의 스탠다드 팝에 기반을 둔 노래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배호는 전통과 현대 음악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그 자신만의 창법으로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배호 창법의 바탕에는 나름의 음악적 배경이 있었다.
배호의 외삼촌인 김광수, 김광빈은 KBS와 MBC악단장을 역임하고 서울음대 교수로
재직했던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이었고 그들에게 음악수업을 받은 배호는 그 자신이
드러머이면서 12인조 악단을 이끌던 밴드마스터였던 것이다.
그의 창법은 충실한 음악수업과 드러머의 정확한 리듬감을 바탕으로 창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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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호   외숙모 안마미 외삼촌 김광빈          배호와 그 악단 시절


가요사에 한 획을 그은 배호 창법의 인기는 배일호, 신행일 등 수많은 모창가수들의

등장으로 다시 한번 확인된다. 특히 신행일씨의 경우 가짜음반 소동이 벌어졌을 만큼

배호의 노래를 유사하게 모창하는데, 제작진은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의 도움으로

배호와 신행일의 창법을 비교하고,

모창으로는 재현할 수 없는 배호 목소리의 숨은 비밀을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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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대 배명진교수와 작곡가 김기웅  모창가수와 배호의 음원분석장면



3. 29년 짧은 생을 살다간 배호의 가수혼

배호가 <돌아가는 삼각지>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은 1967년.
그러나 배호는 1966년 이미 당시로는 불치의 병이었던 신장염으로 투병 중이었다.
1971년 그가 사망하기까지 그가 취입한 곡은 무려 200여곡, 동료의 부축을 받아야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그가 항상 하던 말은 “죽어도 무대에서 죽겠다”였다.
숨쉬기조차 힘든 고통 속에서도 무대에 올라 노래했던 그의 가수혼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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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서 노래연습중인 배호      동료의 부축을 받으며 노래하는 배호



4. 프로그램의 특징

 


▶ 가수로서 비운의 삶을 살다간 한 인간의 모습까지 다각도로 조명

▶ 배호의 육성과 일기 공개

▶ 신중현, 심수봉, 조영남, 정훈희, 현미, 하춘화,남보원, 쟈니리 등 

    가수로서의 배호를 추앙했고, 인간으로서의 배호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눈물어린 인터뷰와 추억

▶ 가수 유열의 진행과 내레이션 

    유열은 이번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을 통해 선배 가수 배호의

     삶을 
함께 돌아보고 싶어했다.


그가 떠난 지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왜 배호를 돌아보려 했을까.
지금도 그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은 지 35년이 지났는데도 한국인의 애창가요 다수가 그의 노래이고
300여개가 넘는 팬클럽이 사이버 공간을 채우고 있으며,
아직도 그의 목소리를 흉내 낸 가짜 배호가 떠돌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스타들이 탄생했다가 사라지는 지금,
사후 35년인 지금에도 배호의 노래는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왜 그를 떠나보내지 않는 것일까.

프로그램 구입:
http://www.mediaplaza.co.kr/shop/shopdetail.html?branduid=30429&mcode=032&scode=&search=&sort=order&type=X&xcode=005

 



안개속으로 가버린 사랑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낀 장충단 공원



 


누가 울어



 


비내리는 명동거리



 


마지막 잎새



 


파도



 


두메산골



 


영시의 이별



 


당신



 


막차로 떠난 여자





배호노래 모음 18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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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호노래 모음 18곡 >> 01. 향수 02. 조용한 이별 03. 파도 04. 두메산골 05. 영시의 이별 06. 마지막 잎새 07. 만나면 괴로워 08. 비내리는 명동 09. 황금의 눈 10. 누가울어 11. 돌아가는 삼각지 12. 비내리는 경부선 13. 잊을 수 없는 연인 14. 남강의 비가 15. 추억의 오솔길 16. 나는 통곡한다 17. 남의속도 모르고 18. 안개속으로 가버린 사랑

 


世人들은 그를 100년만에 나올 수 있다는 불세출의 가수다,
또는 천재가수다, 매혹의 저음 가수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의 삶이 어려웠고 시대적으로 암울했던 60년대 후반, 홀연히 우리에게 나타나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를 전해주고 29세의 미혼으로 후손도 남기지 못한 채 우리곁을 떠나 버린 歌客 裵湖 ....우리 민족의 예술 근간인 "한"이 실린 노래,....클래식을 하는 분들도 약주 한잔하면 그의 노래를 찾는....그래서 그의 노래는 우리 민족의 근간이 담긴 노래로 평가됩니다.
1971년 11월 7일 지병인 신장염을 이기지 못해 생을 마감한 그는 투병중 가수생활 5년만에 300여곡이라는 경이로운 작품들을 남기고 짧은 삶 동안 그 누구도 만들지 못한 음악 역사들을 만들어 놓고 갔습니다.
그가 떠난지 41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를 찾는 많은 팬들의 성원은 그 어느 가수에서도 느낄 수 없는 음악의 혼을 만들고 있습니다. 옛 가수로써는 아직까지 가장 많은 팬들이 찾고 있는 음악역사입니다.

 

왜, 우리는 그를 못잊어 하고 있고, 또한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는 그의 이름이 회자되고 있는가?

그는 어떠한 가수였는가?


여기에 그의 못다 이룬 음악세계 모든 것을 실어 많은 분들과 함께 그의 음악 인생을 정리해 봅니다. 

1942년 4월 24일 중국 산동성 제남시 출생, 본명:배만금(개명:배신웅) 평안북도 철산과 신의주가 고향인 부모님으로부터 손아래 남동생을 얻었으나 어려서 사망한 관계로 집안의 3대 독자가 되어 태어났습니다. 일제시절 동경대 수의학과에서 동물학을 공부하시다가  중국 제남에서 운송업을 하시면서 독립군 활동을 한 부친의 영향하에 그는 유년 시절을 중국에서 보냈습니다.

 
해방과 함께 서울로 돌아 온 그는 창신 초등학교를 거치고 독립 운동가로 활동하고 해방후 방황하던 부친의 타계로 인한 삶의 어려움으로 부산으로 내려와 그곳에서 모자원을 운영하던 이모님의 가족과 함께 생활하며 삼성중학을 다니다, 음악에 대한 끼를 버리지 못해서 중학을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갑니다.

 
당시 서울에는 국내 악단계를 주름잡고 있던 셋째 외삼촌인 김광수 악단이 KBS등 주요 악단을 도 맡아 있었으며, 또한 넷째 외삼촌인 김광빈 악단도 가족 악단으로 구성되어 업소와 문화방송 초대악단으로 활동하며
이들 형제 악단이 장안을 휩쓸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그의 음악적 원조를 찾아보면, 그의 몸에는 일찍부터 외가쪽의 음악에 대한 신동같은 혈통을 이어받은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둘째 외삼촌인 김광옥은 바이올리스트로 북경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였고 셋째 외삼촌 김광수는 일본 명치대를 졸업하고 주로 라틴계 음악을 중시한 50-60년대 국내 악단계를 주름 잡았던 김광수악단의 리더였으며, 이는 가수 최희준과 국내 락의 대부인 신중현등을 데뷔시킨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그는 바이올리스트로서 동요로 유명한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등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한 넷째 외삼촌인 김광빈은 중국 제남에서 배호 가족과 함께 생활하며 음대를 졸업하고 국내로 들어온 후 역시 자신의 가족으로 구성된 악단을 운영, 자신과 그의 처(안마미), 조카(배호), 처남(안건마-김정호/어니언스등 음악지도), 처제(안미미,안로미)들로 구성하여 서울 장안의 여러 업소와 문화방송 초대악단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아코디언 주자로 탱고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천재적인 음악성을 담고 있으며 유명한 "사랑의 배신자"등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당시 아직 10대인 배호는 외삼촌 악단에서 심부름으로 시작한 생활이었지만 외삼촌들의 도움으로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미8군등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김광빈 악단의 드럼 연주자로 자리를 옮겨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천지, 문화방송등의 전속 악단으로 활동하였고 당시 김광빈이 만들어 준 최초곡인 "굿바이"와 "사랑의 화살"을(1963년 - 21세) 김광빈 악단의 연주속에 외삼촌이 지어준 배호라는 예명으로 음반을 발표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애띤 그의 목소리에서 가수로써의 이름을 알리지는 못하였고 그는 김광빈의 도움으로  20대 초반에 자신의 악단인 "배호와 그악단"이라는 악단을 만들어 업소에서 본격적인 자신의 음악을 키워가게 됩니다.


그 때쯤 김광빈은 그 에게 본격 데뷔 음반을 낼 수 있도록 자신이 만들고 연주한 "두메 산골" "굿바이" "차디찬 키쓰" "녹색의 장미" "사랑의 마술사" "그대만이" 등 6곡을 발표하게 합니다.(1964년-22세)

이 노래들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초기 노래들은 트로트와는 거리가 있는 라틴 계열의 수준 높은 노래들로 외삼촌의 차원 높은 어려운 노래들이 아직까지 애띠고 노래의 기회가 적었던 그가 완벽이 소화해내게 되고, 깨끗했던 당시의 목소리로 태어나 신인 가수로써의 이름이 서서히 알려져 가는 기회를 맞이하게 됩니다. 아직은 어렸던 나이이기에 김광빈은 그 에게 나이 들어 보이기 위해 훗날 그의 마스코트가 되어 버린 검은테/ 금테 안경과 모자를 씌워줍니다. 그의 이름은 이제 서서히 서울 장안에서 특출한 리듬 감각으로 신명나게 드럼치며 노래하는 가수 배호라는 이름이 알려지면서 음악계에서 활동하는 모든 이들에게 퍼져 나가 관계자들이 관심을 갖게 되는 역사를 맞이하게 되었고 관계자들은 이때부터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국내 최고의 작사가인 전우(비둘기집 등)와 나규호 콤비를 만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막 알려져가는 그에게 무리한 활동이 원인이었을까? 그는 당시 불치의 병인 신장염을 얻게 됩니다.
아직 건강했을 때 방송을 타기 시작한 그의 다음 노래들(황금의 눈,등)은 본격 투병과 함께 묻혀지고, 병상에서 발표한 그외 곡들도 크게 알려지지 못한 채 음반사 창고에서 머물게 됩니다.
그러던 그가 1967년 3월, 힘들게 병상에서 녹음한 "돌아가는 삼각지"를 발표하였고 거의 같은 시기에  "누가 울어" 안개속에 가 버린 사람"등 13곡을 발표합니다.

 

돌아가는 삼각지"는 그의 숨에 찬 목소리에 이내 세간의 화제가 되면서 방송사의 인기와 팬들의 성원이 이어져 이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는 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25세)
 극히 평범하고, 다른 인기가수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곡이라고 사양했던 이 곡이배호라는 호소력 깊고 심금을 파고 드는 감성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만나면서 가요계는 배호라는 인물로 모든 스토리가 바뀌게 됩니다. 음반사는 발매하는 음반마다 배호의 곡을 몇 곡씩 넣었고 음반을 미처 만들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인기를 몰아 역시 병상에서 내 놓은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은 인기를 연장하여, 히트후 4개월만에 년말 MBC 10대가수에 등극을 시작으로 각종 가수상을 독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곡들은 가요사상 드물게 20여주 연속 1위를 하는 사랑을 받게 됩니다.

 

내 놓는 곡마다 히트하면서 평균 일주일에 한 곡씩을 내놓게 되는데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활동기간 5년동안 상당기간을 투병 중에서 보냈기에 가끔 있었던 녹음에서는 하루에 몇 곡씩을 녹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를 찾는 팬들은 늘어만 가는데, 배호는 무대에 보이지 않고 어쩌다 나타나면 휠체어에 의지한 채 노래를 불러야 했지요. 음악에 대한 프로 정신이 아니었다면 그러한 상황은 만들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힘들 게 이어져 오던 삶이 운명의 장난인가, 노랫말처럼 "마지막 잎새"를 유작으로 남긴 그는 이제  떠나야 할 때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1971년 11월 7일 "팬 여러분 고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틀린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끝으로 그는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겨준 수많은 역사를 뒤로 한 채 경기도 양주에 있는 신세계 공원묘지로 그를 실은 영구차는 떠나갔습니다. 그가 떠난 후 여성팬들은 소복을 한 채 며칠이고 집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자리를 지키며 아쉬워했고, 그를 찾아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우리를 떠났지만 그의 음악 인생은 헛되지 않고 떠난 후 10년이 지난 81년에도 가장 사랑받는 가수 1위를 유지하는 인기를 누렸습니다.
음반사를 몇 개씩 옮겨 다니며 만들어 놓은 히트곡들은 지금 우리가 만날 수 있는 혼이 담긴 그러한 노래들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음악평가는 그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음악 역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음악 평론가 임진모씨는 한국 가요사에서 가장 완벽한 음을 구사했던 천재 가수라고 평가했고, '누가 배호 앞에서 가창력을 논하랴' 라는 말로 그의 가창력을 평가해 주었습니다. 또한 KBS 악단장을 지내신 김인배씨는 "배호 같은 가수를 찾아봐도 없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이 그를 평가한 종합적인 결론인 것 같습니다.  그의 음악성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팬들의 성원이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옛가수로는 가장 많은 팬들과 가장 많은 팬클럽 활동, 또한 가장 많은 시중 유통음반, 가장 많은 노래방 노래곡수, 가장 많은 가짜 음반,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옛가수로는 가장 많은 음반 판매량, 활동기간 대비 가장 많은 음반 발매, 가수활동 5년동안 30여개의 각종 가수상 수상, 가장 많은 노래비(94개)가 전국에 세워져 있으며, 가수로써는 유일하게 그의 이름을 딴 도로 (배호길)가 삼각지에 지어졌습니다. 그를 뒤따르고 싶었던 70여명의 유명 가수들이 그의 곡을 다시 불렀습니다. 그리고 타계당시 그의 묘지에는 국내 최초로 노래비가 세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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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 환경이 깨끗이 조성된 경주의 '마지막 잎새'(정귀문 작사, 배상태 작곡, 배호 노래) 노래비

 

지난 2003년 10월,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예술인으로 최고의 상인 문화훈장을 그의 음악적 가치를 높이 치하하여 대한민국 이름으로 서훈하여 주었습니다.

 

그는 가수로써 중요한 부분인 발음이 정확했으며 리듬의 밀고 당김이 그 어떤 가수에서 만날 수 없는 기교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3 옥타브를 넘나드는 음폭과 호소력 깊은 저음의 발성, 모든 부문에서 그의 음악 역사는 대신 세울 사람이 없는 현실입니다. 그의 노래에는 마력이 있다고 할 정도로 듣는 이들에게
전율을 느끼게 하는 감성의 목소리 소유자입니다.
20대부터 80대까지 폭 넓은 연령대의 팬들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前대통령을 비롯하여 특히 유명 연예인들이 그를 더욱 사랑하는 등 그의 문화적 계층과 폭넓은 사랑은 커다란 문화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의 약력에서 볼 수 있듯이 아직도 각종 여론 조사에서 그의 인기는 수위를 차지하는 등, 옛가수로는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역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큰 키와 미남형의 얼굴에 속칭, 옷걸이가 멋 있었으며, 깨끗한 무대매너등이 우리의 인상에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옛가수로는 거의 유일하게 공식 싸이트와 팬클럽 싸이트가 활발히 운영되어 사이버상에서도 그의 인기는 여전히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3대 독자로 후세를 남기지 못한 아쉬움이 그 무었보다도 안타깝고 유일한 혈육이었던 누이동생 마져 오빠의 병마와 타계를 지켜본 고통 속에 얻은 병마를 이기지 못해 아직 이른 나이인 지난 2003년 1월 모친과 오빠가 기다리는 하늘 나라로 떠나셨습니다.

 

이제 그를 대신해 그를 가수로 키워주시고 음악을 지도해 주신
외삼촌 김광빈님만이 팬들의 성원을 챙겨주시며 우리와 함께 그의 못다 이룬 음악역사를 지켜주고 계십니다. 그를 못잊어 하고 아끼는 팬들이 영원하는 한 그의 음악은 영원할 것이고 먼 후세에도 이어져갈 것입니다.



배호약력


배호
(裵湖, 1942년 4월 24일 ~ 1971년 11월 7일)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본명은 배만금. 아명(兒名) : 배신웅 (본 배호관련 자료들은 배호닷컴 기준임)


본명 배신웅
출생 1942년 4월 24일

중국

사망 1971년 11월 7일 (29)

서울 성북구

국적 이미지 대한민국
직업 가수
활동 시기 1963년 ~ 1971년












목차


생애

중국 산둥성에서 광복군이었던 배국민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난에 시달리며 자랐고, 12인조 배호 밴드를 결성해 서울 낙원동 프린스 캬바레 등에서 이름을 날렸다. 1966년 신장염에 걸렸으며 1967년 돌아가는 삼각지를 발표했다. 그후 신장염 투병중 1971년 11월 7일 성북구 미아10동 자택으로 오는 도중 병세가 악화되어 앰뷰런스 안에서 타계했고 묘지는 경기도 양주시 신세계 공원묘지에 있다.



약력

  • 부모 고향 *

평북 철산군(父), 평북 신의주(母)

  • 이름 소개 *

본명(호적):배만금 兒名(개명):배신웅

1942년 4월 24일, 중국 산동성 제남시 출생 (부친 - 광복군 출신)

1945년 - 광복 이후 인천수용소 거쳐 서울 창신동 적산가옥 거주

1949년 - 1954년 : 서울 창신 초등학교 수학

1955년 - 1956년 : 부산 삼성 중학교 (2년 중퇴)

1958년 - 1964년 : 외삼촌인 김광수(KBS, TBC악단장), 김광빈 악단(MBC 초대 악단장)과 (동화,천지, MBC 악단), 김인배 악단등에서 드럼 연주 활동


1963년 가수 데뷔(21세) (예명을 배호로 작명) 첫 취입곡[굿바이, 사랑의 화살]발표 (오리엔트 레코드)

1964 - 1965년 : 데뷔곡 음반 취입[두메 산골등 6곡](톱 힛트 레코드) "배호 와 그 악단" 캄보 밴드 운영

1966년 : 신장염 발병, [황금의 눈]발표(지구 레코드) [홍콩 66번지] 발표 (신세기 레코드)

1967년 : [누가 울어, 안개속으로 가 버린 사람]등 병상 취입 (뉴스타 전속)(1967년) [돌아가는 삼각지]발표(인기사상 드물게 20여주 연속 1위)(아세아 전속)

1967년 - 1968년 : 각 매스컴 주최 행사에서 가수상 수상, 각종 영화 출연. (MBC 10대 가수상(라디오), (TBC 방송가요대상)수상 등 **가수 사상 드물게 첫 히트곡 1위 후 4개월만에 10대 가수 선정**

1969년 - 1970년 : MBC 10대 가수상 수상(TV)등 (신세기 전속, 지구 전속) 가수 활동 5년동안 총 30여개 부문에서 각종 가수상 수상

1971년 7월 - "마지막 잎새", "영시의 이별"등 마지막 유작 음반 발표


1971년 11월 7일 - 신장염으로 투병 중 미혼으로 타계(만 29세) (2009년 현재 생존시 68세(만 67세) (타계 38주기) (투병 중 가수활동 5년(실제활동 4년)간 총 300여곡 발표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곡과 가장 많은 히트곡, 현재까지 팬 클럽등 가장 많은 매니아 팬 확보) (가수사상 드물 게 10여개의 음반사에 노래 취입) (옛 가수로는 유일하게 20여개 음반 발매중)

1981년 : MBC (TV) 특집 여론 조사 (가수 기여도 - 1위) 좋아하는 가수 1위 (최초 가요 60년사 여론 조사) 특별상 수상(타계 후 유족 수상)

1988년 : 배호 다큐멘터리 제작 방송(KBS 2R - 일요기획(연예 다큐멘터리 "가수 배호"))

1990년 : MBC(R) 특집 여론 조사 (좋은 목소리 - 1위)

1998년 : 조선 일보 (건국이후 음악 전문가 여론조사 (음악성) 가수 50인 중 - 6위)

1999년 : 월간 조선 (음악 전문가 조사 - 7위) MBC(R) 서울 시민 여론 조사 시민 전체 대상 - 21위 (타계가수중 1위) 50세 이상 대상 - 10위 (전체 가수 150위 중) KBS(2R) : 서울 시민 설문 조사 좋아하는 남자 가수 - 10위


2000년 11월 : 배호길(路)선정 (삼각지 로터리 이면도로) (대중가수 최초) (용산 구청)

2001년 11월 : 배호 노래비(1) 건립(돌아가는 삼각지) (삼각지 로터리 녹지) (용산 구청)

2001년 12월 : KBS(2R) 전국 설문조사 (좋아하는 남자가수 8위 - 타계 가수중 1위)

2002년 4월 : 배호 노래비(2) 건립(두메산골) (배호 묘지) (가요사상 최초 팬 성원으로 건립)

2002년 10월 : KBS 가요무대 "2002년 한국인의 심금을 울린 노래" 설문 조사 "사랑과 이별" 부문에서 2위와 4위 선정 종합순위 3위 선정 - [돌아가는 삼각지]

2003년 6월 : 배호 노래비(3) 건립(마지막 잎새) (경주시 현곡면) (두 번째 팬 성원으로 건립)

2003년 7월 : 배호 노래비(4) 건립(파도)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 (강릉시) (가수중 가장 많은 노래비(4개)가 전국에 건립되어 있음)

2003년 7월 : 월간 조선 인터넷 여론 조사 * 우리나라에서 노래를 가장 잘하는 가수 순위 - (1980년대 이전 부문) - 배호 3위

2003년 10월 : 대한민국 옥관 문화 훈장 수훈 (대한민국 정부)

2005년 6월 :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은 국민가수 10인으로 선정 (광복 60년 기념 KBS 가요무대 여론조사)

2006년 11월 : 배호 다큐멘터리 제작 방영(가객 배호) (KBS 1TV 수요기획)


작품 활동

가수 생활 5년간 300여곡을 남겼다.
배호가 노래한 돌아가는 삼각지, 즉 용산의 입체 교차로는 1994년에 철거됐고 배호 노래비만 남아있다.

  • 1971년 11월11일 예총 회관에서 치러진 장례식에는 소복 입은 젊은 여인들이 수백 미터나 늘어섰다.
  • 한국의 엘비스 플레스리라고 알려질 정도로 그의 음악성과 사후 인기가 엄청난 가수이다.
  • 한국가수로는 최고 많은 네개의 노래비가 전국에 세워져 있다.(용산:돌아가는 삼각지, 묘지:두메산골,경주:마지막 잎새, 강릉:파도) [편집] 가족관계
  • 아버지 배국민(1912-1955)
  • 어머니 김금순(1918-1995)
  • 여동생 배명신(1953-2003)
  • 외삼촌 김광빈(1922-2008)
  • 외숙모 안마미(2009현재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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