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모임에는 나타나지않는 동기 하나가 집으로 찾아왔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제주로 이사올 작정을 하고 부부가 살 터를 찾으러 와
여기저기 아는 인맥을 찾다보니 동기중에 한놈이 거기 있다고 알려줘서 왔단다.
이제 겨우 1년 9개월차에 들어설까말까한 제주도민이 무슨 조언을 해줄까?
졸업하고 8년가까이를 알고지냈고 믿을만한 놈이라 생각했던 동기에게도 뒤통수를 맞은
얼빵한 놈인, 나보다 제주를 더 빠삭하게 아는 동기에게 할 말은 별로 없었다.
망오름이라 부르기도 하고 느지리 오름이라고도 부르는 동네 뒷산에 오르면
남북으로 제주도의 끝과 끝이 보인다.
동으로는 한라산이 가로막아 동쪽 끝은 볼 수 없지만...
280여m 정상 오름에서도 제주도의 2/3쯤이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섬(?)이다.
초원에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는 말과 소가 평화롭지만 여름과 가을 문턱에서면
독오른 고양이마냥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며 수십년 자란 나무마저도
갈대처럼 흔들고 수수깡처럼 부러뜨리는 태풍으로 까탈을 부리는 곳이 제주도이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육지에서 자식을 낳아도 제주도민으로 인정하지만
육지에서 제주도로 이사를 온 사람은 3대쯤 자식을 낳아 길러야 제주도민으로
인정한다는 우스개 말이 있을만큼 폐쇄적이기도 하고 집에 놀러온 손님에게처럼
인정을 베풀기도 하는 사람들이 제주 사람들이다.
누군가 와서 "제주는..."하며 나름의 결론을 내리는 것을 보면 씩 웃는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고 기둥이다, 호스다, 야자수 잎같다 떠들며 자기가 만진 부위가
코끼리의 전부인양 떠드는 것과 같다.
내가 만진 제주도는 자연이 준 그대로만 보면 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는 어디서든 똑같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제주도는 제주도가 가진 독특한 자연에 반하면
온 것을 후회하지않는다.
"적게 벌지만…" 제주로 가는 사람들, 이유가
[중앙일보 2012.09.16]
바다 보고 별 헤며 놀멍 쉬멍 덜 벌지만 덜 쓰니 살 만해요
서귀포 바닷가 작은 마을 대평리에는 최근 서울에서 온 이주자들이 연 게스트하우스가 10여 군데나 된다.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서울의 한 대형 출판사 홍보 담당자로 일하던 허준영(37·여)씨. 올 초 그는 제주도 서귀포에 ‘이응’이라는 이름의 게스트하우스(주방·욕실을 공동으로 쓰는 서양식 민박집)를 열었다. 40년 가까운 서울살이를 미련 없이 정리했다. 바닷가 외딴 마을 대평리에서 낡은 집을 구입해 리모델링을 했다. 구입비 1억원과 리모델링비 8000여만원은 은행 대출과 저축, 부모로부터 빌린 자금 등으로 충당했다. 남편은 아직 직장에 다니고 있어 당분간은 주말부부다.
허씨는 “처음엔 남편이 반대했지만 ‘노후준비를 남들보다 좀 일찍 하는 셈 치자’고 설득했다. 앞으로 남편이 제주도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차차 의논해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허씨가 둥지를 튼 대평리엔 이렇게 서울에서 온 ‘외지인’이 많다. 게스트하우스와 식당 등이 최근 10여 곳이나 생겼다. 마을 가구수가 242가구(519명)에서 2년 새 261가구(540명)로 늘었다. 이 동네 게스트하우스 ‘치엘로’의 주인인 김영두(33)·이하늘(32)씨 부부도 지난해 서귀포에 내려왔다. 둘은 서울에서 맞벌이 부부였다. 휴일이 서로 달라 얼굴 한 번 제대로 맞대고 밥을 먹은 적이 드물었다. 사는 게 힘드니 몸도 자주 아팠고 다툼도 잦았다. 남편은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여행을 떠났고 제주도에 반해 돌아왔다. 평생 제주도라곤 초등학교 때 한 번 와본 아내를 1년 넘게 설득해 지난해 이사했다. 결혼 후 3년간 아이가 없던 부부는 50일 전 ‘제주둥이’ 딸도 얻었다.
인구 순유입 1년 새 5배로 늘어 도시인들의 제주 이주가 꾸준히 늘고 있다. 인구가 700명이 채 안 되는 서귀포시 구좌읍 월정리 같은 마을에도 최근 게스트하우스 4군데, 카페 5곳이 들어섰다. 개업을 위해 리모델링 공사 중인 집도 여러 곳이다. 대개 외지인들이 운영자다. “평당 30만원 하던 농가주택이 4배인 120만원까지 올랐다”는 얘기가 현지 부동산 업자들한테서 나오는 이유다. 주거비도 들썩인다. 외곽 지역 농가주택의 경우 연세(年貰) 200만~300만원이면 빌릴 수 있었지만 최근의 이주 바람 때문에 두 배 가까이 오른 곳도 있다.
수치로 봐도 이주 증가세는 뚜렷하다. 2009년까지 제주도는 들어오는 인구보다 나가는 인구가 많았다. 유입 인구가 유출 인구보다 많아지기 시작한 건 2010년. 437명에서 지난해 2343명으로 5배로 급증했다. 올해도 증가세가 가파르다. 7월 말 현재 벌써 3052명이다. 제주도 농업기술원이 실시하는 귀농교육 수료자도 2009년 40명이었는데 2010년 131명, 2011년 145명으로 늘었다. 2010년이면 올레길 열풍이 본격화된 시기다. 2007년 3000명에 불과하던 올레 방문객은 3년 만에 78만여 명으로 훌쩍 뛰어 지난해 109만 명을 기록했다. 올레길을 걸으러 제주도에 왔다가 아예 생활터전을 바꾸는 사례도 적지 않다.
연령별로는 은퇴를 앞둔 50대가 많지만 30∼40대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주로 서울·경기·부산 등 대도시에서 옮겨온 사람들이다. 한창 정신없이 일할 나이인 이 사회의 ‘허리 세대’가 하던 일을 접고 제주도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적게 벌더라도 적게 쓰고 시간적·정신적 여유를 누리고 싶어서”라는 이유에서다. 허준영씨는 “주말과 밤낮이 따로 없는 홍보 업무에 시달리며 몸과 마음이 고갈된다는 느낌이 늘 강했다. 필요 이상으로 가지려 욕심을 내고 그게 안 되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도시 생활이 몹시 피곤했다”고 말했다.
대평리에 온 후 그는 집 옥상에서 바다와 석양을 즐기고 밤 하늘의 별을 헤는 여유를 갖게 됐다. 벌이는 서울에서 직장생활 할 때보다 못하다. 하지만 그는 “시간대마다 달라지는 하늘 색깔만 봐도 마음이 넉넉해진다”고 말했다. 허씨는 제주도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 얼마 전 해녀학교 과정도 수료했다.
김영두씨도 이곳에 와서 낮술·낮잠·낚시의 매력을 발견했다. 서울에선 꿈꾸지 못했던 여유다. 그는 “우리 위 세대만 해도 자식 키워 놓고 노후자금 모아 나중에 즐기자는 생각이었지만, 내가 먼저 행복해야 주위를 둘러볼 마음도 생기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상근(37)씨는 지난해 2월 사업을 정리하고 제주로 옮겨오기 전까지는 여느 한국 아빠들과 다름없는 ‘불량아빠’였다. NHN·안그라픽스 등에서 일하다 디자인 업체를 운영하던 그는 아침 일찍 출근해 한밤중에 귀가하다 보니 아이들과 같이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2010년 말 한 달간 재충전 휴가를 제주도에서 보낸 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아빠와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된 아이들이 자신을 부쩍 따르는 모습을 보며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불과 10분 만 차를 타고 나가면 에메랄드빛 바다가 반기는 자연환경도 마음에 쏙 들었다.
그는 제주도 여행 도중 집을 알아보기 시작해 돌아오자마자 서울 집을 팔았다. 남원읍 위미리 새 집으로 오기까지 딱 한 달이 걸렸다. 현재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강연을 한다. 수입은 서울에서 벌던 것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무형의 수입은 그 이상이다. “서울에선 유치원 데려다주고 데려 오는 데만 1시간 넘게 걸렸다. 지금은 집 바로 앞 유치원에 온 가족이 함께 걸어간다. 그럴 때마다 이런 게 행복이구나 싶다. 예전엔 아빠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게 경제적 풍요라고 생각했다. 덜 벌지만 그만큼 덜 쓰니 크게 부족함을 못 느낀다. 서울에선 일 말곤 취미가 없었는데 여기선 틈나면 낚시를 한다. 누구와 비교할 일이 없으니 아이들 교육에도 스트레스가 덜하다.” 이씨는 “NHN에 근무할 당시의 동료 한 명도 가족을 데리고 제주도로 이사올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불량 아빠가 유치원 손잡고 가는 아빠로 서울보다 낮은 주거비와 생활비·교육비도 제주 이주를 결심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게스트하우스·카페·식당 등 소자본 창업이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이다. 이달 대평리에 이탈리아 음식점 ‘거닐다’를 연 박윤진(31)·여지현(28)씨 부부도 처음부터 제주행을 고려한 건 아니었다. 부부는 일본의 유명 요리학교 쓰지원을 졸업하고 요리학원 강사로 맞벌이를 했다. 허리띠를 졸라매 한 푼 두 푼 저축을 했다. 부부가 함께하는 식당을 차리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청담동·홍대 등의 보증금과 임대료는 눈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큰돈 벌 욕심 없고 그저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만한 곳을 찾다 보니 이곳에 오게 됐다”는 게 부부의 얘기다.
서울의 한 영화투자사에 다니다 지난해 한림읍 협재리에 카페 ‘최마담네 빵다방’을 연 최은별(35)씨도 사정이 비슷하다. 평소 취미로 빵과 과자를 구워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즐거워하던 그는 회사를 그만두면서 베이커리 카페를 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수천만원을 오르내리는 권리금과 월 수백만원대의 임대료에 질리고 말았다. 우연히 여행 온 제주에서 그는 지금의 집을 만났다. 10년 넘게 버려져 있던 집을 주인의 허락을 얻어 싹 뜯어고쳤다. 그는 “일에 대한 아쉬움도 있지만, 늘 마음 졸이며 스트레스 받기보다는 덜 벌더라도 적게 일하고 느리게 사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처럼 자연 회귀현상 대세로”
‘허리 세대’의 제주 이주가 많아진 배경엔 이처럼 ‘다운시프트(downshift)’라는 공통 키워드가 있다. 다운시프트는 원래 자동차 기어를 고속에서 저속으로 낮춘다는 뜻. 돈벌이와 성공에 쫓기는 숨가쁜 일상을 거부하고, 소비 규모를 줄여 정신적 여유를 찾으려는 움직임을 말한다. 돈을 많이 벌더라도 번 만큼 잃는 게 크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연세대 김호기(사회학과) 교수는 이를 젊은 세대의 ‘적극적인 후퇴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청년실업(20대), 육아스트레스와 과도한 사교육비(30대), 퇴출 공포(40대) 등을 이겨내는 방편으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걸 선택했다”는 것이다.
고려대 현택수(사회학과) 교수는 “삶에 다양한 형태가 있다는 가치관이 확산됐다는 걸 보여주는 현상”이라며 “정해진 공식이나 코스대로 살지 않겠다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라고 진단했다.
도시 탈출은 한때의 바람으로 사그라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신과 전문의 이나미 박사는 “선진국들의 경우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경쟁사회에 대한 피로감 탓에 자연으로 회귀하는 현상이 뚜렷한데, 우리도 머지않아 이런 경향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주=기선민·전영선 기자 murp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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