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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국 술 이야기


 

             고가 명주 못지않은 지방 특산주 많아...지도층도 고급 술 아닌 서민주 선호

                                  중국 술 구입 이렇게

고광석 한국수입업협회 상근부회장 | 제261호 | 2012031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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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차기 지도자 시진핑(習近平·습근평) 국가부주석은 지난달 미국 방문 당시 짬을 내 27년 전 홈스테이를 했던 아이오와주의 작은 농촌마을을 찾았다. 당시 방문객이던 시진핑이 집주인에게 무슨 선물을 줬는지 묻자 ‘바이주(白酒)’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는 “평생 그렇게 독한 술은 처음 맛봤다”고 말해 모두들 웃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시진핑이 현지 주민들과 함께 한 자리에 선물로 가져간 술은 구웨룽산(古越龍山) 화댜오주(花雕酒)였다. 1998년 빌 클린턴 대통령과 92년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방중 당시 선물한 술도 100여 년 묵은 같은 술이었다.중국이 외국 국빈들에게 접대용으로 사용하는 국빈주(國賓酒)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표적인 것만 봐도 바이주로는 마오타이(茅台), 우량예(五糧液), 궈자오(國<7A96>) 등이 있고 황주(黃酒) 계통으로는 구웨룽산 등이 있다. 

그러나 중국 술을 마실 때 이런 값비싼 국빈주만 찾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빈대떡 먹을 때, 고기 구울 때, 생선회 먹을 때 마시는 술이 다르다. 상대와 장소·시간·분위기에 따라 술을 다르게 선택하지 않는가.

옛날 중국의 어느 임금에게 신하가 물었다. “양귀비와 조비연(趙飛燕:몸이 가벼워 손바닥 위에서 춤을 췄다는 미인으로 한(漢) 성제(成帝)의 황후) 중에 누가 더 좋으시옵니까?” 임금이 말했다. “봄에는 매화가 예쁘고 가을이면 국화가 아름다운 법이지 어찌 매화와 국화를 같이 비교하겠는가!”바로 그렇다. 때와 장소를 안 가리고 고급 술만 찾는다면 풍류를 안다고 할 수 없으며 진정한 애주가의 반열에 오를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애주가가 시류에 따라 유명 브랜드를 찾는 쏠림현상을 보일지라도 필자는 나름의 원칙을 고수한다.

첫째, 어느 지방을 가든 그 지방의 특산주를 선택한다. 중국은 우리와 달리 기아로 수천만 명이 죽는 상황에서도 전면적인 금주정책을 시행하지 않아 양조비법이 쭉 전수돼 왔다. 덕분에 전국 어디를 가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술을 마실 수 있다. 지방 특산주들은 우선 가격이 싸고, 또 싸기 때문에 가짜가 적어 믿을 만하다. 무엇보다 그 지방의 음식과는 궁합이 잘 맞는다. 중국 속담에 “외진 데서 좋은 술 나고, 깊은 산에 명차 있다(僻鄕出好酒 深山有名茶)”는 말이 있다. 중국 대륙처럼 넓은 땅에 좋은 술이 어찌 한두 가지뿐이겠는가.

둘째, 부득이 고급 술을 구해야 할 경우는 아예 고급 백화점에서 사거나 군 간부 또는 공무원 등 믿을 만한 사람을 통해 입수한다. 공항 면세점에서 사는 것마저 믿을 수 없어서다. 술꾼 가운데 가장 어리석은 이는 아무 자리에서나 비싼 술을 고집하는 사람이고, 더 미련한 자는 큰돈을 주고 가짜 술을 사 먹는 사람이다.

셋째, 음식에 따라 술의 선택을 달리한다. 예를 들어 기름진 음식이나 매운 요리가 많은 산둥(山東)·쓰촨(四川) 지방에서는 향이 강한 바이주를, 담백하고 해물이나 채소요리가 많은 광둥(廣東)·상하이(上海)에서는 황주 또는 맑은 향의 바이주를 택한다.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선 각국 선수단을 환영하는 만찬이 베풀어졌다. 이 자리에 오르는 영예를 누린 술은 진류푸(金六福)였다. 지금 중국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술이다. 진류푸는 징주(京酒)와 함께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난 술로 평가받는다. 징주는 우량예가 베이징 서민을 위해 개발했다는 술이다.얼궈터우주(二鍋頭酒)의 역사는 금(金)나라가 베이징을 중도(中都)로 정하던 무렵 시작됐다. 얼궈터우주는 베이징을 찾는 세 가지 즐거움 중에 “만리장성에 오르고, 취안쥐더(全聚德)에서 오리를 먹으며, 훙싱 얼궈터우(紅星 二鍋頭)를 마신다”고 표시할 정도로 유명하다. 하지만 서민 애주가들을 위해 저가(低價)를 유지하라는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의 지시에 부응하느라 한때 품질이 나빠졌다.   

이는 훙싱 얼궈터우가 국가 전매품으로 지정되고 국가 물가지수의 산출항목 중 하나가 될 정도로 중시되면서 품질보다 가격에 연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엔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홍콩의 유명 가수인 천샤오춘(陳小春)이 부른 노래 중에 “얼궈터우 한 잔은 두 줄기 눈물을 마시는…”이라는 가사는 이런 세인들의 반응을 표현한 것이다. 중국 술을 고를 때 무작정 값비싼 고급만 찾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最古 양조장 수이징팡, 마오쩌둥의 마오타이, 5가지 곡식 우량예

한국인이 좋아하는 3대 중국 술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 제261호 | 2012031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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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한 바이주(白酒)들의 품질이 이미 좋아졌다. 1000위안(약 17만8000원) 이상의 고가 술을 마시는 이유는 주로 체면 때문이다.” 술값 폭등에 불만이 쏟아지자 한 유명 바이주 회사 측이 해명에 나섰다. 이에 앞서 중국의 지방·직능·군 대표들이 모이는 양회(兩會:전인대·정협)에선 바이주의 가격 폭등이 도마에 올랐다. 공직자들의 공금 남용, 바이주 기업들의 무분별한 탐욕, 물가 당국의 무기력을 질타하면서다.하지만 중국 고가 명주의 가격 상승엔 한국인들도 일조하고 있다. 무턱대고 비싼 술만 찾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최고 명주로 치는 마오타이·우량예보다 한국인들은 값이 더 비싼 수이징팡(水井坊)을 선호한다.수이징팡은 쓰촨(四川)성 성도인 청두(成都)시를 흐르는 진장(錦江)의 물로 만든다. 청두시는 예로부터 오곡이 풍성해 양조산업이 발달됐다.
 
청(淸) 건륭제 연간에 시작된 취안싱다취주(全興大麴酒)는 청두의 대표적인 술이었다. 1998년 8월 이 회사는 강변 수이징제(水井街)에 있던 양조장을 개축하다 고대 양조장인 주방(酒坊) 유적을 발굴한다. 국가문물국은 이곳이 원(元)·명(明)·청 3대에 걸친 옛 양조장 터였다고 인정했다.
 
당시까지 공인된 최고(最古)의 양조장은 1573년(명나라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쓰촨성 루저우(瀘州)의 술 발효창고였다. 600여 종의 미생물이 술맛을 깊게 한다는 ‘궈자오1573’은 루저우의 명주다.취안싱다취주를 만들던 청두의 주류업체는 역전의 계기를 찾았다. 2000년 수이징팡이란 술을 당시 최고가인 병당 600위안에 출시했다. 철저한 고가전략이었다. “가장 오래된 발효지에서 만든 가장 아름다운 술”이라는 광고를 내보냈다.중국의 국주(國酒)라는 마오타이주는 구이저우(貴州)성 런화이(仁懷)현의 마오타이진을 흐르는 츠수이허(赤水河) 물로 빚는다. 이곳 강물은 붉은색 토질의 영향을 받아 광물질이 풍부해 술맛을 깊게 한다. 1935년 홍군은 대장정 도중 인근의 쭌이(遵義)에서 격렬한 노선 투쟁을 벌였다. 당시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은 소련파를 물리치고 당권을 장악했다. 마오쩌둥과 동료들은 승리를 축하하며 마오타이를 거나하게 마셨다. 당시의 술맛을 잊지 못한 혁명 원로들이 1949년 개국 연회에서 이 술을 사용한 뒤 일약 명주 반열에 올랐다.우량예는 쓰촨성 창장(長江)과 지류인 민장(岷江)이 만나는 곳의 물로 만든다. 송대에는 다섯 가지 곡식이 들어간다 하여 잡량주(雜糧酒)로 불렸는데, 20세기 초 우량예로 변신했다. 현대 중국의 수학자 화뤄겅(華羅庚)은 “호탕하게 마시는 이태백도, 멋스럽게 마시는 도연명도 너무 일찍 태어났음을 한탄하리라(飮李太白 雅酌陶淵明 深恨生太早)”며 우량예의 술맛을 찬양했다.

술 한 말에 시 백 편, 이백,관복 잡히고 외상술, 두보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 제261호 | 20120311 입력
 
“술 한 잔에 시 한 수(一觴一詠).” 난정집(蘭亭集) 서문에서 왕희지(王羲之)가 말한 것처럼 내로라하는 중국 시인들은 대부분 애주가였다. 고대 중국의 민요를 모은 시경(詩經)에 실린 시 305수 가운데 술과 관련된 시는 50수. 여섯 수 중 한 수꼴이다. 당(唐)대의 현존하는 한시 5만여 편 가운데 술을 소재로 한 주시(酒詩)의 비율은 10%다. 애주가로 유명한 이백(李白)은 자신이 지은 1500여 수 가운데 11.3%인 170수나 됐다. 두보(杜甫)는 더했다. 1400수 가운데 300수로 21.4%에 이른다. 도연명(陶淵明)과 송(宋)대의 여류시인 이청조(李淸照)도 각각 50수를 넘는다. 한시(漢詩) 속에 나타난 술 이야기를 살펴본다.
 
이미지 20세기 중국 화단의 대가 장다첸(張大千:1899~1983년)이 남송(南宋)의 화가 양해(梁楷)의 작품 ‘이백행음도(李白行吟圖)’를 보고 그린 작품이다.
장다첸은 지난해 전 세계 경매 총액 5억 달러(약 5600억원)를 기록했다.
‘달 아래 혼자 마시는 술(月下獨酌)’을 지은 이백은 애주가였다. “이백은 한 말의 술에 시 백 편을 짓고, 장안의 저잣거리 술집에서 잠을 자네. 천자가 불러도 배에 오르지 않고, 스스로 술 취한 신선이라 부르네(李白斗酒詩百篇, 長安市上酒家眠. 天子呼來不上船, 自稱臣是酒中仙)”라고 두보는 ‘음주팔선인(飮酒八仙人)’에서 노래했다. 이 시의 배경에는 이백과 당 현종이 등장한다.당 현종이 궁궐 뜰에 모란이 피자 양귀비의 손을 잡고 산책을 했다. 궁중음악가 이구년(李龜年)이 옆에서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웠다. 현종은 늘 듣던 곡이라며 싫증을 냈다. “한림학사 이백을 불러 새로운 노래를 만들게 하라”고 지시했다. 측근인 환관 고역사(高力士)가 한림원(翰林院)으로 사람을 보내 이백을 찾았지만 행방이 묘연했다. 장안(長安)성 전역에 비상이 걸렸다. 이백은 낮부터 술집에서 대취해 자고 있었다. 관리가 이백을 깨웠지만 여전히 인사불성이었다. 궁궐로 끌려온 이백을 본 현종은 그를 쉬게 한 뒤 직접 해장국까지 떠먹였다.
 

이백은 그제야 잠에서 깼다. 황제가 노래를 새로 지어 달라고 하자 이백은 “신은 한 말의 술로 시 백 편을 쓰고, 취한 뒤 시흥이 샘물과 같다”며 술부터 요청했다. 마지못해 현종이 술을 내렸다. 양귀비를 찬미해 “모란꽃과 경국지색 서로 반기니, 임금은 미소 짓고 바라보네(名花傾國兩相歡, 長得君王帶笑看)”라는 ‘청평조(淸平調)’ 세 수가 이때의 작품이다. 

한때 이백의 술친구였던 두보 역시 주당이었다. 궈모뤄(郭沫若)는 저서 이백과 두보 에서 “술 취한 이백이 강물 위에 비친 달을 건지려다 죽었다는 전설은 거짓이지만 두보가 상한 쇠고기를 먹은 뒤 술을 마셔 독이 빨리 퍼져 죽은 것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민중시인’으로 불리는 두보이지만 그는 관복을 저당 잡히고 도처에 외상 술값이 널려 있을 정도로 애주가였다.조정서 돌아오면 날마다 봄옷을 저당 잡혀(朝回日日典春衣)매일 강가에서 만취해 돌아온다(每日江頭盡醉歸). 외상 술값은 가는 곳마다 있고(酒債尋常行處有) 인생 칠십은 예로부터 드물다네(人生七十古來稀).

 (두보, ‘곡강(曲江)’)취음선생(醉吟先生)으로 불린 백거이(白居易)는 대략 2800여 수의 시 중에서 800여 수의 음주시를 남겼다. 그에게는 친구가 셋 있었으니 술과 시, 거문고였다. “오늘 북창 아래에서(今日北窓下), 무엇 하느냐고 스스로 묻네(自問何所爲). 기쁘게도 세 친구를 얻었는데(欣然得三友), 세 친구는 누구인가(三友者爲誰) 거문고를 뜯다가 술을 마시고(琴罷輒擧酒), 술을 마시다 문득 시를 읊으며(酒罷輒吟詩). 세 친구가 번갈아 이어받으니(三友遞相引), 돌고 돎이 끝이 없구나(循環無已時).”(백거이, ‘북창삼우(北窓三友)’)주시(酒詩)는 난세에 더욱 유행했다. 당에 앞서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죽림칠현(竹林七賢)과 풍류시인의 전성기였다. 도연명은 술을 마시기 위해 관직에 나갔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팽택은 집에서 백 리쯤 되고, 공전(公田)의 수확으로 족히 술을 빚어 마실 수 있어 팽택의 지방관직을 얻었다(彭澤去家百里, 公田之利, 足以爲酒, 故便求之).”(도연명, ‘귀거래사(歸去來辭)’) 그는 ‘음주(飮酒)’라는 20수 연작시에서 술을 ‘망우물(忘憂物·근심을 잊게 하는 물건)’이라고 명명했다.  

 

또 “잔 하나로 홀로 마시다 취하니, 빈 술단지와 더불어 쓰러진다(一觴雖獨進, 杯盡壺自傾)”고 노래했다. 술 취해 쓰러진 자신을 넘어진 술병에 빗대 노래한 것이다. 절묘한 표현이다. 그가 ‘술을 끊으며(止酒)’라는 시에 밝힌 음주의 변이 흥미롭다. “평생 술을 끊지 않은 것은(平生不止酒), 술을 끊으면 즐거움이 없기 때문이고(止酒情無喜), 저녁 무렵 끊으면 잠을 이룰 수 없고(暮止不安寢), 새벽에 끊으면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음이라(晨止不能起).” 이 시는 사실 탐탁지 않아했던 이가 초대한 술자리에 가기 싫어 지었던 것이다. 

술을 남자처럼 사랑했던 미녀 시인 송나라의 이청조도 유명하다. 대표작 ‘여몽령(如夢令)’은 주시의 백미다. “어젯밤 비는 드문드문 바람은 세찼지, 깊은 잠에도 술기운은 남아 있네. 발을 걷는 이에게 물어보니, 도리어 해당화는 전과 같다고 하네. 아는가, 아는가. 잎사귀는 무성해도 꽃은 시드는 것을(昨夜雨疏風驟, 濃睡不消殘酒. 試問捲簾人, 却道海棠依舊. 知否知否. 應是綠肥紅瘦).” 흘러가는 봄을 아쉬워하는 심경을 담은 시구 ‘녹비홍수(綠肥紅瘦)’가 압권이다.

중국에서 술은 망국(亡國)의 소재로도 자주 인용됐다. 그래서 국정 운영을 재정비하려는 통치자들은 곧잘 금주령을 내리곤 했다. 성군의 대명사인 우(禹)임금은 신하가 올린 술을 마신 뒤 “후세에 반드시 술로써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을 것”이라고 경계했다. 과연 하(夏)의 걸(桀) 왕, 은(殷)의 주(紂) 왕이 모두 술과 미녀에 빠져 나라를 잃었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의 고사가 이때 나왔다.  

 
하·은의 멸망을 거울 삼아 주(周)나라는 술을 금했다. 주나라 역사를 담은 서경(書經) 에는 술이 초래하는 재앙을 경계한 ‘주고(酒誥)’ 편이 나온다. 특히 무리 지어 술 마시는 군음(群飮)은 죽음으로써 벌했다는 기록까지 있다. 이후 한(漢), 후조(後趙), 북위(北魏), 원(元), 명(明), 청(淸) 시기에도 금주령이 내려졌다는 기록이 있다. 정치적 혼란과 흉작 등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내린 조치였다.'삼국지'의 영웅 조조(曹操)가 군량미를 아끼려 금주령을 내렸을 때였다. 수하의 장수 서막(徐邈)이 금주령에 아랑곳하지 않고 몰래 술을 마시고 대취했다. 마침 조사 나온 검사관이 추궁하자 서막은 “성인에 빠졌소(中聖人)”라고 대답했다. 보고를 들은 조조가 크게 화를 냈다. 곁에 있던 장군 선우보(鮮于輔)가 “술꾼들은 종종 청주(淸酒)를 성인(聖人)에, 탁주(濁酒)를 현인(賢人)에 비유합니다. 서막이 술에 취한 행동은 우발적 사건일 것입니다”며 변호했다. 이때부터 술은 성인(聖人)이란 별칭을 얻었다.조조의 금주령에 당시의 문인클럽인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인 공융(孔融)이 반발했다. “노(魯)나라는 유가(儒家)로 손상을 당했지만 문학을 포기하지 않았고, 하·상은 부인으로 인해 천하를 잃었지만 혼인을 중단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술을 금한다는 것은 곡식을 아끼려는 것일 뿐 망국의 경계로 삼으려는 것은 아닙니다.”촉(蜀)나라의 유비(劉備)도 천하통일을 위해 금주령을 내렸다. 민간에서 사사로이 술을 담글 수 없도록 옹기를 모두 몰수하는 조치까지 내렸다고 한다.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혁명 1세대는 술을 즐겼다.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은 술과 파티를 즐긴 편이었다. 하지만 1979년 권력을 잡은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 이후 제3세대의 장쩌민(江澤民·강택민) 시대, 제4세대인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시대에 지도층 인사의 음주 추태와 관련한 뒷담화는 사실상 없는 편이다. 언론 통제도 작용했겠지만 그만큼 위정자가 술을 조심한다는 이야기다.2007년에는 현대판 금주령이 화제에 올랐다. 주인공은 허난(河南)성 신양(信陽)시. 시 정부는 공무원들이 오찬에 술을 곁들이는 관행을 전격 금지했다. 전국적으로 찬반 양론이 격화됐다. 베이징대 법학원 교수가 “(공무원) 금주령은 법치정신에 부합된다”고 결론지으면서 논란은 잦아들었다. 이후 산둥(山東)·구이저우(貴州)·산시(山西)·저장(浙江)·장쑤(江蘇) 등의 여러 지방으로 ‘오찬 금주령’이 확대됐다.중국 사회에선 술에 대해 험담과 예찬이 교차한다. 애주가 구양수(歐陽脩)는 이렇게 말했다. “취옹의 뜻은 본래 술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산수 자연에 있다. 산수 자연의 정취를 마음으로 느끼고 술에 기탁한 것이다(醉翁之意不在酒. 在乎山水之間也. 山水之樂, 得之心而寓之酒也).” 술은 수단일 뿐 술에 사로잡혀 본말을 전도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다.

 

 

 무송과 관우가 마신 술 황주(黃酒)

 

‘수호지’ 최고 호걸 중 한 명인 무송(武松)은 사발로 술을 18잔

을 마시고 고개를 넘다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았다. 그러나 
무송이 우리가 흔히 아는 중국술 백주(白酒)를 18사발 마셨다면 호랑이를 때려잡기는커녕 주막을 나서지도 못했을 것이다.

 

‘삼국지’의 관우는 ‘데운 술이 식기도 전에’ 화웅의 목을 베고 돌아와 따뜻한 술을 들이켰다. 관우가 마신 술도 삼국지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당연히 발효주였을 것이다. 고량주와 같은 독한 술을 데워 마신다는 개념 자체가 어색하다.


중국 4대 기서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어떤 술을 마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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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중국의 4대 기서(奇書·삼국지연의,수호지,서유기,금병매)

하나로 손꼽히는 수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책 내용은 양산박 (현재의 山東성 수장(壽張)현 근처로 추정)이라는 水上 세계를 무대로 권력의 부당한 압제에 항거하는 호걸 108명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양산박의 주요 인물 중 상당수는 당시 하급군인과 직책이 낮은 행정관리 출신으로, 비록 그 지위는 높지 않았지만 이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민중 지도자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北宋(960~1127)의 제8대 황제인 휘종의

치세기다. 휘종은 명군으로 평가받는 신종의 아들로, 원래 왕위 계승 서열로는 황제가 될 가능성이 없었으나, 형인 철종이 후사 없이 일찍 죽는 바람에 생각지도 않게 황제가 되는 행운을 누린 인물이다.

 

휘종은 ‘풍류천자’로 불릴 정도로 한량 기질이 강했다. 황제가 되자 국정보다는 그 자신을 위해 국고를 탕진했다. 결국 그의 무책임하고 방만한 국가 운영은 150년 이상 지속돼오던 북송이 금나라에 의해 멸망당하는 결정적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휘종의 시대에 조정은 부패한 간신과 환관들이 득세하며 통제 없는 권력을 휘둘렀다. 수호지는 역사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만든 창작물이기 때문에 소설에 나오는 고위 관리들은 대부분 실제 존재했던 인물들이다. 당시 4명의 간신, 즉 사간(四奸)으로 불렸던 재상 채경, 환관인 동관과 양진, 그리고 고구 중에서, 특히 고구는 소설의 처음부터 주요 인물로 등장해 마지막까지 대표적인 악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런 그들의 시각에서는 조정에 대항해 활동하는 양산박의 호걸들은 민초의 불만을 대변하는 민중 지도자라기보다 불법을 저지른 전과자이면서 천하를 어지럽히는 한낱 도적의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양산박 108 호걸

16세기 후반 명대에 등장한 수호지는 저자도 명확하지 않고, 그 판본도 70회분, 100회분, 120회분 등 다양해 처음 소설이 지어진 후 상당한 첨삭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중 기본이 되는 70회분에서는 개별 호걸이 양산박으로 집결하는 과정을 옴니버스 구성으로 독립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때문에 마치 한 편씩 독립된 단편소설처럼 즐길 수 있다.

 

그중에서도 수호지 최고 호걸 중의 한명인 武松이 등장하는 장면은 그의 형 무대(武大)와 형수 반금련, 그리고 형수의 정부 서문경이 어우러져 흥미롭게 전개되면서 수호지 중 가장 재미있는 부분으로 인정받고 있다.

 

여기에서 서문경과 반금련의 관계는 또 다른 중국의 4대 기서인 금병매의 중심 내용을 이루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수호지 관련 내용이 중국 4대 기서의 절반을 차지하는 셈이다.

 

수호지 22회분에서 무송은 소선풍 시진의 집에서 수호지의 중심인물인 송강을 우연히 만나 의기투합한 뒤, 길을 떠나 고향의 형을 만나러 가게 된다. 고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도중에 경양강(景陽崗)이라는 험준한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그 근처에 도달했을 때 어느덧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마침 무송은 고개 아래에 있는 주막을 발견했다. 그런데 주막에는 ‘삼완불과강(三碗不過崗)’이라는 의미심장한 글이 씌어 있었다. 주막의 ‘술 석 사발을 마시면 고개를 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주막 주인은 자기 집 술이 투병향(透甁香·향기가 술병을 뚫고 나갈 정도의 술)으로 불릴 정도로 향과 맛이 좋지만 한편으로는 출문도(出門倒·문을 나가자 마자 쓰러질 정도의 술)로 불릴 정도로 독한 술이기 때문에, 아무리 돈을 내고 마시는 손님이라도 한 사람에게 석 사발 이상을 팔 수는 없다고 미리 다짐을 한다.

 

그러나 무송은 석 잔을 마신 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술을 더 요구한다. 주인이 만류해도 소용없었다. 결국 기어이 18사발을 마신 무송은 취기에 호기롭게 주막을 나선다. 그러고는 만취 상태에서 어두운 고갯길을 걷던 중 때마침 나타난 큰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는다. 이 일은 무송타호(武松打虎)라는 고사로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무송의 취중 무용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비록 친형제이긴 하지만 무송과는 달리 못생기고 약골이면서 가난한 친형 무대와 재회하고 나서의 일이다.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형수로 등장하는 요녀 반금련이 마을의 유지 서문경과 눈이 맞으면서 발생한다. 무송은 결국 무대를 독살하면서까지 불륜을 저지르는 반금련과 서문경을 죽인 죄로 맹주로 귀양을 간다.

 

그런데 그곳에서 감옥을 관리하던 전옥(典獄)의 아들 시은의 부탁으로 동네 건달이자 힘이 천하장사인 장문신과 대결을 벌이기 위해 쾌활림(快活林)이라는 곳으로 가는 장면이 나온다. 결투 날, 무송은 채비를 갖추고 떠나기 전 시은에게 쪽지를 보여준다. 거기에는 ‘무삼불과망(無三不過望)’이라고 적혀 있었다. 의아해하는 시은에게 무송은 “술이 없이는 싸울 힘과 기분이 나지 않는다. 쾌활림까지 가는 길에 보이는 주막마다 석 사발씩 술을 마시지 않고는 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출발장소인 성문에서 쾌활림까지는 십사오리 거리로, 족히 여남은 개의 주막이 있기 때문에 한 주막에서 석 사발씩이면 무려 서른대여섯 사발을 마셔야 된다는 뜻이었다. 시은은 결전을 앞둔 무송이 술에 취해 일을 그르칠까 못내 걱정스러웠지만, 무송은 보란 듯이 보이는 주막마다 들러 술을 마신다. 그러고는 취한 상태에서 동네의 소문난 역사 장문신을 완력으로 거뜬히 무찌른다.

 

반금련을 죽이고 귀양 간 무송

그렇다면 무송이 경양강 고갯길 앞 주막과 쾌활림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주막에서 마신 술은 과연 어떤 종류의 술이었을까? 오늘날 중국 술이라고 하면 누구나 금방 떠올리는 고량주, 즉 백주(白酒)였을까?

 

기름진 중국 요리에 곁들여 작은 잔으로 조금씩 마시는 독특한 향의 독한 백주는 아무도 부인할 수없는 중국 술의 상징이다. 그러나 유구한 중국역사를 통해 백주와 같은 높은 도수의 술이 중국 사회에 소개된 것은 뜻밖에도 그렇게 오래전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연에 존재하는 효모균이 과일이나 곡물 속에 있는 당 성분에 작용해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발효주에 비해, 인위적인 증류 과정을 거쳐 알코올 농도가 높은 술을 얻는 증류주는 인류 역사를 통해 훨씬 늦게 소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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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의 대표 술인 소흥주.

 

오늘날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백주의 경우, 알코올 농도가 50도 이상인 제품이 허다하다. 그런데 이렇게 높은 도수의 술을 만드는 데 필요한 증류 기술은 세계 최대 제국을 건설한 몽골의 전성기 때 아랍 세계를 통해 중국으로 들어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중국 명나라 시절의 이시진이 저술한 유명한 약학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도 ‘증류주인 소주는 과거에는 없었고 원나라 때부터 나타난 술이다. 소주를 만들려면 보통 술을 용기에 담아 끓여서 증기가 오르게 해 그릇에 떨어지는 술 방울을 받아 담는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지금도 볼 수 있는 소줏고리로 소주를 내리는 전통적인 방법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 또한 우리나라 소주가 고려 시절 몽골 침략 당시 몽골군에 의해 그 제조 방식이 소개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랄 일이 아니다. 오늘날 전통 제조 방식에 의한 생산으로 유명세를 타는 안동소주도 과거 안동에 몽골군의 병참기지가 있던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아랍에서 들여온 白酒

물론 일부에서는 간헐적인 자료를 토대로 중국에서의 증류주 역사가 이보다 더 오래되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아직 학문적으로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중국술의 기원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의적(儀狄)이다. 서한(西漢) 때의 책인 전국책(戰國策)에는 “옛날 황제(黃帝·중국 전설상의 임금)의 딸 의적이 술을 맛있게 빚어 하나라 우왕에게 올렸더니, 우왕이 이를 맛보고는 후세에 반드시 술로써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으리라고 하였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또 한 명은 河나라의 다섯 번째 왕으로 알려진 두강(杜康)으로, 지금도 그의 고향인 중국 河南성 뤼양(汝陽)현에서는 두강의 업적을 기린 기념관과 함께 매년 술의 시조로 모시는 제사가 행해지고 있다. 역사학적 고증 측면에서는, 두강 쪽이 보다 많은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어차피 술이라는 것이 특정한 사람의 창의적 발명품이 될 수 없기에 논쟁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인지 모른다.

이 때문인지 옛 중국의 대표적 시인 도연명(365~427)은 이 두 명을 엮어 ‘의적이 술을 만들었고, 두강은 이를 발전시켰다’라고 나름대로 슬기롭게 이들 관계를 정리하기도 했다. 현재 두강기념관은 ‘옛 두강이 만든 술은 오늘날의 백주가 아니다’고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따라서 몽골제국(1206~1368) 이전의 중국에서는 증류주인 백주를 마셨던 것이 아니라 도수가 그리 높지 않은, 오늘날의 와인이나 막걸리와 같은 발효주 계통의 술을 마셨던 것이다.

 

수호지의 무송이 마셨던 술도 그 무대였던 북송이라는 시대를 감안하면 당연히 그런 종류의 술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리 천하의 무송이라 한들 오늘날의 고량주와 같은 술을 사발로 18잔을 마시고 호랑이를 때려잡거나, 30사발이 넘는 술에 맨 정신의 천하장사를 상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술로써 일세를 풍미했던 천하의 이태백인들 그의 유명한 시 ‘월하독작’에서 ‘꽃발 가운데 술 한 항아리 함께 한 없이 홀로 마신다(獨酌無相親)’를 읊으면서, 그 독한 고량주를 혼자서 항아리째 마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일 그랬다면 시상이 떠오르기는커녕, 즉시 혼수상태로 들어가 생명이 위태한 지경에 처했을지 모른다.

 

또 다른 중국 4대 기서의 하나인 ‘삼국지’에서 유명한 장면 하나를 생각해보자.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소설이다.

중국 한나라 말기의 혼란기에서 시작해 새로운 질서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이른바 삼국정립(三國鼎立)의 형세를 만든 위, 촉, 오 세 나라를 둘러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14세기에 만들어진 이 장편소설은 영원한 베스트셀러로 불릴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영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그야말로 쟁쟁한 영웅호걸들과 지도자들이 등장하는 이 책의 인물 중에서 단연 중심에 서 있는 주인공은 도원결의로 의형제의 연을 맺게 되는 유비, 관우, 장비다. 그밖에 세 의형제에 견줄 만한 스타급 등장인물로는 제갈공명, 조자룡, 조조, 여포 등을 꼽을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수호지 등장인물들을 삼국지의 영웅들과 비교해본다면, 무송은 관우형 인물이고 무송과 견줄 만한 또 다른 호걸 임충은 조자룡형 인물이라고 하겠다.

 

아무튼 삼국지연의의 수많은 등장인물 중 관우는 무용에서나 그 인품 면에서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독보적이다. 오관참육장(五關斬六將)의 무용담을 필두로 삼국지연의 곳곳에서 그의 활약은 별처럼 빛난다. 특히 그는 무장으로서의 출중한 실력을 넘어 인격적으로도 여타 장수들과는 격이 다른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오죽하면 후세에 그의 사당을 지어 신(關神)으로 모시며 추앙하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줄을 짓겠는가.

 

이런 관우가 아직 세상에 제대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책 초반부 이야기다. 당시 한 왕실을 유린하고 있던 동탁에 맞서 원소를 맹주로 한 중국 천하의 제후 연합군이 대결하는 장면이 나온다. 유비와 함께 관우, 장비도 비록 변변치 못한 지위였지만 연합군에 합류하고 있었다.

 

화웅의 목을 벤 관우

그런데 연합군은 사수관이란 곳에 이르러 동탁군의 맹장 화웅에 의해 가로막히고 만다. 사나운 화웅은 연합군 장수들을 추풍낙엽처럼 처치하며 연합군을 꼼짝도 못하게 만든다. 원소는 연합군의 제후, 장수들과 대책을 논의하면서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고 “이 자리에 나의 장수 안량과 문추 중 한 사람만 있었더라도 저까짓 화웅 따위에게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지는 않을 텐데”라고 한탄하고 있었다.

 

그러자 당시 마궁수(馬弓手)라는 보잘것없는 직책에 있던 무명의 관우가 앞으로 나서면서 자기가 화웅의 목을 베어 오겠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듣고 원소의 사촌 아우 원술이 대뜸 “아무리 우리가 이런 처지에 있다고 하더라도 미관말직의 현령(유비를 일컬음) 밑에 있는 마궁수 따위를 장수로 삼아 화웅의 상대로 내보낸단 말입니까?”하고 말하며, 당시 시골 현령 직에 있던 유비까지 싸잡아 조롱한다.

 

관우의 발언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좌장 원소도 원술의 의견에 동조한다. 이때 장차 삼국지연의 내내 관우와 특별한 인연이 지속되는 삼국지의 또 다른 주인공 조조가 나서면서 “그의 용모가 예사롭지 않으니 한번 기회를 주어봅시다”라며 관우를 거들고 나선다. 이에 관우도 “화웅의 목을 베어 오지 못하면 저의 목을 바치겠습니다”라며 출전 의지를 다시 내세운다. 그러자 원소도 마지못해 그의 출전을 허락한다.

 

여기서 그 유명한 ‘데운 술이 식기도 전에’라는 일화가 탄생한다. 즉 출전하는 관우에게 조조가 데운 술을 권하며 “이 술 한 잔을 들고 가시오”라고 하자, 관우는 “술은 그냥 두십시오. 갔다 와서 마시겠습니다”라며 일단 사양한다. 그러고는 출전하자마자 순식간에 화웅의 목을 베고 온 뒤 그 술을 마시니, 술은 식지 않고 여전히 따뜻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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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통주 사케.

이때 관우가 마신 술도 삼국시대(189~280)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할 때 당연히 발효주였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술을 데워 마셨다’는 그 기술이다. 술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고량주와 같은 독한 술을 데워 마신다는 개념 자체가 매우 어색하다. 더욱이 관우가 마신 술이 증류주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발효주만을 놓고 보면, 술을 따뜻하게 해서 마시는 풍속은 그렇게 낯선 것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술을 마시는 것은 오랜 옛날부터 세계 각국에서 행해지던 음용법이었다. 일본의 전통술인 일본주,사케는 오늘날 우리에게 데워 먹는 술로는 가장 널리 알려졌다. 물론 지금도 고급 일본주는 차가운 상태에서 그대로의 향과 맛을 즐기지만, 추운 겨울날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사케 한 잔은 그 특유의 풍미로 애주가들을 사로잡고 있다.

 

데워 마시는 사케와 글루바인

독일에서 유래된 글루바인(Glu‥hwein, warm wine)은 와인에 각종 향료들과 과일, 그리고 설탕을 넣은 뒤 데워 마시는 술로, 유럽의 대표적인 ‘데워 마시는 술’이다. 이 술은 영어로는 멀드 와인(Mulled Wine), 프랑스어로는 뱅쇼(Vin Chaud)라고 한다. 주로 크리스마스 시즌을 중심으로 겨울철에 마시는 이 술은 적포도주를 이용해 만드는데,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와인 바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중국에서도 주로 데워서 마시는 유명한 술 종류가 하나 있다. 앞서 삼국지연의에서 관우가 마신 술이 발효주라는 것과 데워서 마셨다는 두 가지 점을 고려하면 이 술과 거의 같은 형태의 술로 생각할 수 있다. 바로 황주(黃酒)라는 이름을 가진 또 하나의 중국 전통술이다.

 

황주는 흰색(실제로는 투명한 색)을 띠고 있어 백주라는 이름이 붙은 중국 전통 증류주에 견주어, 술의 색깔을 감안해 붙여진 이름이다. 참고로 와인의 경우 적포도주의 특징적인 색깔 때문에 중국에서는 홍주(紅酒)로 불린다.

 

황주는 찹쌀 또는 차조를 주원료로 만든 발효주로서 발효에 보리누룩을 사용해 짙은 황색을 띤다. 알코올 도수는 같은 발효주인 와인이나 일본 청주와 비슷한 14~18% 이고, 맛이 진하면서도 부드러워 각종 요리 맛을 내는 데에 사용된다. 황주는 그 오랜 역사와 함께 종류도 셀 수 없이 많지만, 현재는 백주가 워낙 인기를 끌면서 상대적으로 생산지가 줄어 그 생산량도 함께 줄고 있다.

 

황주 중 가장 유명한 술은 단연 소흥주(紹興酒)다. 소흥주의 생산지인 사오싱(紹興) 현은 중국 저장(浙江)성에 있는 작은 도시로, 역사적으로는 춘추시대 월(越)나라 수도가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바로 그 유명한 와신상담 古事의 주인공인 월왕 구천이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역사를 썼던 곳이다.

 

월왕 구천이 쓰라린 패전 이후 오왕 부차에게 바쳤던 술이 소흥주라는 설도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와신상담 과정에 구천이 온갖 모욕을 견디면서 복수의 칼날을 갈며 부하들과 남몰래 마셨던 술도 바로 소흥주였을 것이다. 사오싱현은 근대 중국의 대문호 루쉰(魯迅)을 배출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황주의 대표 소흥주

소흥주는 이렇게 황주 중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술이다. 찹쌀을 보리누룩으로 발효시켜 사오싱현 교외에 있는 약간의 미네랄이 포함된 젠후(鑒湖)의 물로 빚는다. 누룩 이외에 신맛이 나는 재료나 감초를 원료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제조 방법은 찹쌀에 누룩과 술, 약을 넣어 발효시키는 복합발효법이 주로 사용된다. 색깔은 황색 또는 암홍색으로, 오래 숙성하면 향기가 더욱 좋아져 상품가치가 높아진다.

 

소흥주는 만드는 방법에 따라 원홍주(元紅酒), 가반주(加飯酒), 선양주(善釀酒), 향설주(香雪酒) 4가지로 나뉜다. 이 중 원홍주와 가반주는 약간 쓴맛이 돌고, 나머지는 단맛이 난다.

원홍주는 소흥주 전체 생산량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생산량이 많다. 1979년 全國評酒會議에서 우량주로 선정되기도 했다. 원홍주라는 이름은 술 가마에 붉은 칠을 해 붙여졌다고도 하고, 첫째로 맛있는 술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반면 가반주는 그 이름 때문에 반주로 마시는 술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다른 소흥주에 비해 찹쌀을 10%가량 더 사용하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향설주는 도수가 20% 정도로 비교적 높으며 그 맛은 달고 향이 진하다. 선양주는 원홍주를 2~3년 묵혔다가 빚은 것으로, 옛날 어떤 선량한 노파가 신선으로부터 이 술을 얻었다 해서 이러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소흥주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옛날 사오싱 인근에 살던 한 남자가 아내가 아이를 갖자 기분이 좋아 아이가 태어나면 친구들에게 대접하기 위해 술을 빚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딸이 태어나자 화가 나 술을 마당 한구석 나무 밑에 묻어버렸다. 훗날 딸이 총명하게 자라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친지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옛날 묻어버렸던 술이 생각나 땅을 파보니 아주 맛있는 술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술을 ‘뉘얼훙(女兒紅)’이라고 불렀으며 그 후 사오싱 지방에서는 딸을 낳으면 술을 빚어 땅에 묻어두는 관습이 생겼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소흥주 뉘얼훙이 탄생한 배경이다.

 

이밖에도 소흥주에는 유명한 화조주(花雕酒)가 있다. 이것은 가반주의 하나인데, 소흥 지방에서 예로부터 딸을 갖게 되면 가반주를 빚어 꽃을 그려 넣은(花雕) 항아리에 담아두었다가 딸의 혼례를 치르는 날 축하주로 내놓는 습속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는 술을 담은 술독에 꽃무늬가 배어나온다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보통 10년 정도 숙성시켜 만든다. 이런 까닭에 술을 얼마큼 묵혔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화조주도 가반주에 속한다. 이렇게 해서 특히 오래 묵힌 술은 이름 앞에 ‘천녠(陳年)’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여기서 ‘천(陳)’은 오래되었음을 뜻하는 말이다

 

소흥주는 앞서 말한 대로 따뜻하게 데워서 마시는 것이 그 풍미를 감상하는 데 제격인데, 이때 마른 매실을 술에 넣으면 그 맛을 더 풍부하게 해준다고 알려져 있다. 소흥주는 우리나라에서도 웬만한 중국집에서는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술이기 때문에, 고량주와 같은 백주 일변도의 중국 술에서 벗어나 한 번쯤은 새로운 장르의 중국 술을 접해보는 것도 생활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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