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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의 유언
自燈明 (자등명)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自歸依 (자귀의) 스스로에게 의지하라.
法燈明 (법등명) 진리를 등불로 삼고
法歸依 (법귀의) 진리에 의지하라.
1.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스스로를 의지처로 삼을 것이며,
법을 등불로 삼고 법을 의지할 곳으로 삼을 지니라.
남을 등불로 삼거나 남을 의지할 것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장아함경- 유행경 )
자등명 자귀의 법등명 법귀의(自燈明 自歸依 法燈明 法歸依)이고,
해석은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 자신을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에 의지하여라.
이 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내가 간 후에 내가 말한 가르침이 곧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덧없으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 (삶이 덧 없다는 것이 아니고
삶에 있어서 일체 외부환경에 의존하거나 귀의 하는것이 덧없다.
오직 본인의 마음 정진 수양만이 스스로의 의지처이다.
라고 저는 해석을 해 봅니다.~^^;)
2.자귀의 법귀의 (自燈明 法燈明)
이 말은 빠알리어 경전에 있는 것을 그대로 옮겨 본다면...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스스로를 의지처(섬)로 하여
남을 의지처(섬)로 하지 말 것이며,
법(진리. 붓다의 가르침)을 등불로 삼고
법을 의지처(섬. 피난처)로 하여
다른것을 의지처(섬. 피난처)로 삼지 말라"
자등명 법등명은 흔히들 自歸依 法歸依(자귀의 법귀의)라고 하기도 한다.
즉 한문으로 번역한 것도 가르침이 포함하고 있는 것은 같은 내용 이다.
燈明(등명)이라는 것은 어두운 밤에 등불을 들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불빛에 의지하라는 것 이다.
이 말은 열반경에 나오는 이야기이며
이와 같은 비슷한 가르침은 장아함경, 잡아함경, 유행경 등에도 나온다.
80세의 나이로 붓다께서 열반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싯점에
아난존자의 간절한 청원에 붓다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유훈으로 남기신 가르침 중의 하나 이다.
▶부처님은 스스로 신이라고 자처한 적은 없지만,
초기 경전에도 많은 부분에 욕계 6천과 색계,무색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존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부처님 자신도 세존(Bhagavan)이라는
신적인 존재의 의미가 강한 호칭으로 부르게 한 것으로 보아
신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닌 듯하다.
상윳따니까야(잡아함경에 해당하는 초기 경전)에서,
부처님은 사리풋따와 목갈라나에게 서로 아귀를 본 것에 대한 경험을
얘기하는 것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귀신의 존재도 부정하지 않은 것 같다.
여기서 아귀나 아수라 같은 귀신도 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실제로 인식하는 현실 세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존재로써,
신의 저급한 형태로 보고 넓은 범주에서 신에 포함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불교는 절대신을 인정하지 않는 종교 이다.
타종교처럼 전지전능하신 신이 우리 스스로를
구원해 준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을 구하는 것은 오직 내 자신 스스로이며
붓다께서 가르쳐 주신 진리(법)를 따르고
붓다께서 앞서 걸어가신 佛道(불도)를 우리도 걸어가면 된다.
▶불교에는 삼법인이 있다.
諸行無常(제행무상).一切皆苦(일체개고).諸法無我 (제법무아) 이다.
그리고 無我(무아)를 강조 하고 법을 의지하고
스스로를 의지하라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두개의 가르침이 상호 어긋남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는
먼저 법등명을 보면 대승불교에 보면 "法身의 常住(법신의 상주)"
라는 사상이 대승경전의 하나인 열반경을 통하여 주장한다.
여기서 법신이란 말은 범어의 원래 뜻에 비추어 보면
"법의 집합" 이라는 의미 이다.
이 법의 집합이 상주하며 영원하다는 말이다.
무아 이고 무상 이지만 불성은 늘 상주(법신의 상주) 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흔히들 無我(무아)를 한문으로 이해를 하여
"나 라는 존재는 없다." “나 라는 것이 없다.”
즉 없다(無)쪽으로 착각을 하거나 오해를 하곤 한다.
여기서 무상이라는 가르침에 대해서도 설명을 하면,
불교에서는 흔히 "끊임없이 생과 멸을 반복 하는 생명의 흐름"
이라는 말을 한다. 이와 같이 우리는 태어남과 죽음을 반복하기 때문에
단 한순간도 고정되고 불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해서
무아라고 한다.
무아는 또한 我(아)라는 것을 끝까지 부정해 가다보면
마침내 무아라는 진리에 도달하게 된다.
단 한순간도 찰나적으로도 고정되고 불변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我 라고 고집하고 집착하고 망상할 존재는 없다는 것이며
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나라고 생각했던 나는 없다.
즉 이를 불교에서는 1초 전의 나는 내가 아니니 이미 죽은 것이고
그리고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죽고 다시 태어나고
끊임없이 죽고 태어나고 하는 존재 즉 생명의 흐름만이 있을 뿐 이다.
▶의지 할 것도 나라고 하는 고정된 존재도 없는데
그런데 왜 부처님께서는 자등명 이라고 유훈을 남겼을까?
대승경전의 열반경에 보면
一切衆生 悉有佛性(일체중생 실유불성) 이라는 유명한 가르침이 있다.
즉 모든 중생은 모두다 부처님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열반경 속에서 여러 번에 걸쳐서 나오며
또한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서 설명을 하고 있다.
불성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부처님의 성품이라는 뜻 이다.
즉 중생은 무상이고 무아이지만 불성은 常住(상주)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다시 해석해 보면
불성이라는 것은 부처님이 될 수 있는 바탕 이고
중생은 아직은 부처가 아니지만 불성이 있기 때문에
발심을 하고 수행을 하면 부처님이 될 수 있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아 이고 무상 이지만 불성은 늘 상주(법신의 상주) 한다는 것이다.
붓다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유훈 "자등명"은
이렇듯 무아 속에 변하지 않고 영원히 상주하고 있는 "불성"을
제대로 보라는 가르침으로 열반경은 해석을 하고 있다.
의지처란 귀의, 바른 길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등불은 다른 사람이나 바깥세상 아닌
바로 「나, 스스로」를 가리킨 것이다.
진리(법)의 주체도 나요, 그것을 밝히는 등불도
자기 자신이라는 얘기다.
/ 일요 군법회 법문 자료 중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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