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현관)… 역사를 통틀어 홀처럼 위상이 추락한 공간이 없다. 중세까지 대개의 주택은 사실상
'원룸'이었다. 가장부터 하인까지 온 식구가 홀 복판에 놓인 노출형 화로를 에워싸고 식사부터
취침까지 일상 대소사를 다 함께 했다.
비로소 대들보 위에 판자를 걸칠 수 있게 됐다. '2층의 탄생'은 공간의 분화를 촉발했다.
침실·서재·응접실·탈의실과 함께 사실(私室·privy chamber), 즉 실내변소가 나타났다.
영국인도 한국인처럼 이 공간을 '해우소'(place of easement)라 불렀다. 국왕을 자문하는
'추밀원'이 국왕의 변기 시중에서 유래했다는 얘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이다.
방이 늘면서 집은 커지고 홀은 쪼그라들어 오늘날의 현관이 됐다.
부엌 식당… 신대륙 발견 전까지 유럽인은 설탕 없는 케이크, 토마토 없는 스파게티,
케첩 없는 햄버거를 먹었다. 식탁이 다채로워졌다고 누구 입에나 같은 혜택이 들어간 건
아니었다. 향신료·커피·설탕은 상류층, 감자는 하류층 입으로 들어갔다. 하인들은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오늘날 세탁기·청소기·다리미·수세식 변기가 하는 일을 몸으로 했다.
요리하는 공간(kitchen)· 먹는 공간(dining room)·설거지하는 공간(scullery)이 뚝뚝 떨어져
있어 잘사는 집 하인과 못사는 집 주부의 고통을 더했다.
요리가 늘면서 나이프와 포크의 수와 종류도 덩달아 늘었다.
그럴수록 식탁 매너는 까다로워졌다. 코스에 따라 차례차례 음식을 내놓는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 등장한 '신풍속'이다. 그전까지 영국인도 우리처럼 모든 음식을 한꺼번에 차려놓고 먹었다.
침실…
셰익스피어 시대에 어엿한 차양 침대를 하나 사려면 학교 선생 반년 치 봉급이 들어갔다.
사람들은 "귀한 손님을 모신다"는 명목으로 가장 좋은 침대를 거실에 전시하고 본인들은
허술한 침대에서 잤다. 셰익스피어는 "내가 가진 두 번째로 좋은 침대를 아내에게 남긴다"는
유언장을 썼다. 부인에게 정신적인 따귀를 갈겼다는 통설과 달리 "추억이 깃든 침대를 오롯이
당신이 간직해달라"는 달달한 메시지였을 수 있다.
화장실…
로마제국 몰락 후 17세기까지 유럽인은 죽어라고 안 씻었다. 땀구멍으로 몸에 해로운 공기가
들어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엘리자베스 여왕도 한 달에 한 번 머리를 감았다.
유럽인과 처음 맞닥뜨린 아메리카인들은 맨 먼저 냄새에 기겁하고, 고운 천에 코를 푼 뒤
소중하게 호주머니에 넣는 습관에 또다시 경악했다.
배설의 변천사는 이보다 끔찍하다. 프랑스 왕실은 1715년 베르사이유 궁전 거주자들에게
"매주 1회 복도에 쌓인 배설물을 치우라"는 칙령을 포고했다. 궁전 안에 화장실이 100개나 있는
데도 사람들이 웬일인지 복도와 정원을 선호한 탓이다. 영미권에는 숙박객이 여관 주인에게
"요강을 달라"고 청하자 여관 주인이 "내일 아침 전에 돌려달라"며 솥을 내줬다는 사료가 도처에 있다.
산업혁명의 최대 피해자들 중 하나는 과밀해진 런던에서 변기를 푸던 일꾼들이었다.
분뇨 구덩이 뚜껑을 열자마자 독가스가 대포알처럼 고인을 강타했다.
인간은 극히 최근에 깨끗해졌다. 18세기 이후 서서히 목욕이 일반화됐다. 19세기 중반 런던에서
열린 대박람회에는 700종의 비누와 향수가 출품됐다. 줄잡아 80만명이 수세식 변기라는 기적을
줄 서서 목도했다.
브라이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