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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60회 60세되는 기념회지)발간<해외교우위해 소생졸필공개>

원서동 미아리의 추억.........윤 해 영(효성노인병원장)

<서곡>

그들은 고집이 세고 걸핏하면 투정을 부리는데다 탐욕스럽고 까다로우며

허영심은 물론 말도 많다. 청장년시절 터득하고 관찰했던 그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하며 기억한다해도 불완전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은 대화 할때

일반 사물, 사람들, 가장 가까운 친지들 이름조차 기억해 내지 못했다.....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죽지 않는 노인“Struldbrug"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다. “오늘 선생께 들려줄 말이 세가지 있소, 하나는 내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나머지 두 개는 영 기억이 안 나는군” 이말은 미국 전직

대통령인 레이건 이 재임 말기에 주치의와 나눈 대화 내용으로 건망증이

어느 정도 이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고 결국 퇴임 후 자신의 알츠하이머병을 시인했고 이후 투병후 2004년6월에 사망했다. 이 사건은 미국인은 물론이고 전 세계인들까지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우리나라 대중들의 입에도 오르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아리아>

고향이 어디죠? 토론토 오사카 요! 가족은 어디 계세요? 크라이스처치와

오사카에 딸이 살고 토론토에 아들이 산다우! 이하 영어와 일본어로 주저리주저리 옛 추억을 읊조리며 눈시울이 충혈 된다, 그 앞에는 어줍짠은 의사가

손을 잡고 서서 그 어른의 힘겨운 추임세 에 맞추어 미뉴에트를 만든다.

 

<변주곡>

내 어렸을 때 꿈은 이런 모습이 아닌데…….의사는 되었지만 나라를 치료하는
큰 의사가 되었어야 하는데, 아니야 목청을 한껏 돋우어 실황을 중계할라치면
임택근 이광재 아나운서가 시샘하고 분위기 잡는 사회를 보노라면 차인태 아나운서가
울고 가는 그런 방송인이 되었을 텐데…….

어느 날 꿈속에는 유명 소설가가 되어 펜사인회를 하고 있고 화가가 되어 있는 날에는 아프리카에서 신나게 작업을 하며 노니는데 하필이면 그곳에서 슈바이처를 만나서 동업을 하고 닥터 지바고와 라라를 만나 사랑에 대하여 토론을 하는 그런 꿈!

아~! 이젠 꿈속에서도 속절없이 직업이 정착되니 내 젊은 날의 순수성은 어디로 사라지고 그 열정은 어디서 만나나? 송충이가 솔잎을 먹는 것처럼 나는 어느새 소나무에 올라 오늘도 노인병환자들 곁에서 솔잎 한솔한칼 훑으며 또 한해를 보내고 있다

 

<녹턴, 야상곡>

어느 맑은 봄날 모처럼 아내와 함께 외출을 했다, 큰맘 먹고 고생하는 마나님과
좋은데서 점심이나 먹자고 나선 것이다. 자주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아는 곳도 갈 곳도
없어 무조건 일단 가까운 백화점으로 갔고 그곳에서 제일 높은 층에 있는 일식당으로 가서 자리를 잡는데 맞은편에 낯익은 노인부부가 계신 것이 아닌가.
 
본능적으로 알아서 인사를 하고 기억을 더듬으니 어린학창시절의 은사님이셨다. 그제야 겨우 아내에게 설명을 하니 아내가 새삼 자리에서 일어나 밝은 표정으로 그분들을 향해 인사를 올리고 자리에 앉더니 자꾸 나에게 턱을 내밀며 눈치를 준다. 혹시 아는 사람이 있으니 불편해 자리를 옮기자는 것인가? 무슨 뜻인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는데

다시 아내가 재촉을 하는 것 같아 일단 일어나 그분들 옆으로 가며 뒤돌아보니
아내는 따라 오지는 않고 자리에 앉아 손짓으로 계산대를 향해 계산을 해드리라는
것이었다. 그제야 아내의 진심을 깨닫고 얼른계산을 하고 자리로 돌아와 앉으니

남몰래 선행을 한 후가 이런 기분일까? 그런 기분이었다. 우리가 막 음식을 먹기 시작할 때쯤 두 분은 식사를 마치고 우리를 향해 작별의 손짓을 하시고는 나가시더니 우리가
계산을 해드린 것을 아시고는 반갑게 돌아오셔서 “고마우이.! 다음에 만나면 내가 살께!”
 
하시며 환하게 몇 번이고 고개를 흔드셨다. 선생님 많이 늙으셨군요! 그래요 다음에 만나실 때까지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그리고 꼭 다음에 만나서 점심 사주 세요! 마음속으로 말하며 헤어졌다.

 

<로망스>

마아리 1965~68년 우리 그때 가장 놀기 좋은 푸른 시절에 공부를 위해 태어난 듯
테리우스정은 취미도 공부였고 오로지 공부만이 길이요 진리라 생각하는 까레라스 정이 이웃해 있어서 나의 공부환경은 교육특구였다. 그 결과로 전교수석부터 10여등까지는 미아리용사들이 휩쓸었고 그래서 그 덕에 나도 의사가 된 것 같다.

공부를 천직으로 여긴 그 둘은 서울대로 입성하고 이어서 의대교수로 그리고 약업계의 신화의 주인공으로 각각 입신양명하였다. 그러나 공부가 전부인가? 그 시절이 소중한 것은 미아리와 원서동 골목길에는 낭만이 묻어나는 추억의 시간이 있기 때문 일 것이다.

그곳엔 비틀즈와 차중락이 있었고 비키와 펄시스터즈 그리고 음악다방이 있었기에 더욱 감미로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고딩 출입금지를 피하려고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구해 입는 방법을 가르쳐준 안대감! 삶의 한잔과 낭만을 가르친 왕눈부리 최 등 잊지 못할 추억의 트위스트를 진짜로 추던 그 시절이 좋은 것만 있지는 않았다.

열 공한 특별한 몇 친구를 빼고는 모두 재수하느라 인생의 쓴맛을 일찍 느끼고 피눈물을 흘린 전쟁터 미아리! 시간이 흘러 20년 혹은40년 만에 백발이 된 이들을 차례로 다시 만나 그 시절을 잊은 듯 다시 토닥거리며 만나는 재미 아마 미아리 원서동 출신 아니면 모를 껴~! 어이 테리우스! 이제 열공 고마하고 나와서 놀자~! 그리고 어이~! 미아리 50주년 만들어 만나자우! 그리고 다들 건강하라우요~!

 

<주제곡>

휘문을 영어로 어떻게 쓰는지 몰랐다가 응원가 배우고 알았던 whimoon에다가
우리가 졸업했으니 oldboy(ob) 아니냐?. 그래서 whimoonob.net이 우리 동창들 홈페이지 주소인데 이곳으로 들어오면 총교우회 홈피이고 여기서 60회로 찾아오면 모두 만날 수 있음을 아는가? 나이들 수록 돈과 시간을 절약하여 즐거움을 찾아야하는데 우리친구들이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곳에는 時空을 초월하여 만남의장이 이루어지는데 난 이곳에서 저 멀리 미국에 사는 종국 이와 대화를 했고 중국에 있는 성삼 이와 만나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돈 한 푼 안들이고 커피와 와인을 나누어 마시고 美人圖를 감상하기도 한다. 때마침 돈영공작(net영역의 영주의 작위)이 특별기행 관광열전을 보여주어 한참관심있게 감상하고 있고 나도 가끔 흘러간 팝송을 삽질하여 같이 즐기고 있다. 야~아! 들어~와!

 

<판타지>

인지기능의 손상으로 가까운 가족도 못 알아보시면서 그리운 금강산, 봉선화등 가곡 몇 곡은 음정 박자 하나 안 틀리고 부르시는 왕년의 여고 선생님, 한국정치의 뒷부분을 주무르셔서 정치 秘事는 다 기억하시면서 낮과 밤을 착각하시는 정 할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에게 말해서 500억을 빌려주시겠다는 배 할머니, 한 달을 더 못 살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물 좋은 콜라텍에 데려가 예쁜 깔치를 소개해 주겠다는 김 아저씨, 공장이 이미 부도로 다 넘어갔는데도 모르시고 먹을 것만 찾고 훔쳐 드셔서 간성혼수에 빠지시는 김 씨 아저씨……. 이분들이 모두 아침이면 나를 기다리는 나의 맹열 펜들이시며 이분들의 면면이시다.

밤새 안녕하신지도 영어로나 일본어로만 해야 대답 하시는 분들도 있다 보니 말보다 눈빛으로 통하기 위하여 독심술이라도 배워야 할 판이다. 이분들을 알다보면 눈물 없이 듣지 못하는 인생극장이 따로 없다. 요사이 하나 터득 한 것은 인생의 끝자락에도 사람에 대한 애증의 끈은 가이없어서 恨을 품고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중에도 그리운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恨은 끝까지 남아서 보기가 안타깝다. 20년째 행방불명된 딸을 못 잊어 눈을 감지 못하는 어머니 모습을 보면서 느끼듯 자식이 무언지 입으로는 하느님을 외치면서 교대로 행불된 자식을 부른다.

어~이! 친구들 효도 하게나!

 

<코다>

일요일과 공휴일도 없이 그저 환자만 보며 살아온 20년! 바로 그때부터 나는 변했다.
그 숨 막히는 개원생활의 한을 벌충이라도 할양으로 본업과 전혀 다른 영역에 눈길을 주기 시작했고 그래서 외도를 시작한지도 어언 십 수 년 되었다. 말이 그렇지 투잡이 어디 쉽겠나? 실수도 하고 손해도 보고 많은 사회공부를 하였다.

한해가 저무는 이맘때쯤이면 갑자기 바빠진다. 오지랖 넓게 벌려 논 사업관련 단체의 송년모임과 본업과 관련된 협회와 관청의 결산모임 때문에 12월은 정작 자신의 마무리를 위한 내시간이 없다 그러나 내가 꼭 챙겨서 가는 모임이 바로 고등학교송년모임이다.

그곳에는 서열과 격식이 없어서 스트레스 받기 십상인 다른 모임과 차별되고
품위와 지체를 생각지 않아도 되고 따라서 긴장과 비용이 안 들어서 좋다.
거창한 송년사와 지혜로운 덕담을 준비하지 않아 도 된다. 그저 편한 친구 곁에 앉아서 가끔 웃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실없는 몇 마디를 생각 없이 던져도 모든 게 덕담으로 들려서 욕을 해도 웃어주니 아니 이보다 더 편한 자리가 또 있을까?

난 그곳이 좋다, 인생 무어 있겠나? 그저 이런 친구 있고 굶지 않고 임종 시 좋은 간병인이나 만나서 노후 추잡치만 않으면 성공한거라 생각한다. 우리 원서동 미아리 친구들 모두 다 복 많이 받고 오래 오래 두고두고 보자꾸나!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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