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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의 농부
한 뙈기 땅을 갈아 엎습니다. 마음 속의 찌꺼기도 함께 갈아 엎습니다. 무슨 건더기들이 그렇게 많은지 한동안 땅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작년 가을 추수 끝내고 버려두었던 땅인데, 그동안도 땅속으로 쓸데없는 뿌리들이 많이 벋어 쇠스랑에 채입니다. 한동안 땅을 뒤엎으니 팔이 아파옵니다. 어깨도 아픕니다. 돌짝밭이 된 곳은 돌을 골라냅니다.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고, 허리는 연신 구부렸다 폈다 하면서도 손에 쥔 쇠스랑은 계속 땅을 갈아 엎습니다. 진돌이는 신이 나서 마당 한 바퀴, 두 바퀴.. 쏜살같이 뛰어다닙니다. 그리고는 내 옆에 와서 쇠스랑 쥔 손에 달라붙으며 놀자고 야단입니다. 펄쩍 펄쩍 뛰는 모양이 매우 재미있습니다. 녀석은 기분 좋을 때는 뛰는 모양이 다릅니다. 딴에도 봄이 오고 주인이 마당에 자주 나오는 게 너무 반가운 모양입니다. 작년에 창고에 넣어두었던 거름을 뿌립니다. 하늘을 보니 비가 나리려나 봅니다. 그래서 다른 종류의 비료도 조금 뿌려 놓습니다. 몸과 마음에 생기가 돕니다. 그동안 가슴 속에 숨어 있던 찌꺼기가 썩은 뿌리들, 돌들과 함께 멀리 멀리 던져집니다.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입니다. 저녁 무렵의 하늘이 비가 올 듯 올 듯 합니다. 그나마도 남아 있던 흙먼지들과 가슴 속의 묵은 찌끼들을 씻어내리려나 봅니다. 봄은 그렇게 어김없이 오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