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밸얘 61 - 다들 참말로 돌았나 봐 II
🧑 김개석
📅 2004-01-11
👀 315
455 Silicon Valley Blvd., San Jose, CA 95138
우편 번호 95138, 캘리포니아주, 샌호세시, 실리콘 밸리 대로 455번지
(완전히 거꾸로다. 문득, 우리네 인간사 문제를 푸는 해법에는 과연 여러가지가 있을 수도 있다는 평범한 생각이 든다.)
쾌적한 토요일 아침, 드디어 늑대 개울 오솔길의 초입에 다시 도착하여 제자리 뛰기 등으로 정리 운동을 하며 쟈깅 내내 온 몸에서 마구 흐르던 땀을 시원하게 식히고 있었다. 그제야 문득 주위를 둘러 볼 자그마한 여유가 생겼다. 저 멀리 높은 하늘에서는, 늑대를 찾는지 아니면 산사자를 찾는지, 양 날개가 커다랗고 시꺼먼 독수리 한 마리가 제 나름대로의 일정한 원을 그리며 유유자적하게 비잉빙 돌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참으로 평화스러운 아침이었다.
이윽고 내 눈은 그 길다란 오솔길 어귀와 커다란 할러데이 인 호텔의 중간에 위치한 거의 100대나 주차할 수 있는 넓다란 공간이지만 항상 한가하기만 한 주차장에 꽂혔다. 아니다. 오늘도 평소처럼 약 20대의 차들이 그 주차장의 끝에 있는 아담하고 평범한 단층 연결 건물 앞에 가지런히 주차되어 있다. 그 차들은 낮이나 밤이나 주중이나 주말이나 항상 그렇게 한결같이 모여 있었다. 뭣들을 하는 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불철주야로 참말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차들일 것이다. 그러나 청기와를 하고 베이지색을 칠한 그 하이텍 회사 건물에는 다소 이상스럽게도 아무런 회사 간판이 없었다. 단지 출입구 부분 위에 455라는 간단한 숫자 하나가 덩그마니 있을 뿐이었다. 분명히 건물주가 애초부터 붙여 놓은 번지수이리라.
순간 호기심이 발동했다. 도대체 무슨 하이텍 회사이길래, 거의 십여 년을 한결같이 전직원들이 저토록 열심히 일하는가? 오늘은 드디어 내 나름대로의 그 궁금증을 풀기로 작정했다. 50미터 정도의 주차장 진입로를 조용히 걸어 들어가며 하나하나 세어 보았다. 정확하게 22대. 그 건물 전면과 측면의 스무개 남짓한 창문들은 모두 창문 안에서 무엇인가로 막혀 있었다. 꽤나 참한 현대식 건물이었지만 그 막힌 창문들 때문에 아주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다소 이상스러웠지만, 햇빛 차단용이거니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혹시나, 외부로부터의 투시를 꺼리는, 일종의 고급 비밀을 취급하는 방산업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불현듯 들었다.
드디어 현관문 앞에 도착했다. 여전히 쓸 만한 공식적 회사 표지는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불투명한 유리문이었기 때문에 안을 쉽게 들여다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아무런 별다른 볼 일도 없이 불쑥 그 문을 열기는 싫었다. 잠깐. 그 유리문의 한 귀퉁이에 거의 아무렇게나 붙여 놓은 평범한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이 글의 초입에서 밝힌 평범한 건물 주소와 함께 컴퓨터로 예쁘게 찍은 글씨들은 다음과 같았다.
Coyote Creek Mental Health – Department of Family & Children’s Services
늑대 개울 정신 건강 (병동) – (싼타 클라라군 소속) 가족과 자녀 서비스과 (부속)
전혀 의외였다. 이 동네에서 줄곧 거의 20여 년을 살았지만, 이런 곳에 이런 데가 있었다는 사실은 내겐 다소 굉장한 충격이었다. 일말의 야릇한 놀라움으로 눈이 크게 떠지는 그러한 순간이었다. 아, 그래서 모든 창문들이 그렇게도 꽁꽁 막혀 있군 그래. 그런데 왜 떳떳한 간판 하나 제대로 걸지 않고 있었을까? 일단 알려지면,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있을까 봐서?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잠시 둘러 보기로 했다. 과연, 그 커다란 건물 뒷쪽은 온통 높은 담과 그 담 위의 보조 철망으로 막혀 있었다. 그 높은 철망 너머로 농구 꼴대의 꼭대기가 보이기도 했고, 그 뒷마당 안에서 간간히 음악 소리도 들려 왔다. 아마도 마침 운동 시간이거나 쉬는 시간인 듯 했다.
아, 그랬었구나. 이 앞에서 늘 쟈깅을 하면서도 그러한 이상한 점들을 하나도 눈치 못챈 나는 과연 그토록 무심한 인간이었다. 그나저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한눈도 거의 팔 곳이 없는 정말로 재미없는 이곳 실리콘 밸리에서 오로지 전인류를 위한 하이텍 신기술 창조에만 몰두하며 그토록 착실하고 열심히 일만 하던 저들을 이런 답답한 곳에 갇힐 정도로 저렇게나 딱하게시리 돌게들 만들었으니 말이다. 아, 하늘님도 참말로 돌았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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