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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회 이광호 동기 관련 기사 올림
주간조선 제1774호(2003.10.16)에 게재된 전임 회장인 이광호군과 관련한 기사를 올립니다. 난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어제 옛 원서동 학교 부근의 만수옥에서 가진 축구부 모임은 해외에 나가 있는 장동수, 이종호, 정찬주와 군문에 있는 이광수 대령을 제외하곤, 고재석 동국대 국어교육과 교수, 박효성 이사, 유석천 치과원장, 장봉진 서초구청, 주춘화 휘문고 교사, 하영준 정형외과 원장( 현재 내 주치의임, 말안들으면 혼남), 황장욱 조선일보 부장, 그리고 나를 포함하여 국내에 있는 8명 모두가 참석하여 만나자 마자 육두문자를 써가며 화기애매하게 학창시절 에피소드와( 누가 더 꼴통짓을 했는 지 등...) 자녀문제( 새벽에 강남근처의 나이트를 일제 점검했다는 등...) 많은 이야기를 백세주 열댓병 까면서 했습니다. 황장욱군은 인천 상가가 있어 먼저 일어 나면서 그날의 술값을 다 냈고, 헤어짐이 못내 아쉬운 지, 마눌님을 만나 재차 식당에 와, 한잔 더 하고 갔습니다. 학창시절의 아스라한 추억들을 반추하고 우리들의 깊은 우정을 다시끔 느낄 수 있었던 깊어가는 가을밤의 즐거운 만남이었습니다. 효성이와 난 광화문에 소재하고 있는 65회 선배가 운영하는 전성시대라는 가게에서 김규한, 최현철,그리고 71,72회 후배들과 한잔 더 하고 헤어졌습니다. 만났던 동문 모두 잘 들 귀가했겠죠? 자, 지금부터 이광호 관련 기사를 올립니다. 이광호 PMC프로덕션 공동대표 “난타 경제가치 500억원” 지난 9월 ‘난타’가 뉴욕 브로드웨이에 입성했고 PMC프로덕션의 송승환 대표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오늘의 ‘난타’ 성공은 그의 30년 지기(知己)이자 PMC프로덕션 공동대표인 이광호(47)씨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대표는 송 대표와 고교(휘문고) 동창으로 현재 PMC프로덕션 경영을 맡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송승환 대표와의 역할 분담은. “송 대표는 창작과 홍보를 담당하고 나는 재무와 경영을 맡는다. 사무실 직원이 30명, 배우와 스태프 등까지 합하면 100명이 넘기 때문에 혼자서 관리할 수 없다. 서로를 존중하기 때문에 한 번도 다툰 적이 없다.” 송 대표와는 고교 동창인데. “학창시절보다 졸업 후에 더욱 친해졌다. 동기회장을 11년 간 맡으면서 송 대표의 ‘환 퍼포먼스’를 돕게 됐다. 1996년 송 대표가 ‘한국의 공연산업도 커졌으니까 함께 기업화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해왔고 그해 12월 PMC프로덕션을 설립했다. 당시 나는 아버지가 경영하던 충남방적에 근무했고 사무실도 광화문 충방빌딩에 마련했다. 뒤에 정동으로 옮겼지만.” ‘난타’ 성공 전에는 실패도 많이 했을 텐데. “‘난타’는 PMC프로덕션의 네 번째 공연작품이다. ‘유리동물원’ ‘남자충동’ ‘러브&루브’가 모두 실패해서 손해도 많이 봤다. 1997,1998년에는 공연에 관여하지 않았는데 1999년 여름 휴가 겸 송 대표와 영국 에든버러에 간 것이 계기가 돼서 ‘난타’를 상품화하자고 의기투합했다. 2000년부터는 아예 PMC프로덕션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PMC프로덕션의 PMC가 의미하는 것은. “공연(Performance), 음악(Music), 영화(Cinema)의 머릿글자다. 가수 데뷔시키고 영화 제작해서 손해도 많이 봤다.” PMC프로덕션의 매출 규모와 순익은. “그전까지는 적자에서 헤매다가 1999년 처음 1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2000년 7월 전용관을 만들고는 완전히 흑자로 전환했다. 그해 매출액은 38억원이었고 순익은 11억원이었다. 작년 매출액은 120억원, 순익은 19억원이었다. 참고로 2001년 매출액은 72억원, 순익은 28억원이었는데 작년 순익이 준 것은 우리가 제작한 영화 ‘굳세어라 금순아’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익 규모보다는 공연 분야에서 모델이 될 수 있는 기업을 만들었다는 데에 자부심을 가진다.” 전용관을 만들게 된 계기는. “한두 달 공연해서 1억~2억원 흑자 남겨봐야 사무실 운영비로 다 쓰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제조업 개념으로 보면 1년에 한두 달 정도만 공장이 돌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1년 내내 공장을 돌리기로 한 것이다. 전용관 만들 때는 돈이 부족해서 지인들의 투자를 많이 받았다. 당시에는 남의 돈 받아도 갚을 자신이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다음해 결산해서 투자자들에게 30% 이익배당을 해줬다.” 9·11 테러 없었으면 50억원 벌었을 것 이번 뉴욕 브로드웨이 공연은 현지인을 대상으로 하는 대성공을 기록 중이다. “브로드웨이 아시아 시몬 공동대표라는 좋은 파트너를 만난 것도 크게 작용했다. 이번 브로드웨이 진출의 경제적인 잠재가치는 500억~1000억원으로 본다. 다른 국가에서 공연할 때 지금의 두 배 이상 개런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브로드웨이 장기공연과 미국투어를 하게 된다. 또 2005년에는 코스닥 상장도 계획 중이다. 주변에서는 너무 상업적으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는데 브로드웨이야말로 전세계에서 가장 상업적인 곳이다. 브로드웨이에서는 1000만달러(약 120억원) 들인 뮤지컬도 상업성이 없으면 1주일 만에 막을 내린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2001년 북미투어 1주일 만에 9·11테러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그 사건이 없었다면 최소 400만달러(약 48억원)를 벌었고 2002년 초 브로드웨이에 입성했을 것이다. 2억원 적자를 내고 물러섰다.” 보람을 느꼈을 때는. “‘난타’ 수입의 70%를 외국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국내 전용관 수입의 80%도 관광객으로부터 들어오는 돈이다. 따라서 전체수입의 90% 이상이 외화라고 보면 된다. 외화 획득에 자부심을 갖는다.” 앞으로의 계획은. “제조업에서 일정 부분을 연구개발비로 쓰듯이 ‘난타’ 같은 다른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매년 좋은 영화도 한두 편씩 제작할 것이다. 그리고 외식·의류 사업도 구상 중이다.” ⊙ 생년월일: 1956년 11월 25일 학력: 휘문고-한양대 섬유공학과-한남대 경영학 석사-대전대 경영학 박사 경력: 1982년 충남방적 대전공장 관리부장 1984년 충남방적 상무이사 1994년 충남방적 전무이사 1996년 (주)PMC프로덕션 대표이사 1997년 청운대 경영학과 겸임교수 1999년 (주)E&T 대표이사 사장 서일호 주간조선 기자(ihseo@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