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교우회게시판 - 문예마당

휘문교우회 로고
비둘기

(詩) 비둘기

詩人 신성수

 

좀 씻어라. 그 꼴이 무엇이냐

씻어 줄 수도 없고, 그래도 네가 명색이 평화의 상징이라면서

도대체 그 모습이 무엇이냐

나는 그렇게 비둘기에게 나무라고 싶었다.

그러나 보도블록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헤집던

비둘기가 갑자기 고개를 휙 돌리는 것이었다.

나는 인기척을 느껴 놀란 줄 알았다.

달아날 준비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녀석은 고개를 돌린 채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지나는 사람들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그 작은 몸이 갑자기 크게 느껴졌고 무섭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내가 씻지 않았다고, 그러면 너는 얼마나 깨끗한지 말해 보아라.

내 앞에서 얼마나 당당한지 말해 보란 말이다.

내가 자유롭게 날던 저 창공을 누가 오염시켰느냐

내가 씻고 마시던 계곡은 또 누가 그렇게 했느냐 말이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물러서지도 못하고 한참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다시 고개를 돌리고 숨을 고른 후에

바닥의 흙먼지를 헤치고 다시 먹이에 부리를 댄 후에야

겨우 한 두 걸음 뒤로 물러날 수 있었다.

 

鳩, 鳩, 鳩

 

앞으로 길을 걸을 때는 비둘기 발자국도 확인하고 조심 조심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어느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