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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닝셔츠를 거꾸로 입을 때마다 슬프다

(詩) 런닝셔츠를 거꾸로 입을 때마다 슬프다

시인 신 성 수

런닝셔츠를 거꾸로 입기 시작한 때가 언제였을까.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지 하다가 횟수가 늘어나자 이게 나이가 든 것이구나라는 생각에 덜컥하였다.

나도 모르게 런닝셔츠를 거꾸로 입고 화장실 거울 앞에 서면

아아, 내가 가엾다. 거울에 서린 김을 손으로 쓱쓱 문질러 닦고 가여운 나를 바라본다.

런닝셔츠를 거꾸로 입고 도대체 뭘 생각하는 것인지

그런 날 아침은 잠든 아내도 깨우지 않고 출근길을 서둔다.

다시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더 큰 소리로 묵주기도를 하며 걷는 출근길

길에 학생들이 제 신명에 웃는 것도 거슬린다.

누구 누구는요. 런닝셔츠를 거꾸로 입는대요. 바보래요.

그렇게 나이가 든 것을 알게 된 어느 가을 시월

오늘 또 런닝셔츠를 거꾸로 입었다.

내 눈앞에 선명한 런닝셔츠 상표를 들여다보다 웃었다.

맨살에 와이셔츠를 입고 배우 흉내를 내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오늘은 화장실 거울에 서린 김도 닦아내지 않고 돌아서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