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석작가의 병영일기 연재(7회)] 서울, 논산, 광주..훈련소에서 깨달은 것들
🧑 이율영
📅 2004-09-29
👀 360
훈련소에서 깨달은 것들
한가위를 빌미삼아 교수님께 인사드립니다.
전화를 드릴까,
문자를 넣을까,
멜을 띄울까 어제 하루 종일 고민하다가
결국 멜로 결정했습니다.
(정말 하루종일 고민하니까 친구가 옆에서 소심하다고 타박까지 하더라구요)
교수님 건강은 어떠세요?
그때 우연히 뵀을 때 저희 가르치실 때랑
변하게 없어 보여서
저는...좋았습니다.
교수님 강의 중에 기억에 남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사과 이야기...
사과를 이등분하고 이등분 한 사과 조각을 다시 이등분하고..
다시 이등분하고...
더 이상 가를 수 없을 때까지 \'이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분석해야 한다...\'
엉터리 대본 이야기...
엉터리 대본 가지고 오면 화가 난다. 아까운 내 시간을 뺏으니까...
손가락 부러뜨리는 이야기...
(캐릭터 설명하시면서...)
책 이야기...
죽을 때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면,
너희는 나중에 작가는 안 되더라도, 뭔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사과이야기는 항상 마음에 심은 이야기이고,
엉터리 대본 이야기는 쓸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손가락 이야기는 전철 안의 사람들 가만히 쳐다볼 때 들리는 환청입니다.
마지막으로 책 이야기는 으악~ 스트레스입니다...
추석 문안 인사겸 보내온 제자의 메일 일부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군대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추석 전날, 모처럼 맑은 아침 하늘이 보여
등산용 물통에 얼음과 물을 채워 배낭에 넣고
청계산을 오를 심산으로 아파트를 나서는데 집사람이 말하더군요.
\"혹시 보이면 햇밤 좀 사다 줘요!\"
\"햇밤인지 묵은 밤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햇밤은 반질반질 윤이 나고 묵은 밤은 윤기가 없어요.\"
그렇습니다.
햇밤과 묵은밤조차 구별할 줄 모르는 시절로 살아왔습니다.
군대에서의 한달 하루 모자란 3년의 세월은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할 줄 아는 것 또한 너무 모자라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세월이기도 했습니다.
제일 곤욕스러웠던 것이 군대의 월동준비였습니다.
월동준비를 하게 되면 필수품이 볏짚이었고
볏짚은 방풍용 창문가리개도 되고
방호벽의 가리개도 되었지만
그 볏짚을 묶는 새끼줄이 가장 많이 소용되었습니다.
볏짚의 다양한 사용으로 농번기가 되면 부대 인근 마을로
열심히 대민지원을 다녔습니다.
다량의 볏짚의 필요성 때문에 월동준비와 대민지원은 끊을 수 없는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흰쌀밥과 사제안주와 막걸리에의 기대와
규율로 옥죄는 울타리를 벗어난다는 자유로움으로 몹시 신나들 하는
부대원들과 달리 늘 대민지원이 곤혹스럽기만 했습니다.
모도 꽂을 줄 몰랐고, 낫질은커녕 지게질마저 할 줄 몰라
졸병 시절에 대민지원을 나가면 실로 고문관 취급을 받기가 일쑤였고
그런 나를 딱하게 여긴 주인집 아주머니가
안주거리나 마련하자며 논에 물 떨어지는 땅을 파게 해
엄지손톱만한 누런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끓이고
참을 낼 때 막걸리통이나 들어나르던 한심한 머슴 군바리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얻어온 볏짚으로 월동준비를 하게 되면
가장 많이 소용되는 것이 새끼줄이어서
1차적으로 둘러앉아 하는 작업이 새끼꼬기였는데
농촌출신의 전우들이 꼬는 것은 눈짐작으로 배워 꼬다 보면
왼새끼 꼬기가 일쑤여서 결국 힘으로 나르는 도우미로 전락하곤 했었습니다.
대민지원이나 월동준비는 차후의 이야기이고
논산에서 과연 무엇을 보고 배웠을까?
<훈련소에서 깨달은 것들>
훈련소 생활은 실로 평범한 한 젊은이의 가치관을
바꿔놓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딱부리 내무반장은 걸씬하면 원산폭격을 시키고
유행가를 합창시켰는데 그것은 남진의 <울려고 내가 왔나?>였다.
그 <울려고 내가 왔나?>가 실로 난생 처음 입에 올려본 유행가라면
노래방에 동행한 교우들은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다.
이전까지 내가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들은
주로 가곡이거나 예배당에서 부르는 찬송가들이었다.
가곡은 <그 집앞>과 <선구자>를 즐겨 불렀었고
가끔 부르는 팝송이 <Wednesday child> 정도였다.
훈련 생활 사이사이에 강요되는 오랑캐라는 이름의 오락회 시간에
즐겨부르던 가곡이나 팝송이나 찬송가를 \'노래 일발 장진\'하는
훈련병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일발 장진하는 노래는 거의가 유행가였고
때때로 괴이하기까지한 노래들도 불렀다.
지금도 한번 듣고 기억한 노래 가운데 <갈보가>가 있다.
고향이 어디냥껭, 전라도랑껭.
직업이 뭐어냥겡, 양갈보랑껭.
워쩌다 갈보냥껭, 팔자라덩겡........
그런가 하면 남진의 제목은 잘 모르지만
\'물어물어 찾아 왔소, 내 님이 계신 그 곳으로\' 시작되는 노래를
\'물어물어 이가 물어, 벼룩도 같이 물어,
차가운 밤바람은 몰아치는데
모기는 간 곳이 없네, 이를 보고 물어봤소, 모기 간 곳을\'으로
개사를 해 부르기도 하여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들에게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을 배웠고
이미자를 알았고, 남진과 나훈아, 배호, 안다성을 들었다.
지난 번에도 말했지만 훈련병들은 사파의 세계에 침잠해 있었다.
가고파는 어차피 자유를 차압당한 절망있지만
먹고파는 지역 정서와 연관된 자유로운 회상이 가능했다.
서울 병력들은 서울 병력들끼리
전라도 병력들은 전라도 병력들끼리 공유한 고향의 정서이기도 했다.
서울 병력들끼리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음식이 무교동 낙지의 매콤함과
커피, 짜장면 등이었다.
전라도 병력들이 산낙지을 이야기할 때
서울 병력들은 무교동 낙지를 이야기했고
전라도 병력들이 홍탁을 이야기할 적에
서울 병력들은 커피 한 잔을 그리워 했다.
그리고 입영 전야에 명동 무진장에서 마신 나를 후회하곤 했다.
아, 그때 무교동 실비집이나 유정집에 가서 마셨어야 했는데........
\"울리 사람 이거 장사 안된다 해. 학생들 와서 짜장 하나 젓가 스무 달란다 해!\"
\"울리 사람 장사 못해해, 남자 여자 들어와 불끄고 짜장면 두 시간씩 먹는다 해\"
\"우리 집은 무지 부자야, 엄마도 자가용이 한 대, 아버지도 한 대. 형님도 한 대, 형수도 한 대, 그런데 나만 결혼을 안 해서 야간 자가용이 없어!\"
자주 서울 이야기를 나누던 김 아무개는 가끔 나를 웃기곤 했었다.
조금은 마른 상당히 낙천적인 유쾌한 친구였다.
서울서는 서로 얼굴을 몰랐지만
그 역시 쎄시봉이나 디쉐네를, 르네상스와 이십세기를 알고 있었고,
무교동 실비집과 유정의 낙지와 막걸리맛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수통의 물을 채우러 갔던 수도가에서
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수도가에는 여늬 날처럼 식사 당번들이 바쁘게 식깡을 설거지하고 있었다.
식깡에 붙었던 밥알들이 하수구 구멍에 쳐논 망에 걸려
빠져나가지 못한 채 하얗게 쌓여 있었다.
그런데 전라도 출신 2분대원이
그 밥알을 손으로 건져 입으로 가져가는 게 아닌가?
순간 그와 내 시선이 얽혔고, 그는 어색하게 미소지었다.
그 미소는 왠지 힘없고 슬프게 보였으나
나는 분개하고 있었다.
아무리 고파도 그렇지 어떻게 저렇게까지 추락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날 오후 훈련장에서 내내 그를 외면하게 하던
분노를 지워야 했다.
아저씨 때문이었다.
대개 농사를 짓다가 군에 입대한 전라도 병력들은
징집 병력보다는 지원 병력이 많아
대부분 징집당해온 서울 병력들은 그들의 지원을 납득하기 힘들어 했었다.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1967년 전라도에 한해와 수재로 농사를 망쳐
대부분의 병력들이 먹을 양식이 없어
\'밥은 먹여주는 군대\'에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나는 보리쌀 한 톨을 먹지 못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정책으로 혼분식을 강요하고
학교에서 도시락 검사까지 했지만
집안 어른들이 이북 출신들이어서 늘 먹는 밥이
팥을 섞은 팥밥이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입이 까탈스러와 늘 이천쌀이나 여주 아끼바리 타령이어서
군대에 입대하고서 처음 그처럼 거친 밥을 먹어보았었다.
결국 일 년에 서너 번 얻어먹는 흰쌀밥은
제사때나 명절 때 큰집에서 지내는 차례가 고작이었다.
그날 나는 하수구의 밥을 건져 먹는 그를 통하여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선가 굶주리고 있고,
그동안 밥상머리에서 남긴 음식들이, 그리고 음식 투정이
배고픈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죄악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더 이상 무교동 낙지를 말하지 않았고 커피 타령을 하지 않았다.
결혼했을 때, 집사람에게 평생 부탁한 밥이 보리밥이었다.
지금도 나는 잡곡밥을 먹는다.
제사와 차례를 제외하고는 항상 잡곡밥을 먹고 있다.
어제 아침은 차례를 지낸 흰쌀밥을 먹었지만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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