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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張龍二 형제가 이 밤에 無事히 내려오도록 保護·引導 해 주세요...........”
“하나님! 張龍二 형제가 이 밤에 無事히 내려오도록 保護·引導 해 주세요...........” “하나님! 장용이 형제가 무사히 내려와 우리와 기쁘게 만날 수 있도록 保護·引導해 주세요” 갈급한 심정으로 기도를 드렸다. 우리 일행들은 장용이 교우의 하산을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올라 간지 3시간이 경과하자 산악구조대에 “구조요청”을 하기위해 막 도봉산 파출소 입구로 걸어가던 중 ‘그리고 그리던’ 龍二를 만날 수 있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지쳐버린 龍二의 얼굴을 보는 순간, 우리 모두는 “야, 龍二야!”하고 얼싸안고 소리 첬다. o 9.25 10:00 도봉산 입구, 어느 때 보다도 맑고 높은 하늘은 멀리 선인봉의 웅장한 자태를 돋보이게 하면서 우리 일행들의 산행을 더욱 힘차게 만들어주었다. 꾸역꾸역 시간을 맞추어 도착한 일행들이 모두 10명, 예상보다 많은 식구들이 모여 경쾌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일행이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 서로 보조를 맞추어 가면서 滯山時間을 늘이자는 의견에 따라 천천히 걸어 2시간 30분이 걸려서야 오봉 근처 계곡에 숨어있는 56회 아지트에 도착하였다 * 참가인원(10명) : 권세헌, 남길현, 서갑수, 신진영, 유건태, 이상균, 이아건, 이희원, 장용이, 황영호 o 마침 권세헌 교우도 참석하였기에 조남석이 사건에 대해 의견도 나누고 격려도 하면서 각자 가지고 온 점심을 펴 놓고 오순도순 즐겁게 話題의 꽃을 피우며 맛있게 식사하였고, 계곡에 발을 담구고 준비해 온 양주,소주,맥주를 나누어 마시면서 정치,경제,사회,문화,연예,스포츠 등 世上事를 논하고 이따금씩 교우 한사람씩 按酒삼아 거론하면서 ‘人民裁判’도 하는데 o 오늘 따라 張龍二 교우가 주위의 疑訝해 하는 시선을 받아가며 勇氣(?)있게 쩍쩍·벌컥벌컥 마시는 것이 아닌가. 가끔 들어 볼 수 있는 龍二의 과거 武勇談(?)과 座中을 腰折腹痛케하는 구수한 유모어를 곁들이며 분위기는 점차 고조되었다(5m 지점에서는 희원이가 왁자지껄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낙엽을 깔고 午寢을 즐기고 있었고) o 제법 시간이 경과하여 오후 4시가 조금 넘어 下山하여 거의 6時 正刻 즈음에 도봉산 등산로 입구(약수터 근처)에서 龍二가 갑자기 정지하더니 “핸드폰을 아지트에 두고 왔다”며, “올라가서 가지고 올테니 니네들은 음식점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몇 사람이 시간이 늦고 곧 어두워지고 몸도 지쳤으니 내일 아침에 찾으러 가던지 아니면 내일 아지트 등산팀에게 부탁해서 회수하자고 얘기했지만 막무가내로 가서 가지고 오겠단다. 그 오기에 어쩔 수 없이 마침 길현이가 준비해 온 직경 2cm 정도 작은 손전등 하나를 지워 주고는 혼자 올려 보냈다 o 당일의 日沒時間은 18시23분이었으나 山에서의 일몰은 10-20정도 더 빠른 법 —- 용이를 올려 보내고 이내 날이 어슴프레 저물자 일행은 다소 불안감을 느끼며 목욕을 할까? 식사를 할까? 하고 망설이다가 식사를 하면서 용이의 무사귀환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o 7시가 지나 날이 본격적으로 어두워지자 우리중에는 이런저런 걱정이 시작되었고, 모두들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한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다녀온 코스가 비록 험하지는 않더라도 바위가 많아 밤에는 얼마나 위험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니 점점 불안해 지기 시작했고, 용이의 능력을 감안, 하산시간을  9시로 잡고 9시까지도 내려오지 않으면 “산악구조대”에 구조요청을 하기로 하고 용이의 휴대폰 발견을 용이하게 하기위해 또한 1秒라도 빨리 소식을 알기위해 계속 돌아가면서 龍二 휴대폰에 전화를 걸어댔다. o 계속 전화를 걸어도 감감 무소식! 걱정이 태산 같았다.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아지트 현장까지 찾아가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찾아가더라도 조그만 손전등 하나로 바위 구석구석을 어떻게 뒤진다는 것일까? 더구나 아지트 입구는 대낮에도 쉽게 찾지 못 할 정도로 입구가 좁고 빽빽한 숲에 쌓인 데다가 계곡까지는 가파른 경사가 아닌가?    - 모 人士는 年初에 불길한 걸 봤더니 남석이도 가고, 용이도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것이 아닌가?    - 모 人士는 우리기 찾아 올라가야 되지 않겠는가?    - 모 人士는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지는 않을까?    - 모 人士는 공연히 ‘土曜山行’ 만들어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가? .............등등의 근심이 가득하였다 o 앞으로는 낮 시간도 짧으니 “헤드랜턴“이나 ”손전등“을 꼭 준비하고, 3時 以前에는 하산을 시도하며, 일행이 머문 자리를 떠날 때에는 샅샅이 검색하여 분실물을 확인하고 휴대폰 같은 귀중품은 연결고리를 만들고, 아지트 등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곳에서는 전원을 꺼 놓아 유사시 疏通에 대비하자고 다짐하는 등 향후 대책도 협의하였다. o 걱정스러워 산 밑에서 도봉산을 쳐다보니 “석굴암”암자에서 비치는 불빛 만 희미하게 보일 뿐 구름에 가려 달도 보이지 않는 칠흑과도 같은 산은 오히려 공포를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혹시나 휴대폰 배터리 방전으로 우리 일행과는 연락이 안 되어도 자기 집에는 연락하지 않았을까 하여 집에도 연락해 봤으나 역시 無消息이다. o 식사도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때우고 계속 대책을 협의하였다. 산길이 어둡고 혹시 길을 잘 못 들어서 고생할 수도 있어 하산예정 시간이 10시 이후일 수도 있고 혹시 크게 다쳐 걷지 못하는 상황도 예상된다는 걱정이 앞서 결국 9시에 구조대에 구조신청을 하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출소를 50m 앞두고 어둠속에서 당당하게(?) 걸어 내려오는 龍二를 만날 수 있었다. o 얼굴은 냇가에서 씻고 와서 깨끗했지만 몸에서 나는 땀 냄새와 양 무릎과 양팔에 생긴 상처는 그가 산속에서 고생했다는 증표였으며, 그의 입가에 스민 미소는 분명 안도의 기쁨이었다. 본인도 “술김에 올라가긴 했는데 몇 번씩 후회했었다”면서,“길현이가 건네준 자그마한 손전등이 없었다면 큰일도 딩 힐 수 있었다”고 술회하면서 기다려준 9명에게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 o 장용이의 순간적인‘無謀함’과 ‘盲目’이 “몇 잔의 술”에 의해서 자행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반성의 계기가 되었고, 모두들 쓸어내린 가슴에 결국 비싼 경험을 치렀다는 共感帶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그 새카만 밤중에 山속에서 이길 저길 헤매며 머리카락이 쭈빗쭈빗 서는 공포를 느끼면서도 목적을 달성하고 무사히 내려온(쉬지 않고 연속으로 산길 3萬步를 걸은) 龍二의 鐵脚과 不屈의 鬪志는 엊그제 회갑을 넘긴 “中老人”이 아니라 마치 20代 初盤의 “피 끓는 靑年”을 보는 것 같아 一面 부럽고 자랑스럽기도 하였다. 그러나 「主여! 다시는 우리 56회에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보호해 주세요! 아멘」 '>